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50화 (150/366)

150화 가르침 (2)

아세른의 모험가 길드 연무장.

아무도 없는 공간에 홀로 선 베르덴은 자신이 이해하고 정리한 중력 속성에 대해 떠올렸다.

중력은 질량에서 비롯되는 힘이며 마력을 질량 자체로 변환해 형상과 상태를 구성하는 것이 중력 마법이다.

원리는 밀도를 높인 마력이 물리력을 갖는 것과 같고 그 과정 자체는 지금까지의 원소 마법과 동일하다.

‘그러니 실패할 이유는 없다.’

베르덴이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전신에 가득 들어찬 마력의 성질을 바꾸기 시작하자 중력 속성 특유의, 흑색에 가까운 보라색, 암자색(暗紫色)의 빛이 옅게 흘러나왔다.

이어 베르덴이 변환시킨 질량을 한순간에 방출했다.

<중력파>

거센 파동이 주위를 휩쓸었다.

흔들리는 대기. 연무장 위에 있던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시야를 가렸다. 베르덴은 멈추지 않고 연이어 마법을 시전했다.

<석벽>

<데몰리션>

솟아오른 벽에 암자색의 구체가 쇄도했다.

그리고 닿는 순간 2위계의 벽을 단숨에 날려 버리며 구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규모가 작긴 하나 상당한 파괴력이다.

간단히 공격 마법으로써의 성능을 확인했으니 다음은 방어 마법 차례.

마안을 발동해 원거리에서 마법을 발동했다.

<거암강타>. 그 궤도의 중심에는 정확히 베르덴이 있었다. 마법서로 강화된 암석이 날아오는 걸 보며 베르덴이 손을 내밀었다.

<중력 장막>

짙은 보락색의 막이 베르덴을 감쌌다.

그 직후 암석과 충돌하며 굉음이 들려왔다. 먼지가 가라앉자 장막은 박살 나지 않은 채 여전히 베르덴을 지키고 있었다.

물리 저항에 특화된 방어 마법이라 그런지 상당한 성능이었다.

‘그래도 의존하는 건 피해야겠군.’

장막에 미세한 금이 가 있는 걸 보며 마력을 거두었다.

이렇게 간단히 중력 마법에 대한 실험은 끝.

베르덴은 자신이 체감한 성능을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각각 2위계, 3위계 그리고 4위계 마법이었으나 효과는 그야말로 고위 속성다웠다. 특히나 물리적인 영향력은 다른 동 위계 원소 마법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전격 계열이 생명체에게 절대적인 파괴력을 자랑한다면, 중력 계열은 실체를 가진 모든 것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한다고 볼 수 있었다.

하나, 단점은 명확했다.

‘마법사가 주력으로 삼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군.’

중력 마법은 질량과 연관된 특성상 장거리의 적을 상대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통상적으로 근접전에 취약한 마법사에겐 결코 장점이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제때 연산에만 성공한다면 접근한 상대를 효과적으로 떨쳐 버릴 수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낭비겠지.’

고위 속성을 상대를 밀어내는 용도로만 쓰다니.

마법을 깨우치는 난이도를 고려해 본다면 효율은 최악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서적을 구할 돈으로 전열을 지켜 줄 호위나 동료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근접전 또한 하나의 수단으로 삼은 마법사에겐 예외였다.

부여 마법을 통한 신체 강화와 혼돈을 이용한 마법의 재조합.

그로 인해 탄생하는 여러 마법과 다양한 전투 방식이 베르덴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생각만 해도 기대감이 차오르는 듯했다.

‘······그래도 뭔가 난잡하긴 하군.’

5위계에 다다르면서 마법의 가짓수가 너무도 많아졌다.

그러니 전력을 한번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기반이 불안정하면 언젠가 무너져 버리고 말 테니까.

시기는…… 그래, 에이든 일행을 라인즈로 데려다주고 난 뒤면 좋겠지.

5위계 부여 마법과 달리, 중력 마법은 원소 마법처럼 이론과 연산으로 이뤄져 있으니까.

신체나 사물에 영향을 끼치는 계열이 아니니, 자신에게 허락된 5위계 중력 마법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유자재로 다룰 정도로 완전히 숙달하는 건 무리겠지만 말이다.

베르덴이 생각을 마쳤다.

그는 길드와 약속한 대여 시간이 끝날 때까지 연무장에서 날뛰었다.

* * *

베르덴은 의뢰를 받지 않고 마법에 전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에 관심을 끊은 건 아니었다. 에이든의 일을 제외하고도 그 외에 중요한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으니까.

페르네가 베르덴 앞에 두꺼운 봉투 하나와 서류 하나를 들고 왔다.

“코스타가 남긴 보석 상자하고 여러 귀중품은 전부 처분했어요. 요즘 귀족들에게 인기가 있는 보석이 있어서 값은 충분히 받아 냈죠.”

“고맙군.”

“그리고 이건 탐색자들이 보낸 탐사 보고서예요.”

