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49화 (149/366)
  • 149화 가르침 (1)

    마력 승강기를 타고 아우로플로 올라왔다.

    지상에 내리쬐고 있는 화창한 햇빛.

    몇 주 만에 보는 태양 빛에 에이든과 샤를로트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샘웰 또한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로아프라에서 지냈던 며칠은 정말로 기나긴 시간이었다.

    베르덴이 물었다.

    “따로 옮길 물건은 있나?”

    “아뇨, 없습니다. 보증금 없는 월세에다가 가구도 죄다 싸구려거든요. 돈이야 충분하니 자리를 잡으면 이참에 싹 다 새로 장만할 생각입니다.”

    샘웰은 아우로플의 성벽을 넘어 본 적이 없었다.

    마음을 간질이는 기대와 낯선 불안에 두근거리는 가슴. 그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출발 그 자체였다.

    베르덴 일행이 성문으로 향했다.

    근처에서 마차를 빌려 아세른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마구간에서 가장 큰 말 한 필을 빌린 갈리아크가 훌쩍 올라탔다.

    작별의 시간이었다.

    샘웰이 깊게 허리를 숙였다.

    “조심히 가십시오, 갈리아크 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샘웰을 따라 에이든과 샤를로트도 감사를 전했다.

    이들에게도 갈리아크가 은인이긴 했다. 샘웰을 카지노에 데려가 대박을 맛보게 했으며, 코스타의 잔당들을 무식하게 큰 도끼로 찢어발겼고, 빈테르트와 대적하려고도 했으니.

    갈리아크가 입가를 비틀었다.

    “어이, 애셔. 너는 이 어르신한테 뭐 할 말 없냐?”

    “볼일 없으면 가라.”

    “나보다 10살은 어린 게 말하는 본새 봐라. 어이, 꼬맹이들. 너희들은 저렇게 되지 마라.”

    “…….”

    남매는 대답하지 않았다.

    갈리아크가 은인이라면 베르덴은 구원자나 다름없었으니까. 둘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갈리아크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농담했다고 째려보는 거 봐라. 이건 뭐, 광신자도 아니고. 어이 샘웰, 너는 그 돈 쓸 때마다 내가 있는 방향으로 절해라. 내가 카지노 데려가 준 덕분에 80배나 땄으니까.”

    “하하, 맞습니다. 전부 갈리아크 님 덕분입니다.”

    “그럼, 그래야지.”

    갈리아크가 고삐를 쥐었다.

    “가는 도중에 객사하지들 말라고.”

    도살자가 가볍게 말에 박차를 가했다.

    검문을 통과한 그가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코스타의 재산 분배를 아직 안 했는데?’

    베르덴이 갈리아크를 바라봤다.

    서서히 멀어지며 크기가 작아지고 있는 도살자. 그가 왼팔을 높이 들어 올려 중지를 세웠다.

    푼돈으로 꼬맹이들 밥이나 사 줘라.

    변함없이 거칠고 투박한 인사였다.

    ‘미친놈답군.’

    베르덴은 편의성에 치중된 마차를 한 대 빌렸다.

    마부석에는 샘웰이 앉았다.

    그는 안내인으로서 로아프라에서 귀족의 마차도 몬 경험이 있는 나름의 베테랑이었다. 물론 길도 모르고 거친 도로도 익숙지 않은 터라 베르덴이 옆에서 봐주기로 했다.

    에이든과 샤를로트는 마차에 올라타 맨 앞에 자리를 잡았다. 창문을 열고 베르덴과 샘웰 사이로 머리를 살짝 내밀었다.

    성문을 통과한 마차.

    샘웰이 고삐를 내리치자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겨울과 봄의 경계를 지나는 계졀.

    시원한 바람이 피부를 적셨다.

    * * *

    그렇게 며칠 뒤 아세른에 도착했다.

    베르덴이 주점에 들어섰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한 멀쩡한 옷차림을 본 페르네가 화색을 띠며 반겨 왔다.

    “애셔 님! 어서 오세요! 조금 늦…….”

    페르네가 우뚝 발을 멈췄다.

    그녀의 눈동자가 베르덴의 뒤로 향했다. 서로 외모가 닮은 남녀와 평범하디평범한 사내가 서 있었다.

