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유물 탐사단 (2)
라이반이 베르덴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훨씬 어린 의뢰자로군.’
많아 봤자 20대 후반인가?
외견으로만 판단하자면 범상치 않아 보인다.
‘피부가 희고 고운 걸 보니 검사는 아닌 것 같고.’
그리고 마법사 또한 아니다.
기색을 살짝 가늠해 봤음에도 마력이 파악되지 않았으니까.
아마 둘 중 하나겠지.
일반인 중에서도 극히 적은 마력을 타고났거나 라이반과 비슷한 혹은 그 이상의 마법사거나.
당연히 후자일 가능성은 없다.
라이반조차 평생에 걸친 노력 끝에 다다른 경지인데, 새파랗게 어린 자가 그와 엇비슷한 수준이라는 건 생각하기 어려웠다.
설마 마탑주 수준의 재능이 아니고서야.
귀족이나 돈 많은 어딘가의 자식.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부류의 고객일 것이다.
라이반은 베르덴을 그렇게 판단했다.
“나는 라이반 크루소라고 하네. 과분하게도 탐색자들의 리더를 맡고 있지. 그리고 이쪽은 한스 데이켈일세.”
“한스 데이켈이요.”
베르덴도 자신을 소개했다.
“애셔라고 합니다.”
“반갑네, 애셔.”
셋은 한 테이블에 앉았다.
페르네는 슬쩍 음료를 가져다주곤 방해가 되지 않게 방을 나섰다.
간단히 목을 축인 라이반이 입을 열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유물 탐사단의 방식에 대해 설명해 주도록 하겠네. 법적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유물 탐사라는 게 워낙 오해가 벌어지기 쉬운 일이니 말이야.”
“그러시죠.”
“한스, 부탁하지.”
한스가 안경을 치켜올렸다.
“흠흠, 대개 상식이 부족한 자들은 유적 탐색을 단순한 운과 노동이라고 폄하하고 있습니다. 인적이 없는 장소를 뒤지면 뭐라도 나오는 줄 아는 멍청이…….”
“사족은 빼게.”
“아, 예. 어쨌든 그건 당연하게도 틀린 생각입니다. 유적과 유물이란 건 과거의 산물 그 자체니까요.”
기본적으로 가치가 있을 법한 유물과 유적은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것은 곧 과거의 역사이기도 하다. 역사가 소실되지 않는 이상, 인간에게서 비롯된 건 언제나 기록이 남아 있는 법.
자신의 자취를 남기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자 생물의 본능이었다.
“우리 탐색단 정도 되는 유물 탐사단은 대륙 위치에 상관없이 방대한 역사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유물과 유적을 둘러싸고 있는 패턴 또한 마찬가지죠.”
패턴.
‘탐색자들’은 특정 유물의 형태로부터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유물과 관련된 유적을 발견하는 것 또한.
세계에 존재하는 유적들에 대한 특성을 전부 꿴 그들은 지형과 지물 심지어 관련 역사의 문화적 특색으로도 위치를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단축되는 시간은 다른 유물 탐사단과 비교할 수가 없다.
라이반이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페르네가 그렸던 유물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패턴으로 봤을 때, 이 유물은 열쇠나 신호기 혹은 무언가를 봉인하는 용도로 사용된 듯싶네. 실물을 보기 전까지 뭐라 확답은 할 수 없지만, 우리가 그간 쌓아 온 지식과 경험으로는 위 세 가지 중 하나가 분명하네.”
라이반이 그림을 슬쩍 베르덴에게 밀었다.
어느 정도 설명을 했으니 이제 유물을 보여 달라는 뜻이었다.
그때, 베르덴이 말했다.
“저번에 연락을 받은바, 탐색자들이 이 유물에 대해 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실물을 보여 드리기 전에 그 얘기부터 듣고 싶군요.”
라이반이 눈짓했다.
코를 씰룩인 한스가 팔짱을 끼고는 입을 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물 자체의 내력은 모릅니다. 대신 과거 그 유물에 대한 의뢰를 받은 유물 탐사단에 대해 알고 있죠.”
과거?
문득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방주의 후보자가 관련된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방주가 친절하게 위치까지 안내해 주지는 않았을 테니. 마도왕의 무덤을 찾을 수 있는 유물을 쥐여 주고 찾으라고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또한 시련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베르덴과 마찬가지로 유물 탐사단을 통해 의뢰를 했을 터.
