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43화 (143/366)
  • 143화 역린 (1)

    “여기, 잔금과 낙찰받으신 물건들입니다.”

    경매장의 지하에서 베르덴이 돈과 물품을 수령했다.

    메이벨의 귀걸이, 뇌익의 아뮬렛, 중력 마법 서적 세트. 도중에 바꿔 치는 일은 없었는지 확실한 진품이었다.

    ‘뭐, 당연하겠지만.’

    베르덴은 주저 없이 귀걸이를 착용했다.

    탈부착 형식이라 따로 귀를 뚫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양쪽 귀에 마법 물품을 착용하자 내재되어 있는 기능, 일체화가 작동했다.

    완전히 피부와 동화된 귀걸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단순히 외견을 감추는 게 전부이나, 솔직히 말해 베르덴은 외모를 치장하는 취미도 없고 귀걸이의 디자인도 그리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기에 그로서는 나쁘지 않은 기능이었다.

    다음은 아뮬렛의 차례였다.

    목걸이인 삼원색의 중심에 부적을 매다는 순간 미약한 스파크가 튀더니 이내 베르덴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귀걸이는 원소 마법 범위의 확대.

    아뮬렛은 전격 계열 마법의 강화.

    지금 이 자리에서 효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하나 베르덴의 감각은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었다. 이 두 개의 마법 물품이 마법사로서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말이다.

    ‘로아프라에 온 보람이 있군.’

    베르덴은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공간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중력 마법 서적과 함께 3억 좀 안 되는 돈을 안에 보관했다. 경매장에서의 볼일을 마친 그가 곧장 밖으로 나섰다.

    로아프라의 여전한 밤거리가 보였다.

    풍경의 변화가 없는 탓인지 시각적으로는 시간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야 나왔구만.”

    “안녕하십니까, 애셔 님.”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갈리아크가 샘웰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베르덴이 도살자의 등에 매어 있는 거대한 양날 도끼에 시선을 던졌다.

    “역시 훼월을 입찰한 게 너였군.”

    “아, 이거? 어때, 때깔 좋지? 이야, 사실 별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게 나올 줄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운이 좋다니까.”

    갈리아크가 훼월을 꺼내더니 가볍게 휘둘렀다.

    그것만으로도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며 작게 바람이 일었다. 이렇게 보니 체격이나 근력이나 갈리아크에게 어울리는 무기긴 했다.

    가볍게 몸을 푼 갈리아크가 훼월을 어깨에 메며 물었다.

    “그런데 넌 뭘 구했지? 표정이 좋은 걸 보니 쓸 만한 거 좀 건진 것 같은데.”

    “글쎄.”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하긴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돈이 그렇게 많았는데 낙찰은 받았겠지. 머저리가 아니면 말이야.”

    베르덴은 무시로 답했다.

    마법사 자신이 어떤 장비를 갖추고 있는지 떠드는 건 위계와 속성을 제 입으로 밝히는 것만큼이나 한심한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너 기다렸는데?”

    “이유는.”

    베르덴이 갈리아크와 만난 건 우연이다.

    계획에도 없던 동행을 계속할 예정은 전혀 없었다.

    “거 있잖아. 뤼잉 코스타인지 파스타인지 하는 놈. 너야 당연하겠지만 나한테도 감시가 붙었거든.”

    “감시?”

    “카지노에 있을 때부터 시작해 경매장에 오는 길까지 붙었으니 확실해. 아마 네 일행으로 착각이라도 한 모양이겠지.”

    샘웰이야 로아프라에서 오랜 기간 안내인을 했으니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살자는 다르다.

    갈리아크가 로아프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베르덴이 로아프라에 발을 들인 시점에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

    “확실히 오판할 만하군.”

    “뭐, 착각이든 뭐든 이미 벌어진 일이다. 감히 신경 거슬리게 날 미행하다니. 그것만으로도 처맞을 이유는 충분하지. 겸사겸사 새로 구한 내 무기도 시험해 보고.”

    후자가 주목적인 것 같은데…… 아무튼.

    ‘상관없겠지.’

    베르덴도 마법을 시험할 생각이었다.

    따로 의뢰라든가 뭐가 있는 게 아니었으니 한 명이 더 늘어나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갈리아크 정도 되면 방해가 될 일도 없을 테고.

    그렇게 생각을 마친 때였다.

    경매장의 번잡함이 가라앉기 시작할 때쯤 멀리서 한 사람이 다가왔다.

    한쪽 눈에 안대를 찬 사내였는데 걸음걸이만 봐도 어중이떠중이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베르덴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암살자를 보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내는 혼자였다.

    더군다나 살기는커녕 적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베켄의 사생아로부터 부탁을 받아 베르덴을 죽이러 온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이윽고 사내가 다가왔다.

    남아 있는 검은 눈동자로 베르덴을 바라봤다.

    “애셔, 갈리아크, 샘웰.”

