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38화 (138/366)

138화 암흑가 로아프라 (2)

샘웰은 로아프라의 토박이다.

지하의 암흑가에서 태어난 그는 지상에 있는 아우로플을 몇 번이고 넘나들었지만, 단 한 번도 도시 바깥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아인종과 이형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남들보다 겁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이 바닥에선 재능이었다.

샘웰은 암흑가의 어디가 위험하고 안전한지 스스로 공부했고, 그렇게 무려 수십 년간 암흑가에서 사지 멀쩡히 살아남았다. 거대하고 복잡한 로아프라를 눈 감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해박해진 건 덤이고.

그는 오랜 기간 쌓아 온 지식과 경험을 그대로 자신의 사업에 접목했다.

안전한 암흑가 관광!

뭔가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였으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서비스에 만족한 고객들에 의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심지어 암흑가의 경매장을 이용하고자 하는 부자나 귀족에게까지 고용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안내 도중에 불상사가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사고(無事故).

샘웰의 모토이자 자랑이었다.

“흐흐흠. 흐흠.”

샘웰이 콧노래를 부르며 성문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고객이 언제 올지는 정확히 모른다. 상황은 언제나 가변적이라 딱딱 시간에 맞춰 계획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으레 있는 일이다.

‘그래도 경매장을 찾으신다고 했으니 늦지 않게 오시겠지.’

이번 고객 또한 결코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다.

수억이 간단히 오가는 경매장에 어떤 일반인이 참가하겠는가. 당연하다면 당연한 생각이었다.

샘웰은 고객에 대해 이름도 신분도 모른다. 아는 거라곤 고객임을 구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상착의가 전부다. 이건 그의 철칙이었다.

‘섣불리 궁금증을 내보이려 했다간 죽기 십상이니까.’

로아프라에서는 상식이다.

그러니 언제나 그랬듯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면 그뿐이다.

샘웰은 아침과 낮에는 의자에 앉아 언제 올지 모르는 고객을 기다렸으며, 밤에는 근처 값싼 여관에서 잠을 잤다.

이미 선금은 받았기에 마음은 아주 느긋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연녹색 로브를 두른 외부인이 성문을 통과했다.

‘오, 저분인가?’

미리 전달받았던 외견과 흡사하다.

더군다나 멀리서 봐도 평범함과 멀리 떨어진 외모다. 마침 그는 거기다 누굴 찾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샘웰은 경험적으로 그가 고객임을 직감했다.

곧장 팻말을 세우고 그를 향해 작은 깃발을 흔들었다.

그걸 목격한 외부인이 샘웰에게 걸어왔다. 역시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외부인, 베르덴이 물었다.

“당신이 샘웰인가?”

외모대로 젊은 나이대의 목소리.

하나 명확한 힘이 실려 있다. 귀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샘웰이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게 허리를 숙였다.

“암흑가 로아프라의 안내를 맡게 된 샘웰이라고 합니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고개를 든 그가 방긋 미소를 지었다.

* * *

샘웰의 안내 코스는 아우로플과 로아프라로 나뉘어 있다.

베르덴은 둘 중 로아프라만을 택했다.

슬쩍 주위를 보니 아우로플은 라인즈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의 목적지는 어디까지나 로아프라의 경매장뿐이었다.

고객의 요청에 샘웰이 정중히 안내를 시작했다.

“아우로플과 로아프라 사이에는 하나의 지하도가 존재합니다. 고객님께서는 거기서 고속 마력 승강기에 탑승해 로아프라로 입장하시게 될 겁니다.”

“상당히 깊은가 보군.”

“그렇습니다. 사이의 대지가 얇을수록 대참사가 일어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니까요. 최소 수만 명의 목숨이 달린 일이기에 특히나 안전에 신경 써서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이어 샘웰이 로아프라에 대한 설명을 더했다.

“이렇듯 지상에 있는 아우로플과 지하에 있는 로아프라는 서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것 또한 그렇습니다. 예를 들자면 국가의 규칙 같은 게 말입니다.”

“규칙이라면…… 법이 다르다는 건가?”

샘웰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아프라는 말 그대로 치외법권의 영역입니다. 에스티리아의 왕가가 아닌, 실질적인 지배 세력인 빈테르트에 의해서 새로운 법이 자행되고 있죠.”

도둑질을 해도, 폭력을 행사해도, 살인을 해도 처벌은 없다.

범죄에 대한 공권력의 규제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거참.

“상당히 난장판이겠군.”

“하하, 대개 그렇게 생각하시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바로 두려움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함부로 죽일 수 있다는 건 자신 또한 이유 없이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건 상대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 사실은 상당한 억제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한 불안감을 이용해 발달한 것이 경비 사업이다.

돈으로 고용된 자들이 무분별한 폭력으로부터 가게를 보호해 주거나 요인을 지켜 주며 때로는 보복을 대신 해 주기도 한다.

원초적인 힘.

그게 암흑가의 질서다.

