153화 재정비 (2)
성신 마법은 하르칸의 마도로 태어난 새로운 속성이며 마법이다.
압도적인 파괴력을 자랑하는 첫 번째 별, 유성(流星).
흐름을 거스르는 은하수의 격류. 두 번째 별, 혜성 라레니아(Rarenia).
아직 세 번째 별은 깨닫지 못했지만.
일반적인 마법과 궤를 달리하는 양의 마력을 소모하는 만큼, 비장의 수단이라고 할 만한 ‘마법’은 위 두 가지가 베르덴에게 있어 전부였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5위계에 다다랐기에 가능해진 것.
그건 그저 마법사가 가진 마력으로만 이뤄지는 마법이 아니다.
베르덴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고기압 지대인 이곳은 하강기류가 형성되어 날씨가 맑았다. 새로운 마법을 시험하기엔 최적의 환경.
화아아아아악!
베르덴이 마력회로를 전력으로 활성화했다.
4위계였던 자신을 압도하는 마력이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쳤고, 밀도가 높아지며 마력이 물리력을 갖기 시작하자 주위의 대기가 크게 흔들렸다.
오른쪽 눈에 떠오른 역천의 마법진.
거대한 마력의 형상을 두른 베르덴의 모습은 마력의 화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한 차례 호흡을 내쉰 베르덴이 마력을 강하게 비틀었다.
<볼텍스>
암자색의 폭풍이 대기를 집어삼켰다.
중력의 힘을 두르고 있는 터라 그 무게 탓에 <폭풍>과 달리 움직이게 할 수는 없었으나, 단점을 아우르는 강력한 압력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하늘에 떠 있던 구름이 끌려오더니 이내 하늘로 솟구쳤다.
쟈이안 숲 중심에 생긴 거대한 소용돌이.
갑작스레 생겨난 상승기류가 본래 지역에 위치하던 하강기류와 부딪쳤다.
불안정해진 대기 속에 갇힌 방대한 양의 수분.
이내 시간이 다해 회오리가 사라지자, 회색의 먹구름 아래로 굵은 비가 떨어지며 천둥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쿠르릉───콰앙!
한순간 번쩍인 빛과 함께 자색의 벼락이 지면을 강타했다. 그에 직격당한 나무가 불에 휩싸이며 반으로 쪼개졌다.
마력으로 형성된 것이 아닌 천연의 벼락이었다.
어느새 맑은 풍경은 사라지고 악천후가 자리를 잡았다.
그 중심에서 베르덴이 마안을 번뜩였다.
<뇌령>
베르덴의 마력이 뇌운을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먹구름 속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벼락을 베르덴의 마력이 장악하기 시작했다.
막대한 연산량과 섬세한 제어 능력에 마력회로에 부담이 찾아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에 눈동자는 벌겋게 충혈되었고 식은땀이 흘러 턱 끝에 맺혔다.
덜덜 떨리기 시작하는 육체.
그 압박감은 마치 거대한 산이 전신을 짓누르는 듯했다.
견딜 수 있다.
베르덴이 마력으로 장악한 벼락들을 허공에 집약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벼락이 한데 모인 거대한 광원체. 단순히 마력으로 구현해 냈을 번개와는 비교도 안 되는 뇌기가 시선 끝에서 번뜩였다.
마법으로 기후를 자극해 변화시키고, 그 기후를 이용하여 부족한 마법의 위력을 충족한다.
자연을 이용해 원소 마법을 한층 더 강화하는 건 5위계 이상의 원소 마법사에게 허락된 드높은 경지 중 하나.
‘하지만 지금의 나로선 이 뇌구를 마음대로 다룰 수는 없다.’
베르덴은 마력 제어에 집중력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자칫 신경이 분산되었다간 광원체가 폭발하며 무차별적으로 벼락들을 흩뿌릴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강력한 마법임은 틀림없겠지.
그러나 그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범위는 국지적이어야 하며.
위력은 한데 집중시켜야 한다.
지금으로선 베르덴의 심상에 떠오른 마법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상황.