베르덴이 유적 탐사를 의뢰한 지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라이반은 약속한 대로 15일 주기의 탐사 보고서를 전달했고, 이번이 그 두 번째였다. 첫 번째야 딱히 주목할 게 없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테인체 구릉 탐사가 끝나고 아르에곤 산맥으로 넘어갔다라…….’

예상 시간은 본래 2개월이었다.

그것보다도 거의 배에 가까운 속도였다. 보고서를 보면 실종된 탐사단이 철수한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째서 탐사단은 마도왕의 유적을 찾다가 사라졌을까.

궁금하긴 했으나 알아내기엔 아직 일렀다. 뭐, 탐사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좋은 일이니, 굳이 나쁘게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베르덴이 공간가방에 보고서를 챙겼다.

그러자 그 앞에 마주 앉아 있던 페르네가 말했다.

“그리고 애셔 님이 하신 의뢰인, 외수의 행방에 대해서 말인데요…….”

“찾은 건가?”

“아뇨. 외수 라이너스 볼티모그가 실종된 지 약 7년이 지나서 실종 위치를 특정할 수가 없었어요. 각 위치별 시간대를 정확히 몰라서 정보가 혼재될 가능성도 높고요.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했어요.”

페르네가 왕국 지도를 꺼내 펼쳤다.

그러고는 왕국 최북돤에 있는 도시를 손으로 짚었다. 10년 전 외수가 왕국에 입국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장소였다.

“10년이라. 시간이 오래 지난 것 같은데, 흔적은 남아 있었나?”

“외팔이 혼자 여행을 다니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니까요. 외수는 장인이니, 여관이나 대장간을 중점으로 알아보니까 작은 목격담 하나씩은 접할 수 있었어요.”

사실 과거의 페르네로선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라고 해도 왕국 전역에 정보망을 둔 건 아니었으니까.

정보상에겐 각자의 영역이란 게 있고, 영역 밖에 대한 정보에 취약하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어떤 유능한 정보상이라고 한들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페르네가 조합의 빈자리를 차지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손도 못 댔던 북부 지역까지 영향력을 넓힐 수 있게 된 것이다.

베르덴으로 인해 시작된 변화로 생겨난 결과였다. 그에게 있어 아주 좋은 의미로.

“그렇다면 단서를 쫓는 데 얼마나 걸리지?”

“크게 돌아가는 방법이라서 수개월은 걸릴 거예요. 대신에 가장 확실하기도 하죠.”

“돈이 꽤 들 텐데?”

“저야 애셔 님이 의뢰를 해결하실수록 의뢰주에게 따로 의뢰 수수료를 받으니까요. 그리고 애셔 님이 저번에 고액 의뢰를 거의 날마다 해결하셨으니…… 솔직히 제 자금 사정은 좋은 편이에요.”

굉장히.

페르네는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러던 중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베르덴이 염동력으로 문을 열자 샤를로트가 음료수를 들고 찾아왔다.

“잘 마시지.”

“고마워, 샤를로트.”

샤를로트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바깥으로 나갔다.

닫혀 가는 문틈 사이로 곧장 청소 도구를 드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나저나 네가 샘웰하고 샤를로트를 고용할 줄은 몰랐는데. 주점은 혼자서 충분한 거 아니었나?”

“일하고 싶다는데 다른 곳을 추천해 줄 순 없잖아요. 아세른의 치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샤를로트와 샘웰은 페르네의 주점에서 일하고 있다.

샤를로트는 주로 청소나 서빙을 맡았으며, 샘웰은 임시 바텐더로 고용되었다.

로아프라의 안내인으로서 살아오며 얻은 지식이 많은지, 평범한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칵테일을 제조해 손님들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었다.

“그 사람 라인즈에서 가게를 연다고 했었죠? 제가 볼 때 주점을 열면 무조건 성공할 거예요.”

“그 정도인가?”

“애셔 님도 드셔 보시면 알 거예요.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준비해 드릴 수 있는데.”

“아니, 다음에 부탁하지.”

베르덴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딱히 칵테일이 당기지 않았다.

“그보다 에이든은 어떻지?”

“식사는 챙겨 주고 있는데 주점 지하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던데요? 저녁때나 돼서 나오는데 매일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요.”

제대로 노력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기야 당연하겠지. 특이 형질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자신의 목숨뿐만이 아니라 샤를로트의 생명마저 위협할지도 모르니까.

그들이 귀족 태생이었다면 축복이었겠으나, 아무런 배경이 없는 약자이기에 그러했다.

만약 에이든이 마법사의 길을 걷는다면 어떻게 될까.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니 말릴 생각은 없었으나 분명히 순탄치 않을 것이다. 그들을 이해해 주고 보살펴 줄 권력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은.

그때, 페르네가 말했다.

“아, 그리고 애셔 님 앞으로 지명 의뢰가 하나 왔어요. 말씀하신 대로 거절하려고 했는데 내용을 좀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녀가 의뢰서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겔톤이라면…….”

미스릴 모험가 파티 만하의 마법사.

과거 베르덴은 그를 대신해 토벌에 참가했고 정령을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 베르덴이 시선을 돌렸다. 구석에서 반짝이고 있던 정령 블루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런데 그 모험가가 날 왜 찾는 거지?’

