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52화 (152/366)
  • 152화 재정비 (1)

    베르덴의 가르침은 효과적이었다.

    겔톤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마법 이론은 너무도 새로웠다. 마치 처음으로 마법 이론을 공부했을 때와 같은 기분.

    그렇게 하루가 지날수록 그의 머릿속에 담긴 지식의 탑들은 무너지고 다시 쌓이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은 분명 겔톤이 바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아카데미와 마탑 그리고 지금에 이르며 쌓아 온 지식들.

    그것들이 그야말로 무참하게 논파당할 때마다 수십 년간의 일생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으니까. 아무리 반론을 제기해 본들 단 한 번도 겔톤이 이기는 일은 없었다.

    ‘같은 마법사인데 이렇게까지 보는 시야가 다르다니.’

    겔톤이 나뭇잎을 볼 때, 자신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고 있는 마법사는 나무의 뿌리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대한 지식이 서로 뒤엉키는 일 없게 깔끔히 이해하기까지.

    마치 다중 연속성 이론을 자신이 만든 것처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그에 반해 겔톤은 갓난아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고집마저 힘없이 꺾여 버리고 마는 그런 마법사.

    이토록 천재적인 마법사에게 가르침을 받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아니면 이와 같은 마법사가 존재하는 것에 절망해야 할까.

    너무도 생각하는 관점이 달랐기에, 다행히도 추하디추한 질투심 따윈 들지 않았지만,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시도 때도 없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새로 이해한 마법적 지식에 기뻐하고, 혼자서 해낼 수 없었음에 비관했다.

    그렇게 서로 상반되는 감정이 몇 번이나 오가는데 정신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결국 겔톤은 우울증에 걸렸다.

    * * *

    페르네의 주점.

    구석에 자리 잡은 겔톤은 칵테일을 들이켰다.

    달콤한 과즙이 혀를 자극하며 뒤이어 독한 술의 쓴맛이 밀려왔다.

    벌겋게 물든 얼굴. 이미 주량은 허용량을 넘어섰으나 겔톤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눈에 힘이 풀린 겔톤이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렸다.

    “여기 한 잔 더……!”

    페르네를 대신해 임시 바텐더로 일하고 있는 샘웰.

    그가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결국 술을 내주기로 결정했다. 겔톤을 언제든 손님으로 대하라 했고, 손님의 주문을 막을 권한은 샘웰에게 없었으니까.

    대신 알코올 농도를 최대한 줄인 레시피를 준비했다.

    로아프라에서 배운 걸 토대로, 샘웰이 새로 만들어 낸 특제 과일 칵테일. 이거라면 만취한 손님에게도 무리가 없으리라.

    “샤를로트, 이걸 손님에게 갖다주렴.”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인 샤를로트가 칵테일을 서빙했다.

    그렇게 겔톤이 잔을 잡으려던 순간.

    털썩.

    순간 정신을 놓은 겔톤이 힘없이 식탁 위에 엎어졌다.

    대낮부터 술에 잔뜩 취한 채 잠에 든 그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벌써 이게 며칠째인지.’

    샘웰은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에이든의 마력 상태를 봐준 베르덴이 지하에서 올라왔다. 그가 잠든 겔톤을 바라보자 샘웰이 슬쩍 다가가 물었다.

    “저, 애셔 님. 말씀하신 대로 영업시간과 관계없이 저분을 손님으로 대하곤 있습니다만…… 저대로 내버려 둬도 괜찮을까요?”

    겔톤이 술에 기대기 시작하고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초췌해져 가는 그의 모습은 로아프라의 폐인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술을 도피처로 삼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인데.

    저러다 깊게 중독이라도 되면 여러모로 벗어나기 어려울 게 분명해 보였다.

    그에 베르덴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저 정도로 힘들어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곤란하지.”

    “네?”

    겔톤은 자신만의 틀을 갖추고 있다.

    틀이란 마법사로서 응당 가져야 할 확신이기도 하나 그것은 가능성의 배제이기도 하다.

    검은색이 하얗다는 관념이 생기면 그 관념을 스스로 깨부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특히 마법사란 족속은 말이다.

    베르덴은 그 틀에 금이 가게 했다.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관념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든 것이다.

    겔톤으로선 일생에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과도기일 테니, 당연히 고통스럽지 않을 리가 없을 테지. 틀을 부순다는 건 지금까지의 자신을 버린다는 말과도 같았으니.

    ‘하지만 타인이 강제로 틀을 부숴서는 안 된다.’

    자칫하다간 겔톤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베르덴이 할 일은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겔톤 본인이 가진 확신에 의심이 깃들게 하는 것 그리고 겔톤에겐 필요한 건 그 관점을 온전히 이해하여 새로운 확신을 갖는 과정이다.

    이건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견뎌야 할 문제.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다.