“그 탐사단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게 바로 이번 탐사의 핵심이지. 당연하게도 알려 줄 수는 없네.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는 말일세.”
핵심이라.
섣불리 말하지 않는 걸 보아 유물 탐사단의 소재만 파악하면 유물과 관련된 유적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겠지.
설령 전문적인 유물 탐사단이 아니라고 해도.
“그럼 이제 유물을 봐도 되겠나?”
“좋습니다.”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가방에서 마도왕의 유물을 꺼내 라이반에게 보였다. 한스가 일어서서 라이반과 함께 유물을 관찰했다.
“타원형의 푸른 사파이어. 그리고 황동생의 금속이 그 중심을 고리처럼 감싸고 있는데…… 아주 특이한 형태야. 금속에 미세한 문자가 새겨져 있긴 한데 난생처음 보는 것이군.”
“세공 수준도 굉장히 뛰어납니다. 안이 투명한 걸 보니 무언가를 봉인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마법진이나 룬은커녕 사파이어 자체에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으니, 유적 근처에 다가가면 반응하는 신호기일 가능성도 적은 것 같고요.”
“그렇다면 유적을 여는 열쇠일지도 모르겠군.”
라이반과 한스가 가열하게 대화를 나눴다.
베르덴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다행히 못 알아보는군.’
오히려 좋다.
베르덴은 눈앞에 있는 유물 탐사단을 믿지 않는다.
만약 이 유물이 마도왕과 관련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관련 유적 탐사단의 행적만 알 뿐.
유물의 정체에 대해 모르고 있는 상황은, 베르덴에게 있어 더할 나위가 없었다.
한동안 유물을 관찰하던 두 사람.
이내 결론을 내린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략적으로 해석해 본 결과, 이건 열쇠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네. 그리고 과거에 존재했던 국가들의 특징이 전혀 보이지 않는 걸 보아, 어떤 개인이 만들어 낸 게 분명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게 분명하네.”
그렇겠지.
다름 아닌 마도왕의 유물이니까.
라이반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금속 고리의 문자는 그 위치를 말하는 듯 싶네. 이걸 해석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군.”
“얼마나 걸립니까?”
“운이 좋다면 1년. 평균적으로는 3년 정도가 걸릴 걸세. 처음 보는 문자다 보니 해석을 하려면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돼서 말이네.”
해석만으로 그 정도라.
“그렇다면 유물 탐사단의 행적을 따라가면 얼마나 걸립니까?”
그 물음에 라이반이 미소 지었다.
“그 반의반도 걸리지 않겠지. 본래 소비해야 할 노력과 돈을 엄청나게 아낄 수 있다는 건 덤이고.”
확신에 가까운 자신감이 담긴 말투.
잠시 라이반과 시선을 마주하던 베르덴이 입을 열었다.
“계약서 좀 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한스가 냉큼 계약서와 필기도구를 꺼내 베르덴 앞에 놓았다.
“통상적으로 행해지는 표준 계약서일세. 왕족도 귀족도 전부 그와 같은 계약서에 서명을 했으니 그렇게 거부감이 드는 항목은 없을 걸세.”
베르덴이 계약서를 주욱 훑어봤다.
그러던 중 우뚝 시선을 멈췄다. 그가 일곱 번째 항목을 가리켰다.
“계약 기간 동안 유물 탐사단 ‘탐색자들’에게 유물의 권한을 이양한다……. 제가 이해한 그대로가 맞습니까?”
“응? 그렇네. 탐사 진행 속도를 높이려면 유물을 곁에 두는 건 당연한 거니까. 잠시 동안 빌려준다고 생각하면 되네. 아,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이해하네. 유물을 훔치고 도망갈 경우를 생각하는 거겠지.”
라이반이 턱을 쓸었다.
“우리 탐색자들은 도둑놈도 양아치도 아니네. 내 마법사로서의 신념에 맹세하건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 이제 믿음이 좀 가나? 그렇다면 어서 서명을 해 주시게.”
믿음이라.
베르덴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거절합니다.”
* * *
유물을 빌려 달라고?
‘웃기는 소리.’
상대가 유명한 유물 탐사단이든 뭐든 상관없다. 타인에게는 유명세가 곧 신뢰의 지표겠지만 베르덴에겐 아니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거절에 순간 라이반의 말문이 막혔다.
