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51화 (151/366)
  • 151화 가르침 (3)

    다중 연속성 이론.

    베르덴이 마탑에서 배우고 스스로 독학하며 얻은, 깨달음의 집약체.

    창시자인 그 스스로도 자부심이 가득한 결과물이었고, 실제로 이론이 공개되었을 때는 전 마탑을 넘어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다만 그 주인공은 베르덴이 아니었다.

    루커드 매니악스.

    베르덴의 이론을 처음으로 증명해 준 마법사였으며, 그의 이론을 강탈해 베르덴이 받았어야 할 모든 영광을 가져간 도둑이자, 현 보헤미른 마탑주의 세 번째 제자가 된 사내.

    사실상 베르덴이 겪었던 불행의 시작점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베르덴이 나락으로 떨어질수록, 루커드는 이론을 발판 삼아 높이 올라갔다.

    과거의 베르덴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없이 무력한 약자에겐 진실을 말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 힘이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베르덴에게 루커드 따위를 죽이는 것쯤이야 간단한 일이다. 놈은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마법사였으니.

    마법사로서 더없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한들 루커드에겐 그 기회를 붙잡을 재능도, 노력도 없다. 적어도 베르덴의 기준으론 그러했다.

    루커드는 결코 베르덴의 경쟁자가 될 수 없다.

    놈이 가진 가치는 발로크 베시아스의 제자라는 것뿐. 그렇기에 훗날 보헤미른 마탑주를 상대하기 전에 루커드를 먼저 처리할 생각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제자라고 해도 놈의 죽음은 마탑주의 자존심에 상처 입히기 쉬울 테니.

    베르덴이 상념에 사로잡혀 있던 중, 겔톤이 이론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다중 연속성 이론은 원소 마법사가 반드시 학습해야 할 이론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극히 드물게 한 속성에만 적성이 있던 마법사가 무려 세 가지 속성을 다루게 된 적도 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다만…….”

    겔톤이 침울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론이 너무 난해하더군요. 더군다나 일부 마법사들은 이론을 실천하던 중 마력회로에 큰 고통이 찾아와서 기절한 적도 있다고도…… 대체 어떻게 이런 이론을 만들었는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론의 창시자인 보헤미른 마탑주의 제자는 30대 초반밖에 되지 않았고 이전까지는 두각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런 버러지 따위를…….”

    베르덴이 곧바로 입을 닫았다.

    눈앞에서 쓰레기를 찬양하는 걸 들었더니 반사적으로 하게 된 말실수였다.

    겔톤이 잘못 들었나 싶은지 눈을 깜빡였다.

    베르덴은 곧장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뭡니까? 제가 그…… 이론에 대해 알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데.”

    “애셔 님이 최소 4개의 속성을 다룬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재능의 영역이겠지만, 그렇기에 제가 찾지 못하는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게다가 다양한 원소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루신다고 했으니 배움 또한 깊을 터. 어쩌면 다중 연속성 이론을 완전히 이해하고 계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겔톤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 생각이 맞았던 모양입니다. 만약 정말로 이론에 대해 알지 못하셨다면 거절하셨을지언정, ‘알지 못할 가능성’이라고 되묻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정답이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베르덴보다 다중 연속성 이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역천을 이루어 얻어 낸 새로운 육체.

    모든 원소 속성을 다룰 수 있는 마력회로 덕분에 그 이론을 본인에게 적용할 기회가 없기는 했지만.

    ‘그나저나 어떻게 할까.’

    마법사가 자신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건 처음이다.

    자존심 같은 건 진즉에 버렸다는 뜻. 더군다나 마탑 출신이,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이렇게까지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건 이 바닥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베르덴이 물었다.

    “만약 의뢰를 수락한다면 제게 뭘 줄 수 있습니까?”

    탁.

    겔톤이 푸른 액체가 담긴, 작은 플라스크를 꺼냈다.

    “마력 포션. 아시다시피 마탑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마법사의 생명 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이것과 같은 크기의 마력 포션을 8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력 포션은 이미 상용화를 마친 일반적인 포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진귀하다.

