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뜻밖의 (3)
재빠르게 성벽을 오른 올빼미는 소리 없이 성벽을 넘었다.
경비를 맡고 있는 토렐드의 부하들과 경보음을 내는 마법진 그리고 감춰진 함정들이 앞길을 막았지만 들키는 일은 없었다.
‘쉽군.’
올빼미의 희미한 기척을 알아차릴 수 있는 자는 없었고, 함정 또한 이미 간파한 뒤였다. 모종의 마법 물품으로 형성된 마법진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 마법진은 1위계 마법인 마력감지를 사용한 흔한 종류였는데, 올빼미는 마력의 감지를 왜곡할 수 있는 마법 물품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렇게 무사히 성안으로 침투하는 데 성공한 그는 신속하게 수색을 시작했다.
사각이 없는 장소가 있긴 했으나 파훼는 간단했다.
허벅지에 감춰 둔 단검으로 경비들을 암살했다.
시체는커녕 피조차 남기지 않고 치워 버렸다. 그런 식으로 깊은 곳으로 향하자 호화롭게 장식된 문을 찾아냈다.
작은 거울을 비스듬하게 문 아래로 집어넣어 안을 확인하자, 아니나 다를까 흑랑 토렐드가 있었다.
그는 보란 듯이 소파에 뻗어 있었다.
‘자고 있는 건가. 그런데 확실히 옛날과는 다르군.’
토렐드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
귀걸이, 갑옷, 부츠, 허리띠 등 뭐 하나 값비싸 보이지 않는 게 없었다. 그리고 양 팔뚝에 붙어 접혀 있는 두 개의 클로와 허리춤에 있는 쌍검까지.
언제 어디서나 무장을 하고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그러니 머리를 노려야 한다.’
올빼미가 손목에 찬 소형 크로스보우를 기동했다.
마법이 첨가된 볼트(Bolt)를 장전했다. 이단으로 분리되는 것으로, 첫 번째는 관통 그리고 두 번째는 전격을 일으키는 마법 물품.
고위 속성이 들어간 것이라 상당한 값어치를 지녔다.
올빼미가 문을 겨냥했다.
그 너머에는 잠들어 있는 토렐드의 머리가 있었다.
미세한 오차조차 없다.
확신을 가진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
콰직!
문을 관통한 볼트.
분리된 촉이 토렐드의 머리로 향했다. 직격해도 머리가 뚫리는 일은 없다. 닿자마자 번개를 내뿜으며 작은 폭발을 일으킬 테니.
좀 다치긴 하겠지만 제압용으로는 더할 나위가 없는 물건이었다.
이내 익숙한 손맛이 느껴지며 푸른빛이 번쩍였다.
‘제대로 맞았군.’
올빼미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을린 흔적으로 엉망이 된 방 안. 그런데 바닥에 쓰러져 있어야 할 토렐드가 사라져 있었다. 직후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떤 새끼가 내 머리통을 노렸나 했는데. 너였냐, 올빼미?”
토렐드는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그의 목에서 깃털 모양의 목걸이가 빛나고 있었다.
“<비행> 마법이 부여된 매직 아이템을 갖고 있었나? 그 귀한 걸 잘도 구했군.”
“암흑가에서 구했지. 충전하는 게 번거롭긴 하지만 유용하다고. 뭐, 그건 그렇고.”
토렐드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나에겐 무슨 볼일이지? 분명 내 목에 현상금 같은 건 걸리지 않은 걸로 기억하는데. 애초에 지난 몇 년간 대놓고 활동한 적도 없다고.”
“안 본 사이에 말이 많아졌군.”
올빼미가 활을 쥐었다.
어느새 다른 손에는 여러 개의 화살이 쥐여 있었다.
“언제부터 이 바닥에서 이유를 설명했지?”
토렐드가 웃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접혀 있던 클로가 펴졌다. 칼날에서 녹색 빛, 마비독이 흘러나왔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
서로의 시선이 교차한 순간.
올빼미와 흑랑 토렐드가 살기를 드러내며 바닥을 박찼다.
* * *
지하 감옥에 있던 흑마법사.
뭔가를 느낄 새도 없이 그의 오른손이 산산조각 났다. 피와 육편이 사방으로 날아가며,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흑마법사가 멍하니 팔목을 바라봤다.
갑자기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상황을 인지하는 것보다 빠르게, 신경을 찢어발기는 듯한 격통이 뇌를 강타했다.
“───아아아아아아악!”
흑마법사가 팔목을 부여잡았다.
연이어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양의 피에 전신이 붉게 물들었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절규하는 사이, 투명화가 풀린 베르덴이 움직였다.
그의 노림수는 하나였다.
‘우선 기절부터 시킨다.’
마일드륀의 흑마법사는 스스로 자폭했다.
눈앞의 흑마법사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의식부터 빼앗을 생각이었다.
