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암상인 (1)
정보 조작?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으니까. 대체 누가 신문에 실린 내용을 임의로 조작하겠는가.
‘그렇다는 건…….’
페르네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분명하게 신문에 실려 있는 이름의 장본인은, 태연하게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그는 평소에도 저렇게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신비했다.
외모, 힘, 성격 등 뭐 하나 평범하지 않은 게 없었다. 페르네와 만난 이후, 짧은 시간 동안 남긴 행적 또한 마찬가지다.
‘정말로 이게 사실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정보의 출처도 그렇지만 페르네가 그간 봐 왔던 그의 모습과 행동이 신빙성을 높이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심증에 불과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있다.
바로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
그게 가장 빠르고 쉬운 해답이었다.
꿀꺽.
페르네가 침을 삼키고는 이내 결심을 했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며 천천히 베르덴에게 다가갔다.
이내 떨리는 손으로 공국의 신문을 식탁 위에 올렸다.
“저…… 혹시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뭐지?”
베르덴이 눈을 떴다.
청명한 벽안이 페르네를 직시했다.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신문을 슬쩍 베르덴을 향해 밀었다.
“호, 혹시 이게 애셔 님이 맞으신가요?”
무슨 소리지?
베르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신문을 집어 들었다. 전체적인 형태를 보니 어딘가 익숙한데…….
‘아, 리비안트 공국에서 온 건가?’
신문사를 확인해 보니 로리엔, 베르덴이 소울 트리를 토벌했던 도시에서 발간된 모양.
한 면 한 면 작은 글귀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는데, 자세히 읽어 보니 소울 트리나 공국의 대행사 그리고 가드란 후작가 등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 시야에 비쳤다.
‘뭔가 했더니 이거였나.’
페르네는 베르덴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저런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확실히 베르덴 자신이 공국에서 해결했던 사건은 허투루 넘길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다른 사람이었다면 평생의 자랑거리로 삼는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나 베르덴에겐 예외였다.
누구도 하지 못한, 아무도 가능하다고 생각조차 못 했던 마탑의 동력원을 붕괴시킨 정도라면 모를까, 이런 건 업적이라고 내세울 수도 없었다. 적어도 베르덴에게는.
그리고 베르덴은 애초부터 이런 걸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정도로 입이 가볍지 않았고 스스로의 얼굴에 분칠을 할 성격도 아니었다.
강대한 마법사로서의 증명.
그건 애써 이해시키는 게 아니라, 세상이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으로.
그게 베르덴의 가치관이었다.
신문을 내려놨다.
숨 죽이고 답을 기다리고 있는 페르네. 딱히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그야말로 확답이나 다름없는 고갯짓에 페르네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페일 당신, 나한테 누굴 보낸 거야?!’
베르덴이 남다른 마법사인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의 거물일 줄이야.
딸꾹.
마음속으로 각오는 했지만 새삼 진실을 깨닫자, 자기도 모르게 딸꾹질이 나왔다.
입가를 막고는 숨을 멈춰 소리가 새어 나오는 걸 억눌렀다.
그와 동시에 페르네가 베르덴에 대해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가 의뢰했던 정보들에게 대해서.
외수 라이너스 볼티모그의 행방.
미지의 유물 해석.
암흑가 경매장 초청권.
그 교집합은 무엇인가.
페르네는 베르덴의 정보상이다. 그렇게 약속했고 확실히 받은 만큼 책임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이거 하나만큼은 알아야 했다.
잠시 후, 딸꾹질이 멈췄다.
이어 깊게 심호흡을 한 페르네가 굳은 표정으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애셔 님의 목적은 무엇이죠?”
지극히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단순한 보수 같은 것이 아닌, 왕국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
그에 베르덴이 답했다.
“힘.”
단 한 마디.
하지만 페르네가 깨닫기에는 충분했다.
그저 고객에게 정보를 사고파는 정보상이 아닌, 오로지 한 명을 위한 정보상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 * *
마법사가 한층 더 강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렇게 묻는다면 마법사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지식과 장비 그리고 훈련이라고.
“훈련이야 애셔 님이 알아서 하실 테고 지식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남은 건 장비뿐이다.
페르네는 그러한 관점에서, 베르덴이 의뢰한 정보들과 그를 둘러싼 상황을 보기 좋게 순서대로 정리해 보았다.
우선 첫 번째, 암흑가 경매장의 초청권.
푸른 구름 상단의 일로, 마일드륀에서 조합의 흑마법사와 마찰이 일어나긴 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다.
두 번째, 유물 해석.
며칠 전 그가 직접 유물 탐사단 탐색자들과 만나 계약을 체결했다. 유물과 관련된 유적을 찾는다고 듣긴 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당장 신경 쓸 게 아니다.
세 번째, 외수의 소재 파악.
노력은 하고 있으나 아직 자그마한 정보조차 얻지 못했다. 그러니 이것도 넘어가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 의뢰.
현재 그는 보다 많은 의뢰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렇다는 건 돈이 필요하다는 뜻일 텐데.
이렇게 나열해 보니, 페르네는 베르덴이 필요로 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위 네 가지는 돈과 장비에 직결되어 있다. 유물은 좀 애매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내가 직접 도울 수 있는 건 첫 번째와 네 번째인 건가?”
암흑가 경매장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으려면 당연하게도 거액의 현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는 유물 탐사단을 고용하느라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불했을 터.
페르네가 해야 할 건 고액 의뢰의 주선이다.
그에 더해서 추가로 도움이 될 게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 문득 페르네의 머릿속에 적합한 의뢰주가 떠올랐다.
“……그래, 그 사람이면 되겠어.”
생각을 끝낸 페르네는 곧바로 정보망을 전력으로 가동했다.
