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31화 (131/366)

131화 사령의 보주 (4)

“그건 어둠이 아니었다. 벌레의 갑각이었다. 나는 내 동료의 몸이 순식간에 암흑으로 뒤덮여 사라지는 걸 보고도 그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금 등급 모험가, 체켈린

* * *

베르덴이 중력에 이끌리며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추가로 비행 마법을 사용해 더욱 속도를 높였다.

양옆으로 보이는 절벽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만약 이대로 지면에 부딪혔다간 형체조차 찾지 못할 게 분명했으나 베르덴은 자신 있었다.

섬세한 조작 능력은 그의 특기 중 하나였으니까.

그렇게 전속력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가던 그때, 귓가에 사사삭──거리는 소리가 스치듯 들려왔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자 벽면의 어둠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게 그거군.’

모험가들의 기록에 적혀 있던 이형종 ‘블랙로치’.

평소에는 동굴 벽에 붙어 종일 수면을 취하다가, 먹잇감이 찾아오거나 배가 고프면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는 육식 벌레다.

하나하나 크기는 사람 머리만 한데, 보통 무리당 수백 마리 단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색적 능력이 뛰어나 영역 내의 침입자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다.

설령 투명화를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상대하기가 워낙 귀찮은 터라 모험가들도 기피하는 이형종이다.

그런데 까마득한 구렁에 있는 블랙로치는 그야말로 자릿수가 달랐다.

‘마력감지로 파악한바 최소 만 단위.’

천적이 없는 모양인지 미친 숫자다.

저 정도면 어지간한 도시 하나를 괴멸하고도 남겠지.

어느새 베르덴이 블랙로치의 영역의 중심에 들어갔다.

긴가민가하던 놈들이 침입자를 완전히 인식했다.

역겨운 날갯짓을 하며 이리저리 움직였는데, 말 그대로 벽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우우우우웅!

바람을 자극하는 소리.

곧 블랙로치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베르덴에게 달려들었다.

저 무리에 맨몸으로 노출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뼈조차 남지 않을 터.

<화염장막>

베르덴이 전신에 불길을 둘렀다.

무지성으로 돌격하던 블랙로치의 전열이 소각되었다.

하지만 그건 고작 일부일 뿐.

블랙로치 무리는 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타다다다닥!

타다다다다다닥!

반복해서 죽고 또 죽어 간다.

구역질 나는 탄내가 코끝을 스쳤다.

그렇게 수백 마리가 죽었을 때쯤이었다.

[키리릭.]

블랙 로치 한 마리가 손상된 장막 일부를 뚫고 머리를 내밀었다.

벌레 특유의 검은 눈. 네 갈래로 갈라진 턱이 꿈틀거렸다.

베르덴이 미간을 찌푸렸다.

“……징그럽군.”

진심으로 역겹기 짝이 없었다.

<선풍의 장막>

원형으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주변에 몰려 있던 블랙로치 무리가 휩쓸리더니 이내 소용돌이가 검게 물들었다.

충격에 벽에 부딪힌 블랙로치들.

그러나 놈들의 갑각은 그 정도로 부서지지 않았다.

다시 베르덴을 향해 돌진했다.

‘상당히 끈질긴 놈들이군.’

영역을 중시하는 이형종은 대개 영역을 벗어나면 추적을 포기한다.

다만 이곳에 모인 블랙로치에겐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별수 없이 전멸시킬 수밖에.’

당연히 베르덴에게 방법이 있었다. 모험가들의 기록을 통해 미리 정보를 접했으니까.

삼원색의 중심을 이용한 혼돈 마법.

지난 시간 동안 훈련을 하며 몇 개 구상한 마법들 중 적합한 게 있다.

‘그러니 놈들을 한곳에 모으는 게 우선.’

생각을 끝낸 베르덴이 선풍의 장막을 해제했다.

<아웃버스트>

압축된 바람이 폭발하며 포위망에 틈이 생겼다.

이어 신발에 내재된 마법 <중량화>를 사용한 베르덴이 재빠르게 그 틈새를 통과했다.

그러곤 곧장 회피 기동을 펼치며 추적을 피해 냈다.

블랙로치가 전혀 스치지도 못하는 정교한 움직임.

아무리 베르덴이라고 해도 식인 벌레들에게 닿는 건 생리적으로 무리였다.

화아아아악!

허공을 질주하듯 어둠 속을 낙하했다.

슬쩍 뒤를 바라보자, 까마득한 구렁을 바글바글한 블랙로치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지금이 적기였다.

베르덴이 오큘러스의 끝부분에 마력을 집중했다.

‘내게 필요한 건 연쇄적이고 광범위한 파괴력.’

그의 오른쪽 눈에 역천의 문양이 떠올랐다.

<연쇄번개>의 전도.

<화염역병>의 전염.

그 위로 바람을 둘러 마법 자체를 강하게 압축했다.

전부 4위계에 위치한, 마법과 집중 마법의 분해와 재조립.

본래라면 베르덴에게도 수십 초의 연산 시간이 필요하나 마안이 그를 대신했다.

베르덴에게도 버거울 정도로 강력한 반발력.

