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44화 (144/366)
  • 144화 역린 (2)

    갈색 머리칼을 가진 두 남녀.

    하나는 순진한 얼굴의 남자였으며 다른 하나는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여자였다. 전체적인 외모로 보아 남매인 모양이었다.

    영양실조인지 비쩍 말라 있어 정확한 나이를 판단하기는 어려웠으나, 남자는 10대 후반, 여자는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노예인가?”

    베르덴이 유년기를 보냈던 고아원. 이후의 삶을 보냈던 보헤미른 마탑은 전부 서대륙에 위치해 있다.

    다름 아닌 루아스 교국이 존재하는 대륙이었기에 노예제 폐지가 가장 먼저 시행되었고, 그런 탓에 노예 제도가 사라진 건 베르덴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에 비해 이곳 동대륙은 늦은 편이었다.

    특히나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된 것은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이야기다.

    인간이 물건으로서 취급되는 것.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왕국 곳곳에서 당연시되었던 모습이었다. 온갖 범죄가 만연한 로아프라에서는 더더욱.

    그렇기에 이러한 광경은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코스타가 남매를 차례대로 가리켰다.

    “남동생은 에이든. 저기 누나는 샤를로트라고 해. 얼마 전에 내가 장난감으로 쓰던 애들이 죽어서 이번에 새로 구한 애들인데…… 적당히 길 좀 들이려고 교육을 하던 도중에 되게 신기한 걸 발견했지 뭐야?”

    코스타가 검지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외눈 사내, 모크넌이 남매에게 다가갔다.

    샤를로트가 곧장 눈을 치켜뜨고 그를 막아서려 했으나 쇠사슬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손톱으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필사적으로 그녀가 이를 드러냈으나 숨소리만 거칠 뿐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너무 시끄럽게 굴어서 성대를 끊었거든. 그것보다 잘 봐 봐.”

    모크넌이 누나를 지나쳐 남동생의 앞에 다다랐다.

    에이든의 손목을 잡아 단검으로 팔뚝을 주욱 그었다. 벌어진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단순한 노예 학대라고 볼 수 있었으나, 그 직후.

    “……!”

    에이든의 몸속에서 마력이 들끓었다.

    이내 바깥으로 흘러나온 마력이 상처에 집결되더니 직전에 생긴 자상이 저절로 회복되었다. 마치 신성력을 통한 회복과도 같다.

    이건 통상적인 마력으로는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즉, 경우의수는 하나밖에 없었다.

    ‘마력의 특이 형질.’

    오로지 선천적으로 형성되는 재능으로, 로벨린과 같은 극소수의 마법사만이 보유하고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노예 조달하는 애들은 몰랐나 보더라고. 가능한 상품에 상처가 나지 않는 게 원칙이긴 하니까. 뭐, 그 덕분에 저런 희귀한 걸 아주 싸게 살 수 있었으니…… 아주 운이 좋았지.”

    코스타가 자랑이라도 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양쪽에 매달린 귀걸이가 짤랑거렸다.

    “그래서 내 아래에 있는 마법사들한테 조사를 맡겨 봤는데, 마력으로 신성력의 회복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하더라고. 특히 재생력만 따지면 신성력 이상이라나 봐.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래, 고기 인형이라고 할까? 내가 대충 실험해 보니까 어지간한 치명상이 아니라면 자체적으로 회복이 가능한 것 같아.”

    코스타가 와인을 머금었다.

    기분 좋게 목을 축인 그가 말을 이었다.

    “들어 보니 마법사들은 저런 걸 엄청 좋아한다며? 웬만해서는 망가지지도 않고 연구할 가치도 높은 실험체 말이야. 맞지, 볼드런?”

    “물론입니다, 코스타 님.”

    볼드런이 대답하며 슬쩍 에이든을 흘겨봤다.

    그 눈빛에는 탐구욕이 가득했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욕구였다. 정말로 갖고 싶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를 비롯한 주변에 있는, 뤼잉 코스타 휘하에 있는 마법사 전부가 같은 생각이었다.

    이번엔 코스타가 샤를로트를 가리켰다.

    “그리고 쟤는 별다른 마법사적 재능은 없어. 그래도 저 귀여운 남동생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정도로 애정이 깊지. 갑자기 달려들더니 나를 물어뜯으려고도 했다니깐? 내가 가볍게 손짓만 해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는데 말이야. 안 그러니, 샤를로트?”

    “……!”

    샤를로트의 눈에는 깊은 살의와 증오심이 가득했다.

    코스타는 애완동물의 재롱 따위를 보는 것 같은 미소로 그러한 감정들을 가볍게 흘려 버렸다. 그러곤 베르덴을 바라봤다.

    “내 아래에 들어오면 쟤들 소유권을 너한테 줄게. 아직 제대로 된 기초 교육도 마치지 않아서 성깔이 사납기는 한데…… 대신 아주 깨끗하긴 하니까 달리 거부감은 없을 거야. 원한다면 교육을 대신 해 줄 수도 있고.”

    코스타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물론 아까 말했던 돈하고 권력 등등도 얹어 줄게. 나도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제안을 한 건 난생처음인데, 그만큼 널 높게 사고 있다고 봐 줬으면 좋겠어. 아, 그리고!”

    손뼉을 친 그가 갈리아크와 샘웰에게 말했다.

    “원한다면 너희 둘도 받아 줄게. 덩치는 나름대로 실력이 있는 거 같으니 후하게 대접해 줄 수 있고, 저 안내인은 음, 특별히 내 전용 심부름꾼으로 써 줄게. 돈이야 부족하지 않게 벌 수 있는데, 어때?”

    “…….”

    “아, 저 그게…….”

    갈리아크는 팔짱을 낀 채 무시했고, 샘웰은 안절부절못하며 말끝을 흐렸다.