    한 명이 갔는데 네 명으로 불어난 상황.

    페르네의 직감이 반응했다.

    “……설마 빈테르트와 마찰이 생기신 건 아니죠?”

    “어쩔 수 없었다.”

    털썩.

    페르네가 주저앉았다.

    * * *

    남매는 샘웰과 함께 주점 구석에 앉아 음료수를 마셨다.

    서로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걸 보아 생각보다 죽이 잘 맞는 모양이었다.

    그동안 베르덴은 페르네와 둘이 대화를 나눴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페르네가 화들짝 놀랐다.

    “베, 베켄에게 사생아가 있었어요?! 분명 애처가로 알고 있었는데……!”

    이마를 짚은 페르네가 곧장 사죄했다.

    “죄송해요, 애셔 님. 이건 제 불찰이에요.”

    “신경 쓰지 마라.”

    아무리 페르네라고 해도 남의 가정사까지 꿰차는 건 어렵다.

    더군다나 정보망을 재건한 지 얼마 안 되는 시간 내에 말이다. 데릭이 말했던 인과. 이건 예상치 못한 변수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베르덴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본격적으로 빈테르트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하자 페르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로, 로베르트와 드레이큰이라면…….”

    페르네는 빈테르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로아프라에 정보원을 심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빈테르트의 지배 구역에서 어슬렁거리는 건 극도로 위험하다.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칼끝이 페르네에게까지 닿을 수도 있었다. 베켄의 사생아에 대해 아예 눈치 못 챈 것도 그 이유가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페르네는 두 사람에 대해 알고 있었다.

    ‘검은손 로베르트.’

    빈테르트의 자금을 관리하는 관리자. 그녀가 수장 자리에 오른 뒤로 빈테르트의 자산이 몇 배로 불어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하나만으로 그녀의 수완이 얼마나 궤를 달리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타락한 모험가 드레이큰.’

    한때 미스릴 등급 모험가로 명성을 날렸으나 어떤 이유로 길드를 버린 뒤, 로아프라에 들어가 단 한 번도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빈테르트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로아프라의 최강자 중 하나.

    ‘암흑가의 왕을 제외하면, 빈테르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권력자들.’

    그런 그들과 만나다니, 그것도 빈테르트의 관계자를 죽이는 바람에.

    페르네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하지만 전처럼 호들갑을 떨진 않았다.

    지난 수 개월간 베르덴을 보면서 여러모로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빈테르트에게서 면죄부를 받았으니까.

    로아프라에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는 걸 대가로 내건 걸 보면 아예 신경 쓰지 않겠다는 뜻. 더 이상 빈테르트와 마찰이 생길 일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나저나 이런 면도 있으셨네.’

    노예 남매의 도와 달라는 말 한 마디로 작은 권력자의 세력을 쓸어버리다니.

    그것뿐만이 아니라 빈테르트와 대립하면서까지 둘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치료에 더해 살던 도시로 돌려보내 주기까지 하다니.

    그들이 내민 손을 잡은 것에 그치지 않고 일으켜 세워 주겠다는 말과 같았다.

    ‘응?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런 건가?’

    페르네도 당시엔 그의 로브 자락을 움켜쥐고 도와 달라고 빌었으니. 물론 이유가 있긴 했지만 그가 자신을 도와줬다는 결과가 퇴색되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로아프라에서의 일은 이해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었다.

    “왜 저 사람들을 곧바로 라인즈로 보내지 않으신 거죠?”

    라인즈와 아세른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굳이 페르네의 주점까지 데려올 필요가 없었다.

    그에 베르덴이 답했다.

    “가르칠 게 있거든.”

    * * *

    에이든은 마력 자체에 치유 능력이 더해진 특이 형질 보유자.

    아세른으로 오는 길에 물어보았더니, 살면서 몇 번 이상한 걸 느끼긴 했지만 평생 크게 다쳐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그 특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노예사냥을 당하기 전까지 평온하게 살 수 있었던 거겠지.

    ‘뭐, 어쨌든.’

    자연스레 마력을 깨우쳤다는 건 마법사로서 재능은 있다는 뜻.

    하지만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지식과 경험이 전무하기에 스스로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운이 좋다면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면 얼마 안 가 발각될 터.