    깨달음이란 개개인마다 다르게 오는 법이니. 하지만 확신하건대 역경을 극복하게 된다면 머지않아 다중 연속성 이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뭐, 고작 술 따위에 무너진다면 무리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내버려 두는 게 도와주는 길이니 신경 쓸 건 없다.”

    “아, 넵.”

    베르덴이 간단히 설명했으나, 당연하게도 샘웰은 그 반의반조차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마법에 대해선 문외한이었으니까. 어차피 또 들어도 마찬가지일 테니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베르덴이 과일 칵테일을 가리켰다.

    아직 겔톤이 입에 대지 않은 새 음료였다.

    “그런데 이건 네가 만든 건가?”

    “제가 직접 만든 레시핀데, 페르네 님에게 허락을 맡아 여기서 팔아 보니 반응이 아주 좋더군요. 이름은 아직 고민 중에 있습니다.”

    페르네가 극찬했던 음료 중 하난가.

    베르덴은 맛이 어떨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차피 아침 훈련도 끝난 참이니.

    “겔톤의 술값은 내가 지불하지.”

    그렇게 말하고 베르덴이 칵테일을 한 모금 머금었다.

    으깨진 딸기의 식감 등 과일의 비중이 상당했으나, 그와 함께 조화롭게 섞인 술의 맛은 예상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맛이 좋군. 확실히 팔리긴 팔리겠어.”

    “가, 감사합니다.”

    베르덴의 칭찬에 샘웰이 쑥스러운 듯 볼을 긁었다.

    “아, 그런데 혹시 라인즈로는 언제쯤 갈 수 있습니까?”

    재촉하는 건 아니다.

    에이든의 상태가 어떤지 크게 돌려 말한 것이다. 특이 형질에 대해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했기에 샘웰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근처에 있던 샤를로트가 귀를 쫑긋거렸다.

    칵테일을 한 모금 더 마신 베르덴이 답했다.

    “내일.”

    “아, 내일…….”

    샘웰이 눈을 깜빡였다.

    “예? 내일이요?”

    * * *

    에이든에게는 마법적 재능도 있었지만, 혹독한 경험을 겪었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나름의 끈기와 고집도 가지고 있었다.

    마력회로가 멋대로 활성화되지 않게 하는 것.

    에이든이 이러한 마법사의 기본을 갖추는 데 오래 걸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물론 부족한 점은 있지만.’

    감정이 격해지거나 빈사 상태에 이른다면, 그에 대한 방어기제로 마력이 제어를 벗어날 수도 있다.

    가진 마력을 완전히 통제하는 수준은 오랜 시간 마력을 다뤄야만 이룰 수 있었으니까. 마력회로를 자각한 지 고작 2주도 되지 않은 에이든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였다.

    그래도 에이든은 당초의 목적이었던 최소 수준의 마력 조작 능력은 갖춘 상태.

    일상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되었으니 더 이상 아세른에 남을 이유는 없었다.

    다음 날, 페르네의 주점 앞에 마차가 한 대가 준비되었다.

    “덕분에 가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잘 배웠습니다, 페르네 님. 이건 약소하지만…….”

    샘웰이 페르네에게 쪽지를 건넸다.

    슬쩍 열어 보자 베르덴이 맛있다고 말했던 특제 과일 칵테일의 레시피가 담겨 있었다.

    “이걸 줘도 괜찮은 거예요? 내가 상품으로 쓸지도 모르는데.”

    “물론 그러셔도 상관없습니다. 제 레시피가 몇 개 더 있기도 하고, 저와 페르네 님의 장사가 서로 겹칠 일은 없으니까요. 그, 애셔 님도 마음에 드신 것 같고.”

    “그렇다면 사양하진 않을게요. 고마워요.”

    고개를 끄덕인 샘웰이 마부석에 올라탔다.

    뒤이어 떠날 채비를 갖춘 에이든과 샤를로트가 허리를 숙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꾸벅.

    두 사람의 작별 인사에 페르네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남매까지 마차에 올라타고 난 후, 베르덴이 샘웰 옆에 자리를 잡았다.

    베르덴이 페르네에게 말했다.

    “그럼 다녀오지.”

    “잘 다녀오세요, 애셔 님.”

    페르네에겐 에이든 일행을 데려다준 후, 잠시 들를 곳이 있다고 말해 뒀다.

    짧으면 7일, 길면 20일.

    그 정도 시간이면 베르덴의 목적을 이루기엔 충분할 것이다. 대신 정확히 시간을 특정하기 어려워, 페르네에게 미리 그레이의 의뢰를 수배해 달라고는 할 순 없었지만.

    ‘시간은 내 편이니까.’

    당분간 크게 이자 붙을 일도 없으니, 대부업자 바르톨과 다이나 은행에서 빌린 총 27억 2천만 엘크를 급하게 갚지 않아도 되었다.

    거기다 언제나 중요시할 건 베르덴 자신의 강함이었으니.