    세 명을 호명한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뤼잉 코스타 님께서 부르신다.”

    암살이 아닌 초대.

    그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다름 아닌 샘웰이었다.

    “……예? 저도요?”

    * * *

    뤼잉 코스타가 만남을 요청했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베르덴 일행을 함정으로 끌어들이려는 게 목적이겠지.

    ‘하지만 그건 아니다.’

    베르덴이 내심 고개를 저었다.

    뤼잉 코스타는 서쪽에서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작은 권력자라며 샘웰이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코스타의 부하가 안내하고 있는 장소는 나흘 전 데릭과 만났던 레스토랑. 로아프라의 서쪽이 아닌 동쪽이었다.

    왜 자신의 영역 바깥으로 나와 베르덴을 만나려고 하는 걸까.

    몇 가지 이유가 떠올랐으나 확실하진 않다.

    하나 그게 대화가 필요한 용건이라는 건 분명했다.

    ‘그러니 알아봐야겠지.’

    어차피 대화를 거절한다면 암살자가 올 터.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직접 찾아가 한꺼번에 처리하는 편이 훨씬 간단했다. 베르덴에게는 전혀 무모하지 않은, 오히려 효율적인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건 갈리아크도 같았다.

    외눈 사내를 따라 레스토랑 앞에 도착한 베르덴 일행이 안으로 들어섰다.

    손님부터 시작해 직원 하나 존재하지 않는, 완전 무장을 한 십수 명의 인간이 장악한 중앙 홀(Hall).

    그 중심에 기다란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었으며, 왼쪽 끝에 의자 세 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끝에는, 홀로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금색 단발을 한 남자가 보였다.

    과도한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피부가 하얀색으로 보일 정도로 진한 화장을 한 특이한 외모였다.

    “말씀하신 대로 데려왔습니다, 코스타 님.”

    “잘했어, 모크넌.”

    와인으로 입가심을 한 뤼잉 코스타.

    그는 베르덴을 목격하더니 활짝 미소를 지었다.

    “어머, 듣던 것보다 훨씬 괜찮잖아? 좋아, 좋아. 그래, 이 정도라면 내가 직접 찾은 보람이 있지.”

    코스타가 손바닥을 식탁 반대편으로 향했다. 앉으라는 의미였다.

    세 의자 중 중심에는 베르덴이.

    그리고 그 오른쪽에는 갈리아크가 등받이에 한쪽 팔을 걸며 대충 걸터앉았고, 샘웰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심스레 왼쪽에 자리를 잡았다.

    서로 맞은편에 위치한 베르덴과 코스타의 시선이 교차했다.

    “나는 뤼잉 코스타야. 너는 애셔…….”

    “날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지?”

    코스타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인사도 안 했는데 말을 끊어? 원래는 건방지다고 죽여 버려야 하지만…… 넌 용서해 줄게. 로아프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잘생기기도 했고.”

    어쨌든.

    “생각보다 성격이 급한 것 같은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내 밑에서 일해 볼 생각 없니?”

    * * *

    난데없는 제안이었다.

    미간을 좁힌 베르덴이 물었다.

    “베켄의 사생아에게 복수를 부탁받은 게 아니었나?”

    “오,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생각보다 정보가 빠르네? 뭐, 그 말이 맞아. 걔한테 애셔, 널 죽여 달라고 보석 상자를 받았지. 근데 한번 거울을 좀 봐 봐. 네가 봐도 그냥 시체로 썩어 가기에는 엄청 아깝지 않아? 그래서 마음을 바꿨지.”

    코스타가 양 손바닥으로 베르덴을 가리켰다.

    “그 외모에 뛰어난 4위계 전격 마법사. 간판으로 쓰기에는 너만 한 인재는 로아프라는커녕 왕국을 통틀어도 없어. 그런데 죽이라고? 천만에!”

    “보수를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러니까 부탁을 들어줄 이유가 없지. 이미 보석 상자를 받았는데 약속을 지킨다고 보석 상자를 또 주는 건 아니잖아?”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방식이었으나 코스타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 말투에는 로아프라의 권력자 중 하나다운 오만함이 짙게 서려 있었다.

    “그리고 너에게는 그딴 보석 상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치가 있어. 그러니까…….”

    “코스타 님!”

    그때, 레스토랑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중에 말이 끊긴 코스타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한 사내가 레스토랑 입구를 박차며 바닥을 굴렀다.

    “코스타 님……!”

    코스타를 부른 사내가 베르덴과 눈을 마주쳤다.

    복수심이 가득한 눈으로 어금니를 깨문 그, 베켄의 사생아가 바닥을 기며 코스타에게 소리쳤다.

    “뤼잉 코스타 님! 분명 제 복수를 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이게 무슨……!”

    베르덴으로 인해 본인의 위치를 잃어버린 사생아.

