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26화 (126/366)

126화 환영합니다

왕국 북쪽 미들로스 자치령과의 국경에 위치한 밀수꾼의 협곡.

안으로 들어갈수록 길이 좁아지는 형태로, 그 끝에는 절벽에 난 작은 틈새가 자리 잡고 있다.

횃불을 든 밀수꾼이 손님들을 이끌고 틈새로 들어갔다.

투명화를 쓴 베르덴도 뒤따라 들어가자 넓은 공동이 나왔다.

구름다리로 연결된 바위 기둥들. 그 옆에는 낭떠러지가 있었다.

슬쩍 아래를 보니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는 밀수꾼들이 보였다.

‘절벽 안에 이런 공간이 있었군.’

미약하게 바람이 통하는 걸 보니 입구 말고 다른 통로가 있다는 뜻. 아마 이곳을 통해 국경 사이를 오가는 것 같다.

손님들을 쫓아 협곡 지하에 도착했다.

그러자 여러 갈래로 나뉜 통로 중 하나에서, 갈색 가죽 장갑을 낀 사내가 무장을 한 밀수꾼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가 밀매상 패드렐드인가.’

확실히 다른 밀수꾼과 다르긴 하다.

어쨌든 밀매상을 따라가면 자연스레 클란드의 의뢰를 달성할 수 있겠지.

베르덴은 그들의 머리 위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 * *

패드렐드가 환영했다.

“예정보다 일찍 오셨군요, 손님들. 많이 조급하셨나 봅니다?”

밀수꾼의 협곡을 관리하는 주인이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손님 중 애꾸눈의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자들은 어디에 있소?”

“당연히 잡아 놓았죠. 하지만 워낙 저항이 거셌던 터라 저희 쪽도 세 명이 죽고 다섯 명이 다쳤습니다. 그래서 위로금 명목으로 홀로든의 소지품과 마차는 제가 챙겼는데, 괜찮으시겠죠?”

순간 주위가 싸늘해졌다.

양날 검을 지닌 남자, 케딘이 눈을 부라렸다.

“그런 건 거래 내용에 없었을 텐데?”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도 없었죠.”

“……지금 말장난하자는 건가?”

“장난?”

패드렐드가 장갑을 당겼다.

장갑의 가죽이 손에 밀착되었다.

“저는 두 사람의 위치 정보와 신변을 판매했지, 재물의 소유권까지 거래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다 가져가도 상관없지만 업계의 도리로 특별히 메랄드의 것은 건들지 않았습니다.”

“…….”

“뭐, 일종의 양보죠. 그런데 감사하다고 하지는 못할지언정……. 이거 참, 저는 잘 이해가 안 가는군요.”

고개를 기울인 패드렐드.

그의 곁에 있던 밀수꾼들이 눈을 가늘게 떴다. 금방이라도 칼부림이 날 것 같은 긴장감. 몇몇 손님들이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들이 찾는 값비싼 광석 탐지기는 제가 챙겼는데, 괜찮으시겠죠?”

반발은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가 볼까요? 안 그래도 요즘 불법 이민을 희망하시는 고객이 많은 터라 바빠서 말입니다.”

애꾸눈과 케딘을 포함한 손님들이 패드렐드를 따라 어떤 동굴로 들어갔다.

벽 한가운데에는 녹슨 철문이 하나 달려 있었다. 끼기기긱. 잠금장치를 풀고, 문고리를 당기자 고약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자극했다.

패드렐드가 안으로 횃불을 휙 던졌다.

그 불빛에 피투성이로 속박당한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폴드 남자의 기사, 메랄드.

땅거미 상회의 간부, 홀로든.

둘은 완전히 엉망이었다.

얼굴 곳곳이 부어올랐으며 입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벽과 연결되어 있는 쇠사슬이 팔목과 발목을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패드렐드가 턱짓했다.

밀수꾼이 메랄드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앉았군요. 잠자리가 많이 불편하셨나 봅니다?”

“이…… X새…… 끼…….”

메랄드가 침을 뱉었다.

그러나 힘이 없었던 터라 메랄드에게 닿기는커녕 제 바지에 떨어졌다.

낄낄거리는 비웃음 소리가 방 안에 감돌았다.

그 소란에 기절해 있던 홀로든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살기 어린 시선들이 그에게 모였다.

홀로든이 신음하며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미, 밀매상이…… 고객을 팔아넘겨? 그렇게 되면 앞으로 장사는 못 할 텐데……!”

“이런, 그런 몰골임에도 저를 걱정해 주실 줄이야.”

패드렐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건 그렇습니다. 고객을 제멋대로 팔아넘기는, 신뢰라곤 쥐뿔도 없는 밀매상을 누가 찾겠습니까? 그런데 저 암흑가 출신 기사는 몰라도, 상회의 간부쯤 되면 이유를 잘 아실 텐데요?”