    구하기 어려울 뿐만이 아니라, 궁지에 몰린 마법사를 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저만한 크기와 품질을 보면 최상급 포션보다 3배 이상은 비쌀 터.

    하지만.

    “다른 건 없습니까?”

    “다, 다른 거 말입니까?”

    베르덴의 강점 중 하나는 방대한 마력량이다.

    과거에도 그랬으나 5위계에 오른 지금은 더더욱. 마력 포션을 통해 회복할 수 있는 마력량은 그에게 있어 한 줌 정도였으며, 애초에 필요한 경우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으음……!”

    당황한 겔톤이 신음했다.

    큰마음 먹고 소지품을 털었는데 단박에 거절당할 줄이야.

    ‘그만큼 부유하다는 건가? 아니, 그건 당연한 거겠지.’

    고위 속성을 다루는 마법사이니.

    돈이 부족할 리 없으니 마력 포션이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덴은 현재 수십억의 빚을 지고 있었지만 겔톤이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고민이 길어지며 미간이 깊게 파였다.

    ‘돈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안 된다면…… 남은 건 매직 아이템인가.’

    마침 적합한 게 하나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겔톤이 포션을 집어넣더니 품속에서 더 작은 걸 내놓았다.

    짙은 녹색 빛을 띠고 있는 보석이었다. 그걸 본 베르덴의 눈이 약간 커졌다.

    “그건······.”

    “덱사르의 보석입니다.”

    * * *

    덱사르의 보석(Dexar’s Jewel).

    말 그대로 덱사르라는 장인이 자신만의 세공술로 가공한 보석으로, 마법사가 자신의 마법을 담아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희귀 마법 물품이다.

    “보아하니 2세대 시리즈인 거 같은데, 맞습니까?”

    “오, 마법 물품 지식에 대해 해박하시군요. 그렇습니다. 이건 덱사르의 2대 제자들이 만든 보석으로, 제가 젤디른 마탑에 있을 시절에 얻은 마법 물품입니다. 운이 좋았지만…… 횟수를 많이 소모하여 가치 자체는 직전에 제시한 포션들과 비슷할 겁니다.”

    2세대 덱사르의 보석이 담을 수 있는 건 최대 5위계 마법까지.

    물론 영구적인 건 아니고 사용 횟수가 제한되어 있는 소모품이다. 겔톤이 가진 보석의 품질을 보면 남은 횟수는 5번 남짓.

    그렇다 해도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베르덴이 주목한 건 그게 아니었다.

    ‘덱사르의 보석엔 마법진을 새겨 넣을 수 있다.’

    마법진의 악명은 바로 높은 난이도에 있다.

    지식을 쌓는 것도 그렇지만, 마법진을 작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실전에서 활용하기가 극히 어렵기 때문이었다.

    덱사르의 보석이 있다면 그러한 시간을 생략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단점이 존재한다.’

    첫 번째, 마법진을 완성하면 수정할 수 없다.

    보석 자체에 새기는 거라 되살리는 건 덱사르 본인이 온다고 한들 불가능하다. 용도가 한정된다는 의미.

    이어 두 번째, 마법진을 사용하면 보석은 소멸된다.

    남은 사용 횟수와는 무관하다.

    마법진을 새기는 즉시 일회용 소모품이 되는 것이다.

    ‘물론 효율 좋게 사용 횟수가 한 번 남았을 때, 마법진을 새기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건 앞뒤가 맞지 않다.

    아끼고 아끼느라 마법진을 새기는 걸 늦춘다면 언제고 필요할 때에 즉시 사용하지 못할 테니까. 본래 있던 마법진의 단점을 되살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보석에는 공통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마법을 담은 혹은 마법진을 새긴 마법사 본인밖에 쓰지 못한다는 것. 마력과 관계가 깊기에 타인이 간섭하는 게 불가능하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마법사들은 자신의 마법이나 마법진을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더 난장판이 됐을 거고.

    “흐음…….”

    베르덴은 이런저런 장점과 단점을 고려했다.

    과연 덱스터의 보석이, 그에게 있어 유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판단은 곧 내려졌다.

    ‘괜찮은데.’