다만 여기서 다른 마법을 합성해 변화를 줄 수는 없다. 뇌기가 너무도 강하기에 다른 마법이 버티지 못하고 집어삼켜질 테니까.
‘그렇다면.’
삼원색의 중심, 혼돈.
위계에 존재하지 않는 마법, 즉 마도를 흉내 낼 수밖에.
힘겹게 호흡을 가다듬은 베르덴이 다시 한번 마력을 일으켰다.
조금 남아 있던 여력을 전부 끌어모았다. 실핏줄이 터지며 눈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고, 숨은 목젖까지 차올랐다.
그렇게 사력을 다한 베르덴이 광원체에 하나의 속성을 부여했다.
중력이 가진 무게.
고위 속성인 전격 계열과 중력 계열로 이루어 낸 혼돈 마법.
광원체에 그림자가 드리우며 밝은 어둠이 명멸했다. 이것이 원소 마법사로서의 베르덴이 가진 전력.
그가 제어를 풀며 광원체를 끌어 내렸다.
<루인Ruin>
정적이 내려앉은 일대.
중력에 이끌린 광원체가 대기를 뚫고 아래로 낙하했다.
그렇게 지면에 착탄한 순간.
────!
푸른 섬광이 소리 없이 번쩍이며 공간을 집어삼켰다.
원형으로 퍼져 나가는 파괴. 이내 광원체와 맞닿은 지면을 중심으로 거대한 푸른 기둥이 치솟아 구름을 관통했다.
마치 하늘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광경.
이윽고 기둥이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베르덴이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반경 수십 미터에 달하는 숲의 일부가 완전히 소멸되었다.
침묵의 대지. 초고온의 열과 빛에 아예 검게 물들어 잿더미조차 남지 않은 공간에서는 어떠한 생명체조차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이게 1년의 결과물인가…….’
압도적이다.
5위계의 기준을 아득히 넘어선 위력에 베르덴이 전율했다.
그렇기에 베르덴도 멀쩡할 수는 없었다.
강하게 지끈거리는 머리.
전신의 마력회로는 너덜거렸고 몸은 욱신거렸다.
베르덴은 지면으로 내려갔다.
비틀거리다 이내 무릎을 꿇으며 손으로 땅을 짚었다.
‘역시 무리였나.’
지식으로 판단하건대, 직전의 마법은 6위계 최상위 혹은 7위계에 비견될 만한 위력을 품고 있다.
5위계 마법사는 결코 구현할 수 없는 수준. 그걸 아티팩트와 스스로의 제어 능력을 통해 억지로 만들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대가였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베르덴은 생각을 정리했다.
직전의 마법에 소모한 총 마력은 유성, 혜성과 엇비슷한 정도. 마력 면에서는 감당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성신 마법은 하르칸의 마도로 정의된 것.
그에 반해 베르덴의 마법은 여러 마법을 복합적으로 결합하고 자연의 원소조차 끌어내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체계화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그 연산량의 차이는 굳이 비교할 것 없이 후자가 압도적이었다. 마력 제어에 따른 마력회로의 부담이 극심한 편이고.
‘그렇기에 명심해야 한다.’
지금의 마법은 베르덴이 언제든 펼칠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환경이 받쳐 주어야 하며, 유리한 기후를 형성하고 또 마력을 제어할 시간까지 소모하고 나서야 비로소 구현할 수 있다.
어지간히 멍청한 상대가 아니고서야, 그렇게나 긴 시전 시간을 기다려 줄 리는 없을 테니.
이 마법을 단신으로 이뤄 내려면 7위계에 올라서야 하겠지. 아니면 특별한 마도를 이루거나.
둘 다 시간을 기약할 수 없는 경지였다.
베르덴이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 냈다.
그러곤 목적을 상기했다.
새로운 마법을 만들고, 그 마법을 실전에서 쓸 수 있도록 구상하는 등 5위계 원소 마법사로 체계화된 전투 방식을 갖추는 것이 최우선 목표.
