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19화 (119/366)
  • 119화 뜻밖의 (4)

    염력을 통해 움직이는 사물.

    그 주도권을 빼앗는 건 마력 조작 능력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

    토렐드는 마법사가 아니다.

    그저 마법 물품의 효과로 마법을 재현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토록 무력하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건 비정상이었다.

    상대가 염동 계열에 특화된 마법사가 아니라면.

    ‘그런데 원소 마법이라고?’

    토렐드가 재빨리 옆으로 몸을 던졌다.

    아무리 마법 저항력이 깃든 장비를 착용하고 있어도 고위 속성에 정통으로 맞았다간 자칫 저승길 직행이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번개가 스치듯 지나갔다.

    순간 의식을 베르덴에게 빼앗긴 상황.

    어느새 성벽 위에 올라서 있던 올빼미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안력을 돋우어 토렐드의 움직임을 예측해 시위를 놓았다.

    ───콰득!

    “윽!?”

    금빛 빛줄기가 토렐드의 종아리를 꿰뚫었다.

    다마스 강으로 이뤄진 화살이 금속 각반을 손쉽게 관통했다. 올빼미가 저 멀리서 토렐드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 이 올빼미 새끼가!”

    그런 토렐드에게 검이 날아갔다.

    방금 전까지 애용하던 무기가 역으로 주인을 노린 것이다. 곧장 비행을 쓴 토렐드가 허공으로 도주했으나, 거기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잠……!”

    터엉!

    오큘러스의 충격파에 토렐드가 추락했다.

    능숙한 마법사라면 빠르게 중심을 회복했겠지만, 토렐드는 목걸이의 힘을 빌린 것이다. 당연히 비행 능력이 형편없을 수밖에.

    무너진 성벽에 부딪히며 바닥에 떨어졌다.

    고개를 든 토렐드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뒤이어 날아온 화살. 토렐드가 지면을 구르며 간신히 피해 내자, 그의 눈앞에 뭔가가 떨어졌다.

    “……마석?”

    구속 마법진, 디테인(Detain).

    마력으로 이뤄진 사슬이 토렐드를 옭아맸다.

    이를 악물고 전신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 봐도 꿈쩍하지 않는 게 도저히 힘으로는 풀 수 없을 것 같았다.

    다가오는 베르덴과 올빼미를 보며 토렐드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핫, 이 새끼들 아주 제대로 작정하고 찾아왔군. 이런 것까지 준비할 줄이야. 대체 이런 마법진은 어디서 구한 거야? 마탑에서 사 오기라도 한 거냐?”

    마법진은 베르덴이 직접 작성한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올빼미는 슬쩍 베르덴을 보고는 단검을 꺼내 토렐드에게 다가갔다. 화살로는 손대중이 어려우니 손잡이로 놈의 턱을 후려쳐 기절시킬 심산이었다.

    토렐드가 생각했다.

    ‘역시 날 죽일 생각이 없는 것 같군.’

    그럴 생각이었다면 굳이 이런 마법진까지 사용하지 않았겠지.

    더군다나 올빼미의 화살은 집요하게 팔과 다리를 노리고 있었다. 즉, 무력화를 한 뒤 생포하겠다는 뜻.

    ‘왜지? 설마 귀족하고 연관이 있는 건가?’

    암흑가를 떠난 토렐드는 왕국의 귀족들에게 의뢰를 받아 더러운 일을 도맡았다.

    당연하게도 물밑에서 다른 귀족들과 마찰이 생길 수밖에. 그리고 귀족들의 치부를 알고 있기에 언제나 입막음을 당할 위험을 생각해야 한다.

    정확히는 몰라도 잡혔다간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토렐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소매에 숨겨져 있는 액세서리, 그 이름 [마력 무효화의 팔찌].

    이걸 사용한다면 이 정도의 마력으로 이뤄진 사슬 따위 쉽게 풀어 헤칠 수 있다. 그 후에 허리춤에 찬 리자드 소드로 놈들을 베고 도망치면 끝이다.

    ‘지하 감옥에 손님이 있지만 뭐, 알아서 하겠지.’

    이미 마법사의 신변은 넘겼으니.

    토렐드는 속으로 미소를 숨긴 채 올빼미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항복하겠다는 듯 힘을 완전히 풀고는 방심을 이끌어 냈다.

    그렇게 올빼미가 범위 내에 들어온 순간 곧장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따아악!

