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45화 (145/366)
  • 145화 역린 (3)

    보헤미른 마탑의 비공식 실험실.

    이상의 마법사를 꿈꾸던 18살의 베르덴은 거기에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마력회로 활성제와 기억 확장제.

    혈관 속을 파고든 두 개의 약물이 정신과 마력을 강제로 일깨운다.

    시야를 가득 메운 조명.

    살과 근육을 관통한 주삿바늘.

    머릿속으로 욱여넣어진 마법적 지식 등.

    그 모든 순간순간이 잊히지 않았다.

    눈을 감고 싶어도 차가운 금속 집게가 눈꺼풀을 잡아당기고 있었고, 온몸을 비틀고 싶어도 단단히 채워진 구속복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정제의 지속성은 베르덴에게 있어 잠깐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마저도 곧 면역 반응이 일어났다.

    ────그만! 그마아아아아안!

    비명을 질렀다.

    목이 찢어져 피비린내가 가득한 목소리로 자비를 구걸했다. 살려 달라고, 도와 달라고 외쳤다.

    수십 개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당연하다는 듯 누구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냉소를 머금은 마법사들은 호기심을 갖고 실험에 참가하거나, 바라보거나 혹은 그저 자신이 할 일에 몰두했다. 마탑주의 강제 마법진으로 베르덴이 그러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게 된 이후, 시끄럽지 않아서 좋다며 홀가분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들에게 있어 베르덴은 인간이 아니라 77번 실험체에 불과했다.

    거기서 베르덴은 절망을 배웠다.

    그러나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무슨 일 있어?

    어느 날, 로벨린이 물었다.

    비공식 실험에 대해 물은 건 아닐 터다. 강제 마법진으로 철저하게 보안이 지켜지고 있으니까. 아마 베르덴이 다중 연속성 이론을 도둑질하려 했다는 소문에 대한 것이겠지.

    로벨린은 보헤미른의 마탑의 유망주 중 하나.

    각종 다양한 교육을 받느라 마탑 밖에서 지내는 나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베르덴과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건 일 년에 고작 몇 번에 불과했다. 그런 그녀의 귀에 스쳤을 정도라면 소문이 상당히 퍼졌다는 뜻이리라.

    베르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어.

    그는 소문을 부정했다.

    마법진의 강제력 때문이기도 했으나, 애초에 말할 생각조차 없었다.

    극히 낮은 확률을 뚫고 강제력에서 벗어나 로벨린에게 진실을 알려 준다…….

    그렇게 되면 로벨린은 이론에 대한 진실 규명에 힘을 써 줄 것이다. 베르덴이 고통을 겪지 않도록 마탑의 비공식 실험 자체를 없애려고도 할 것이다.

    로벨린은 베르덴과 마탑의 동료이기 이전에, 같은 고아원에서 자란 가족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한들 바뀌는 건 없다.

    마탑주에 비하면 로벨린은 약자에 불과했으니까.

    그녀 혼자 마탑을 뒤집어엎을 가능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진실을 알게 되면 그녀 또한 비공식 실험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아니면 강제력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겠지.

    그게 무엇이든 간에, 베르덴은 혼자만 당하는 건 억울하다며 자신의 불행에 로벨린을 끌어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베르덴의 대답에 로벨린은 더 묻지 않았다.

    계속해서 추궁한다고 한들 소문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 둘은 서로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대가 없이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간단한 게 아니다.

    도움이 필요해 타인에게 손을 내민다는 건 자신의 불행을 공유하는 것이며, 그 손을 잡는다는 건 그 불행을 같이 짊어지는 것이다.

    무턱대고 잡은 손으로 인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고아원에 곡식을 기부했다가 고아가 생기는 걸 조장한다며 마을 사람에게 핍박을 받은 농부도 있었다.

    만약 당사자가 귀족이었다면 어땠을까. 강력한 마법사였다면 어땠을까.

    분명 입을 다물고 있었겠지. 오히려 박수를 치며 그 선의를 찬양하느라 입을 바쁘게 놀렸을 것이다.

    이렇듯 이 세상에선 선의를 베푸는 것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그 불행을 전부 짓밟아 버릴 수 있는 압도적인 힘.

    세상의 기준은 언제나 같았다.

    * * *

    <어스 클로>

    베르덴의 손에서 뻗어 나온 대지의 갈퀴가 코스타를 향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눈을 부릅뜬 모크넌이 다급하게 코스타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촤아아악!

    얼굴과 가슴에 난 세 줄기의 상흔.

    신체를 찢어발기기엔 약간 부족했으나 깊이는 충분했다. 분수처럼 확 핏물이 뿜어져 나오며 화장으로 얼룩진 얼굴을 적셨다.

    “코, 코스타 님?!”

    “포션! 당장 포션 가져와! 최상급으로!”

    코스타의 호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곧장 응급처치를 받은 코스타였으나 떨어진 손이 다시 들리는 일은 없었다.

