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14화 (114/366)

114화 칼리아 (2)

칼리아 드 에스퍼렌사.

검붉은 머리칼을 가진 후작 영애.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가전 검술을 전수받은 존재 중 하나로, 무술의 재능은 뛰어나나 다른 재능은 타 형제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이 있다.

그래서인지 공명심이 무척이나 강하다.

주로 직속 기사단과 함께 도적 및 범죄자뿐만 아니라 모험가 길드에게 동의를 받고 아인종이나 이형종까지 토벌하고 다닌다.

그 위명과 영향은 영지 바깥 멀리까지 뻗어 있다.

언제나 지니고 다니는 백색 검.

그리고 휘어지지도 않고 부러지지도 않는 미친 듯한 행동력에, 그녀에겐 ‘백강(白剛)’이라는 이명이 붙어 있었다.

다만 너무도 성격이 완강한 터라, 그녀를 비판하는 측은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방자한 귀족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칼리아의 진면목은 바로 ‘신중함’이다.

직접 얻어 낸 정보를 토대로 확신을 갖고 움직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내지 않았음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칼리아의 취미는 인재를 찾는 것이다.

판단 기준은 주로 힘과 인성.

주기적으로 작은 대회를 개최하여 좋은 성적을 보이는 사람에게 나름대로의 포상을 내리거나, 마음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있으면 영입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유는 하나뿐이다.

후작가의 위상이 아닌, 자기 자신만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또한 그녀는 언제나 같은 식당에서 그녀만의 코스 요리를 즐기며 주요 동선은…….

‘상당히 자세하군.’

페르네가 건네준 메모장.

칼리아가 뭘 선호하며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잘 정리되어 있었다. 덕분에 칼리아란 귀족이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베르덴이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해돋이 광경이 시야를 가득 물들이고 있었다.

‘새해인가.’

현재 베르덴의 나이는 26살.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만큼 바쁜 나날들을 보내 왔으니까.

지금도 그렇다. 다른 이들처럼 새해를 즐길 여유도 생각도 없다. 잠시 태양을 보는 정도면 충분하다.

베르덴이 다시금 목적을 상기했다.

칼리아가 새해를 기념할 목적으로 개최하는, 모험가 길드 연무장을 무대로 하는 작은 대회.

토너먼트 형식이 아니라, 칼리아의 기사가 참가자들을 상대하는 방식이니 당연히 칼리아 또한 참석할 터.

이리저리 생각해 봤지만 자연스레 접근하는 건 그 대회를 이용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일단 보고 나서 판단할까.’

그게 먼저였다.

그 후 이튿날, 저 멀리 거대한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대도시 라인즈(Rines).

왕국 동쪽에서 가장 큰 대도시로 변방을 수호하는 철벽의 요새이기도 했다. 성문을 통과한 베르덴의 시야에는 겨울임에도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인파가 가득했다.

새해라 그런지 거의 축제나 다름없는 분위기.

‘다행히 시간 맞춰 왔군.’

페르네의 메모장에 따르면 대회는 오늘이 셋째 날이다.

정오보다 이른 시간이니 지금쯤 한창 대회가 진행되고 있겠지.

베르덴이 라인즈의 중심 광장에 도착했다.

거기에 있는 도시 지도를 보고 모험가 길드의 위치를 확인했다. 목적지는 도시의 북서쪽.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무장에 도착했다.

안에서는 환호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내가 본 연무장 중에 가장 큰 것 같은데.’

대도시답게 모험가 길드의 연무장 또한 규모가 컸다.

마치 작은 투기장처럼 구경꾼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베르덴이 빈자리에 앉았다.

연무장의 중심에서는 두 사람이 대련을 하고 있었는데, 베르덴의 관심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저 사람이 칼리아인가.’

관객석 최상단의 상석에 앉아 있는 여성.

페르네가 준 정보가 정확히 들어맞는 외견이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완전 무장을 한 기사단이 철통같이 호위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접근할까.

아니, 어떻게 칼리아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뿐이다.

대회에 참가해 두각을 드러내는 것. 그것만이 지금으로써 가장 확실했다.