후에 자결하지 못하게끔 만든 뒤에 정보를 캐는 게 맞는 선택일 터.
<아이시클>
혹한의 고드름이 흑마법사의 왼팔에 박혔다.
마법사에게 손은 기본적인 마법의 시전체. 그런데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이 얼어붙었으니 쉽사리 흑마법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이어 흑마법사에게 육박한 베르덴이 오큘러스로 그의 무릎을 후려쳤다.
우지직!
그대로 털썩 주저앉은 흑마법사.
스태프를 회전시킨 베르덴이 놈의 목을 바닥으로 밀어붙였다.
“꺼억…… 꺽……!”
오큘러스에 강하게 짓눌려진 목.
기도가 틀어막히자 꺽꺽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눈이 붉게 충혈된 흑마법사의 표정은 당혹감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베르덴의 얼굴을 미처 보기도 전에 의식이 흐려졌고, 결국 흑마법사의 눈동자가 뒤로 넘어갔다.
“간단하…….”
그 순간 흑마법사의 마력이 부풀었다.
본 적 있는 현상이다.
베르덴은 곧장 흑마법사를 내던지고 지형을 조작해 돔 안에 가두었다.
퍼어억!
안에서 들려오는 폭발 소리. 마법을 해제하자 검붉은 핏물만이 남아 있었다. 마일드륀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체는 남지 않았다.
베르덴이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기절시켰는데도 폭발할 줄이야.’
자의적인 건 아니다.
흑마법사가 정신을 잃자마자 몸 안에 있던 어떠한 마법적 작용이 일어난 것이 느껴졌다. 아마 저주 마법의 일종일 것이다.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게 입막음을 하기 위해선가.’
쯧. 베르덴이 혀를 차며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바닥에 쓰러진 채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마법사가 있었다.
‘상처가 심각한데.’
수배자의 전신은 만신창이였다. 포션으로 응급처치를 할까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그 자리에서 즉사할 가능성이 지극히 높았다.
포션의 치유력을 감당하는 것도 어느 정도 체력이 버텨 줘야 하니까. 상처에 가득한 고름, 전신에 퍼진 염증. 자세히 보니 몸 아래로는 육신이 썩어 가고 있기까지 했다.
‘저주인가?’
어쨌든 저만한 부상을 회복하려면 고위 성직자가 와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
그때,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흑…… 마법…… 막아야…….”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느릿해진 심장박동. 아무리 좋게 봐도 마법사는 삼 일을 넘기 힘들 것 같았다.
베르덴이 그를 보며 생각했다.
비행 금지령이 내려진 원인인 마법사.
그리고 그를 고문하고 있던 흑마법사.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단서는 있다.’
사령의 보주.
뭔진 몰라도 흑마법사는 그걸 찾고 있다. 그리고 흑마법사가 마법사를 향해 배신자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이 마법사도 흑마법사라는 뜻인가?
‘역시 조합의 흑마법사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분열이라도 일어난 건가?
알 수 없다.
하지만 알아낸다면 흑마법사들이 왕국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마법사를 데려가야 한다.
잘하면 칼리아에게 흑마법사를 입증할 증거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그녀는 더욱 강하게 조합과 귀족을 압박할 것이고, 페르네는 더욱 거리낌 없이 조합의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지.
‘그러니 가능하면 살려야겠지만…… 안 되면 시체라도 가져가야 한다.’
흑마법사와 별개로 비행 금지령의 해제를 위함이었다.
마법사 시신을 칼리아에게 보인다면 곧 왕국의 수배령이 풀릴 것이다. 아무리 왕가의 입김이 있다고 해도 본인이 죽은 이상 더 이상 금지령을 유지할 명분이 없을 테니까.
───쿠구구궁!
그때, 진동이 울렸다.
천장에서 들리는 걸 보아 지진은 아니다. 더군다나 주기 또한 불규칙적이다. 경험상 전투가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제압에 실패한 모양이군.”
그토록 자신만만하더니.
빠르게 토렐드를 제압하고, 마법사를 치료한다.
목적을 명확히 한 베르덴이 곧장 지상으로 향했다.
* * *
올빼미는 민첩하게 거리를 벌리며 화살을 쏘아 댔고, 토렐드는 그 화살들을 피하거나 베어 내며 올빼미에게 접근했다.
바닥, 벽, 천장을 구별하지 않는 전투는 보통 사람의 눈으로 좇기 어려울 정도였다.
클로의 검기가 돌기둥을 두부처럼 베어 버렸다.
떨어지는 파편.
가까스로 일격을 피한 올빼미가 후퇴하며 혀를 찼다.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 장비로 도배를 했군.’
어쩐지 기습을 피했더라니.
근력, 속도, 감각.
뭐 하나 예전에 봤던 토렐드와는 다르다. 한층 더 강화된, 양팔과 양다리를 이용한, 짐승 같은 사족 보행의 움직임은 올빼미로서도 곧장 반응하기 어려웠다.