베르덴은 눈을 가늘게 떴다.

“힘만 있으면 뭐든 해도 상관없다는 건가?”

“그게 암흑가입니다. 반면에 약자는 언제나 짓밟히며 살아갑니다. 약자니까요. 힘이 없으면 인맥이든 돈이든 뭐든 동원해서 살아남아야 하죠.”

야생적인 환경이다.

하나 바깥의 현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과거나 지금이나 세상은 언제나 강자만의 것이었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베르덴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이제 주의 사항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가능한 제 안내에 따라 주실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절대 로아프라에서 빈테르트의 이름을 함부로 언급하지 않을 것. 고객님께서는 위 두 가지만 지켜 주시면 됩니다.”

이름까지?

베르덴의 의문에 샘웰이 답했다.

“암흑가에는 다양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적인 지배자가 빈테르트라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죠.”

곳곳에 빈테르트의 눈과 귀가 숨어 있다.

잘못 입을 놀렸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다.

허세 부리듯 빈테르트를 모욕했다가 뒷골목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람들을, 샘웰은 몇 번이나 보며 살아왔다.

로아프라는 혼란이 집약된 장소다.

위험한 거리를 걸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안전한 거리를 걸어도 갑자기 칼부림이 나서 죽을 수도 있는 곳이 암흑가다.

그때, 샘웰이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그래도 걱정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객님들께 피해를 준 적이 없으니까요. 그만큼 제 루트는 안전을 중점으로 두고 있습니다. 돈값 이상으로 해낼 테니 부디 믿고 따라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내인 샘웰이 다시 허리를 숙였다.

‘아부에 능숙한 안내인이군.’

베르덴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목적지에 다다랐다.

지하도로 향하는 입구. 샘웰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자 넓은 복도가 나타났고, 각 출입소별로 줄을 선 인파가 보였다.

아우로플의 병사들이 사람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저곳은 주로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통로입니다. 검문을 하긴 하지만 별로 빡빡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암흑가에서 마약을 가져와 바깥에 퍼뜨렸다간 즉결 처형이지만요.”

샘웰이 구석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기는 VIP 전용 통로입니다. 주로 암흑가에서 내로라하는 분들만 이용하고 계시죠. 고객님께선 이 두 개의 통로 사이에 있는 중앙 승강기를 이용하시게 될 겁니다.”

중앙 계단 아래에 있는 세 개의 마력 승강기.

관계자에게만 허락된 통로였는데, 관리자에게 허락만 받으면 얼마든지 이용이 가능하다. 인맥이 있으면 남들처럼 힘들게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강철 흉갑을 입은 콧수염 사내가 다가왔다.

샘웰이 상체를 굽신거렸다.

“아이고, 고생 많으십니다, 달리시안 소장님.”

“샘웰이군. 오늘도 일인가? 이야, 꽤나 잘나가는구만 그래.”

“다 소장님의 은혜 덕분이지요. 나중에 꼭 한번 모시겠습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조금이라도 갚는 게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흠흠, 그게 맞긴 하지.”

소장이 헛기침을 하며 히죽 웃었다.

술과 고기로 기름칠을 할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편의를 봐주며 간간이 받는 성의는 꽤나 쏠쏠했다.

소장이 고개를 돌렸다.

베르덴을 본 그가 콧수염을 어루만졌다.

“음, 이번에는 참 특이한 고객을 데려왔군. 그 얼굴로 로아프라 따위에 가는 건 많이 아까운 거 같은데……. 뭐, 남의 사정 따위야 내 알 바는 아니지.”

소장이 길을 비키며 턱짓했다.

지나가도 좋다는 뜻이었다. 검문은 물론 생략이었다.

“감사합니다, 소장님.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기대하고 있을 테니 나중에 보자고.”

샘웰이 몇 번이고 인사하며 베르덴과 고속 마력 승강기에 탑승했다. 문이 닫히며 승강기가 지하 아래로 향했다.

승강기가 잘 운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던 병사가 소장에게 말했다.

“와, 살면서 저렇게 불공평하게 생긴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귀족일까요?”

“내가 아는 왕국 귀족들 중에 저렇게 잘생긴 사람은 없다. 타국의 귀족일 수도 있지만 그것까지야 내가 상관할 건 아닌데…….”

소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색 머리칼에 벽안이라.”

어디서 들어 본 듯한 인상이었다.

기억을 끄집어내 봤지만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현상 수배범이 아닌 건 분명한데…….

‘그래도 보고는 해 둘까.’

* * *

우우웅.

미약한 소음이 들려오며 승강기가 하강했다.

사방이 강화된 유리로 되어 있어 외부가 훤히 보였다. 이내 바깥으로 지하의 정경이 시야에 비쳤다.

베르덴이 놀란 듯 눈을 약간 크게 떴다.

대도시 두 개쯤은 가뿐히 집어삼킬 정도의 거대한 공동.

