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30화 (130/366)

130화 사령의 보주 (3)

빛이 들지 않는 동굴.

이 장소를 탐험했던 모험가의 기록에 의하면, 베르덴이 들어온 입구에 존재하는 지하 통로는 총 두 개.

막다른 길은 없이 각각 특수한 장소로 이어져 있다고 한다.

하나는 까마득한 구렁, 다른 하나는 수백 개의 크고 작은 통로로 가득한 천연 미로가 말이다.

‘가능하면 구렁 쪽으로 흔적이 남아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더 찾기 쉬울 테니까.

대규모 지형조작으로 통로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도 할 수 있지만 그건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사령의 보주가 어딘가로 튕겨져 나갈지도 모르는 데다가, 혹여 남아 있을지 모르는 흔적이 지워질지도 모르니까.

베르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사령의 보주였다.

경사진 입구를 따라 내려가자 어느새 빛이 사라졌다.

암시를 시전 중인 베르덴의 시야에 두 개의 통로가 나타났다. 모험가의 기록에 있던 통로가 분명했다.

마력을 퍼뜨려 주변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흔적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검게 물들어 있는 동굴 바닥의 이끼. 그것은 깊은 어둠 속을 향해, 일자로 이어져 있었다.

분명 워렌스가 던진 사령의 보주가 굴러떨어진 흔적일 터.

‘잠깐 닿는 것만으로도 썩을 정도라는 건가.’

베르덴이 고개를 앞으로 향했다.

썩은 이끼의 흔적은 정확히 첫 번째 통로로 향하고 있다.

까마득한 구렁으로 이어지는 통로 말이다.

외길이라고 하니 따라 내려가면 사령의 보주를 찾을 수 있겠지.

하지만 위험이 없다는 건 아니다.

까마득한 구렁으로 가는 기다란 통로에는 무수한 아인종과 이형종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으니까.

‘간단한 일이군.’

베르덴은 주력은 원소 마법.

그 파괴력은 전투에 더없이 적합하다. 지금까지 해 온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화아악.

마력회로를 전력으로 활성화한 베르덴이 첫 번째 통로로 들어갔다.

* * *

“그곳은 그야말로 괴물의 소굴이었다. 우리는 한시도 멈출 수 없었다. 먹히지 않기 위해서.”

────백금 등급 모험가, 할파론.

* * *

통로의 끝에 도달할 때쯤 경사가 거의 사라졌다.

다만 보주가 굴러갈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바닥은 비스듬했다.

이윽고 통로를 넘어서자 고요한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을 넘어가면 구렁이 나온다고 했었지.’

기록에 따르면 구렁까지는 약 나흘 거리.

물론 도중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걸리는 시간이다.

“…….”

베르덴이 조용히 공동을 응시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기어다니는 벌레, 몸을 숨기고 있는 짐승.

으레 동굴이라면 들릴 법한 소리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룬의 반지로 강화된 감각에도 마찬가지.

그야말로 적막한 어둠이었다.

하지만 베르덴은 이미 경험한 적이 있었다.

공국에서 연금술사 리토 바르슬란과 이동 중.

거미 숲에서 만났던, 기척 자체를 지우는 게 가능한 거미들을 말이다.

분명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당시의 경험이 말하고 있다.

도처에 동굴 속 사냥꾼이 깔려 있다고.

놈들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베르덴이 자신들의 둥지 안으로 들어오기를.

투명화를 사용하면 전투를 피할 수 있다.

그동안 최대한 거리를 나아가고, 지형조작으로 벽 안에 숨거나 마법진으로 몸을 지킨다면 더욱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시간 낭비, 돈 낭비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암흑.

기척을 감춘 채 이빨을 감추고 있는 괴이한 적들.

그따위가 뭐라고 신경 써야 하나.

장애물이 앞길을 막아선다면 부수고 지나갈 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베르덴이 마력을 퍼뜨렸다.

공동 내부에 가득 들어찬 마력.

무수한 생명체가 감지되면서, 마력에 반응한 괴물들이 꿈틀거렸다.

[카아아…….]

눈과 코는 없이.

오직 귀와 입만이 남아 있는 기괴한 외형을 가진 이형종, 블라인더.

코볼트 정도의 크기를 가진 수십 마리가 어둠 속에서 기어 나왔다.

이게 시작이다.

그 뒤로는 더욱 강하고, 더욱 많은 괴물이 눈을 번뜩이고 있다.

베르덴이 벽안을 빛냈다.