    최소한의 마력 조작 능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또다시 로아프라에서의 일을 되풀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부터 네가 마력회로를 자각하게 할 거다.”

    “마력회로요?”

    “마력을 깨우친 마법사에게 생겨나는, 일종의 혈관이라고 보면 된다. 마력이 그 통로를 지나며 회로를 활성화하고, 각 마법에 해당하는 연산과 마력 조작 등 여러 과정을 통해 마법이란 기적을 발현할 수 있지.”

    “아…….”

    에이든이 눈을 깜빡였다.

    뭔 소린지 이해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하기야 10대 후반에 다다를 때까지 농촌에서 지내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당장 억지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곧 경험하게 될 테니까.

    그렇게 베르덴은 에이든을 데리고 주점 지하로 내려갔다.

    “여기 서라.”

    “아, 네!”

    에이든을 중심에 세웠다.

    그 뒤에 자리를 잡은 베르덴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부터 마력회로를 강제로 활성화할 거다. 저항해도 좋고 순응해도 좋으니 최대한 이질감에 집중해라.”

    이질감?

    에이든이 고개를 갸웃거릴 찰나, 베르덴이 마력을 번뜩였다.

    화아아악!

    유형화된 마력이 작게 휘몰아치더니 서서히 에이든의 마력회로에 흘러 들어갔다. 본래 이렇게 타인에게 마력을 전가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저항력 탓에 곧장 바깥으로 흩어져 버리니까.

    그러나 베르덴의 마력은 한없이 순수하다.

    그렇기에 잠시나마 타인의 마력회로에 머무는 게 가능하다. 특히나 아직 마법조차 배우지 않은 에이든에겐 더더욱.

    베르덴의 마력이 에이든의 마력회로를 질주했다.

    그렇게 마력회로를 강제로 활성화하며 바깥으로 빠져나갔고, 그보다 더욱 많은 양의 마력을 밀어 넣어 상태를 유지했다.

    전신의 감각이 찌릿거렸다.

    생소하고 어색하긴 했으나 에이든은 전혀 아픔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충만감이 느껴졌다.

    그 순간이 지속되자 베르덴이 말했던 이질감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으으……!”

    몸이 불편하면서 간질거린다.

    마치 새로운 신체 기관이 하나 더 생긴 듯한 기분. 뭔가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뜻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에이든의 마력이 작게 맥동했다.

    ‘생각보다 빨리 자각했군.’

    오늘은 이쯤이면 충분하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진도를 나가는 건 좋지 않으니.

    베르덴이 곧바로 마력을 거두었다.

    “윽?!”

    마력회로가 텅 비어 버린 에이든이 탈력감을 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직전에 네가 움직이려 한 게 마력회로다. 지금의 감각을 기억하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의식하려고 노력해라. 그렇게만 하면 금방 마력을 움직이는 게 가능해질 거다.”

    물론 가진 마력을 전부 통제하에 두는 건 무리다.

    그건 마법사로서 적지 않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 가능한 경지니. 에이든에겐 마력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걸 방지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혹시라도 막히는 부분이 생긴다면 말해라. 도와줄 테니.”

    “허억, 허억…….”

    에이든이 호흡을 골랐다.

    겨우 어지러움이 사라진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애셔 님, 혹시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뭐지?”

    “왜 저를 이렇게까지 도와주시는 거죠?”

    어째서일까.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래도 그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실험체가 되길 바라지 않으니까.”

    “네?”

    “개인적인 이유다. 신경 쓰지 말고 너는 마력을 제어하는 데 집중해라.”

    베르덴이 발걸음을 돌렸다.

    지하실을 나가려고 하자 에이든이 다급하게 말했다.

    “저, 저는 애셔 님에게 드릴 수 있는 게 없는데도요?”

    “내가 대가를 요구한 적이 있었나?”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렇기에 에이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베르덴은 계단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샤를로트가 그를 보더니 냉큼 달려왔다.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종이 두 장.

    그 위에는 투박한 필체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에이든과 저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샤를로트가 종이를 넘겼다.

    ──애셔 님께 은혜를 갚고 싶어요.

    ……남매 아니랄까 봐 생각도 비슷하다.

    속으로 한숨을 쉰 베르덴이 지하실을 가리켰다.