마력으로 보호되고 있는 금속 기둥들이 아득히 높은 천장을 떠받치고 있으며, 천장 곳곳에 박힌 거대한 마석등이 로아프라 전체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난생처음 접하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베르덴이 고개를 앞으로 향했다.

암흑가를 넘어 저 멀리, 지하 호수를 둘러싼, 벽면에 기대어 만들어진 회색빛의 왕성이 보인다. 저 안에 누가 있을지는 너무도 뻔했다.

‘빈테르트의 수장, 암흑가의 왕이 거주하고 있는 건가.’

확실히 저 정도면 왕이라 불릴 만하다.

어지간한 왕성에 필적하는 성을 가지고 있으니. 마치 지하에 세워진 작은 국가의 수도를 보는 듯했다.

옆에 있던 샘웰이 첨언했다.

“옛날 빈테르트의 초대 수장이 노예들을 이용해 지은 성입니다. 저 호수 아래에는 그때 혹사당하거나 추락해서 죽었던 노예들의 유골이 잠겨 있다고 합니다. 아주 끔찍한 역사죠. 지금이야 겨우 노예제가 폐지되긴 했지만요.”

“암흑가엔 불법 노예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맞습니다. 아실진 모르겠지만, 얼마 전 플리쉬르 백작이 구금된 이후로 그쪽 사업이 휘청거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공급처가 거기 하나만은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빈테르트에서 원하는 한 로아프라에서 노예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죠.”

이 거대한 지하 암흑가가 한 조직의 의향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건가.

‘엄청난 권력이군.’

베르덴이 시선을 돌려 다시 거리를 바라봤다.

마치 왕조처럼 오래도록 암흑가의 통치를 이어 가는 조직, 빈테르트.

안내인의 반응, 페르네의 정보, 칼리아의 언급을 돌이켜 보니 그들이 로아프라에서 얼마나 거대하고 대단한 집단인지 간접적으로 잘 느껴졌다.

뭐, 어디까지나 그뿐이었지만.

……쿵.

지하에 다다랐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샘웰의 말마따나 생각보다 치안이 괜찮은 것인지, 암흑가라고 하기보단 대도시의 밤거리를 보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지상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안으로 조금이라도 깊게 발을 디딘 순간 진정한 암흑가가 펼쳐지지요. 그러니 아주 조심하셔야 합니다.”

딱히 물리적인 구분이 되어 있지 않아 외부인은 깨닫기 어렵다.

빈테르트의 통치 아래, 물밑에서 작은 세력들이 전쟁을 벌이며 그러한 영역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샘웰에겐 전혀 문제없다.

괜히 무사고를 모토로 하는 안내인이 아니었다.

마력 승강기에서 내린 두 사람이 로아프라에 발을 디뎠다.

* * *

로아프라는 향락의 도시다.

다른 도시에서 느껴 보지 못하는 쾌락이 집대성한 거리. 처음으로 암흑가에 방문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갈 곳은 대부분 정해져 있었다.

바로.

“카지노입니다.”

“도박장 말인가?”

“맞습니다. 로아프라의 주력 사업 중 하나로, 외부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장소입니다. 아직 경매가 열리기까지 충분히 시간이 남아 즐기셔도 좋으나…… 취향이 아니시라면 바로 다른 장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베르덴은 평생 도박을 접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딱히 관심도 없었다. 그런 시답잖은 짓으로 시간을 낭비할 바에 로아프라의 지리에 대해 익히는 게 훨씬 더 유익했다.

“다른 곳으로 가지.”

“알겠습니다.”

수긍한 샘웰이 앞으로 나섰다.

순간 베르덴의 감각에 무언가 스쳤다. 곧장 팔을 뻗어 샘웰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콰아아아앙!

카지노의 벽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반쯤 작살 난 사람 몸뚱이가 샘웰이 서 있던 자리를 휩쓸고 지나쳤다. 자칫하면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는 사실에 샘웰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베르덴의 시선이 카지노로 향했다.

걸걸한 목소리가 건물 안쪽에서 들려왔다.

“이런 같잖은 새끼가. 감히 누구 앞에서 수작질이야? 콱 죽여 버릴라.”

‘이 목소리는…….’

상당히 익숙하다.

이내 카지노의 벽을 부순 장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의 짧은 머리칼과 턱수염을 가진 근육질의 거한.

허리춤에 날카롭게 벼려진 거대한 도끼를 차고 있으며, 성깔이 굉장히 더러울 것 같은 험악한 인상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목과 가슴 언저리에 본 적 없는 큰 흉터가 새겨져 있었으나 분명 아는 사람이었다.

거한이 바깥으로 걸어 나오며 어깨를 풀었다.

“안 그래도 X같은 패만 나와서 짜증 났는데 마침 잘됐다. 아주 반병신을…….”

베르덴과 거한이 눈을 마주쳤다.

잠시간의 침묵이 지나고 나서야 둘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도살자?”

“애셔?”

도살자 갈리아크.

과거 베르덴과 함께 통곡의 기사를 토벌했던 백금 등급 모험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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