막는 적은 전부 죽인다.

짙은 살기를 띤 그의 스태프에 마력이 휘몰아쳤다.

트리플 캐스팅.

<연쇄번개>

* * *

쿠구구구구……!

진동이 울리며 천장에서 후두둑 먼지가 떨어졌다.

벌써 이게 여섯 번째 지진이었다.

“……동굴이 많이 소란스러운 것 같습니다, 쿤엘 님.”

다니엘의 말에 쿤엘이 별거 아니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이곳은 금지 중 하나인 빛이 들지 않는 동굴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는 장소지.”

듣기로는 거대한 땅굴 벌레, 스톤 이터도 서식한다고 한다.

크기가 거의 고층 여관에 필적하다고 하니 움직일 때마다 흔들림을 동반하는 건 당연하겠지.

거기다가 동굴 오우거나 거대 거미도 서식한다고 하니.

‘그래도 너무 잦긴 하군.’

약간 신경이 쓰이긴 했으나 쿤엘은 곧 관심을 거두었다.

본인도 말했다시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지금은 사령의 보주에 집중할 때였다.

쿤엘이 발걸음을 멈췄다.

정신을 집중하자 사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빛이 들지 않는 동굴에서 죽어 간 자들의 음성이다. 그들이 비명으로 속삭이고 있다.

죽음이 만연해 있는 장소.

사령의 보주의 위치에 대해서 말이다.

이렇게 훌륭한 안내자가 있으니 움직임에 있어 망설이거나 고민할 이유가 없다.

쿤엘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응?”

그때, 쿤엘 일행 앞으로 이형종이 나타났다.

맹독을 품은 지네. 그리고 그 등에 올라탄 블라인더.

놈들이 흑마법사들을 향해 코를 킁킁거리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감히 겁도 없이.”

쿤엘이 지팡이를 내밀었다.

<고통의 절규>

지팡이의 해골이 달그락거렸다.

터져 나온 흑색 파동이 전면을 휩쓸었다.

[키에에에에에엑!]

저주에 노출된 이형종이 몸부림쳤다.

온몸을 비틀며 바닥에 쓰러진 괴물들을 향해 다니엘과 카르잔이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쿤엘의 저주가 강화되었다.

퍼버벅! 퍼벅!

지네와 블라인더가 고통에 못 이겨 폭사했다.

악취에 가까운 체액의 향기. 쿤엘은 적들의 죽음을 느끼며 마력을 일으켰다.

<크럼블러>

산산조각 난 파편과 흩뿌려진 체액이 모이며 기괴한 형상을 갖췄다.

크럼블러.

흑마법으로 만들어진 저열한 종. 다만 잔챙이를 사냥하기엔 더없이 쓸 만하다.

쿤엘이 턱을 까딱이자 크럼블러들이 동굴을 질주했다.

잠시 후, 동굴 서식자들의 비명 소리가 귓가에 감돌았다.

쿤엘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다시 가도록 하지.”

쿤엘 일행은 최단 루트로 사령의 보주가 있는 깊은 지하로 향했다.

* * *

수십 갈래로 갈라진 벼락이 암흑 속에서 명멸했다.

신체 내부가 불탄 사체들이 쓰러졌다. 그 빈자리를 새로운 이형종들이 채웠다.

시시각각 모여드는 무리.

그 속에서 붉은 번개가 내리쳤고 뒤이은 냉기와 화염이 길을 막고 있던 블라인더들을 몰살했다.

‘이제 길이 보이는군.’

비행을 쓴 베르덴이 지하 깊은 곳으로 질주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카가가가각!]

[키가가가각!]

베르덴만 한 몸집을 가진 흡혈 박쥐 무리가 덮쳐 왔다.

즉시 기동하여 어렵지 않게 아래로 피해 냈다.

쿠구구구……!

그때, 지면 아래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위험을 느낀 베르덴이 곧장 옆으로 이동했다.

이내 바닥에 금이 가더니 크고 작은 바위 파편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시시시시식.]

스톤 이터 성체.

단단한 돌마저도 간단히 씹어 부수는 거대 벌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곤 먹잇감을 놓쳤다고 판단한 놈이 곧장 땅속으로 사라졌다.

얼마나 깊고 빠르게 이동했는지 순식간에 마력감지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확실히 경고할 만하군.”

사방이 막힌 갑갑한 공간.

지면, 지상, 지하에서 들이닥치는 놈들의 습격을 며칠이나 견뎌 내며 앞으로 이동해야 하니.