    “은헤 갚으라고 구해 준 게 아니다. 그러니 나에 대해선 신경 쓰지 말고 가서 동생부터 챙겨라. 많이 지친 것 같으니.”

    베르덴에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더 이상 발목 잡히며 시간을 허비할 생각은 없었다.

    할 말을 마친 베르덴은 그녀를 지나쳐 주점 바깥으로 나섰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던 샤를로트가 이내 주점 지하로 내려갔다.

    * * *

    에이든에게 마력회로를 자각시켰다. 이후는 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보아하니 재능은 있어 보인다. 늦어도 2주 내에는 최소한의 마력 조작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되겠지.

    라인즈로 출발하는 건 그때가 될 것이다.

    아세른의 여관에 돌아온 베르덴.

    간단히 여독을 풀고 책상 앞에 앉아 공간가방을 열었다.

    중력 마법 서적 세트.

    무려 27억 3천만 엘크를 주고 낙찰받은 이것은 상권과 하권, 총 두 권으로 나뉘어 있다.

    각각 중력 마법의 이론과 실질적인 중력 마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특히 이론서는 약 700페이지를 넘어가 상당한 두께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한 페이지마다 빼곡하게 글자가 들어차 있으며, 알아보기도 어려운 그림과 마법사의 전문용어가 즐비했다. 내용은 난해하고 시각적으로도 난잡했다.

    마탑에서 종사했던 마법사라고 해도 이해는커녕 한 번 완독하는 것조차 어려운 수준.

    ‘확실히 고위 마법에 걸맞은 구성이군.’

    하지만 문제는 없다.

    아무리 어렵다 한들 그 주제를 관통하는 개념들을 이해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따라오는 법이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법의 이해력.

    힘을 타고나지 못한 재능 탓에 실험체가 되어야만 했고, 그렇기에 절망 속에서 나올 수 있었던 베르덴의 가장 큰 무기.

    그에게 있어서 마법 이론이란 상식과도 같았다.

    베르덴이 상권의 책장을 열었다.

    첫 문장에 닿은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고 잠시 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사라락…… 사라락…….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빛과 어둠이 번갈아 가며 서로를 집어삼켰다. 그러는 동안에도 종이를 넘어가는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해가 따라가지 않아 내용을 되돌아보는 일도, 읽었던 문장을 다시 반복하는 일도 없었다.

    수만 개로 나뉜 퍼즐 조각이 저절로 자리를 찾아 그림을 완성했으니까.

    중력 마법.

    베르덴의 무한한 가능성에 새로운 속성이 깃들고 있었다.

    * * *

    한 도시의 고급 여관.

    그 꼭대기 층에 위치한 방은 눈살이 찌푸릴 정도로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한 마법사가 방 중심에 쭈그려 앉아 울부짖었다.

    “윈드! 토벽! 화염 화살! 돌풍!”

    마법명을 직접 입으로 내뱉었다.

    당연하게도 마법이 발현되는 일은 없었다. 그의 마력회로에 깃들지 않은 속성이었으니까.

    “왜!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도대체, 왜!”

    힘껏 소리를 쳐 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법사는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벽을 넘어서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봤다.

    새로운 원소 속성을 깨우치기 위해서 수많은 마법 이론서를 뒤적였다. 그럼에도 결과는 없었다.

    이정표는 있었다.

    하나 성공에 다다르는 건 많지 않다. 그건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게 자신이 되니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애초에 출발선에도 서지 못했다. 그 이정표를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정말 나는 안 되는 것인가……?”

    마법사는 한탄했다.

    스스로의 한계를 자각한다는 건 칼로 배 속을 저미는 것보다 고통스러웠다. 앞으로도 벽을 넘지 못할 거라는 절망감이 엄습했다.

    차라리 이대로 눈을 감아 다시는 깨어나지 않길 바랐다.

    그러던 그때, 한 이름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동료들이 극찬을 했던 마법사.

    4위계 전격 마법사이면서도 각종 원소 속성에도 일가견이 있는 재능의 소유자. 어쩌면 그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해 줄지도 모르는 그 이름.

    “애셔.”

    그 이름을 내뱉은 마법사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옷걸이에 걸린 로브를 뒤집어쓰며 채비를 갖춘 그가 곧장 여관을 나섰다. 절박할 대로 절박해진 그에게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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