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17화 (117/366)

117화 뜻밖의 (2)

깎아지른 절벽 위에 새워진 요새.

전쟁과 세월의 풍파로 곳곳이 붕괴되어 있었지만 아직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올빼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나 다를까 성벽 위에는 무장을 한 자들이 경비를 맡고 있었다. 주변에 인적이 전혀 없음에도 꽤나 삼엄한 걸 보아 토렐드가 안에 있는 모양.

“그런데 어떻게 들어갈지가 문제군.”

올빼미가 성 주변을 살폈다.

정상적인 통로는 성문과 지면을 연결하는 다리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베르덴이 성문을 향해 턱짓했다.

“정면을 뚫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게 가장 간단하니까.

하지만 올빼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의 목적은 생포다. 흑랑만을 제압해 납치하는 게 베스트지.”

그런데 만약 놈이 매직 아이템을 쓰면서 날뛰면 번거로워진다.

“그러니 일단 잠입한 뒤 몰래 제압을 시도하는 게 최선책이다. 그게 불가능해지면 어쩔 수 없이 맞붙어야겠지만…… 다른 수단이 있는 지금으로서 정면 돌파는 하책이라고 생각되는군.”

“그럼 어떻게 잠입할 생각이지?”

올빼미가 성을 가리켰다.

“직접 성벽을 오르거나, 아니면 저기 절벽 중간에 있는 수로를 통과하거나.”

각자 루트를 선택해야 한다.

같이 움직이는 건 여러모로 비효율적이니.

먼저 말을 꺼낸 건 올빼미였다.

“나는 그레이에서 주로 잠입이나 암살에 대한 의뢰를 맡았었다. 몰래 감시를 뚫고 침입하는 건 일도 아니지. 그러니 내가 성벽을 오르는 게 더 적합하다고 본다만.”

베르덴에게도 <투명화>가 있긴 하다.

하지만 횟수에 제한이 있으며, 일정 기준 이상의 마법을 쓰거나 충격을 받는 순간 투명화가 풀려 버린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경험이 많은 올빼미의 의견에 따르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리고 토렐드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성안에 있을 확률이 높지만, 지하에 숨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좋아. 그럼 내가 수로로 가지.”

올빼미는 성벽에서 성안으로.

베르덴은 수로에서 지하로.

결정을 했으니 움직일 차례다.

올빼미는 곧장 요새 밑 절벽을 향해 로프를 묶은 화살을 쏘아 보냈다. 줄을 당겨 단단히 박힌 걸 확인한 그가 이내 허공에 몸을 날렸다.

부드럽게 절벽 위에 안착한 올빼미는 빠른 속도로 요새를 향해 올라갔다.

베르덴은 그 반대편으로 향했다.

성벽 위에 있는 감시병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비행을 써서 절벽 아래로 낙하한 뒤, 요새가 세워진 절벽에 가까이 붙어 고도를 높였다.

들키는 일 없이 수로에 도착했다.

‘버려진 성이라 그런지 오래도록 물이 흐른 흔적이 없군.’

오물이나 악취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녹슨 철창 앞에 선 베르덴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화염 장막>

불길이 베르덴을 조용히 휘감았다.

그 범위 안에 있던 철창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완전히 붉게 변한 걸 확인하고 나서 오큘러스를 갖다 대었다.

<동결>

쩌엉!

급격한 온도 변화에 철창이 깨져 버렸다.

그 뒤에 있는 건 빛줄기 하나 없는 지하 수로.

암시를 쓴 베르덴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바닥엔 생쥐가, 천장엔 박쥐가.

낯선 인기척에 울음소리를 내며 수로를 돌아다녔다. 이곳은 아예 경계조차 하지 않는 모양인지 함정도 경비도 존재하지 않았다.

베르덴은 수로를 거닐며 주위를 둘러봤다.

‘조금씩이지만 위쪽으로 향하고 있군.’

수로는 비스듬하게 경사가 있었다.

구조적으로 기다란 통로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고, 벽면에 일정 간격마다 다른 통로들이 있었는데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크기가 아니었다.

