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46화 (146/366)

146화 빈테르트 (1)

섬광이 잦아든 자리.

벼락의 폭발에 휩쓸린 자들 중에 생존자는 없었다.

뤼잉 코스타.

얼굴과 가슴에 치명상을 입고 즉사.

스커지 모크넌.

내부에서 폭발한 대지 마법에 폭사.

화염 마법사 볼드런.

심장에 치명상을 입고 이어진 벼락의 폭발에 직격당해 감전사.

그 외의 코스타의 호위들 또한 비슷한 이유로 전부 사망했다.

로아프라의 서쪽에서 군림하던 작은 권력자.

지금까지 수백 명의 노예를 여흥 삼아 죽이던 뤼잉 코스타가 단 한 마법사에 의해 인생의 막을 내렸다. 그것도 주력 호위들을 동반한 상태로 말이다.

“그, 그 코스타가…….”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코스타가 죽었고, 빛이 몇 번 번쩍이자 코스타의 호위들이 전멸했다.

일련의 상황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머리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샘웰은 그저 입을 뻐끔거리며 작금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건 에이든과 샤를로트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도와 달라고 외쳤을 뿐이다. 비참하게 거절당할 걸 알면서도.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에이든이 내민 손을 잡아 준 사람이 있었고, 그것으로 벗어날 수 없는 악몽 같던 코스타가 죽었다. 남매가 당했던 것처럼 한없이 무력하게.

둘은 눈물 자국을 지울 여유도 없었다.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선망과 존경 그리고 감사 등 갖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눈빛. 그 시선의 끝에는 오직 잿빛 머리의 마법사만이 담겨 있었다.

저벅.

그러던 중 한 그림자가 베르덴에게 다가갔다.

도살자 갈리아크.

그가 주변을 둘러봤다.

한바탕 전투가 벌어졌음에도 레스토랑 내부는 비교적 깨끗했다.

기껏해야 바닥이 조금 부서지고 그을린 자국만 꽤 남아 있는 정도. 마법이 가진 위력을 생각해 보면 괴리가 있는 광경이었다.

‘설마…….’

사람들은 마법 위계가 상승할수록 더욱 화려할 거라고 생각한다.

마법사 대부분이 분포하고 있는 1위계부터 4위계까지는 그러한 양상을 띠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상식이다.

원소 마법은 볼거리 따위가 아니다.

그 본질은 파괴에 있다. 불필요한 파괴를 축소하고 살상력, 그러니까 마법사의 목적성에 치중되었다는 건, 보다 본질에 더욱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힘의 집중.

일격에 건물을 부수는 검사가 그 위력을 한 점에 담는 것과 결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건 즉.

“이 새끼, 5위계였군.”

베르덴은 부정하지 않았다.

“허.”

긍정이 담긴 침묵에 갈리아크가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이 새끼는 도대체 뭐 하는 놈이지?’

5위계란 재능 있는 마법사들이 수십 년을 노력해야 다다르는 경지다.

그런데 그걸 저 나이에 이룩하다니. 놀라운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여타 마법사와 달리 한 원소에 치중된 게 아니라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속성이 5위계에 다다른 게 분명했다.

심지어 모크넌과 근접했을 때의 움직임은 마법사의 것이 아니었다.

아마 부여 마법으로 신체 능력을 강화했을 터. 그것도 3위계 수준의 강화가 아니었으니…… 부여 마법 또한 4위계 혹은 5위계에 다다랐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모험가로 치면 미스릴 등급 마법사에 위치한 강자.

‘아니, 그 이상.’

말 그대로 미친놈이다.

만약 저 성장 속도가 계속 이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세상의 판도가 흔들릴 것이다. 절대적인 강자에 의해서 말이다.

그것은 갈리아크가 목표로 하는 강함이기도 했다.

‘그레이에 대해 알려 주길 잘했군.’

갈리아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동반자 혹은 이정표가 될 자가 생겼다는 사실에 말이다.

뭐, 생각은 이쯤 하고.

“어이, 천재 마법사.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지?”

코스타는 죽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놈은 빈테르트와 연줄이 있었으니까.

‘로아프라의 지배 세력이 좌시할 일은 아마 없겠지.’

베르덴은 여기에서의 일을 로아프라 바깥까지 끌고 갈 생각은 없었다. 여러모로 귀찮아질 테니까.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내고 간다.”

“어떤 식으로?”

이미 생각해 둔 바는 있었다.

베르덴이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갈리아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해결책이냐? X발, 너는 앞으로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하지 마라.”

“그래서. 반대인 건가?”

갈리아크가 씨익 웃었다.

“당연히 아니지. 오히려 기대가 되는데. 뭐, 그건 그렇고. 쟤들은 어쩔 거지?”

갈리아크가 뒤를 가리켰다.

아직도 베르덴을 바라보고 있는 에이든과 샤를로트가 있었다.

