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36화 (136/366)
  • 136화 각오

    “……말씀하신 현금은 일주일 내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드렐프의 우울한 목소리를 들으며 베르덴이 다이나 은행을 나섰다.

    당장 현금을 받아 챙긴 건 아니다.

    지점장이 말하길, 다이나 은행이 소유하고 있는 비행정으로 각 지점의 현금을 싣고 아세른으로 운송해 준다고.

    ‘기다리기만 하면 알아서 준비해 준다니.’

    어지간한 귀족에게조차 해 줄까 말까 한 대우다. 이게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힘이란 거겠지.

    신분이란 겉치레에 욕심은 없었지만 그 편리성에 대해서 베르덴은 실감하고 있었다.

    ‘이걸로 하나는 해결했다.’

    다음으로 대도서관으로 향할 차례다.

    목적은 5위계 부여 마법이 실린 서적.

    근처 서점에서 구입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위계가 높은 마법 서적은 마탑의 이름으로 엄격하게 유통이 금지되어 있다.

    딱히 마법이 유출될까 봐 그런 건 아니다.

    설령 5위계 마법이 담긴 서적을 손에 넣었다고 한들 누가 뭐 어쩌겠는가.

    그 계열을 심도 있게 전공한 마법사가 아니라면 보기 좋은 관상용 책이나 불쏘시개 따위에 불과할 텐데.

    마탑이 유통을 금지한 이유는 하나다.

    ‘그저 고위계의 마법이 시장 바닥에 나도는 게 극도로 싫으니까.’

    마법사란 족속 중에는 그런 쓸데없는 자존심을 가진 자가 많았다.

    특히나 수준이 높은 마법사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7위계 마도사인 보헤미른 마탑주, 발로크 베시아스만 봐도 알 수 있지.’

    인간을 물건처럼 여기며 쓰고 버리는 미친 인간.

    그와 함께 마탑의 비공식 연구에 손을 댔던 자들도 마찬가지다.

    베르덴은 그 누구보다도 그러한 마법사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라인즈의 대도서관에 도착한 베르덴.

    책임자인 도서관장에게 칼리아의 인장 목걸이를 보여 주자, 어렵지 않게 출입 금지 영역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각종 마법 물품으로 보호받고 있는, 값비싸고 귀하며 난해한 서적들이 보관된 장소.

    ‘……저깄군.’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베르덴의 시야에, 두 개의 나선과 그 중심을 관통하는 하나의 직선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 보였다.

    유물 탐사단 탐색자들의 리더, 라이반 크루소.

    그의 출신인, 인챈트리 학파를 상징하는 헬리온 마탑의 표식이었다.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책장 앞에 다가섰다.

    ‘양이 상당한데.’

    다양한 부여 마법 서적.

    상당히 흥미가 가는 제목의, 정신계 마법 서적도 있었으나 굳이 손을 대지 않았다.

    베르덴의 주력은 룬의 반지로 강화된 감각과 부여 마법으로 강화된 신체를 이용한 근접전 그리고 원소 마법이다.

    ‘기초적인 정신계 이론은 알고 있으나, 깊이 있게 공부한 적은 없다.’

    보헤미른 마탑은 부여 마법을 일절 다루지 않으니까.

    다른 마탑처럼 원소 한두 개도 아니고, 모든 원소를 다루는데 다른 계열까지 신경 쓸 여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상황에 필요한 건 깊이다.’

    단순히 알고 있는 마법이 많으면 좋겠지라는 생각으로, 겉핥기식으로 마법을 익히는 건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물론 베르덴에게 한계란 없다. 하고자 한다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건 단언컨대 절대 아니다.’

    이론을 이해하며 지식을 쌓고, 시행착오를 통해 마법을 익히고.

    베르덴이 이룩한 역천의 육체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지, 모든 분야에 천재적인 성장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가진 능력을 더욱 개발하는 게 최우선이다.

    그 외적인 요소는 먼 세월 뒤로 미루는 것이 베르덴에 있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책장을 오가던 베르덴이 손이 멈췄다.

    “찾았다.”

    [5위계-리인포스 1편]

    베르덴이 서적을 꺼냈다.

    마탑에서 취급하는 물건을 바깥으로 가져가는 건 명확한 범법 행위다.

    애초에 대여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그렇다고 몇 번이고 상주하며 들락날락할 생각은 없다.

    ‘그러니 여기서 끝낸다.’

