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23화 (123/366)

123화 유물 탐사단 (3)

베르덴이 요구한 조건은 총 세 가지였다.

하나는 유물 권한 이양에 대한 항목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

이유는 당연히 신뢰의 문제였다.

무시를 받았다고 생각한 한스가 주먹을 쥔 채 손을 부들거렸으나 방금처럼 날뛰지는 못했다.

방금 전 갑작스러운 충격도 그렇지만, 다름 아닌 탐색자들의 리더인 라이반의 얼굴이 한없이 진지했으니까.

숙고하던 라이반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이번만은 예외로 받아들이지. 대신 이 사실은 비밀로 해 줬으면 좋겠군. 계약에 예외를 허락했다는 게 알려지면 여러모로 곤란해져서 말이야.”

그거야 쉬운 일이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전혀 없었으니까. 달리 말할 상대가 없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고맙네. 그리고 다른 건 또 뭔가?”

베르덴이 계약서의 마지막 항목을 가리켰다.

“보수 비율의 조정입니다.”

유물 탐사단 탐색자들은 의뢰 보수에다가 유적에서 발견한 유물 또는 보물의 2할을 받는다.

하지만 베르덴으로선 꺼려지는 조건이다.

마도왕의 유물을 넘기기 싫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이 항목 또한 삭제하고 싶었지만 라이반이 거절하겠지. 저쪽에서 첫 번째 조건을 받아들인 상황에 계약이 불발되는 건 베르덴도 원치 않았다.

그러니 비율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라이반이 말했다.

“그렇게 되면 현금 비율이 높아질 텐데 괜찮겠나? 계약금으로 4억 엘크에다가 활동비로 매달 3천만 엘크. 거기다 의뢰 완료 시 추가로 7억 엘크를 지불해야 한다만…….”

“상관없습니다.”

재산을 탈탈 털면 지불은 가능하다.

암흑가의 경매장도 있고, 외수를 찾으면 스태프 제작도 의뢰해야 하긴 하지만…… 이건 달리 선택지가 있는 게 아니었다.

‘마도왕의 유산은 내가 가진 모든 것,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거기다 아직 시간은 있다.

부족한 돈은 악착같이 벌면 그만이다.

베르덴의 대답에 라이반은 선뜻 조건을 받아들였다.

유적에서 값비싼 유물이 발견되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허탕을 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라이반 입장에서 봤을 때, 안정성을 따지면 오히려 수정된 조건이 더 이득이었다.

이제 마지막 요구만이 남았다.

“이번에는 조건의 수정이 아니라, 계약서에 새로운 조건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조건?”

“유적 탐사에 직접 참가하고 싶습니다.”

라이반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런 요구는 몇 번이고 받은 적이 있었으니까.

특히 신분이 높은데 젊은 귀족가의 자제들이 그러했다.

단순히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나 유적 탐사를 성공했다는 업적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철부지 귀족이 아닌 마법사의 동행.

잠시 생각을 정리한 라이반이 입을 열었다.

“그 정도는 어렵지 않지만, 우리 탐사단의 선발대가 안전을 확보하고 난 후에만 합류를 허락하겠네. 아무리 자네가 고명한 마법사라고 해도 전문가가 아닌 이상 삐끗하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을 테니. 그렇게 되면 우리도 위험해질 수도 있고 말이야.”

“물론입니다.”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반이 말한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수정된 요구가 전부 반영되자 라이반이 직접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수정했다.

다시금 꼼꼼하게 수정본을 확인한 베르덴이 유려한 필체로 서명을 마쳤다. 라이반도 탐색자들의 리더로서 그 옆에 이름을 적었다.

그렇게 두 부의 계약서를 만들고는 돌돌 말아 각자 챙겨 넣었다.

“그럼 계약이 체결되었으니 다시 묻겠습니다. 그 유물 탐사단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라이반이 한스에게 고개를 향했다.

그가 입을 달싹이다가 정보를 내뱉었다.