그렇기에 베르덴은 이 숲에 찾아왔다.
쟈이얀 숲.
인적이 없는 이곳은 마법을 실험할 최적의 장소였으며.
빛이 들지 않는 동굴.
괴물들로 가득한 왕국의 금지는 실전을 경험할 수 있는 사냥터였으니.
‘내 전력을 분명히 확인했으니.’
이제 재정비에 들어갈 차례다.
생각을 마친 베르덴.
그의 벽안이 강하게 명멸했다.
* * *
어둠이 만연한 지하.
머나먼 과거에 버려진 폐허 속에는 거대한 원형으로 이뤄진, 기이한 형태의 의식장이 존재했다.
의식장 중심에는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제단이 있었고, 바깥의 경계에는 지면에 새겨진 경로를 따라 일자형의 기다란 등잔대가 정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한 노인이 제단의 앞에 서서 눈을 감고 있었다.
흑색 로브를 두른 흑마법사가 다가왔다.
“노사, 의식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주검의 영광, 노사.
그가 눈을 뜨더니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인가.”
2년이 넘는 왕국에서의 시간은 길고도 지루했다.
어린애 싸움과 다를 바 없는 왕위 다툼에서 3왕자를 지원하는 건 하찮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니.
그러나 해야만 했다.
에스리티아 왕성 아래에 잠든 ‘그것’을 얻으려면 절대적으로 왕가의 힘이 필요했으니까. 거래는 필요 불가결했다.
노사가 물었다.
“비올라는 잘 대기하고 있나?”
“예. 하지만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정체를 숨기고 다니는 건 여러모로 비올라와 맞지 않는 일이었으니. 도중에 날뛰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견한 일이지.”
교구에 잠입한 비올라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보냈다.
지루하다, 그만하면 안 되냐, 위선자들을 모조리 찢어 죽이고 싶다 등 잡설이 많긴 했지만 착실하게 정보를 캐내는 데 성공했다.
듣자 하니 4인의 주교가 힘을 모아 사령의 보주를 정화하는 중이라고.
‘위선자들이 발악을 하는군.’
사령의 보주는 주교 따위의 신성력으로는 정화되지 않는다.
최소 대주교나 추기경 또는 성녀급이 아니라면 그 사기를 지워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왕국에 그 정도의 성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노사는 사령의 보주를 미리 확보하지 않은 것이다.
어떠한 방해도 없이 의식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리고 의식의 준비가 끝난 지금, 놈들이 훔쳐 간 사령의 보주를 회수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비올라라고 해도 홀로 교구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건 어렵다.
주교와 성직자의 지원을 받는 성기사단은 특히나 흑마법사에게 까다롭기 그지없었으니까.
“그러니 시선을 돌려야겠지.”
노사가 품속에서 잘 말린 가죽을 하나 꺼냈다.
스크롤(Scroll).
고대에 실전된 마법의 기록서로, 마법을 담아내어 누구라도 마법을 사용케 하는 일회용 아티팩트. 드래곤의 외피로 만들어진 스크롤 안에는 고위계의 마법이 담겨 있다.
무려 7위계에 위치하는 흑마법이.
왕국에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윗분’들에게 하사받은 물건이다.
이거라면 교구의 시선을 돌리고, 3왕자의 거래를 이행하기엔 더할 나위가 없었다.
또한 이참에.
“쿤엘을 죽이고 사령의 보주를 훔쳐 간 자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도 좋겠지.”
칼리아 드 에스퍼렌사.
그녀를 떠올린 노사가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리마넨.”
“예, 노사.”
노사가 리마넨에게 스크롤을 건넸다.
“망자의 행진을 거행하라.”
* * *
새로운 혼돈 마법을 만드는 데 4일.
너무도 다양해져 이제는 난잡해진 모든 것을 재정립하는 데 4일.
그리고 체계화한 마법과 전투 방식을 실전에서 실험하는 데 또 4일이 걸렸다.
빛이 들지 않는 동굴.