“데려가야지.”

그들이 내민 손을 베르덴이 잡았다.

단순한 연민은 아니었다. 그저 불쌍하다고 도와야 한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돕는 게 마땅하다. 그건 신조차 불가능한 오만하고 뒤틀린 선심(善心)이었다. 더군다나 애초에 베르덴은 선인도 아니었다.

그저 그의 과거와 겹쳐 보였기에 본능적으로 움직였을 뿐.

‘하지만 이대로 로아프라에 버리고 갈 생각은 없다.’

대가 없는 선의에도 책임은 있다.

잡은 손을 뿌리치는 건 저 둘에게 더욱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절망을 이해하는 베르덴이기에 짐작할 수 있는 미래였다.

“흠, 그렇다면…….”

갈리아크가 턱을 쓸었다.

그러다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는지 사악하게 웃었다.

“야, 빈테르트한테 직접 찾아갈 건 아니지?”

“가지 않아도 저쪽에서 오겠지.”

빈테르트의 눈과 귀는 로아프라 곳곳에 있다고 하니.

코스타가 죽었다는 소식은 곧 놈들의 귀에 들어갈 거다.

“그럼 우리가 코스타의 영역을 먹자.”

“……?”

“레스토랑에서 죽치고 기다릴 순 없잖냐. 걔들이 찾아오기 쉽게 위치라도 알려 줘야지. 겸사겸사 너나 나나 경매장에서 쓴 돈도 보충하고.”

갈리아크의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지금의 상황은 베르덴이 저지른 결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여기서 더 일을 크게 벌이는 건…….

‘나쁜 생각은 아니군.’

충분히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코스타의 영역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아냐는 게 문제인데.

“아.”

베르덴이 고개를 돌렸다.

안내인 샘웰.

로아프라에 빠삭한 그가 딸꾹질을 했다.

* * *

모크넌의 창고.

코스타의 자택과 이어진 장소 중 하나인 이곳에는 떠들썩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땄다! 내가 땄다아아아!”

코스타의 부하들이 원형 테이블에 모여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승패에 따라 구겨진 지폐들이 이리저리 옮겨 갔다. 방금 한 판으로 가져온 돈을 몽땅 잃은 오릭이 신경질적으로 탁상을 내리쳤다.

“X발, 이게 뭔…… 야! 너 카드 몰래 숨겨 놓고 있던 거 아니야? 내가 어떻게 10판을 내리 질 수가 있냐고!”

“운이 안 좋은 거 아니야? 뭣하면 네가 섞든가. 아, 물론 그 전에 돈을 더 가져온다면 말이지.”

낄낄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작게 입술을 짓씹은 오릭이 술을 통째로 들이켰다. 이거라도 마셔야 조금이나마 손해를 메꿀 수 있을 테니까.

쿵쿵.

그때,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응? 누구지?”

“모크넌 님이 돌아오신 거 아니야? 아까 보니까 노예 남매 데리고 어디 가시던데. 부하들 시켜서 노예를 다시 보관하러 오신 거겠지.”

“아, 몇 주 전에 사 온 거? 멀리서 보니까 여자는 꽤 봐 줄 만하던데. 우리한테 언제쯤 던져 주시려나.”

“너는 좀 닥치고. 야, 우리 노느라 바쁘니까 네가 나가 봐. 혹시 모크넌 님이면 신호 보내고.”

도박 판에서 탈락한 건 오릭뿐.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출입구에 다가가다가 바닥에 떨어진 지폐 한 장을 봤다. 아마 게임 도중에 바람에 날려 간 게 분명했다.

“오.”

지폐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이자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하고 약 냄새로 진동하는구만. 야, 샘웰하고 꼬맹이. 여기가 확실하지?”

“네, 네, 그렇습니다.”

“맞아요!”

“그래, 그럼…….”

처음 들어 보는 목소리였다.

그 순간────콰아아앙!

고막을 찢는 굉음과 함께 입구가 폭발했다. 반쯤 구겨진 육중한 철문이 도박 테이블을 덮쳤다.

예기치 않는 사고에 그대로 휩쓸린 부하들은 죄다 신체 일부가 꺾인 채 바닥에 널브러졌다.

한순간에 난장판이 된 창고.

고개를 뒤로 향한 채 눈을 깜빡이던 오릭이 앞을 바라봤다.

철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거대한 도끼를 든 거한이 있었다.

오릭이 목소리를 흘렸다.

“누구……?”

“누군진 알 거 없고.”

콱.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이 오릭의 목을 움켜잡았다.

“전리품 가지러 왔다.”

콰직.

* * *

빈테르트에서 도박 및 투자 계열을 전담하는 수장, 로베르트.

어깨까지 내려온 흑발, 새하얀 얼굴.

암흑가와 어울리지 않게 이지적인 외모를 가진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자신의 자리에서 빈테르트의 자금을 관리했다.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손에 익힌 특유의 필체로만 문서들을 작성했다.