조합은 한마디로 외래종이다.

왕국에 구축된 뭍밑 생태계를 뒤엎은 천적.

주도면밀한 세력 확장에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간판이 사라진 상회가 한둘이 아니다.

그 외는 더더욱 많고.

원한은 점차 커지고 있었으나 조합의 힘이 강했기에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갑작스러운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급습에 플리쉬르 백작의 부정이 밝혀지면서 판이 뒤집힌 것이다.

조합과 그에 관련된 귀족은 3왕자의 세력.

그의 경쟁자인 2왕자와 1왕자까지 편승해 조합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일개 개인들이 조합에게 거역할 정도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 살아남자고 조합에서 도망친 자들은 아니었다.

손을 댄다고 해도 제지할 사람도, 놈들을 지켜 줄 사람도 없었으니까.

패드렐드가 양 검지손가락으로 둘을 가리켰다.

“땅거미 상회의 간부, 홀로든. 그리고 나폴드 남작의 기사, 메랄드. 둘 다 이제는 도망자 신세이니 전 간부나 전 기사라고 불러야 되겠죠. 뭐, 어쨌든 그런 이유로 당신들은 예외입니다.”

패드렐드가 손님들에게 고개를 향했다.

“그럼 일 보시죠. 저는 구경만 하겠습니다.”

“메랄드의 소지품은 건들지 않았겠지?”

“검만 압수했습니다.”

“정말로?”

“아까 했던 말 또 해 드립니까?”

대답은 없었다.

그렇게 패드렐드가 밀수꾼들과 함께 구석으로 비켜서자, 케딘이 홀로든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보니 좋구만, 홀로든. 바닥에 엎드려서 네놈에게 머리를 짓밟힌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그때는 그렇게 커 보였는데 이제 보니 그냥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상인이었군.”

“케, 케딘…… 잠깐…….”

복부를 후려친 주먹.

쇠사슬이 철렁이며 홀로든의 고개가 앞으로 기울었고, 케딘이 그의 무릎을 지그시 밟았다.

“이런 기분이었군. 아주 좋아.”

“끄으으으윽……!”

고통스러운 신음.

홀로든이 숨을 토해 내며 소리쳤다.

“살려…… 살려 주게……! 워, 원하는 만큼 돈을 줄 테니, 제발!”

“상회에서 도망쳐 놓고 돈은 무슨.”

케딘이 뒤를 향해 눈짓했다.

조합 또는 홀로든에게 갚을 게 있는, 그리고 재미 삼아 나선 손님들이 홀로든을 둘러쌌다.

무자비한 폭력.

이미 패드렐드에게 털리고 몸밖에 남지 않은 홀로든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온몸이 터지고 뼈가 조각난 시체 하나가 완성되었다.

다음은 메랄드 차례였다.

쌍단검을 쥔 애꾸눈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오랜만이다, 메랄드. 기사치곤 예나 지금이나 볼품없는 건 여전하군.”

“네놈은…….”

“얼굴을 보니 기억이 나나? 5년 전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네가 파 버린 건데 말이야.”

그가 굳게 닫혀 있는 왼쪽 눈을 가리켰다.

“그건 그렇고. 요즘 소문을 들어 보니 웬 기사 하나가 남작의 가보를 훔쳐 도주했다고 하던데.”

“…….”

“허 참, 누가 암흑가 출신 아니랄까 봐 지가 모시던 주인에게까지 손버릇이 나빠서야.”

애꾸눈이 단검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래서 그 목걸이는 어디에 있지, 메랄드?”

“혼자서는 덤비지도 못하는 버러지 새끼가……!”

메랄드의 욕설에도 애꾸눈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여기서 누가 죽을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얼마나 버틸지 궁금하군.”

고문에 가까운 심문이 이어졌다.

얼마 안 가 메랄드의 입이 열렸고, 애꾸눈은 그의 품속에서 목걸이를 발견했다.

“영롱해……!”

눈에 비친 푸른빛.

이거 하나만으로도 수억대 돈을 쥘 수 있다.

물론 방해자들은 있다.

케딘을 비롯한 손님들이다.

‘패드렐드와 그 밀수꾼들은 관여하지 않을 테니…… 놈들만 처리하면 온전히 가질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뻗는 순간.

“……?”

갑자기 목걸이가 떠오르더니 빠르게 움직였다.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연녹색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목걸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 * *

여기는 협곡의 가장 깊은 곳.

워낙 폐쇄적인 장소인 데다가 도처에 밀수꾼들이 깔려 있기에 침입자가 들어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투명화를 해제한 베르덴.

그가 손에 놓은 목걸이를 훑듯이 바라봤다.

‘이게 그 가보군.’

블루 다이아몬드 네클리스.

목걸이의 황금 체인에는 남작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확실한 진품.

이걸로 의뢰의 3분의 1은 달성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밀매상이 가지고 있겠고.’