베르덴이 전에 까마득한 구렁으로 이어진 통로에 살던 이형종과 아인종 무리를 토벌한 적이 있었으나, 짧은 시간 동안 그 빈자리를 새로운 괴물들이 다시 차지하고 있었다.
전보다도 더욱 위험한 이형종이 기괴한 눈알을 번뜩였다.
오히려 좋다.
굳이 찾아다닐 필요가 없으니까.
콰앙! 콰과광!
실전에 투입된 베르덴은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통로에 있는 놈들을 몰살한 뒤에는 반대쪽에 있는 동굴 미로까지 정리했다.
5위계에 이르며 더욱 방대한 마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마력량을 대거 소모했을 정도의 극한의 시간.
이후 3일 동안은 지친 체력과 소모한 마력을 자연적으로 회복하는 데 전념했다.
그렇게 베르덴이 재정비에 들어간 지 약 15일가량이 흘렀다.
베르덴이 공간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 자신을 비췄다.
휴식을 취한 덕에 얼굴에 피곤한 기색은 없었지만, 유자의 로브를 포함한 옷 곳곳에 이형종의 체액이 묻어 있었다.
“엉망이군.”
다행히도 냄새는 덜했으나 미관상으로는 최악이었다.
게다가 물로 지워지지도 않았다. 이대로 아세른으로 가야 한다라…….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무방비하게 장비를 벗을 수는 없으니.
아세른 성문 근처에 도착하고 난 뒤에 옷을 갈아입으면 되겠지.
찝찝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지금 베르덴의 기분은 그런 사소한 것 따윈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홀가분했으니까.
자신의 전력을 다시금 가다듬은 결과.
마력량이나 마력회로에 거의 변화는 없었으나.
베르덴은 마법사로서의 역량이 한층 더 높아졌음을 실감했다.
두 가지 고위 속성과 다양한 원소 마법, 심지어 부여 마법까지.
그야말로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이렇다 해도 초월자인 마탑주에게 닿으려면 멀었지만…….’
베르덴의 성장 속도는 압도적이다.
과거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만 나아가자.
베르덴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굳게 다짐했다.
* * *
<비행주파>를 사용한 베르덴이 아세른에 당도했다.
근처에 있는 슬론 숲에서 의복을 갈아입었다. 작년에 상인 콘라드가 파이테 영지에서 준 고급스러운 짙은 파란색의 의복이었다.
그간 혹독하게 단련된 베르덴의 육체 탓에 약간 갑갑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겉으로는 거의 티가 나지 않았다.
‘뭐, 나쁘지 않군.’
장비를 공간가방에 수납한 베르덴이 성문을 통과해 페르네에게 향했다.
최우선의 일을 끝냈으니 의뢰를 수행할 차례다.
먼저 페르네에게 의뢰의 선별을 부탁한 뒤, 장비의 세탁을 맡길 생각이었다. 그편이 더 효율적일 테니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며 주점의 문을 열었다.
“애셔 님!”
베르덴을 본 페르네가 황급하게 달려왔다.
갑자기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
베르덴이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칼리아 님에게서 지명 의뢰가 왔어요.”
칼리아?
‘주검의 영광에 대한 단서라도 얻은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
저번 의뢰로 사령의 보주를 받은 뒤, 칼리아는 흑마법사 집단의 흔적을 쫓는다고 한 적이 있었으니.
자세한 내용을 묻자 페르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적혀 있지 않아서 모르지만 상당히 급하신가 봐요. 다름이 아니라 직접 아세른에 찾아오신다고 했으니…….”
직접 찾아온다라.
아무래도 보통 일은 아닌 것 같다.
“언제 온다고 하지?”
“예, 그러니까…….”
그때, 주점의 문이 열렸다.
평범한 단색 로브를 눌러쓴 한 사람이 주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고개를 들자 검붉은 눈동자가 베르덴과 마주쳤다.
“잘 지냈나, 애셔?”
백강 칼리아.
그 모습에 페르네가 뒤늦게 말을 이었다.
“……오늘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