그때, 한 시합이 끝났다.

명백한 기사의 승리였다. 심판을 맡고 있던 기사가 소리쳤다.

“다음 참가자는 없는가!”

그 목소리에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몇몇 사람들이 나설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기사가 보여 준 수준을 상대로 선전할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기다릴 필요는 없겠군.’

베르덴이 나섰다.

연녹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허공을 날아 연무장에 안착했다. 그 등장이 꽤나 이목을 끌었는지 관객석이 잠잠해졌다.

기사가 다가왔다.

“마법사군. 혹시 규칙은 숙지하고 있나?”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은 3위계 하위까지 그리고 살생 금지로 규칙은 총 두 가지였다.

“음, 잘 알고 있군. 그럼 좋은 모습을 보여 주길 기대하지.”

기사가 물러서고 고급 스태프를 든 마법사가 나섰다.

그 또한 칼리아의 기사 중 하나. 마력을 갈무리해 감추고 있는 걸 보아, 최소 4위계임은 분명해 보인다.

마법사가 말했다.

“따로 들고 온 장비는 없는 건가?”

“이대로 하겠습니다.”

마법사가 스태프도 지팡이도 들지 않는다라.

무시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으나, 마법사는 이런 일이 익숙한지 내색하기는커녕 작게 웃었다.

“손속에 사정은 두도록 하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기사가 깃발을 들어 올렸다.

연무장 전체가 조용해지는 순간, 깃발이 내려가며 시합이 시작됐다.

마법사는 곧장 마력을 끌어모아 마법을 형성했다.

그에 반해 베르덴은 그저 마법사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애초에 마법을 쓸 생각도 없었으니까.

마력 위압.

베르덴의 푸른 마력이 무대를 장악했다.

* * *

왼손으로 턱을 괸 칼리아가 조용히 대회를 관전했다.

마지막 날을 앞둔 셋째 날, 수십 번의 대련을 지켜보며 그녀가 느낀 기분은 하나뿐이었다.

‘따분하군.’

칼리아의 기사단에서 차출한 기사들이 참가자를 상대하는 시합 방식.

상대가 전사면 기사.

상대가 마법사면 마법사.

안전을 위해 날이 없는 철검을 사용했으며, 사용 가능한 마법 위계도 3위계 하위로 제한했다.

그래서인지 시합 수준은 그녀의 눈에 차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실수로 누가 죽기라도 했다간 칼리아의 명예에 흠집이 날 테니. 그리고 그게 아버지인 후작의 귀에 들어갔다간 다시는 이런 대회를 열지 못할지도 모른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올해는 너무하는군.’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새해.

칼리아는 기대를 갖고 대회를 주최했다. 어쩌면 그녀의 마음에 들어맞는 인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물론 그런 건 없었다.

나름 봐 줄 만한 실력자들이 있긴 했으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대부분 대회의 보상을 노린 모험가들이었으니까.

아무리 칼리아라고 해도 대놓고 길드의 모험가를 빼앗을 정도로 막 나가진 않았다. 그런데 모험가들을 제외하면, 기사와 검을 맞댄 정도로 자부심을 갖는 어중이떠중이밖에 없으니…….

‘이래서야 내일도 허탕이겠어.’

칼리아의 얼굴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당장 대회를 끝내고 집에 가서 잠이라도 자는 게 더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연녹색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날아와 연무장에 착지했다.

꽤나 이목을 끄는 등장이다.

칼리아는 흥미가 생겼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과연 시합마저 등장만큼이나 신박할지 궁금해졌다.

물론 기대는 안 했지만.

그 순간.

“……!”

심상치 않은 마력량이 휘몰아쳤다.

‘마력 위압?’

마력으로 상대의 기세를 제압하는 기술로, 그 위력은 시전자의 마력회로의 완성도와 마력량에 비례한다.

칼리아 또한 숱한 범죄 마법사를 토벌하면서 몇 번이나 겪어 본 적이 있는 감각이다.

그런데 지금의 마력 위압은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끄으윽……!”