    <스톤 볼트>가 정확히 토렐드의 미간을 강타했다.

    “아?”

    흘러내린 피. 양옆으로 벌어진 눈동자.

    예상치 못한 충격에 토렐드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올빼미가 뒤를 돌아봤다.

    “……뭐지?”

    “이게 안전하니까.”

    방심.

    베르덴의 사전에 그런 단어는 없었다.

    * * *

    올빼미가 토렐드의 상처를 살폈다.

    혹처럼 튀어오른 미간에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멀쩡했다. 뼈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걸 보아 뇌에 문제가 생기지도 않은 것 같고.

    ‘마력 조작 능력이 수준급이다.’

    정밀한 위력 조절이었다.

    올빼미는 내심 감탄하며 곧장 토렐드의 장비를 착용 해제했다.

    어느새 천 옷밖에 남지 않은 토렐드의 몸뚱이를 질긴 밧줄로 묶은 뒤에 손과 발에 구속구를 채웠다. 만에 하나라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일을 처리한 올빼미가 어깨를 풀었다.

    “이걸로 토렐드는 확보했군. 하지만 놈의 부하들은 아직 남아…….”

    “그건 처리했다.”

    지상으로 올라오던 도중, 성안에서 올빼미를 쫓던 토렐드의 부하들과 마주쳤다.

    무기를 들고 달려들길래 전격 계열 마법으로 쓸어버렸다. 마력감지로 확인한바 성안에 위협이 될 생명체는 더 이상 없었다.

    올빼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이상 변수는 없는 거군.”

    이제 칼리아에게 토렐드의 신병을 인계하면 의뢰는 끝이다. 물론 먼저 토렐드의 장비들을 분배해야겠지.

    그때, 베르덴이 말했다.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할 일?”

    지하 감옥.

    베르덴은 거기에 있는 마법사를 올빼미에게 보였다.

    “이건…… 수배서에서 보던 얼굴인데. 상당히 끔찍한 몰골이군. 왜 이자가 여기에 있는 거지?”

    “글쎄, 아마 플리쉬르 백작에게 명령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

    토렐드는 플리쉬르 백작의 별장과 관계가 깊다.

    그러니 백작이 3왕자의 힘으로 비행 금지령까지 동원하며 수배를 때린 마법사를 쫓고 있다고 하면 말이 된다. 그리고 잡아서 죽음에 이를 정도로 고문했고.

    표면적인 이유로는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베르덴이 여기에 다른 정보를 곁들였다.

    “그런데 고문하고 있던 자가 흑마법사더군.”

    “뭐?”

    베르덴이 마법사의 몸을 들췄다.

    저주로 썩어 가고 있는 몸뚱이가 드러났다. 사실 이건 다른 흑마법사가 저지른 것 같지만 지금 상황에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무엇보다 흑마법사와 비행 금지령의 마법사가 실제로 관련이 있다는 게 중요했다. 칼리아에게 자연스레 정보를 쥐여 주기 위해서.

    “확실히 저주 마법이군. 플리쉬르 백작과 흑마법사가 관련이 있다는 건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그 흑마법사는 어디에 있지?”

    베르덴이 옆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피 웅덩이가 놓여 있었다.

    “……시체도 남기지 않다니. 생각보다 가차 없는 마법사였군.”

    “죽인 게 아니라 자살이다. 그리고 대화는 이쯤 하지. 지금은 마법사를 살리는 게 우선이다.”

    어쩌면 귀중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

    그렇게 설득하자 올빼미가 마법사의 상태를 면밀하게 확인했다. 그에게는 나름대로 의학적 지식이 있었다.

    감염 증상과 염증 그리고 고열과 저주.

    이내 올빼미가 결론을 내렸다.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죽어 버리겠군. 이래서야 응급처치는 역효과겠어. 명줄은 길어야 이틀이다. 그 안에 당장 라인즈로 가서 고위 성직자를 구해야 해. 그리고 도중에 목숨 줄을 붙잡아 줄 성직자까지.”

    “전에 들른 마을에 교회가 있으니 거기서 찾으면 되겠군.”

    둘은 조심히 마법사를 데리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성안 마구간에서 토렐드가 사용하던 말과 마차를 찾았다.

    베르덴이 마차 안에 토렐드와 그의 장비들 그리고 마법사를 싣고 그 옆에 앉았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감시하기 위함이었다.