    베르덴이 도서관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서적을 들여다보는 푸른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글자 하나하나까지 다 머릿속에 담는 단순 암기가 아니다.

    서적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그가 이해한 부여 계열의 뿌리와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5위계 마법의 구성 방식을 해석하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베르덴의 한계 위계는 1위계였다.

    마법사로서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최악의 재능이었다.

    하지만 마법에 대한 이해력은 감히 베르덴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그 증오스런 마탑주조차 천재라고 판단해, 무려 7년간 실험체로 삼아 마탑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이용했었으니.

    사라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고요히 귓가를 스쳤다.

    ……이윽고 날이 저물었다.

    대도서관은 하루 종일 운영된다.

    고급 마석등이 불을 밝혀 주기에 낮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난 사건 또한 벌어지지 않는다. 마탑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도서관은 요새와 다름없었다.

    거기에 베르덴이 있었다.

    앉은 자세도 호흡도 이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바뀐 건 오로지 책뿐.

    식음을 전폐하고 인간의 생리 작용조차 억제하는 그 집중력은 베르덴이 평생을 걸쳐 완성한 것이다.

    사라락.

    다시금 넘어가는 책장.

    그럴수록 베르덴 또한 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 *

    도서관에서 3일을 지새웠다.

    새로운 마법에 대한 지식을 받아들이며 막대한 이해력을 쏟았다.

    시야가 흔들릴 정도로 머리가 뜨거웠고, 식사를 하지 않아서인지 몸에 힘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라인즈에 하루 머물며 허기를 채우고 수면을 취했다.

    그렇게 베르덴이 라인즈에 방문한 지 4일째가 되는 날에서야 다시 성문을 나설 수가 있엇다.

    인적이 없는 장소로 온 그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대기를 뚫고 구름 위에 도달한 베르덴이 더욱 강하게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의 신형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비행주파>

    5위계 기초 마법.

    기존의 비행과 달리 방향을 틀거나 역동적인 움직임은 취하지 못하나, 일직선 거리라면 더욱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

    쟈이안 숲에서 라인즈까지 예정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마법 덕분이었다.

    육체에 상당히 부담이 가는 고속 비행이긴 하나 베르덴에겐 상관없었다.

    경지에 오른 조작 능력으로 주위의 대기를 조작해, 그 반동으로부터 철저하게 호흡과 몸을 보호했으니까.

    햇빛이 비치는 풍경이 보다 빠르게 지나쳐 간다.

    원할한 비행을 즐기던 베르덴은 지금까지 모아 온 자금에 대해 떠올렸다.

    원래 가지고 있던 재산과 페르네에게서 받은 의뢰를 해결해 받은 보수.

    그리고 칼리아 덕분에 은행에서 대출한 25억 엘크.

    ‘이게 끝이 아니다.’

    페르네에게 처분을 맡긴 물건들과 올빼미가 처분한 흑랑 토렐드의 마법 물품을 판매한 값까지 있다.

    이걸 전부 합하면 기댓값 38억은 가뿐히 넘어 안전하게 입찰이 가능한 45억까지 넘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대부업자 바르톨에게까지 돈을 빌리면 다른 것도 노려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반인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빚이나 베르덴은 전혀 걱정이 없었다.

    돈은 결국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니. 거기다 갚을 능력은 충분하고도 넘친다. 당연히 도망갈 생각도 없다.

    베르덴이 도달한 5위계.

    그것은 하나의 기준점이다.

    마법사로서 깨달음을 얻어 마도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경지.

    진정으로 복수에 대한 출발점에 서게 된 것이다.

    ‘주저하지 않는다.’

    동력원의 관리실.

    최초로 살인을 저질렀을 때의 그 각오와 살의를 그는 잊지 않았다.

    조합.

    주검의 영광.

    에스티리아 왕가의 3왕자.

    하나같이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베르덴과 대립하게 된 자들이다.

    일개 개인이 맞서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들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상관없다.’

    목적에 방해된다면, 날파리처럼 몇 번이고 눈에 거슬린다면 공국의 글러트니 때와 같이 직접 지워 버릴 뿐이다.

    전보다 더욱 강대한 힘을 가진 베르덴에겐 망설임은 없었다.

    대기를 주파하는 베르덴.

    그 끝에는 도시 아세른이 있었다.

    * * *

    그 시각, 루아스교의 마차들이 라인즈의 성문을 떠났다.

    네비론 주교를 필두로, 칼리아의 기사들과 성기사 그리고 성직자.

