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13화 (113/366)
  • 113화 칼리아 (1)

    “심문은 맡기지.”

    올랜드를 데려왔고 그가 가진 정보 서류들도 챙겨 왔다.

    베르덴은 자신이 맡은 일을 확실히 끝냈다. 심문 과정까지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정보상인 만큼 가진 정보가 많을 테니 길고 지루한 시간이 될 테니.

    ‘페르네가 알아서 하겠지.’

    베르덴은 여독을 풀기 위해 여관으로 향했다.

    주점 지하에는 바르톨과 페르네 그리고 단단히 구속된 올랜드만이 남았다.

    바르톨이 물었다.

    “저거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뭔 전직 미스릴 등급 모험가라도 돼? 어떻게 사지 멀쩡하게 올랜드를 데려올 수가 있지?”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바르톨이 눈썹을 씰룩였다.

    “어떻게 정보상이 그걸…… 잠깐 설마, 네가 데려온 마법사가 아니었나?”

    “…….”

    페르네가 입을 다물었다.

    그래, 페르네가 데려온 게 아니다.

    베르덴이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애초에 이런 실력을 가진 마법사가 있다면 조합이 손 쓰기도 전에 불렀을 것이다.

    지금 오히려 당혹스러운 건 페르네였다.

    도저히 그의 실력이 짐작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대충 가늠은 했었는데 완벽한 착각이었다. 이제는 거의 하루가 다르게 평가가 수정되고 있었다.

    ‘새삼 생각해 보니 애셔 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네.’

    페일에게 소개를 받아 그녀를 찾아왔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한번 알아봐야 하나?’

    다름 아닌 최대 고객에 대한 정보의 오류는 치명적이다. 하루빨리 애셔란 마법사에 대해 알아야 자신도 그에 맞춰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니야. 그냥 내버려 두자.’

    자칫 그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은 무조건 피해야 하고 감히 상상해서도 안 된다. 몸이 간지럽다고 동아줄을 놓아 버리는 일은 할 수 없다.

    판단을 내린 페르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조합에 대한 정보예요. 그러니 다른 데 눈 돌리지 말고 저희가 맡은 일만 하자고요. 알겠어요, 바르톨?”

    “제길, 뭔지도 모르는 놈하고 일을 하게 되다니…….”

    바르톨이 궁시렁거리며 팔을 걷었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사실 식겁하고 있었다. 얼마 전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으면 어떻게 될지 뻔했기 때문이다.

    ‘역시 인생은 모른다더니.’

    솔직히 말해 뒈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란 듯이 정보상을 데려왔다. 그것도 상처 하나 없이.

    당연히 올랜드가 순순히 따라올 리가 없으니 전투가 벌어졌을 텐데…… 그건 즉, 방해물들을 처리했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 처리가 뭐야. 그냥 압살한 거지.’

    그게 아니라면 엄청난 언변으로 놈들과 올랜드를 설득했다거나. 물론 이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아마도 저 잿빛 머리의 마법사.

    그의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였던 모양이다.

    ‘진짜 X될 뻔했군.’

    소갈비 뜯어 먹다가 그대로 개죽음당할 뻔했다.

    뭐, 지금도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별수 없었다.

    이미 손은 잡았고 시간은 흘러가고 있으니까. 바르톨은 자신의 직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주먹을 쥔 바르톨이 기절한 올랜드에게 다가갔다.

    * * *

    “살려 주게.”

    깨어난 올랜드는 곧바로 항복했다.

    가진 정보를 대부분 빼앗긴 데다가 심지어 의뢰를 할 용병들마저 싹다 죽어 버렸다. 이 악물고 버텨 봤자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페르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긴 한데 포기하는 게 너무 빠른 것 아니야?”

    “애초에 조합은 이익집단이지 기사단 같은 게 아니네. 내 가장 소중한 재산인 목숨이 간당간당한데 있지도 않은 충성심으로 보안을 지킨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조합이 날 구하러 올 것도 아닌데. 저항해 봤자 얻는 거라곤 바르톨의 주먹세례뿐이겠지.”

    올랜드는 지극히 개인주의적 사고를 가진 인간이었다.

    가까이 두기에는 꺼려지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그가 순순히 입을 연다면 일이 한층 더 수월해질 테니.