접점이 없으니 알 수가 없었다.

“의뢰 내용은 뭐지?”

“그러니까…….”

앞장을 넘긴 페르네가 의뢰에 대한 내용을 가리켰다.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던데요?”

“……마법?”

갑자기 무슨 마법?

“거기까지는 적혀 있지 않고 일단 만나서 대화를 나눠 보고 싶다고 해요. 보수도 그때 논의하고 싶다고. 백금 등급 모험가니 신분은 확실한데 의뢰가 전체적으로 두루뭉술하긴 하네요. 거절할까요?”

백금 등급의 마법사면 4위계임이 분명하다.

그런 자가 갑자기 베르덴에게 배움을 청하다니. 대외적으로 베르덴 또한 4위계 마법사로 알려져 있는데도 말이다.

꺼림직함보단 궁금증이 앞섰다.

어차피 아세른에서 약속 장소를 잡을 테니 베르덴의 마법 훈련에 방해가 되지 않을 터. 의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거절하면 그만이다.

베르덴은 결정을 내렸다.

“아니, 일단 만나 보도록 하지.”

* * *

겔톤 로드니.

미스릴 모험가 파티 만하의 마법사이자 백금 등급 모험가.

그는 젠티르 마탑 출신의, 물과 얼음의 4위계 마법사로서.

평소에는 얌전하고 제 역할도 충실히 잘하지만 마법과 관련해서는 고집스럽고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사내였다.

오죽하면 토벌 계획이 잡혀 있는데도 도중에 나가 방에 틀어박힐 정도니. 만약 다른 파티였다면 진즉에 내쫓기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 겔톤이 베르덴을 찾아왔다.

이유는 하나였다. 오직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

페르네의 주점에서 베르덴과 마주 앉은 겔톤.

정리되지 낳은 난발의, 짙은 남색 머리칼. 파란색 로브를 두른 그의 외모는 폭력성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학자다운 생김새였다.

눈가가 퀭한 게 많이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저 나이에 나같이 어린 마법사에게 가르침을 청한다라.’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베르덴은 조용히 겔톤이 먼저 말하길 기다렸다.

이윽고 침묵 끝에 겔톤이 입을 열었다.

“동료들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고위 속성인 전격 계열 마법사, 거기다 다른 속성들까지 자유롭게 다루며, 4위계 마법사임에도 숲의 정령을 토벌하셨다고. 먼저, 동료들을 구해 주신 행동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겔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정중하고 겸손한 태도. 예상과 달리 마탑 출신 특유의 오만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베르덴이 말했다.

“저에게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한 게 맞습니까?”

“맞습니다.”

“사실 저는 의문입니다. 4위계 마법사에다가 마탑 출신이라면 배울 만한 게 거의 없으실 텐데.”

베르덴도 마탑 출신이기에 잘 알고 있다.

거기서 배우는 마법학이 얼마나 깊고 방대한지.

“음, 그렇긴 합니다. 어린 나이에 마법에 입문해 많은 걸 보고 듣고 또 배웠죠. 솔직히 말해 마법 지식은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거라 자부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얼음과 물 계열의 원소 마법뿐입니다.”

겔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 한계 위계는 5위계. 하지만 저는 4위계임에도 너무 큰 벽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평생 넘을 수 없을 것 같아, 무리하게 마탑을 나오고 모험가로 나섰습니다.”

그가 과거를 회상했다.

“많은 불편함이 있긴 했으나, 동료와 함께 사선을 넘는 건…… 정말로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즐겁고 치열했죠. 하나 그렇다고 벽을 넘을 단서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마법에 대한 열의가 줄어들기만 하더군요.”

끝없는 정체.

이건 누구에게나 큰 난관이다.

“그래서 저는 다른 속성의 마법에 대해 배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른 분야에 있는 마법에 대해 깊이 공부하다 보면 뭔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겔톤이 자신의 공간가방에서 여러 서적을 꺼냈다.

원소 마법에 대한 이론서. 베르덴이 어릴 적에 완벽하게 이해를 마친 것들이었다.

“지난 5년간, 저는 관련 이론서들을 정독하며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도중에 뭔가 떠오르면 방 안에 틀어박히기 일쑤였지요. 저번 토벌에 제가 빠진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겔톤이 분한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왜 이런 마법적 작용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이론서는 이해가 되는데 오직 하나가, 하나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겔톤이 책 하나를 책상 위에 강하게 올려놨다.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페이지가 넝마처럼 해져 있었다.

“그렇기에 애셔 님을 찾아왔습니다. 다양한 원소 속성을 다루는 마법사라면 제게 이 이론을 이해시켜 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혹시 이 이론에 대해 아신다면, 부디 제게 가르침을 주시길 바랍니다.”

겔톤이 도움을 청했다.

초면인 베르덴에게 한계 위계까지 밝힌 걸 보면 얼마나 절박한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베르덴이 책의 제목에 시선을 향했다.

[다중 연속성 이론]

‘이거 내 거잖아.’

겔톤이 가르침을 청한 이론.

8년 전, 베르덴이 만들었으며, 빼앗겼던 이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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