    여지없는 즉사.

    모크넌과 볼드런을 비롯한 호위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볼드런이 지팡이를 든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코스타 님께서 호의를 베푸셨는데 어째서!”

    호의라.

    로아프라의 상식으론 그랬겠지.

    그러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에이든.

    그리고 코스타의 마법 실험체 언급.

    더군다나 코스타의 마법사들이 가진 욕망이 가득한 시선까지. 이들 하나하나가 베르덴의 과거를 자극하는 역린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친히 그 사실을 알려 줄 생각은 없다.

    그런 호의를 베풀 마음이 조금도 없었으니까.

    베르덴이 공간가방에서 오큘러스를 꺼내 들었다.

    그때, 갈리아크가 말했다.

    “어이 애셔, 도와줄까?”

    “아니.”

    베르덴의 시선이 에이든과 샤를로트에 잠시 머물렀다.

    “대신 셋을 부탁하지.”

    “좋아. 대신 보수로 나중에 밥 한번 사라.”

    갈리아크는 깔끔하게 물러났다.

    당장 훼월을 시험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 이상으로 베르덴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분위기도 그렇고.’

    갈리아크는 덩치에 맞지 않게 눈치가 매우 빨랐다.

    베르덴이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이어 전신에서 흘러넘친 마력이 유형화되며 주위를 장악했다. 그와 동시에 레스토랑의 모든 문이 일시에 닫혔다.

    누구도 허락 없이 나갈 수 없다는 뜻. 그 의미에 모크넌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너 설마 우리를……!”

    대화는 없다.

    <연쇄번개>

    천둥이 메아리쳤다.

    * * *

    화염 마법사 볼드런 그리고 스커지(Scourge) 모크넌.

    둘은 수년간 코스타의 무력을 담당하던 자들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모크넌은 나름 악명을 떨치던 왕국의 도적이었다.

    결국 에스퍼렌사 후작가에게 덜미를 잡혀 부하들을 전부 잃고 로아프라로 도주했으나 이게 웬걸, 그야말로 모크넌에게 걸맞은 화려한 지하 도시가 있었다.

    바깥에서의 악명은 로아프라에선 명성.

    그렇게 코스타의 제의를 받고 로아프라의 권력자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약자를 마음대로 범하고 괴롭히고 죽이는 나날은 어떤 마약보다도 중독적이었다.

    물론 로아프라의 작은 영역 싸움에 손을 거들어야 하는 터라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없었다.

    모크넌의 금속 가시 채찍은 스친다 해도 곧 큰 출혈로 이어진다. 때로는 마비독이나 뱀독을 곁들여 맹독 채찍을 사용하기도 하고.

    그렇기에 적대자들은 선뜻 칼날을 들이밀지 못했었다.

    지금까지는.

    “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전열의 호위를 불태운 번개가 연쇄적으로 달려 나온다.

    맨몸으로 막아 낼 수 없는 마법이다. 판단을 내린 모크넌이 곧장 마법사들의 뒤로 내달렸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펼쳐 쫓아오는 번개를 향해 지팡이를 뻗었다.

    <석벽>

    전격 계열과 반대되는 대지의 벽이 연달아 솟아올랐다.

    이거라면 비교적 물리력이 약한 전격 계열은 능히 막을 수가 있을 터. 그 틈에 다른 마법을 준비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란 듯이 어긋났다.

    콰아아아앙!

    번개에 부딪친 석벽들이 단숨에 박살 났다.

    메이벨의 귀걸이와 뇌익의 아뮬렛으로 강화된 위력과 범위. 여러 겹으로 중첩되었다고 할지언정 2위계의 마법 따위로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벽을 부순 번개가 마법사들에게 향했다.

    곧장 마력방벽을 펼쳐 추가타를 막아 냈다. 다행히 위력이 약해져 있는 터라 죽는 일은 없었으나 마력방벽이 깨지고 말았다.

    “크윽……!”

    곧바로 찾아오는 마력회로의 부담에 마법사들이 경직되었다.

    베르덴은 가볍게 오큘러스를 휘둘렀다.

    벼락을 머금은 바람의 칼날들이 쏘아졌다.

    부담을 이겨 내지 못한 마법사들은 피할 도리가 없었다. 마법이 몸을 관통하자 그대로 몸이 두 동강 나 버렸다.

    단면이 열에 타 버린 터라 장기와 피로 바닥을 흠뻑 적시는 일은 없었다.

    스치듯 허리를 숙여 마법을 피해 낸 모크넌.

    그 뒤에 멀찍이 자리 잡은 볼드런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시간, 시간을 벌어라, 모크넌!”

    말을 마치자마자 볼드런이 마법을 준비했다.

    대놓고 희생을 강요하다니. 모크넌은 어금니를 깨물었으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달려들어라! 당장!”

    “하, 하지만…….”