    “전적으로 협조할 테니 자네도 약속하게, 날 죽이지 않겠다고.”

    “정보에 따라 생각해 볼게.”

    “그 말만으로도 기쁘군.”

    그 이후는 간단했다.

    올랜드가 가진 서류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가며 그의 발언과 대조했다. 양이 상당하긴 했지만 다행히 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끝낼 수 있었다.

    정보 수집을 마친 페르네가 베르덴에게 연락을 보냈다.

    그로부터 몇 분 후, 베르덴이 계단을 타고 지하실로 내려왔다. 기절하기 직전에 본 것과 같은 차가운 시선에 올랜드가 흠칫 몸을 떨었다.

    반사적으로 두려움을 느낀 것이었다.

    베르덴이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끝냈군.”

    “딱히 심문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그래도 성과는 확실히 있었어요.”

    페르네가 올랜드의 어깨를 툭 쳤다.

    침을 삼켜 겨우 가슴을 진정시킨 올랜드가 입술을 떼었다.

    “호, 혹시 ‘플리쉬르 백작’에 대해 알고 있나?”

    “플리쉬르 백작이라면…….”

    들어 본 적 있다.

    왕국에 비행 금지령을 내리게 한 귀족의 이름이었다.

    “그 백작은 3왕자를 지지하는 귀족이자 그의 귀중한 자금책이네. 왕국 전체에 비행 금지령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왕자의 입김이 매우 컸지. 페르네, 잠시 지도 좀 주겠나?”

    페르네가 왕국 지도를 펼쳤다.

    올랜드가 플리쉬르 백작령의 서쪽 부근을 가리켰다.

    “여기에 백작의 사유지가 있네. 겉으로는 별장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사실 불법적인 자금이 오가는 곳이지.”

    “예를 들자면?”

    “매매가 금지된 마약이나 해외에서 몰래 들여온 밀수품. 그리고 불법 노예도 취급되고 있네. 운영이 된 지 십 년은 넘은 터라 규모가 상당하지.”

    주 고객은 왕국 암흑가의 인간들.

    국제법 따위는 대놓고 무시하며, 인간을 돈으로밖에 보지 않는 자들이었다.

    “꽤나 자세히 알고 있군.”

    “그야 나도 거래한 적이 있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간접적으로만 접촉하게 된 거지만 몇 년간 시장의 흐름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됐지. 만약 이 사실을 조합이나 백작에게 들키면 나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네.”

    그러니까 몰래 알아낸 정보라는 뜻이었다.

    상대를 신뢰하지 못해 나름 한 수를 숨긴 것이겠지. 이런 건 왕국 그레이나 공국 그레이나 똑같은 모양이었다.

    ‘페일하고 페르네와 일하게 된 건 운이 좋았다고 봐야 하나.’

    둘은 적어도 책임감과 믿음은 있었으니까.

    적어도 쉽게 뒤통수를 칠 인물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입증할 증거는 있나?”

    “곧장 파기했으니 있을 수가 없지. 하지만 그 불법 자금에 직접 관계하고 있는 자에 대해 알고 있네. 이것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되는 극비 정보긴 하지만…… 당장 내 목숨이 중요한 법이니.”

    지도에 닿아 있던 올랜드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흑랑(黑狼) 토렐드. 왕국 최대 암흑가인 로아프라 출신으로 온갖 더러운 일에 손을 대고 있는 자일세. 별장의 귀중한 고객들 중 하나이기도 하지. 부하들을 이끌고 다니고, 워낙 뒤가 켕기는 인간이라 따로 자리를 잡은 적은 없었지만 최근에는 애용하는 장소가 있다고 하더군.”

    “그게 어디지?”

    올랜드의 손이 멈췄다.

    “이곳. 버려진 옛 성터일세.”

    * * *

    바르톨의 부하들이 올랜드를 데리고 갔다.

    살려는 줘도 풀어 줄 수는 없으니 그를 가둬 놓고 감시할 예정이었다. 조합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야 했으니까. 그 외 쓸모도 아직 남아 있기도 했고.

    주점의 지하.

    베르덴이 페르네에게 물었다.

    “흑마법사에 대한 건 나왔나?”