다른 사람이었다면 마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멸했을 것이다.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베르덴이 쌓아 올린 노력이었다.

준비를 끝낸 베르덴이 등을 돌리고 오큘러스를 내뻗었다.

<군뢰>

자그마한 남색의 구체가 블랙로치 사이로 사라졌다.

그리고.

────콰과과과과과과광!

압축된 염화가 폭발하며 수백 갈래의 벼락이 공간을 집어삼켰다.

그에 닿은 블랙로치가 삽시간에 폭사했고, 마치 전염병이 퍼지듯 죽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특히나 서로서로가 몸을 붙이듯 가까이하고 있는 벌레 무리에겐 치명적인 마법.

눈 깜짝할 사이에 벼락 줄기가 시전자인 베르덴에게까지 뻗어 왔다.

베르덴이 구렁의 벽에 붙었다.

<지형조작>

낙하하며 지형을 조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안의 시야에 닿은 다른 벽면에도 마력을 침투시켰다.

트리플 캐스팅을 통한 지형조작이었다.

오큘러스로 긁듯이 허공을 올려 치고 지형이 한데 모이자, 베르덴 위에 천장이 만들어졌다.

마법의 전염병이 퍼져 나가고 있는 블랙로치 무리와 베르덴의 사이.

까마득한 구렁의 공간이 분단된 것이다.

쿠구구구구구궁!

벽 너머로 들려온다.

고통에 찬 블랙로치가 벽면에 부딪히는 소리와 그들 사이에서 이어져 나가고 있는 전염병 같은 폭발 소리를.

금이 가기 시작한 천장.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잠해졌다.

화염과 전격의 전염병에 블랙로치가 전멸한 것이다.

아니면 그에 필적할 만큼 무리가 궤멸되었거나.

‘뭐가 됐든 더 쫓아오지는 못하겠지.’

마안을 연이어 사용했더니 반동이 찾아왔다.

머리와 마력회로도 마찬가지. 그만큼 직전에 사용한 마법의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베르덴이 피로를 털어 내며 아래로 향하자, 마침내 끝이 다가왔다.

지면에 착지한 베르덴이 두리번거렸다.

‘엄청난 크기군.’

지금까지의 풍경과는 달리, 암시를 사용하고 있어도 크기를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한 공동이 시야에 비쳤다.

침묵의 어둠.

고운 입자의 모래가 바닥에 얕게 깔려 있었다.

아무런 습격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감각을 자극하는 죽음의 기운만이 느껴질 뿐.

베르덴이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사령의 보주.

자색의 빛을 희미하게 내뿜는 그것이 거대한 모래 산 위에 떡하니 놓여 있었다.

어떻게 저기에 올라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의뢰를 달성하기까지 코앞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노력한 보람이 있군.’

이제 저걸 챙기고 보수를 받아, 경매장에서 원하는 걸 구입하면 된다.

그리고 5위계에 오르는 것까지.

보헤미른 마탑주.

절대적인 7위계의 초월자를 향해 몇 발자국이나 다가가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복수에 더 가까워졌다.

그렇게 생각하며 베르덴이 보주에 다가간 순간.

낯선 기척이 느껴졌다.

“사령의 보주! 드디어 찾았구나!”

저 멀리서 들려온 목소리.

조용히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검은색 로브를 두른 세 명의 인간.

그 중심에 있는, 마치 구울이 생기를 가지면 저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못생긴 사내.

그 앞에는 뭉개진 고기 조각으로 이루어진 언데드 다섯 마리가 있었다.

‘……크럼블러?’

보아하니 자연적으로 발생한 개체는 아닌 것 같다.

아마 흑마법의 소환 계열 마법으로 소환된 것일 터.

‘빛이 들지 않는 동굴에 찾아온 흑마법사 무리라.’

베르덴이 알기로, 그나마 여기에 찾아올 흑마법사 집단은 하나뿐이다.

주검의 영광.

베르덴이 할 일은 정해졌다.

<플레어>

화염 광선이 쿤엘에게 육박했다.

* * *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빛이 들지 않는 동굴을 탐사한 베르덴.

그와 달리 쿤엘 일행의 여정은 아주 평화로웠다.

사령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쿤엘의 특이 형질 덕분이었다.

수백 개의 통로가 눈앞에 있음에도 길을 잃지도 않았고, 상대하기 귀찮은 이형종이 있으면 가볍게 우회했다.

세 명이기에 짧은 수면을 취하면서 죽을까 봐 걱정할 일도 없었고.

물론 며칠 동안 까마득한 지하로 향하는 건 갑갑하고 고된 일이긴 했으나.

결국 상처 하나 없이, 마력을 소모하는 일도 거의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아아. 느껴진다, 사령의 보주의 기운이!”

쿤엘은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갑작스레 발생한 배신자에게 전혀 예상치 못하게 보주를 도둑맞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이거라면 그가 존경하며 믿고 따르는 노사가 흡족해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주검의 영광의 목적을 향해 거대한 한 발자국을 남기는 셈.

그 주역이 자신이라는 사실에 쿤엘은 기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어둠을 거닐던 중 마침내 발견했다.