    생각 외로 시원찮은 반응이었으나 딱히 상관은 없었다.

    코스타에게 중요한 건 바로 애셔라는, 그의 간판이 되어 줄 마법사였으니까.

    “내가 제시할 건 이게 전부야. 이 정도면 대가로써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갈리아크가 슬쩍 베르덴에게 눈동자를 향했다.

    뒤에 있어 얼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저 침묵이 아니었다. 아주 무거운 정적과도 같았다.

    누구 하나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되는 그런 것.

    하지만 코스타의 생각은 달랐다.

    ‘거의 넘어왔네.’

    입을 닫고 있는 베르덴.

    그 모습은 코스타의 제안에 깊게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토록 관점이 다른 이유는 간단했다.

    단순한 생각 차이였다.

    로아프라에서는 약자에게 주장할 권리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 코스타는 13년 가까이 권력자로서 군림해 왔다. 게다가 그는 타인의 고통을 쾌락으로 삼는 뒤틀린 천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코스타에게 있어서 방금 말했던 모든 것은 그냥 당연했다.

    비인(非人).

    코스타와 같은 로아프라의 권력자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인간성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들은 상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이해함에도 따르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베르덴이 암흑가에서 봤던 건 바깥으로 드러난 일부일 뿐.

    로아프라(Loafra).

    그 실상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코스타가 노예 남매에게 턱짓했다.

    “너희도 말 좀 해 보렴. 곧 주인이 될 사람한테 뭐 할 말 없니? 어필할 거 없어? 만약 거절당하면 고문 방에 처넣는다?”

    고문 방.

    그 단어에 샤를로트가 움찔 떨었다. 성대가 손상되어 뭐라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주먹을 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의식을 난도질하는 듯한 고통 그리고 남동생을 지키지 못하는 비애가 가득 담긴 눈물이었다.

    남동생 에이든이 샤를로트를 바라봤다.

    팔뚝을 칼로 그었을 때도 반응하지 않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줄곧 죽어 있던 눈동자에 자그마한 빛이 돌아왔다.

    에이든의 흑안이 베르덴의 벽안과 마주했다.

    그는 누나와 함께 불법 노예 사냥으로 로아프라에 팔려 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에스티리아 왕국의 암흑가가 얼마나 잔혹한 장소인지 말이다.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구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열린 문틈 사이로 행인과 눈을 마주쳤다. 비명을 질렀다. 행인은 못 본 척하며 지나쳐 갔다.

    에이든이 희망을 바랄수록 절망만이 찾아왔다.

    곁에서 누나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목소리를 잃고 난 후에는 채찍의 소리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코스타는 에이든이 저항할 때마다 보란 듯이 샤를로트에게 대가를 가했다.

    그리고 이따금씩 에이든이 고통에 겨워 하는 모습을 샤를토르에게 보였다.

    코스타의 잔혹함은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짙어 가는 피 냄새가 견디기가 어려웠다.

    특히 그게 가족의 피라는 사실에 더욱 그러했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 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갈수록 꺾여만 가던 마음은 결국 부러지고 말았다.

    누구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는다. 무슨 짓을 해도 여기를 벗어날 수 없다.

    에이든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의 두 눈에 가득했던 절박함은 가뭄처럼 말랐으며 희망은 이미 내던져 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와주세요……!”

    에이든은 다시 한번 말했다.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약자가 할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

    “하.”

    그러자 코스타가 피식 웃더니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모크넌, 내 귀염둥이 좀 줘 봐.”

    “네, 코스타 님.”

    모크넌이 갈색 채찍을 건넸다.

    마수의 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진,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아주 가벼운 채찍이었다. 그렇기에 뼈를 부수는 등 무기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나, 피부 위에 아픈 상처를 남기기에는 충분했다.

    근력이 부족한 코스타에게는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고문 도구 중 하나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코스타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쪽팔리게 진짜. 미안해, 애셔. 확실히 기초 교육을 마치지 않았더니 노예답지가 않네. 아예 밑바닥부터 굴릴 걸 그랬나……. 잠깐만 기다려. 쓸데없는 말 못 하게 교육 좀 하고 다시 시작하자고.”

    팍! 팍!

    코스타가 채찍을 당겨 몸을 풀었다.

    “이번엔 손님이 있으니까 누나가 아니라 너한테 해 줄게. 흠집이 나면 보기 싫어지니까 말이야.”

    그렇게 가볍게 준비를 마친 그가 팔을 뒤로 당기더니, 섬뜩한 미소와 함께 힘껏 채찍을 휘둘렀다.

    쇄에액!

    채찍 끝이 허공을 가르며 남동생에게 날아갔다.

    정확히 얼굴을 향한 채찍에 에이든은 몸을 움츠리며 눈을 질끈 감았고, 샤를로트가 발버둥을 치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살이 터져 나가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뭔가가 달랐다.

    에이든이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런 그의 눈앞에는 잿빛 머리칼을 가진 사내가 서 있었다.

    어느새 다가와 손으로 채찍을 잡아챈 그의 푸른 눈동자는, 로아프라에서 감히 볼 수 없는 밝고 투명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홀리기라도 한 듯 에이든이 멍하니 바라봤다.

    이제 와서 또 구원을 바라는 건 분명 멍청한 짓이었다. 그게 더한 고통으로 찾아온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도와…….”

    메말라 있던 눈가에서 작은 희망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에이든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다시금 말했다.

    “도와주세요……!”

    본래라면 대답 대신 조롱이 들려왔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래.”

    그렇게 답한 베르덴이 팔을 당겼다.

    “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코스타가 그대로 끌려왔다.

    활성화된 마력회로를 따라 집약된 마력. 이내 베르덴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대지의 갈퀴가 코스타를 베어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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