    그는 베켄을 등에 업고 타인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했지만 본인이 당한 것은, 손해를 당한 것은 결코 용납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 그였기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 막대한 재산을 코스타에게 바쳤고 보석 상자까지 주며 부탁했는데, 정작 코스타는 사생아를 무너뜨린 자와 사이좋게 한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말이다.

    코스타가 눈을 찡그렸다.

    “어후, 시끄러워. 그래, 약속했지.”

    “그런데 왜…….”

    “약속했다고 지켜야 하는 건 아니잖아?”

    “네……?”

    “내 말이 틀렸니?”

    코스타의 눈동자에 사생아가 담겼다.

    그 안에는 감정이라곤 없었다. 마치 인간이 아닌 하찮은 짐승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얘기 하는데 누가 끼어들래? 너 따위가?”

    “아, 아니, 코스타 님. 지금껏 제가 바친 재산만 얼만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준 거면 준 거지, 왜 이렇게 질척거려? 야, 모크넌.”

    “네, 코스타 님.”

    “죽여 버려. 이제 쓸데도 없는 거.”

    “……어?”

    차가운 음성에 사생아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것보다 빠르게 모크넌이 팔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 금속 채찍이 사생아의 목을 휘감았다.

    “코, 코스으윽…… 타아악……!”

    가시들이 살갗을 갈가리 찢었고, 엄청난 압력이 사생아의 목을 짓눌렀다.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고통만 늘어날 뿐이었다.

    이내 모크넌이 허리를 비틀며 팔을 당기자 우두둑 소리와 함께 사생아의 머리가 뽑히며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

    너무도 잔혹한 살인에 샘웰이 고개를 숙였다.

    베르덴과 갈리아크는 무표정한 얼굴로 지금의 광경을 지켜봤다.

    말 한마디로 베켄의 사생아를 죽인 코스타.

    그가 가학적인 미소와 함께 베르덴에게 말했다.

    “베켄의 사생아가 죽었으니 이제 그 부탁도 없어졌네?”

    “오, X발. 미친놈이군.”

    갈리아크가 질색했다.

    코스타가 그를 째려보고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흠흠, 다시 말할게. 내 밑으로 들어와, 애셔. 그럼 네가 원하는 걸 줄게. 로아프라에서 누릴 수 있는 건 뭐든지 말이야. 아, 이렇게 말하면 와닿지 않으려나? 예를 들자면…….”

    잠시 생각을 정리한 코스타가 말을 이었다.

    “돈하고 권력은 당연하고 여자까지……. 음, 오히려 여자들이 너에게 안기고 싶어 하려나? 뭐, 취향이 있다면 남자도 얼마든지 가능해. 원한다면 재미 삼아 죽여도 되고.”

    인간 위의 인간.

    말 그대로 암흑가의 귀족이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엔 윤리도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쾌락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로아프라였다.

    “아무리 선인이라고 해도 인간이라면 저마다의 악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세상의 시선 때문에 대부분 속에 감춰 두고 있고. 하지만 여긴 아니야. 타인의 눈치 따위 볼 것 없지. 오로지 중요한 건 힘이니까.”

    코스타가 손을 내밀었다.

    “나한테 오면 너도 그런 로아프라의 권력자 중 하나로서 군림할 수 있어. 물론 빈테르트의 암묵적 규칙 내에서 움직여야겠지만 그럼에도 바깥 세상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자유롭지.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아?”

    “거절하지.”

    베르덴이 즉답했다.

    애초에 뭘 제시하든 간에 받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세상의 기준은 힘이다.

    ‘그래, 알고 있다.’

    베르덴은 이러한 진리를 진즉에 깨닫고 있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약자로서 억압당하고 희생당하며 죽어 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 속박에서 벗어나 복수를 위해 힘을 쌓아 가고 있다.

    자유(自由).

    베르덴을 이루는 근간 중 하나로서, 이건 코스타가 말하는 자유와는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렇기에 코스타의 제안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역겹기 짝이 없었으니까.

    단호한 거절.

    하지만 코스타는 그게 단순히 대가가 부족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곤 예상했다는 듯 턱을 매만지며 입가를 비틀었다.

    “그래? 뭐, 사실 그럴 줄 알았어. 내가 말했던 건 지극히 평범한 거니까. 그래서 다른 걸 준비해 봤어.”

    코스타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명령을 받은 호위 4명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널 위해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야. 특히나 마법사라면 만족하지 않을 수 없을걸? 이건 내가 장담할게.”

    마법 물품이나 아티팩트를 말하는 건가?

    잠시 후, 코스타의 부하들이 수레에 커다란 나무 상자 두 개를 싣고 왔다. 틈새에 칼을 비집어서 콱 비틀자 상자 한쪽 면이 떨어졌다.

    짝!

    코스타가 손뼉을 쳤다.

    “자, 나오렴. 에이든, 샤를로트.”

    쩔그럭쩔그럭.

    상자 안에서 쇠사슬 소리와 함께 두 명의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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