‘거기다 방어력도 막강하고.’
움직임을 예측해 화살을 맞히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고작해야 흉갑에 흠집을 낸 정도였다. 다른 부위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약한 관절 사이를 노리려고 했으나 토렐드는 허용하지 않았다.
“크히히히히! 올빼미!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도망만 칠 거냐!”
토렐드가 이를 드러내며 비웃었다.
상당히 짜증 나는 목소리였으나 올빼미는 뭐라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저 앞에 소란을 듣고 몽땅 몰려온 토렐드의 부하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야! 이 새끼 못 가게 막아!”
부하들이 무기를 들었다.
흑랑의 클로를 피하면서 무사히 저 숫자를 뚫긴 어렵다.
‘성가신 놈들.’
올빼미가 세 개의 화살을 꺼냈다.
기운을 전력으로 활성화한 뒤, 연속으로 천장, 바닥 그리고 벽면을 향해 쏘아 보냈다. 화살이 폭발하며 안에 있던 강철 파편이 쏟아졌다.
“케엑!”
“컥!”
튕겨져 나간 날카로운 파편에 무차별적으로 적들이 죽어 나갔다.
“이 새끼……!”
다가오는 몇 개의 파편.
토렐드가 팔을 들어 머리를 지켰다.
그사이 포위를 돌파한 올빼미가 복도 끝에 도달했다.
주저 없이 창문을 향해 몸을 던진 그가 낙법을 이용해 바닥에 착지했다. 그러고는 은은한 금빛이 반사되는 화살을 준비했다.
‘이걸로 끝낸다.’
다마스 강철로 제련된 화살.
이걸로 다리 한쪽을 꿰뚫고 출혈을 유도한다. 그렇게 기동력을 빼앗고 시간을 끌면 제압할 수 있다. 아직 토렐드의 부하들이 남았지만 놈들이야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
위에서 느껴지는 기척.
올빼미가 곧장 몸을 돌리며 화살을 겨냥했다.
‘뭣……?!’
그런데 하늘에는 토렐드가 아닌, 검 한 자루가 있었다. 이내 검의 궤도가 비틀리더니 올빼미를 향해 날아왔다.
‘매직 아이템인가!’
바닥을 박차고 뒤로 후퇴했다.
순간, 섬뜩한 기세를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비행>을 사용한 토렐드가 올빼미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중량화>
토렐드가 착용하고 있는 부츠가 기동했다.
잠시 동안 착용자의 무게를 늘리는 마법 물품이었는데, 그로 인해 높아진 가속도가 돌진에 더해졌다.
촤아아악!
클로가 올빼미의 옆구리를 스쳤다. 직전에 몸을 비튼 터라 다행히 상처는 없었다. 올빼미가 근육의 탄력을 이용해 멀찍이 떨어졌다.
토렐드가 이죽거렸다.
“아, 아깝구만. 조금만 더 빨랐으면 그걸로 끝나는 건데.”
그가 손을 휘저었다.
허공에 둥둥 떠다니던 검이 토렐드의 손에 돌아왔다.
“어때, 염동력이 부여된 검인데 쓸 만하지? 이 반지하고 연동되는 건데, 꽤 조작하는 게 어렵더라고. 이거 하나만으로도 그런데, 염동 계열 마법사들은 어떻게 여러 개를 다루는지 모르겠어. 안 그래?”
“…….”
“아, 말할 여유가 없나? 뭐, 좋아. 일단 잡고 나서 누가 보냈는지 물어볼 테니까 말 많이 아껴 두라고.”
토렐드가 다시금 검을 움직였다.
허공을 나는 검과 흑랑 토렐드 그리고 뒤이어 쫓아올 놈의 부하들까지. 올빼미는 어떻게 토렐드를 죽이지 않고 제압할지 계산했다.
그러던 그때, 잘 날아가던 검이 허공에 멈췄다.
“응? 뭐야?”
토렐드가 연신 손을 움직였지만 검은 꿈쩍하지 않았다.
마치 돌 더미에 박힌 것 같은 감각. 이를 악물고 조작해도 마찬가지였다.
콰직!
토렐드의 반지가 깨져 버렸다. 억지로 사용하다가 내구성이 견디지 못하고 아예 박살이 난 것이다. 주도권을 잃은 검이 성 쪽으로 날아갔다.
거기에는 베르덴이 있었다.
올빼미가 말했다.
“제 때 왔군.”
처음 보는 얼굴에 토렐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행이 있었어? 올빼미, 너는 혼자 일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이, 로브 뒤집어쓴 놈! 너는 또 뭐지?”
토렐드가 말했지만 베르덴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저 토렐드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을 보고는, 나쁘지 않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부수입으론 괜찮겠군.”
“부수입? 뭐라는───”
<뇌격>
벼락이 토렐드에게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