확실히 베테랑 모험가들이라도 고전할 만하다.

통상적인 마법사가 단신으로 왔다면 도중에 마력 고갈이 일어나, 이도 저도 못 하고 이미 잡아먹혔겠지.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염열파동>

화아아아악!

거센 열기에 다시금 날아오던 흡혈 박쥐의 일부가 소거됐고.

도망치는 놈들을 향해 마력을 집중했다.

<인페르노>

초고온의 불길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그 직후 급격하게 고도를 낮춰 지면에 착지했다.

아래에서 흔들림이 느껴졌다. 스톤 이터가 돌진해 오고 있다는 뜻.

베르덴이 그에 맞춰 스태프를 바닥에 대었다.

서로 반대되는 대지 계열과 전격 계열의 특성을 분해하고 재조립했다.

그의 손끝에서 존재하지 않는 마법이 탄생했다.

대지 속의 번개.

<역뢰>

혼돈의 벼락이 동굴 바닥 밑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멀리서 큰 진동과 함께 바위와 흙이 솟구쳤다.

[……!]

낙뢰의 위력에 그대로 직격당한 스톤 이터.

단단한 갑각 아래에 있는 속살이 터져 곳곳에서 보라색 피가 흘러내렸다.

이러한 고통에 내성이 없는지 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몸부림쳤다.

베르덴이 주저 없이 마안을 번뜩였다.

<용암격창>

콰드드득!

스톤 이터의 배를 관통한 창.

용암이 들끓으며 내부를 진창 녹였고, 과열된 열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쿠우웅!

육체가 두 동강이 난 스톤 이터가 작게 울다가 축 늘어졌다.

베르덴이 머리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이걸로 이 주변의 터줏대감 중 남은 건 하나뿐인가.

베르덴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소란을 듣고 온 모양인지 거체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마력감지로 보아 오우거…… 정확히는 눈이 퇴화된 동굴 오우거임이 분명했다.

‘머리가 두 개이니 상위종.’

전에 토벌했던 트윈 헤드 오우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처리하는 건 문제없다.

“……?”

그런데 놈의 모습이 이상했다.

[그어어어어…….]

썩어 있는 우측 반신.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동굴 오우거의 상태는 처참했다.

반쯤 죽어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왜 저렇게 변했는지는 자명했다.

‘사령의 보주를 건드린 건가?’

그 이유밖에 없겠지.

자연적으로 절반만 언데드 상태에 있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사령의 보주가 저 안쪽에 있다는 뜻.’

거기다 전과 달리, 아주 흐릿하게 죽음의 기운이 느껴진다.

공국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

사령의 보주의 존재가 보다 확실해진 것이다.

오큘러스에 집중되는 마력.

완충되자 이내 스태프의 머리에서 빛이 명멸했다.

베르덴이 단숨에 오우거에게 육박했다. 놈이 느릿하게 뻗은 손을 가볍게 피해 내고, 그 가슴을 향해 오큘러스를 내질렀다.

콰아아아아앙!

굉음이 동굴을 뒤흔들었다.

썩을 대로 썩어 버린 오우거의 반신은 송두리째 사라졌다.

등 뒤로 쓰러진 오우거의 사체.

베르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하 깊은 곳으로 향했다.

* * *

미리 챙겨온 육포와 물로 허기를 달래며 움직였다.

피곤할 땐 중상급 마석을 제물로 삼아 방위 마법진을 설치했다.

중급 마석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확실한 게 좋으니.

몇 억도 아니고 몇 푼 아끼자고 필요 없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언데드나 이형종 등 방해물을 제거하며, 체감상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여기가 까마득한 구렁인가.”

말 그대로 공허한 공간.

암시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원형의 절벽이 길을 막아섰다.

가볍게 작은 돌을 하나 던져 봤다.

시간이 지나도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전에 경험해 본 적 없는 깊이.

여기가 모험가들이 기록한 마지막 장소였다.

일부 마법사들이 내려가 보긴 했으나 바닥을 찾긴커녕 도중에 습격을 받아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는 된다.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깊은 암흑.

저 아래로 떨어진다면 지상과 얼마나 멀어질 것인가. 그리고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까 등.

단순한 모험심으로 도전하기에는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베르덴은 그들처럼 발걸음을 돌릴 생각은 없었다.

저 아래에서 불길한 사기(死氣)가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망설임은 없었다.

베르덴은 구렁 아래로 몸을 던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