모래 산 위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사령의 보주가.

“사령의 보주! 드디어 찾았구나!”

톤이 높은 비명을 지르며 쿤엘이 성큼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시야 끝자락에 낯선 인영이 보였다.

븐명 사람이었다.

‘어? 왜 여기에 사람이……?’

비정상적이다.

그를 따르던 카르잔과 다니엘마저 당혹스러워했다.

솔직히 소름 끼쳤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은 장소에 있는 사람이라니.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건 흑마법사가 아닌, 인간 본연의 감정이었다.

그때였다.

화염 광선이 날아왔다.

“엇?!”

눈을 부릅뜬 쿤엘.

그가 크럼블러들을 방패막이로 세우고는 <영혼 장막>을 둘렀다.

콰아아아아!

잠시도 막아 내지 못하고 불길에 녹아내린 언데드들.

더군다나 영혼 장막의 일부마저 손상되었다.

‘마법의 한계치까지 마력을 집중시킨 건가……!?’

무식한 위력이다.

쿤엘이 혀를 차며 지면에서 해골 벽을 넓게 솟아오르게 했다.

그렇게 몸을 지킬 수단을 만들며 마력을 갈무리할 시간을 벌었다.

그걸 본 베르덴이 생각했다.

‘상황 판단이 빠르군.’

기습에 대처하는 걸 보니 전투에 익숙해 보인다.

하지만 이거라면 어떨까.

<지형조작>

지형이 물결치더니 이내 거대한 해일이 되어 해골 벽을 덮쳤다.

그 막대한 질량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벽이 무너졌다.

그 뒤에는 흑마법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쿤엘도 그리 호락호락한 흑마법사가 아니었다.

<대지의 죽음>

그가 스태프를 바닥에 찍었다.

해골이 달그락거리며 뻗어 내려가는 저주.

옆에서 카르잔과 다니엘이 보조하여 저주의 위력과 범위를 최대한 강화했다.

대지가 죽으면서 지형의 개념에서 벗어났다.

베르덴의 마력이 흘어지며, 통제에서 벗어난 모래 해일이 주위를 덮쳤다.

쿤엘 일행이 그에 휩쓸려 나가떨어졌다.

본래 단숨에 압사할 생각이었던 베르덴의 뜻과는 벗어난 결과였다.

베르덴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력이 침투해도 움직이지 않는군. 이래서야 지형조작을 더 사용하지 못하겠어.’

정확히 지형조작에 대응하는 저주 마법.

베르덴이 상대의 수준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올렸다.

“쿨럭, 쿨럭!”

머리에서 모래를 떨어뜨리며 일어난 쿤엘.

그가 기침을 하며 베르덴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네놈은 대체 누구지? 누군데 감히 우릴 공격하는 것이냐!”

대답할 생각은 없다.

베르덴이 마안을 발동했다.

이곳은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공동. 베르덴의 능력이 노출될 위험은 없다.

그와 더해서 베르덴 이외의 생존자를 바깥으로 내보낼 생각 또한 없었다.

세 명의 흑마법사.

그들 발아래의 모래가 꿈틀거렸다.

“음?!”

눈치챈 쿤엘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으나 나머지 둘은 아니었다.

콰직!

“끄아아아아악?!”

바닥에서 솟구친 대지의 창이 다니엘의 등 뒤를 관통했다.

대처할 새도 없이 심장이 파괴된 그는 곧 절명했다.

카르잔은 무릎이 망가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쿤엘의 눈동자가 작게 떨렸다.

‘어스 스피어? 그런데 어떻게 원거리에서 마법을……?’

이상하다.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마력이 느껴졌다.

이해할 수도 없고, 들어 본 적도 현상이다.

‘설마 저 습격자 또한 특이 형질이라는 건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쿤엘은 사령의 보주를 도둑맞았을 때 이상으로 혼란스러웠다.

그 틈에 베르덴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카르잔에게 육박했다.

그가 필사적으로 흑마법을 연사했으나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스톤 크랙>

집채만 한 암석 파편이 카르잔의 팔을 앗아 갔고, 지척에 다가간 베르덴이 오큘러스를 휘둘렀다.

집중된 마력이 충격파로 변환되며 카르잔의 상체가 손쓸 새도 없이 분쇄됐다.

‘이걸로 남은 건 하나뿐.’

한순간에 부하 둘을 잃어버린 쿤엘이 격분하며 소리쳤다.

“대체 왜 공격하는 거냔 말이다! 우리가 뭘 어쨌다고! 이유가 뭐냔 말이다!”

“…….”

“말 좀 하라고! 제발!”

쿤엘로선 답답해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어렵사리 빛이 들지 않는 동굴을 내려왔더니만, 연녹색 로브를 뒤집어쓴 괴한에게 공격받고 있으니.

게다가 수준이 장난 아니다.

자칫하면 쿤엘 또한 죽을지도 몰랐다. 영문도 모른 채로.

뭐, 베르덴이 알 바는 아니었다.

‘끝내고 돌아가자.’

오큘러스에서 푸른 전류가 번쩍거렸다.

그러던 순간.

[에스티리아…… 왕국…….]

공동 전체에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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