    마법진의 효과가 강력할수록 작성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한 시간을 아예 없앨 수 있다는 건 큰 메리트였다. 마법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정점에 달해 있는 베르덴에겐, 마력 포션 따위보단 덱사르의 보석이 압도적으로 더 매력적이었다.

    즉, 보수로써 합당했다.

    이유는 더 있었다.

    ‘의뢰 여건도 더할 나위가 없다.’

    여타 의뢰들처럼 하나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

    아세른에 머물면서, 하루에 조금씩 시간을 내어 겔톤을 가르치면 그만이니. 베르덴이 중력 마법을 훈련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설마 내가 만든 이론을 깨우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걸 직접 볼 줄이야.’

    뭔가 형용하기 어려웠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기분이었다. 베르덴도 결국 마법사란 거겠지.

    겔톤의 의뢰는 수락한다.

    베르덴은 이미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 전에 약속을 하나 받아야 했다.

    “겔톤 로드니, 제가 의뢰를 수락한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습니까?”

    겔톤의 침묵은 길지 않았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르쳐 드리죠.”

    다른 누구도 아닌, 이론 창시자의 특강.

    베르덴이 미소 지었다. 겔톤도 따라 웃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 겔톤이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마법사는 나이가 들수록 강해진다.

    평생에 걸쳐 쌓아 온 지식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연구하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대신 머리가 서서히 굳어 간다.

    자신의 배움에 신념을 가진 마법사는 새로운 걸 받아들이기 몹시 어려워한다. 되레 그건 틀렸다고 우기기 마련이다.

    그런 마법사를 상대로는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겔톤의 경우도 그러했지만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자신의 배움과 다른 것들을 배척하지는 않았으니까. 단지 머리가 딱딱해서 다른 이론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이걸 스스로 해결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이 믿었던 지식에 의심이 생기는 순간, 나머지 지식 또한 의심하게 될 테니.

    몇몇 마법사는 여기에서 무너지며, 극소수는 그대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마법사에겐 지식이란 목숨 혹은 그 이상의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해결책은 있다.

    바로 자신보다 월등한 마법사를 지도자로 두는 것.

    물론 그 과정은 순탄할 수 없다.

    마법사의 일생을 자극하는 것이기에, 감정이 격해지는 게 당연했다.

    “이이…… 익……!”

    부들거리던 겔톤이 빽 소리를 질렀다.

    “아니,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겁니까! 저는 그런 이론 같은 거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카데미에서도 그리고 마탑에서도!”

    겔톤은 마탑 출신답게 지식은 많았고, 백금 등급 모험가답게 경험도 많았다.

    미스릴 모험가 파티 만하에서 그의 비중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유능했다.

    마법에 대한 집착과 충동이 강하긴 하지만 이건 마법사로서 흔한 편.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는 이론을 위해 노력하는 겔톤의 모습은 마법사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런 그가 분노했다.

    연 단위로 모험을 함께한 동료들조차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베르덴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제 말이 틀렸다는 겁니까?”

    “그야 말이 되지 않…….”

    “‘원소의 근원’의 목차 385번과 ‘발바의 균형’의 목차 229번 그리고 ‘고유 마력회로’의 목차 63번을 참고한 뒤, 그 관점에 입각해서 보시면 다를 겁니다.”

    베르덴이 언급한 건 하나같이 난해한 이론들.

    겔톤도 위 세 가지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었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누군가에게 창피를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소지품에는 위 이론들에 대한 책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겔톤이 당장에 두꺼운 책들을 꺼냈다.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 가며 베르덴이 말한 목차의 내용을 훑었고, 그 뒤에 논쟁을 벌였던 다중 연속성 이론의 문구를 봤다.

    “어…….”

    이해가, 된다.

    당장 뭐라 말할 수는 없었지만, 머릿속에 담겨져 있던 개념과는 분명 상이했다.

    겔톤이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베르덴이 손가락으로 겔톤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이 틀렸습니다, 겔톤 로드니.”

    겔톤이 베르덴을 찾아온 건 우연에 가까웠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그건 곧 최선의 결과로 나아가는 길이다.

    굳은 관념을 깨부수는 것.

    스스로 역천을 이뤄 낸 베르덴은 그야말로 최고의 적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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