“……이곳 에스티리아 왕국을 마지막으로 실종됐습니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이야기죠. 어디 가서 객사할 정도로 약한 자들이 아니었으니 유물을 해석해 유적을 쫓다가 죽은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탐색자들은 그들의 지난 행적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다만 어디에서 실종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팀을 나누어서 유적을 탐색하다가, 유적이 발견되면 비밀리에 모여 탐사를 하곤 했으니까요. 대신 그들이 탐색을 진행했던 지역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아르에곤 산맥.

테인체 구릉.

동부 늪지대.

“위 세 지역 중 하나가 정답일 텐데, 우선 테인체 구릉을 따라 탐색하다가 아르게온 산맥으로 넘어갈 계획입니다. 에스티리아 왕국의 2대 금지(禁地) 중 하나인 동부 늪지대는 너무 넓고 위험해서 마지막으로 찾아볼 생각이죠.”

“대략적으로 얼마나 걸립니까?”

이번엔 라이반이 답했다.

“만약 테인체 구릉에 있다고 하면 2개월 정도. 아르에곤 산맥으로 넘어가면 5개월까지. 그런데도 발견하지 못하면…… 늪지대까지 포함해 거의 1년은 걸리겠군.”

편차가 심하다.

하지만 이 정도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운이 엄청나게 나쁘지 않은 이상, 리스너가 말했던 시간 내에 찾아낼 수 있겠지.

대화가 조금 길긴 했으나 베르덴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계약이었다.

“알겠습니다. 돈은 바로 계좌로 보내 드리도록 하죠.”

“그럼 우리도 오늘부터 바로 탐사에 들어가도록 하겠네. 그리고 계약대로 기록을 작성한 뒤, 15일 기준으로 탐사 진행도를 자네에게 전달하지. 활동비도 그때쯤에 보내 줬으면 좋겠군.”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이반과 베르덴이 악수를 나눴다.

마도왕의 무덤을 찾기 위한 탐사가 시작된 날이었다.

* * *

유물 탐사단이 떠나고 난 후, 페르네의 주점에는 평안이 찾아왔다.

언제 다시 깨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만큼은 좋게 흘러갔다. 페르네는 오랜만에 걱정 없이 늦잠을 자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때, 정령 블루가 반짝였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다는 소리였다.

“흐아아암.”

기지개를 켠 페르네.

이번에는 핫초코가 아닌 설탕이 가득 든 커피로 졸음을 깨웠다. 봉인을 풀고 안에 있는 내용물을 꺼냈다.

“아, 다른 나라들 신문이었네.”

페르네는 정보망을 재건하면서 해외까지 시선을 뻗었다.

주기적으로 국제 정세를 살피는 건 중요했다. 뭐, 다른 정보상은 아닐지 몰라도 페르네에게는 그러했다.

조합의 압박이 들어온 이후로, 그럴만한 여유가 없어 한동안 쳐다도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베르덴과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도움으로 정보상을 거의 재건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페르네가 느긋하게 신문을 살폈다.

그런데 첫 장부터 문구가 이상했다.

[도시 연합 국가, 카일리언스와 미들로스 자치령 외교 단절]

동대륙 북쪽의 소식.

전쟁이라도 일어났나 싶어 자세히 내용을 읽어 보니, 갑자기 자치령과 카일리언스 중간에 아인종이 들끓으면서 교류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지금도 그 전선에는 아인종의 피와 사체가 가득하다고 하며 모험가 길드가 토벌을 주도하고 있다곤 하는데 회복될 전망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게재되어 있다.

페르네는 고개를 저었다.

난데없는 아인종의 출몰이라니.

“어휴, 세상이 말세네, 말세야. 안 그래, 블루?”

블루가 반짝였다.

페르네는 신문을 접고 다른 신문을 확인했다.

방금 전의 소식보다는 덜했지만 다른 곳도 아주 만만치 않았다.