    페르네가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정보를 전부 뒤져 봤는데도 흑마법의 흑 자도 나오지 않았어요. 딱히 올랜드가 뭔가를 숨기는 기색도 없었고요. 아마 3왕자와 그 측근들만 알고 있는 기밀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칼리아에게 증명하긴 어렵겠군.”

    정체불명의 흑마법사들.

    증거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으니 칼리아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겠지.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메인은 흑마법사가 아닌, 조합과 귀족의 부정이니까.

    이제 정해야 될 차례다.

    지금 가진 정보를 가지고 칼리아를 먼저 만날지, 아니면 토렐드에게서 명확한 정보를 얻은 뒤에 찾아갈지.

    페르네는 전자를 추천했다.

    “칼리아가 가진 그 특유의 행동력은 귀족보다는,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용병 무리에 가까워요. 몇몇 귀족들은 그런 그녀를 우직하다고 폄하하죠.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반대예요.”

    칼리아는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신뢰하는 자가 가져온 정보가 아니면 취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 그녀는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칼리아의 무서움이었다.

    “그래서 칼리아와 만나 먼저 손을 잡을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보다 확실하게 움직일 테니까요. 그리고 애셔 님 혼자 움직이는 건 여러모로 위험부담이 크고요.”

    상대는 조합을 조종하는 귀족 중 하나이며 3왕자까지 관련되어 있으니. 아무리 베르덴이 강하다고 해도 힘으로 헤집으려 했다간 되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심하면 자칫 왕가를 상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베르덴이면 모를까.

    그와 연관된 사람들이 죽는 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를 들자면 페르네 말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에스퍼렌사 후작가의 독녀, 칼리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귀족은 귀족이 상대하는 것이 마땅한 이치. 후작가의 위세를 얻을 수 있다면 명분은 이쪽에 있다.

    불법 노예와 마약만 확인되면 조합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빼앗아 페르네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을 거고.

    그때, 베르덴이 물었다.

    “칼리아는 어떻게 만날 수 있지?”

    올랜드에게서 얻은 정보들.

    그걸 칼리아에게 보여 주는 게 우선이나, 그 전에 접근할 방법이 필요하다. 후작가의 독녀를 무작정 찾아간다고 해서 만나 줄 리가 없었으니까.

    물론 페르네는 이미 밑바탕을 그려 둔 상태였다.

    그녀가 메모장 한 장을 추가로 건넸다.

    “칼리아의 인적 사항을 기록해 뒀어요. 후작령이 그리 먼 곳도 아니고, 저번에 말씀드렸듯 칼리아는 공명심이 높아서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정도 정보쯤이야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죠.”

    페르네가 싱긋 웃었다.

    “이걸 참고하신다면 접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문제는 설득인데…… 이건 애셔 님의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어요.”

    준비는 도왔지만 결국 실행자는 베르덴이다.

    아무리 페르네라고 해도 완벽한 매뉴얼을 짜 낼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페르네의 본업은 정보상.

    베르덴에게 동기를 부여해 줄 정보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건 별개의 이야긴데, 애셔 님에게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요.”

    “좋은 소식?”

    “저번에 보여 주셨던 유물 있잖아요? 그 유물을 해석해 줄 탐사단을 찾았어요.”

    “……!”

    베르덴이 귀를 기울였다.

    “규모는 적지만 소수 정예로, 유적 발굴 쪽에서 유명한 탐사단이에요. 얼마 전 왕국에 입국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접근해 봤는데 애셔 님이 가지고 있는 유물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고요.”

    ‘마도왕의 유물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이건 예상외였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마도왕의 무덤을 발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훨씬 단축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그 탐사단은 어디에 있지?”

    “2주 내로 아세른으로 오기로 했어요. 그쪽에서도 강력하게 애셔 님을 만나길 희망하던걸요. 도중에 만남이 불발될 일은 없을 거예요.”

    2주라. 나쁘지 않다.

    할 일을 끝내고 나면 여유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기대되는군.’

    그렇게 베르덴은 에스퍼렌사 후작이 직접 다스리는 동쪽 변방의 대도시, ‘라인스(Rines)’로 향했다.

    그리고 밤이 지나 낮이 찾아오며, 새해가 밝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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