이야기는 전부 엿들었다.

베르덴이 패드렐드를 직시했다.

“홀로든의 소지품은 어디에 있지?”

태연한 물음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갑자기 나타나서 뭐가 어째?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줄곧 여유로웠던 패드렐드의 얼굴도 어느샌가 굳어 있었다.

눈앞에서 목걸이를 빼앗긴 애꾸눈.

그가 단검 손잡이로 이마를 벅벅 긁으며 핏대를 세웠다.

“소지품이고 뭐고 당장 그 목걸이…….”

“자, 잠깐.”

케딘이 말을 막았다.

그의 얼굴은 당황으로 일그러져 있었는데, 언뜻 패드렐드와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애꾸눈을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녹색 로브에 그 스태프…… 설마…….”

끝말은 패드렐드가 대신했다.

“애셔?”

애셔.

최근 떠오르고 있는 이름.

떠도는 소문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데다가, 칼리아를 끌어들인 장본인. 지금 이 자리를 만든 것 또한 그의 직간접적인 영향이 매우 컸다.

“애셔? 그게 누군데?”

“나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물론 아직 모두가 알 정도는 아니었다.

정보에 민감한 자라면 들었을 법한 정도. 그 소란 속에서 패드렐드가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애셔.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허락도 없이 제 협곡에 무슨 볼일이신지?”

“찾고 있는 물건이 있다.”

“물건이라…….”

패드렐드가 턱을 쓸었다.

그가 손에 넣은 남작의 목걸이, 찾고 있는 홀로든의 소지품…… 아마 광석 탐지기를 말하는 거겠지.

그 교차점에 위치한 건 한 명밖에 없었다.

‘암상인.’

낭패다.

설마 그자가 정보를 손에 넣었을 줄이야.

‘빌어먹을 그레이의 정보상들.’

귀가 수백 개는 있는 건가?

조심한다고 했는데 대체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지?’

저 불청객을 죽여야 할까 아니면 협조해야 할까.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무턱대고 건드렸다가 잘못될 수도 있다. 깊이 고민하고 있자 손님들이 움직였다.

“X발, 애셔고 나발이고 저 새끼가 뭔데 목걸이를 가져가? 안 그래?”

“됐고. 그냥 죽이고 가져오면 되는 거 아냐? 보아하니 손님도 아니고, 밀매상 몰래 들어온 거 같은데.”

들리게 말했음에도 패드렐드는 별말이 없었다. 암묵적인 허락.

누군가는 검과 도끼를 들었고, 누군가는 마력을 일으켰다.

애꾸눈도 눈치를 보다 단검을 세웠다. 뭔가 꺼림칙하긴 한데 눈앞의 목걸이를 허무하게 놓칠 수 없었다.

그렇게 케딘을 제외한 손님들이 탐욕스러운 살기를 드러내며 베르덴에게 육박했다.

‘총 일곱인가.’

그의 손에 마력이 집결했다.

한 줄기 푸른 전류가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뜨거운 열기가 확 퍼지며 공간을 휘감았다.

제각기 마법을 형성하고 있던 2위계 그리고 3위계 하위 마법사가 눈을 부릅떴다.

“여, 열뢰?!”

합성 마법.

숙련된 마법사라고 해도 연산에 최소 분 단위는 걸리며 머리가 비상한 자라고 해도 수십 초는 걸린다.

하물며 저건 전격 계열과 화염 계열의 4위계 마법으로 합성된 고난도 마법이다.

그런데 그걸 몇 초 만에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다니.

도망쳐야 한다.

그렇게 직감했고 곧바로 행동에 옮겼으나 이미 늦었다.

지면에 내리꽂힌 벼락.

붉은 번개 줄기가 사방으로 터져 나오며 적을 불태웠다. 단말마의 비명을 내뱉을 시간도 없었다.

애초에 이렇다 할 실력자도 아닌 그들은 저항조차 못 하고 산화했다.

물론 베르덴은 열뢰의 범위를 정확히 조절했다.

그 결과 생존자는 패드렐드과 그 밀수꾼들 그리고 케딘뿐이었다.

단 한 번의 마법.

그러나 이 공간을 장악하기엔 충분했다.

“…….”

패드렐드는 볼 안쪽을 짓씹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 따위에게 거래를 방해당한 것도 모자라, 제집에서 목숨의 위협까지 받다니.

그로서는 치욕이 아닐 수가 없었다.

주먹을 쥔 패드렐드가 앞으로 나섰다.

설마 그 마법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건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케딘과 밀수꾼들이 감탄했다.

태연히 몸에 묻은 재를 턴 패드렐드.

잠시 베르덴과 눈을 마주한 그가 이내 깊게 허리를 숙였다.

“제 협곡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애셔 님.”

불청객이 거슬리면 환영하면 그만.

패드렐드가 활짝 웃으며 새로운 손님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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