그를 상대하던 마법사의 다리가 무너졌다.

4위계 마법사가 저리 힘들어할 정도라니.

그런데 더 이상한 건 대회를 관전하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일절 영향이 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저 표정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마력 위압은 오로지 마법사와 칼리아의 주변을 향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마력 조작 능력이군.’

근데 왜 나까지 겨냥하고 있는 거지?

어째서?

모른다.

하지만 덕분에 지루함이 사라졌다.

이윽고 전신을 압박하던 마력이 사라졌다.

남은 건 식은땀을 흘리며 한쪽 무릎을 꿇은 칼리아의 마법사와 아무렇지 않게 당당히 서 있는 연녹색 로브의 마법사뿐.

그때, 로브 안에 감춰져 있던 푸른 눈동자가 칼리아와 마주쳤다.

“하.”

칼리아는 확신했다.

분명 저 마법사는 남다른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존재라고.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용건이 있는 것이라고.

“베스파 단장.”

“예, 칼리아 님.”

칼리아를 호위하고 있던 백결 기사단장 베스파.

그는 정중히 대답하면서도 낯선 마법사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또한 위압적인 마력을 느꼈기에.

“오늘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더 볼 것도 없어 보이니.”

칼리아의 검붉은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 * *

예정보다도 일찍 대회가 끝났다.

관객들은 아쉬워하긴 했지만 곧장 안내를 따라 자리를 떠났다. 귀족은 말 그대로 평민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기에 이유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내일도 있으니 괜찮았다.

그리고 칼리아가 개최하는 대회는 종종 구경할 기회가 있기도 했으니.

그렇게 사람들이 전부 나간 후, 기사단과 함께 칼리아가 연무장으로 내려갔다.

베르덴을 마주한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볼거리론 부족했지만 가장 인상적인 시합이었다. 그나저나 슬슬 얼굴을 보였으면 좋겠는데.”

“실례했습니다.”

베르덴이 로브를 젖히며 답했다.

그 외모는 후작가의 자식인 칼리아조차도 내심 감탄할 정도였다.

“호오, 귀족 출신 마법사인가? 왕국에서 보지 못한 걸 보니 타국에서 왔나 보군.”

“죄송하지만 평민입니다.”

“아, 이거 미안하군. 그럼 마탑 출신인가?”

“저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말에 칼리아의 흥미가 더 깊어졌다.

확실히 플레이트를 차고 있지 않은 걸 보면 모험가는 아니다.

그렇다고 용병 길드 소속 용병이라기엔 외모도 마력도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어느 모로 보나 일개 용병으로 살아갈 인상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레이에서 활동하는 마법사인가?’

하지만 이런 얼굴을 가진 마법사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최근에 나타난 마법사일지도 모른다. 왕국은 넓으니 언제 어디서 강자가 나타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칼리아의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더.

마법사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단련된 육체. 로브로 가려져 있지만 그녀의 눈을 속이진 못했다.

‘무슨 마검사라도 되는 건가? 뭔지는 몰라도 참으로 희한한 마법사로군.’

어떤 목적으로 칼리아의 관심을 끈 것일까.

그녀는 너무도 궁금해서 참기가 어려웠다. 낯선 상대를 가까이하는 건 위험한 일이나, 적어도 대화를 해 보지 않으면 이 갈증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름이 뭐지?”

“애셔입니다.”

“애셔라. 머리 색에 어울리는 이름이군.”

칼리아가 등을 돌렸다.

“나는 칼리아 드 에스퍼렌사. 대체 무슨 목적으로 내 흥미를 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히 뜻대로 어울려 주지.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하니 식사라도 하면서 말이야.”

칼리아가 기사들과 함께 연무장을 나섰다.

듣던 대로 행동력 하나는 강한 모양이다. 베르덴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걸 알면서도 선뜻 식사에 초대하다니.

아마 칼리아 자신의 강함과 기사단의 무력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겠지. 설령 암살자라고 해도 능히 대처할 수 있다는.

‘어쨌든 운이 좋군.’

이걸로 첫 번째 매듭은 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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