    그리고 겔톤에게도 언질은 해 뒀다.

    뭐, 지금 상태로 이론 강의를 받는 건 무리이기도 하고, 스스로 극복하기 전까지는 강제 휴강이기도 하니 당장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가능하면 빨리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만.

    “이랴!”

    샘웰이 고삐를 내리치자 마차가 출발했다.

    아세른의 성문을 지나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녹색 초원. 그 하늘은 더없이 깨끗했다.

    * * *

    라인즈로 가는 여정은 조용하기도 했고 시끄럽기도 했다.

    특히 남매는 아세른에서 충분히 휴식한 덕분인지, 로아프라에서 봤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마차의 속도는 빨랐으나, 심적으로 느긋한 여행길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가 그 라인즈…….”

    세 명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베르덴에게 있어 아우로플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도시였으나 이들에게는 달랐다. 그야 왕국에서도 가장 안전한 도시로 정평이 난 곳이니까.

    어렵지 않게 성문을 통과한 뒤, 빌린 마차를 반납했다.

    베르덴이 세 명에게 봉투를 하나씩 건넸다.

    “전에 약속했던 코스타의 재산이다.”

    갈리아크가 돈을 가져가지 않은 덕분에 생각했던 것보다 액수가 많았다.

    “감사합니다!”

    샘웰이 힘차게 고개를 숙이며 봉투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애셔 님.”

    꾸벅.

    샘웰은 그렇다 치고 에이든과 샤를로트는 염치가 없었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그들의 생계에 있어 이 돈은 꼭 필요했으니까.

    언젠가 꼭 갚겠다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봉투를 건네받았다.

    그때, 샤를로트가 주머니에서 작디작은 부적 하나를 꺼내 베르덴에게 건넸다.

    ──선물이에요.

    페르네의 주점에서 일하고 받은 돈.

    그걸로 아세른의 시장에서 부적을 사 온 것이다. 물론 베르덴에게서 받은 빚을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행운을 바라는 것, 그것이 샤를로트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었다.

    시골 소녀다운 순박함이었다.

    “고맙게 받지.”

    베르덴이 부적을 받자 샤를로트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샘웰이 허허 웃었다.

    “나중에 라인즈에 방문하게 되시면 꼭 제 가게에 와 주십시오.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가게 이름은 뭘로 지을 거지?”

    “아, 그게…… 제 이름을 넣어서 만들까 합니다. 샘웰의 주점 같은 식으로.”

    가게에 자신의 이름을 넣는 것은 샘웰의 로망 중 하나였다.

    “기회가 되면 들르도록 하지.”

    “하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샘웰과 샤를로트는 저마다 하나씩 보답을 했다, 약소할지라도. 그에 반해 에이든은 가장 많은 걸 받았음에도 뭔가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물쭈물하던 에이든이 소리쳤다.

    “저, 저도 나중에 은혜를 꼭 갚을게요!”

    에이든이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재능을 살려 마법사가 될 수도 있고, 도시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특이 형질을 더욱 발전시켜 역사에 이름을 남길지도 모르고.

    어쩌면 훗날 에이든이 베르덴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이미 갚을 필요 없다고 했지만 지금의 에이든은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또 말해 봤자 입만 아프겠지. 베르덴은 전에 했던 말을 반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로아프라에서 라인즈까지 이어진 인연.

    작별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 * *

    에이든 일행을 라인즈에 데려다준 베르덴이 허공을 비행했다.

    쟈이안 숲.

    금지 중 하나인 빛이 들지 않는 동굴이 존재하는 숲에 도착했다. 마력감지로 파악한바 이 주변에 사람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공중에 멈춰 선 베르덴이 눈을 감았다.

    ‘마탑을 떠난 지 이제 1년인가.’

    마도 축제는 4년 주기로 개최되기에 아예 같은 날은 아니었지만.

    날짜로 치면 마탑에서 역천을 이루고 탈출해 공국에 도착한 때가 바로 오늘이었다.

    작년 이맘때쯤의 기억이 떠오른다.

    상인 콘라드를 위기에서 구하고 파이테 영지에서 광대 오크를 토벌. 그리고 나아가 글러트니의 박사와 적대하게 되었고 강력한 언데드와 맞섰다.

    후에 페일에게 의뢰를 받기도 했고, 성신 마법을 전해 주며 4위계로 오르도록 도와준 블랙 아워의 창설자 하르칸과 만나기도 했었다.

    고작 1년이란 시간에 불과했으나 너무도 멀게 느껴진다.

    아마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겠지.

    베르덴이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사고를 전환했다. 굳이 인적이 없는 이 숲까지 온 것은 단 하나, 현재 가지고 있는 전력을 재정비하기 위함이다.

    급한 일을 끝낸 지금이 바로 적기였다.

    자신의 강함을 직접 확인할 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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