    “저희로선 도저히 다가갈 수가────”

    퍼억!

    모크넌의 채찍이 호위 한 명의 뒤통수를 터뜨렸다. 살기를 드러낸 모크넌이 다시금 소리쳤다.

    “당장 뛰어!”

    “예, 예!”

    코스타의 호위들이 일제히 베르덴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암석 파편, 시퍼런 벼락, 바람의 칼날에 시체가 양산되었다. 볼드런의 옆에 있던 마법사들이 마법으로 도왔으나 하나도 먹혀들지 않았다.

    마치 괴물을 상대하는 듯한 기분.

    ‘그래도 저놈 또한 인간이다……!’

    저렇게 마법을 난발하다간 곧 지칠 터.

    어째서 자신들을 죽이려 하는지 몰랐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호위들의 죽음을 방패로 삼으며 거리를 좁힌 모크넌이 기회를 엿보다 이내 힘껏 바닥을 박찼다.

    그러곤 허공에서 팔을 휘둘렀다. 금속 채찍이 베르덴의 머리를 노리다 확 아래로 꺼지며 다리로 향했다.

    ‘마법사의 인지 능력으로는 피하지 못할 게……?!’

    베르덴이 가볍게 다리를 치워 채찍을 피해 냈다.

    마치 궤도를 정확히 간파했다는 듯이. 이해할 수 없는 반응속도였다.

    바닥에 착지한 모크넌이 곧장 고개를 들어 베르덴과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파직.

    모크넌과 베르덴 사이에 작은 번갯불이 튀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했으나 직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팔에 따끔한 감각이 들자마자 오른팔 전체에 푸른 전류가 번쩍였다.

    “크윽?!”

    채찍이 떨어졌다.

    그을린 연기가 솟아오른 오른팔에 전혀 감각이 없었다. 아무리 마법의 숫자가 방대하다지만 전혀 들어 본 적도 없는 마법이었다.

    그러나 죽음에 즉결되지는 않는다.

    모크넌이 남은 왼팔로 기다란 송곳을 꺼내 베르덴에게 달려들었다. 팔을 하나 잃었지만 거리는 충분히 좁혀졌다.

    원거리에서 상대가 안 된다면 근접전으로 나가면 될 터.

    모크넌이 기운을 송곳 끝에 집중했다.

    <육체증폭>

    “어?”

    베르덴과 모크넌이 교차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오큘러스가 모크넌의 옆구리를 스쳤다. 손쉽게 그의 등 뒤로 이동한 베르덴은 그대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갑작스러운 무시에 모크넌이 눈썹을 씰룩였다.

    “지금 무슨…….”

    쿵.

    강력한 진동. 외부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느껴진 것이었다. 모크넌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더듬었다.

    방금 전 지팡이가 닿았던 부분에 뭔가 스며든 게 느껴졌다.

    “아.”

    <분쇄>

    퍼엉!

    내부에 파고든 대지의 파편이 폭발했다.

    간신히 형체만 남은 하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코스타의 호위.

    태반 이상이 전멸당하고 남은 건 볼드런과 마법사들뿐이었다.

    “하하하하하! 시간 잘 끌었다, 모크넌!”

    볼드런이 웃었다.

    그의 지팡이가 화염을 머금고 있었다.

    “네놈을 코스타 님과 모크넌의 저승길 동무로 삼아 주마! 불타 죽어라!”

    4위계 집중 마법.

    <화염역──>

    <뇌천>

    볼드런의 마법이 완성되기 직전.

    한 줄기 광선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정확히 타격 지점만을 불태우는 전격 마법.

    마법사에게 있어 동력원이나 다름없는 심장에 치명상을 입은 볼드런이 무릎을 꿇었다.

    “볼드런 님!”

    “컥, 커억……!”

    “마법사가 마법이 완성되기도 전에 부산하게 굴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군.”

    베르덴의 냉소에도 볼드런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력을 끌어모으긴커녕 숨쉬기조차 버거웠으니까. 맥없이 볼드런이 무력화당하자 남은 마법사들은 곧장 전의를 잃었다.

    누군가는 뒷걸음질 쳤고, 누군가는 도망치기 위해 눈동자를 굴렸으며, 누군가는 베르덴에게 목숨을 구걸하려 했다.

    볼드런이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도, 도대체 우리가 네놈에게 뭘 어쨌다고 이러는 거냐? 도대체 왜……?”

    그걸 모르니까 죽는 거다.

    속으로 대답한 베르덴이 순식간에 연산을 끝냈다.

    오큘러스에 맺힌 벼락의 줄기가 날뛰며 창의 형상을 띠었다.

    <단폭뢰>

    번개의 창이 무리의 중심에 있는 볼드런에게 쏘아졌다.

    천둥소리와 함께 터져 나온 푸른빛. 그 광활한 전격의 폭발이 레스토랑 내부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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