“……우릴 믿지 못하는 건가?”
“믿어야 합니까?”
탐색자들.
그들의 업적은 다른 탐사단과 비교해도 독보적이다. 그야말로 검증된 사람들이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단호하게 싫다고 할 줄이야.
이런 경우는 너무도 오랜만이라 잠깐 멍해졌다.
한스가 눈을 부라렸다.
“유물을 해석해 달라면서 유물을 넘기기 싫단 말입니까? 지금 장난하자는…….”
“잠깐, 한스. 괜찮네. 내가 이야기하지.”
크흠.
라이반이 헛기침을 해 주위를 환기했다.
“뭐, 이쪽 업계에 대해 자세히 모르면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하네. 유물이 어떤 가치를 품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걸 선뜻 타인에게 넘기기는 어렵겠지.”
다만.
“우리 탐색자들은 창설 이래로 의뢰를 어긴 적이 없네. 의뢰자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저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말이지. 좀만 알아보면 내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될 걸세. 그러니 우리를 믿고 유물을 빌려주는 게 어떠한가? 무의미한 결과를 내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하겠네.”
그러나 베르덴의 답은 마찬가지였다.
“거절합니다.”
“감히……!”
쾅!
반복된 거절에 한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욕을 받은 듯한 기분이다.
나름대로 점잖게 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토록 무례한 답을 들을 줄이야. 잠시 버르장머리를 고쳐 줄 생각으로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한스의 마력이 주위를 장악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베르덴을 위압할 순 없었다.
그걸 목격한 라이반이 눈을 부릅떴다.
‘한스의 마력을 무시한다고?’
한스가 어금니를 깨물며 서서히 위압의 강도를 높였으나 베르덴은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그의 마력 따위는 신경 쓸 거리조차 되지 못한다는 듯 말이다.
‘설마 마법사……?’
그것도 한스의 수준을 넘은 게 분명하다.
그리고 라이반이 눈치채지 못했으니 그와 비슷한 경지에 다다랐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사실에 라이반이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베르덴이 차가운 벽안으로 그를 바라봤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조항을 받을 순 없지.’
마도왕의 유물.
만약 유물의 정체를 라이반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는 5위계 마법사. 더군다나 마탑 출신이다.
과거에 쌓은 탐사단의 신뢰를 싹 무시하고 갖고 도주할 수도 있다. 아니, 분명 도망치겠지. 그런 일을 당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
‘그나저나…….’
되도 않는 마력 위압을 시전하고 있는 한스.
슬슬 거슬린다.
화아악!
베르덴이 잠시 한스에게 마력을 집중했다. 순식간에 한스의 마력이 흩어졌고 적지 않은 충격이 그에게 가해졌다.
“헉!”
화들짝 놀란 한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무 잠깐이었던 터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듯한 멍한 얼굴.
침묵하고 있던 라이반이 입을 열었다.
“……이거 실례했네. 내가 고명한 마법사를 몰라봤군.”
세상에는 외모를 숨길 수 있는 마법 물품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이를 먹지 않게 하는 아티팩트도 실존하며 흑마법 중에도 그것과 비슷한 마법이 있다.
드물긴 해도 겉모습을 숨긴 강자는 분명히 존재한다.
‘저 애셔란 자는 그런 자들 중의 한 명일 터.’
라이반은 확신했다.
물론 베르덴은 외모 그대로의 나이였으나 굳이 오해를 정정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협상에 편리해질 것 같으니 이용하는 게 옳은 선택이겠지.
“부디 넓은 아량으로 한스를 용서해 주시게. 아직 미숙한 마법사이니.”
“개의치 않습니다. 그보다 계약 조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본래의 라이반이었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예외가 계속해서 생겨나고 그 소문이 퍼지면 이후의 계약 협상이 매우 번거로워지니까.
하지만 이미 주도권은 빼앗겼다.
난생처음 보는 유물의 존재. 그로 인해 계약은 필수적인 상황이다.
가능하면 탐색자들에게 유리하게 계약을 체결해야 하지만…… 상대는 정체를 숨기고 있는 강력한 마법사. 결코 느슨하게 대할 자가 아니라고 라이반은 직감했다.
라이반이 침을 삼켰다.
그는 지금 긴장하고 있었다.
“……한번 말해 보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