[동대륙 남쪽 분쟁 지대 확산, 수인과 인간의 풀리지 않는 갈등]

[기승하는 악마 숭배자, 움직이는 루아스교의 성기사]

죄다 안 좋은 얘기들뿐이다.

정보상인 페르네조차 우울감을 느낄 정도.

세상에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나긴 하나 신문사들은 하나같이 이런 부정적인 기사만을 중점으로 싣는다.

그래야 화제가 되고 돈이 되니까.

물론 사실을 전달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정보를 다루는 만큼 그 파장에 대해 생각하길 바랄 뿐이다. 신문 전체를 훑어보니 아무래도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인다만.

‘이래서야 악질 정보상이랑 뭐가 다른 건지.’

페르네가 마지막 신문을 들었다.

옆 나라인 리비안트 공국의 신문이었는데, 이건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유통이 금지된 것이었다. 잡히면 곧장 징역일 정도로 형량이 강한데, 페르네도 그녀 자신의 독자적인 정보망이 아니었다면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통제가 심했다.

원인은 과거 전쟁으로 인한 정보 교류의 제한.

리비안트 공국은 반란을 통해 세워진 국가이기에 그 사상적인 면에서 왕국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에스티리아 왕가의 입장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교역은 한다는 거지만.’

간단한 이유다.

돈은 벌어야 하니까.

국가가 직접 나서서 교역을 감시하는데 당연하게도 물밑에서 오가는 돈이 상당하다. 그야말로 국가를 위해서가 아닌, 왕가와 귀족들이 제 배를 불리기 위해서 교역을 튼 것이다.

다른 나라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규모.

썩을 대로 썩은 그들이 가진 이기적인 탐욕은 말 그대로 끝이 없었다. 에스티리아 왕국이 개판인 건 지금의 왕가와 귀족들 때문이었다.

‘정상으로 돌아가려면 머리가 바뀌어야 할 텐데.’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

누가 반란이라도 일으켜서 왕가를 직접 몰락시키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 왕가의 어둠에 대항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페르네가 신문의 첫 장을 넘겼다.

오랜만에 보는 공국의 신문.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특수 개체에 버금가는 이형종, 소울 트리 출몰]

[가드란 후작가의 어두운 그림자]

“와, 여기도 미쳤네.”

내용을 보니 작년에 일어난 모양.

설마 그사이에 이런 큰 사건이 터졌을 줄은 몰랐다. 가드란 후작가는 공국의 탄생을 주도한 가문 중 하나인데 이런 짓을 벌이다니.

그런데 자세히 읽어 보니 거의 피해 없이 해결한 모양이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의뢰를 받으러 온 베르덴이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애셔 님! 이것만 읽고 갈게요!”

고개를 끄덕인 베르덴이 자리에 앉았다.

페르네는 다시금 신문으로 시선을 향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이 사건들을 어떻게 처리한 건지 궁금했다.

핏빛검 레이라, 소울 트리 토벌.

가드란 후작가의 부정을 밝힌 라비슈른 후작가.

‘아하, 이 사람들이면 납득이 가지.’

둘의 이름과 명성은 페르네도 알고 있었다.

확실히 그들이라면 위 사건에 거의 완벽하게 대응하는 게 가능했을 터였다.

“……응?”

그런데 그들 이름 옆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페르네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잘못 본 건가 싶어서 신문을 접고 다시 펴고는, 글귀를 하나하나 해석하듯 뚫어져라 쳐다봤다. 당연하게도 내용은 아까와 마찬가지였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여전히 똑같았다.

“어…… 어…….”

페르네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피가 빠르게 돌며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졌다.

그렇게 신문을 정확히 세 번 정도 정독했을 때, 그녀의 경직된 얼굴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페르네의 손끝이 덜덜 떨렸다.

“뭐, 뭐야, 이게.”

소울 트리 토벌자. 또는 공국에서 주관한 대행사 시합의 우승자.

그리고 라비슈른 후작가를 도와 가드란 후작가를 토벌한 마법사.

애셔.

지금 페르네의 주점에 앉아 있는 마법사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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