    마부석에 올라탄 올빼미.

    그는 곧바로 고삐를 내리치며 근처 마을을 향해 마차를 출발시켰다.

    * * *

    “후우, 날이 추울 땐 역시 따뜻한 차가 제일이지.”

    작은 마을의 성직자는 담요를 두른 채, 교회 밖 의자에 앉아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긴장을 풀면 몸이 오슬오슬 떨려 왔으나, 손안에 그리고 몸 안에 들어찬 차의 열기가 성직자의 영혼마저 데워 주었다.

    스스로 추위를 견디며 온기를 찾다니.

    모순적인 행동이었으나 기분은 더없이 좋았다. 마치 자연과 하나가 된 기분. 성직자의 얼굴에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한가롭다, 한가로워.”

    세상은 어지럽다.

    마수, 아인종, 이형종 등 갖가지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성직자가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죽어 간다. 그리고 죽는다.

    하지만 그러한 불행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성직자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오래된 경전에서도 그리 말했다. 모두가 전부 행복할 수는 없다고.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빛의 신 루아스께서는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슬픔, 고통, 불만족, 만족, 행복. 그러한 수많은 감정을 아예 만들어 내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는 똑같이 만들어 낸 인형과도 같아지겠지.

    과연 그게 옳은 것일까.

    죄를 지었음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사랑조차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수명이 다해 스러져 가는 삶이.

    다시 경전에 실려 있길.

    세상은 인간 스스로가 가진 더러움을 털어 내는 곳이라고 한다. 각자마다 묻어 있는 더러움이 다르기에 삶 또한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그 더러움은 어디서 왔는가.

    그건 타고나면서 부여받은 인간의 업이다. 아주 당연한 것이다. 빛이 있기에 어둠이 존재한다는 개념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이치.

    즉, 삶은 더러움을 씻어 내는 과정이다.

    여기서 사람의 끝이 달라진다. 더러움을 씻어 내지 못하고 악에 물들어 타락한 자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고, 깨끗해진 자는 빛의 신 루아스의 곁으로 가는 것이다.

    삶 자체가 신에게 부여받은 시련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는 스스로에게, 둘째는 루아스께.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고 신에게 인정을 받아야지만 시련을 넘어 빛의 곁으로 갈 수 있다.

    그게 경전의 교리였다.

    그런 의미에서 성직자는 충실했다.

    전쟁터에 나가 닥치는 대로 부상자를 치유하는 게 옳은 것이 아니다. 이 작은 마을에도 위급한 환자는 생기는 법이며 길 잃은 양 또한 존재하는 법.

    그들을 치유하고 이끄는 것이 성직자가 선택한 삶이었다.

    성직자는 자신했다.

    아무리 작디작은 교회의 교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누구 못지않게 빛의 신을 신앙하는 사람이라고.

    “……음?”

    그때, 먼발치에서 거센 울림이 들려왔다.

    자세히 귀를 기울여 보니 말발굽 소리. 작은 마을에서는 흔치 않은 다급함이 느껴졌다.

    이내 다가온 마차가 교회 앞에 멈춰 섰다.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가린, 녹색 사냥꾼 모자를 쓴 사내가 마부석에서 내리더니 어느샌가 성직자 앞에 다가왔다.

    그가 물었다.

    “성직자이신가?”

    “그, 그렇소만…….”

    “이 마을에 성직자는 몇 명이나 되지?”

    “나를 포함해 총 5명인데…… 그건 대체 왜……?”

    올빼미가 성직자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적당히 나이가 든 얼굴. 두 눈에는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서려 있으나 올곧았다.

    “위중한 환자가 있다. 치료가 가능한가?”

    환자라는 단어에 성직자가 당장 몸을 일으켰다.

    “내세우긴 부끄러우나 이 마을에서는 내가 가장 실력이 좋소.”

    “그거 잘됐군.”

    올빼미가 성직자를 들어 올렸다.

    “아,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오!”

    “가는 길이 급하다. 나중에 헌금을 할 테니 동행을 부탁하지.”

    “동행? 잠깐 설명을…… 억!”

    올빼미가 눈 깜짝할 사이에 성직자를 마차에 실었다.

    곧장 출발한 마차가 다시금 가도를 내달렸다. 뒤늦게 몸을 일으킨 성직자가 뒤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마을의 모습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가 멍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흘렸다.

    “……납치?”

    성직자는 납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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