    그들에 의해 안전하게 호위를 받고 있는 마차 안에는 워렌스와 사령의 보주가 각각 따로 실려 있었다.

    사령의 보주를 완벽하게 정화하려면 일개 교회에서는 안 된다.

    왕국에 존재하는 루아스교의 교구, 그 고귀한 성전(聖殿)에서 고위 성직자들이 공을 들여 오랜 시간 정화를 해야 했다.

    그것이 네비론 주교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워렌스.

    생명이 위독한 건 아니었으나 몸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령의 보주를 옮길 겸 교구로 가서 보다 수준 높은 치료를 받기로 결정되었다.

    편안한 침대에 누워 있는 워렌스.

    몸은 고통으로 괴로웠으나 그럼에도 마음은 홀가분했다.

    ‘칼리아 님에게 협조를 구해서 정말 다행이야.’

    주검의 영광의 은신처를 토벌했다.

    노인과 여성은 없었지만 그래도 붙잡혀 있던 불쌍한 사람들은 구했다.

    거기다 사령의 보주를 회수하기까지.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놈들의 추적을 뿌리치기 위해 다름 아닌 금지에 힘껏 내던졌으니까.

    이후 몸이 회복된다면 자신이 직접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할지언정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만약 그로 인해 동굴에서 언데드가 출몰해 피해가 속출했다면, 워렌스는 고개조차 들지 못했을 것이다.

    ‘애셔 님이라고 했었지.’

    사령의 보주를 회수한 장본인.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마법사.

    그야말로 워렌스에게 있어 평생의 은인이었다. 마음속으로나마 깊게 감사를 전했다.

    그러던 중 마차가 멈췄다.

    아무래도 휴식 시간이 된 모양이다.

    성직자가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몸을 살펴 드리겠습니다, 워렌스 님.”

    “감사합니다, 성직자님.”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하는 검사였다.

    이렇게나 자신을 보살펴 주는 그들에게 워렌스는 몇 번이고 감사를 전했다.

    평소 때와 같이 성직자가 워렌스의 팔목을 잡았다.

    그 순간.

    “배신자가 여기 있었네?”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놀라 워렌스의 말문이 막혔다.

    그 앞에서 성직자가 빙글 돌았다.

    있을 리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앞에 있었다.

    과거 멀찍이서 봐 온 그 뒷모습의 여성이.

    “다, 다, 당신은…… 읍!”

    비올라가 워렌스의 입술을 꼬집었다.

    “쉿. 그러다 걸리면 내가 애써 여기 잠입한 보람이 없잖아?”

    입안으로 날카로운 저주가 흘러들어 온다.

    발버둥 쳤으나 워렌스는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었다.

    “원래는 여기 있는 애들 싹 다 죽이고 사령의 보주만 회수할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노사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의식이 완성될 때까지 교구에 잠입해 있으라 하더라고.”

    비올라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머리카락을 배배 꼬았다.

    “그러다 사령의 보주가 정화되면 어쩌냐니까 그건 알아서 하겠다네? 이렇게 어려 보이긴 하지만 나도 5위계 흑마법산데, 정말 취급이 너무하지 않아?”

    “……!”

    “음, 루아스교에게 붙은 배신자한테 할 말은 아닌가? 아니, 들어 보니 배신자가 아니라 다크 워튼의 흑마법사라고 했었지? 뭐, 어쨌든.”

    씨익.

    비올라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한 2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그동안 네가 내 장난감 노릇 좀 해 줬으면 좋겠어. 너 때문에 빌어먹게 귀찮아진 거니까 사양은 하지 마. 알겠지?”

    가녀린 손가락이 워렌스의 이마를 튕겼다.

    털썩.

    의식을 잃고 눈이 뒤집힌 워렌스. 비올라의 강력한 저주가 성공적으로 안착된 것이다.

    이제 그는 지금의 대화를 기억할 수 없다.

    그리고 다시 비올라를 볼 때마다 경악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이겠지.

    그의 몸속 깊이 새겨진 저주 마법진은 설령 주교가 와서 살펴본다고 해도 알아차릴 수 없다.

    백골(白骨)의 비올라.

    이것이 그녀였다.

    비올라는 저 장난감을 어떻게 갖고 놀아야, 이 지루한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마차 밖으로 나섰다.

    물론 다른 성직자들이 알아차리는 일은 없었다.

    그녀가 뒤집어쓰고 있는 성직자의 껍데기에 현혹된 것이다.

    루아스교의 빛.

    그 사이에 사악한 어둠이 숨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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