평소의 몇 배나 되는 돈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이건 그녀 스스로가 번 것이 아니라 베르덴이 쥐여 준 것이니까.
더군다나 페르네에게 있어 베르덴은 구원의 동아줄 그 자체.
그러나 이제는 잡기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아줄 타고 위로 올라갈 것이다. 그렇기에 정보든 돈이든 뭐든 아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 * *
페르네가 베르덴에게 서류를 하나 가져왔다.
“이게 뭐지?”
“애셔 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되는 정보요. 혹시 왕국 그레이 정보상의 종류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모른다.
그런 쪽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기본적으로 정보상은 저처럼 정보를 취급하고 판매하거나, 의뢰의 중개상 역할을 해요. 하지만 어딜 가나 특이한 사람은 있죠. 정보상도 마찬가지예요.”
페르네가 서류를 펼쳤다.
안에는 단 한 장의 종이만이 있었는데 어떤 인물에 대한 정보가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암상인 ‘클란드’. 표면적으로는 정보뿐만 아니라 갖가지 물건도 취급하는 사람인데, 뒤에서는 정보를 은폐하는 일도 해요. 발이 좀 넓은 사람이죠. 그리고 본인 스스로 고액의 의뢰를 내걸기도 하고요.”
“의뢰를 중개하는 게 아니라 직접?”
“네, 클란드는 기존의 정보상들과는 달리 의뢰 중개를 전혀 하지 않아요. 워낙 자기주도적인 사람이라, 중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거든요.”
확실히 특이하긴 하다.
의뢰를 중개함으로써 얻는 수익이 결코 적지 않을 텐데 그걸 포기할 줄이야.
베르덴이 경험해 보지 못한 부류의 정보상이었다.
페르네가 말했다.
“의뢰 내용은 간단해요. 주로 희귀한 마법 물품처럼, 가치가 높은 물건들에 대한 정보를 주고 찾아오라고 하는 게 전부죠. 그 특성상 평소에는 의뢰가 거의 없긴 한데…… 아시다시피 지금 상황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조합이 휘청거리고 있다.
그 뒤를 봐주던 귀족들까지 말이다.
어떻게 꼬리를 자르려 하고는 있지만, 충성심 높은 고귀한 기사도 아니고 당연히 가만히 앉아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낌새를 눈치챈 자들은 죄다 짐을 챙기고 다른 국가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상황.
즉, 클란드의 의뢰는 놈들이 가진 재물을 빼앗는 것이 되겠다.
“거기다 망명자들 중에는 상회 간부도 있어서 클란드가 특히나 눈독 들이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애셔 님이 원하신다면 의뢰을 주선해 드릴 수 있는데, 어떠세요?”
당연히 거절할 리가 없다.
안 그래도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 할 상황에서는 더더욱.
“부탁하지.”
“맡겨 주세요.”
페르네가 미소 지었다.
“아, 그리고 제가 클란드를 추천한 건 달리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
“클란드는 왕국의 암흑가하고도 깊게 연결되어 있어요. 그뿐만이 아니라 암흑가 경매장을 운영하는 관련자 중 하나로, 경매장에 무엇이 올라올지 아는 사람이기도 하죠.”
경매장의 출품 목록.
그걸 알고 있다면 유리하게 경매를 진행할 수 있다. 불필요한 지출은 아예 없애고 확실히 원하는 물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니까.
‘즉, 클란드에게서 목록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군.’
확실히 구미가 당기긴 한다.
암흑가 경매장에는 아티팩트가 나오기도 하니까.
다만 베르덴은 회의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보를 쉽게 팔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데.”
자칫하면 암흑가에서 직접 주관하는 경매장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릴 테니까.
“물론 그렇죠. 입을 잘못 놀렸다간 암흑가의 암살자들에게 목이 잘릴 테니까요. 하지만 클란드도 결국은 정보상. 목숨값 이상의 가치가 담긴 정보를 거래로 내놓으면 차마 거절하지는 못할걸요?”
페르네가 다른 서류를 가져왔다.
다른 것과 달리 아주 중요한 듯 입구 중심만이 아닌, 전체에 걸쳐 봉인이 되어 있었다.
“그게 그 목숨값인가?”
“적어도 클란드에게는요.”
그녀가 서류를 내밀었다.
“이건 옛날부터 클란드가 미친 듯이 찾고 있는 어떤 사람에 대한 정보인데, 얼마 전 아주 운 좋게 손에 넣을 수 있었어요. 아마 암흑가와 관련된 것 같은데…… 자세한 내막은 저도 모르지만, 이 서류를 가져다주면 분명 애셔 님이 원하는 걸 뱉어 낼 거예요.”
페르네가 장담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베르덴이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근 들어 뭔가 바뀐 느낌인데.’
달리 말한 적도 없는데 페르네 스스로 찾아온 정보.
눈가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걸 보니 꽤나 노력을 들인 모양이다. 뭔지는 몰라도 베르덴으로선 전혀 나쁠 게 없었다.
곧바로 서류를 받아 공간가방에 챙겨 넣었다.
“고맙게 받지.”
“아…… 천만에요!”
쑥스러운 듯 페르네가 어색하게 답했다.
“그런데 암상인하고는 언제 만날 수 있지?”
“내일 이곳 아세른에서요. 클란드가 아세른 시장하고 만날 예정이라고 들었거든요. 미리 연락을 해 놓을 테니 가볍게 걸어갔다 오시면 될 거예요.”
도시를 벗어날 필요가 없다라.
‘생각해 보니 이런 적은 처음인 것 같은데.’
어쨌든 귀찮은 일을 덜었으니 좋을 뿐이다.
그렇게 날이 저물고 다시금 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