그러니 길을 쭉 따라가면 성으로 이어지는 입구가 나올 터.

베르덴은 속도를 올렸다.

비행을 써서 수로를 질주하자 몇 분도 안 되어 계단이 나타났다. 그 위에는 오래도록 열린 적 없어 보이는 철문이 있었다.

따로 잠겨 있지는 않은 모양인지 살짝 힘을 줘서 밀자 문이 열렸다.

‘여기가 성의 지하인가.’

낡은 화톳불에 불이 붙어 있다.

사람이 있다는 증거였다.

<투명화>

유자의 로브로 모습과 기척을 감췄다.

지하라 어느 정도 소란을 일으켜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굳이 잠입까지 한 상황에 토렐드의 부하들까지 전부 쓸어버릴 메리트가 없었다.

천장 가까이 몸을 띄운 뒤 빠르게 탐색을 시작했다. 지하에 토렐드가 없다면 당장 지상으로 나가 찾아야 할 테니까.

투명화의 지속 시간이 좀 길긴 하지만 느긋하게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베르덴은 이상함을 느꼈다.

‘왜 아무도 없지?’

말 그대로다.

거리를 꽤 이동했는데 마주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화톳불에 장작이 쌓여 있는 걸 보면 분명 관리는 하고 있다는 뜻인데…….

────!

그러던 그때, 베르덴의 감각에 미약한 울림이 느껴졌다.

약간 끝이 갈라지는 듯한 게…….

‘비명 소리?’

선이 굵은 걸 보아 남자의 목소리다. 어쩌면 그곳에 토렐드가 있을지도 모른다.

소리를 따라가자, 복도 끝에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협소한 계단이 나타났다.

‘여기가 최하층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층이 더 있었나?’

시각와 청각 그리고 촉각 등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위에서 느껴지지 않았던 피비린내가 강하게 풍겨 왔다.

마침내 그 끝에 도달하자 피가 사방에 가득했다.

기이하게도 시체는 없었는데, 고개를 앞으로 향하자 바닥에는 무언가에 시체가 끌려간 듯한 혈흔이 남아 있었다.

‘피가 마르지 않은 걸 보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끄아아아아아악!

다시금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가깝다.’

시체가 끌려간 어둠 속.

베르덴은 피 웅덩이를 뒤로하고 앞으로 향했다.

성의 지하 감옥인지 복도 양옆에 철창이 가득했고, 그 안에는 오랜 기간 방치된 유골이 남아 있기도 했다.

가장 안쪽에 있는 커다란 감옥.

시체가 끌린 흔적이 그곳으로 향해 있었고, 그 중심에 비명 소리의 진원지가 있었다.

‘저건…….’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에 혈흔이 가득한 남자.

얼굴이 피와 멍으로 가득했지만 베르덴의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도시 곳곳에 널려 있는 수배지에 그려져 있던 얼굴이었으니까.

‘비행 금지령의 원인이 된 마법사가 왜 여기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보다 더 궁금증을 자아내는 건 마법사의 옆에 있는 검은 로브를 두른 사내와 주변에 널린 시체들이었다.

이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해라. 사령의 보주는 어디에 있지?”

“나, 나는…….”

남자가 말하길 주저하자 사내가 오른손에 쥔 지팡이를 휘저었다.

마력이 일며 생겨난 나선 형태의 검은 줄기. 그것이 시체에 닿는 순간 남자에게서 터져 나온 비명 소리가 감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시체를 매개로 일어나는 마법적 작용.

어느 모로 보나 흑마법의 일종인 게 분명했다.

베르덴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하나 더 떠올랐다.

‘흑마법사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조합, 플리쉬르 백작, 3왕자, 흑마법사 등.

뭔가의 교집합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으로선 당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확실한 건 있다.’

비행 금지령 공고문에 적혀 있는 문구.

[마법사가 백작의 자제에게 중상을 입히고 도망갔다.]