그만큼 일의 부담이 가중되나 신뢰성은 아득하게 높아진다.

로베르트가 수장의 자리에 올라선 뒤로 그녀의 권위는 약해지긴커녕 더욱 단단하게 굳어졌다.

막대한 성과에 따른 보상.

로베르트는 암흑가의 왕에게 다른 계열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빈테르트 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철컥.

누군가 문고리를 돌렸다.

그 상태가 몇 초간 지속되자 입구에 도사리고 있던 함정들이 자연스레 해제되었다. 조직 내에서도 일부만이 알고 있는 로베르트의 규칙이었다.

정장을 입은 한 사내가 발소리를 죽이고 안으로 들어섰다.

“경매는 잘 끝났나요, 가일?”

“그렇습니다만, 도중에 소란이 있긴 했습니다.”

“어떤 소란이죠?”

로베르트가 물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알아야 한다. 그 하나가 투자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기에.

“경비 계열의 간부, 록키와 로바트가 방을 부쉈습니다.”

“이유는요?”

“낙찰에 연달아 실패하는 바람에 록키에게 줄 생일 선물을 사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거 안타깝네요.”

로베르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가일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 그녀는 할 일을 이어 가며 말했다.

“다음 회의에 그 두 명의 징계에 대한 안건도 넣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경매장의 장부입니다.”

가일이 품속에서 두꺼운 책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그 안에는 경매의 모든 진행 상황이 기록되어 있었다. 곧장 책장을 연 로베르트의 손과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고, 그에 따라 종이가 펄럭이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로베르트의 회색 눈동자가 어떤 지점에 멈춰 섰다.

“……예상보다 액수가 많네요.”

“경쟁이 치열해 물건의 기댓값을 넘은 게 평소보다 많았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출품된 아티팩트는 시작가의 두 배가 넘는 100억 엘크에 낙찰되었습니다.”

장부에는 상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쟁 입찰도 없이 바로 100억이라…… 신원은 파악했나요?”

“죄송합니다.”

빈테르트는 경매의 주최자.

익명 여부와 무관하게 누가 돈을 맡기고 구입했는지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니.

‘어쩌면 해외의 권력자가 참가한 걸지도 모르겠네.’

뭐, 로베르트로서는 이익이 극대화되었으니 좋은 일이다.

아티팩트가 어디에 사용되건 그녀가 참견할 일이 아니었다. 다시금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경매장 외로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거죠?”

“뤼잉 코스타가 사망했습니다.”

우뚝.

로베르트가 손을 멈췄다.

“영역 싸움이 있다고는 못 들었는데요.”

“영역과 관련된 게 아닙니다. 흉수는 경매장에 참가했던 외부인, 현재 바깥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 중 하나인 애셔라고 합니다.”

“애셔라면…….”

최근 이름을 날리고 있는 4위계 전격 마법사.

로베르트가 그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베켄의 사생아 다이엘과 관련된 건가요?”

“그렇긴 하지만 코스타의 행적을 보면 사생아의 복수가 아니라 역으로 애셔를 회유하려 한 것 같습니다. 주력 호위들을 대동하고 영역 바깥까지 나온 걸 보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대화 도중 결렬. 애셔가 코스타 일당을 전멸했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현재 그의 위치는요?”

“코스타의 영역으로 향했습니다. 거기다 셋 이외에 일행에 두 명이 합류했는데, 코스타가 최근 매입한 노예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노예 관련해서 마찰을 빚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예로 인한 마찰.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로아프라에 좀만 더 깊게 들어가면 노예는 여전히 존재하니까. 노예제가 폐지된 바깥과 괴리감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혹자는 정의감을 불태워 노예를 해방하겠다고 한 일도 있었다.

물론 죄다 음식에 섞인 독을 먹고 죽거나 숫자의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발가벗겨진 채 뒷골목에서 쓸쓸히 죽어 갔지만.

어쩌면 애셔라는 마법사는 그런 부류의, 정의로운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로아프라를 떠나지 않고 오히려 코스타의 영역으로 찾아갔다라.’

로베르트는 그 뜻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접촉하길 기다리는 거네요. 로아프라 내의 문제를 바깥까지 끌고 가고 싶지 않다는 거겠죠.”

응하지 않을 이윤 없다.

왜냐하면 애셔는 현재 빈테르트, 정확히 말해 로아프라의 정점이 관심을 두고 있는 ‘특별한 마법사’였으니까.

“당연히 폐하께 보고는 하셨겠죠?”

폐하.

그건 에스티리아 왕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입니다.”

가일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암흑가의 왕께서 말씀하시길, 평소대로 처리하라고 하십니다.”

“평소대로라…….”

간단한 일이다.

로베르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비 계열 수장, 드레이큰(Draken)을 호출하세요. 제가 직접 만나러 갈 테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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