이건 거짓인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장소에서 흑마법사가 마법사를 고문하고 있지 않았을 테니까. 그 대신 흑마법사가 언급한 ‘사령의 보주’란 것과 관련이 깊다고 추측된다.

과연 뭐가 숨겨져 있는 걸까.

지금부터 알아볼 생각이다.

베르덴이 오큘러스를 흑마법사에게 겨냥했다.

* * *

사령의 보주에 대한 행방을 알아내라.

노사의 명령을 받은 흑마법사는 배신자의 정신을 고문했다.

고통스런 저주를 가해 정신을 이리저리 비틀어, 훔쳐 간 보주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배신자의 정신은 상당히 강인했다.

그는 죽기 직전임에도, 비명을 지르느라 목에서 피가 번져 나왔음에도, 몸속에서 들끓는 열에 숨조차 쉬기 어려움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일반적인 저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약속을 어기고, 몰래 흑마법사를 감시하러 온 인간을 잡아 죽이고는 그 시체를 사용해 더욱 강력한 저주를 배신자에게 가했다.

“아아아…… 아아아아……!”

갈가리 찢겨 나가는 정신.

배신자는 도중에 몇 번이고 기절을 하면서 고통이 영혼까지 각인되었는지, 침을 뚝뚝 흘리며 무의식적으로 말을 중얼거렸다.

너무 아프다고.

‘조금만 더 하면 된다.’

그렇게 판단한 흑마법사는 곧장 성의 지하에 있는 토렐드의 부하들을 죽여 부족한 시체를 수급했다.

이 사실을 토렐드에게 들킨다면 성가신 일이 벌어지겠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흑마법사의 뇌리에는 오로지 노사의 명령만이 최우선이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쓸모를 다한 시체가 늘어날수록, 배신자의 입에서 더 많은 단어가 흘러나왔다.

아파.

살려 줘.

그만해.

배신자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의 잘린 단면에는 리자드 소드의 효과로 인해 감염이 일어났다.

거기다 치료는커녕 대충 붕대로 출혈만을 막은 터라 염증이 전신에 퍼졌다. 몸은 뜨거웠고 상처에는 고름이 가득했다.

머리가 어지러워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했고, 감염 증상이 심장까지 퍼졌기에 1위계 마법조차 제대로 시전할 수 없었다.

불규칙적으로 변한 호흡.

언제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물론 흑마법사는 배신자의 목숨 따위 상관없었다.

최우선은 보주의 행방이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타인의 정신과 육체는 기꺼이 갈아 마실 수 있었다.

“아아…….”

배신자의 입에서 힘없는 탄식이 들려온다.

동공이 풀리고, 입을 벌린 채 피가 섞인 타액을 흘리고 있는 그의 몰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이 정도면 됐겠군.’

흑마법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배신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묻겠다, 배신자. 사령의 보주는 어디에 있지?”

초점이 흔들린 눈동자가 이리저리 뒹굴거리다, 흑마법사와 마주쳤다.

아주 잠시 동안 정신을 차린 배신자. 직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 가던 그의 눈에는 강렬한 의기가 담겨 있었다.

“꺼져…… 라…… 이…… 흑마법…… 사의…… 수치…….”

쿠웅.

바닥에 쓰러진 배신자가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저주 그리고 흑마법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흑마법사가 입술을 짓씹었다.

‘대체 어떻게 돼먹은 놈이냐……!’

배신자의 정신이 무너지지 않았다.

이미 사람 열 명쯤의 정신을 파괴하고도 남을 정도로 저주를 가했는데도 아직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버티는지, 무슨 목적으로 배신을 했는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짓이겨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다.

숨통을 틀어막는 듯한 답답함에 흑마법사가 신경질적으로 손아귀를 쥐었다 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실패했다간 여기 널린 시체 더미와 다름없는 신세가 될 테니까.

흑마법사는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시체와 마법사를 연결하고, 다시금 저주를 행하려 하는 순간.

퍼억!

“……아?”

어디선가 날아온 석편에 흑마법사의 오른손이 분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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