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올랜드
올랜드의 여관.
근처에 인가라곤 하나도 없이 나무만 가득했다. 어둠과 함께 눈이 내려앉은 숲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그와 반대로 여관 안에선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매부리코 사내가 눈을 부릅떴다.
“이봐, 올랜드! 그 마법사의 목에 얼마라고?!”
“산 채로 잡으면 8억 엘크, 죽이면 3억 엘크라고 했네.”
“8억!”
상당한 액수에 그레이의 용병들이 눈을 빛냈다.
“바제스의 용병단을 쓸어버린 놈이라고 했지? 4위계 전격 마법사라고 했었나?”
“나이가 X나게 어리다고 들었는데 마탑 출신일지도 모르겠군. 어찌 됐건 조합에서 그만한 액수를 내건 걸 보면, 그 자신들 품 안에 끌어들이려는 거겠지.”
“헤헷, 마탑 출신 범생이 따위야 일도 아니지. 사람들 틈에 숨어서 발목을 잘라 버리면 울면서 드러누울걸?”
십수 명의 사람이 왁자지껄 떠들었다.
이들은 올랜드에게서 대박 의뢰가 있다는 걸 듣고 모였는데, 하나같이 손에 피가 묻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자들이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그래서 의뢰는 누가 받을 거지?”
순식간에 여관이 조용해졌다.
서로 눈치를 보더니 몇몇이 살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간단명료한 의뢰에 무려 8억이라는 보수가 걸렸는데 쉽사리 포기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여기선 정보상이 나설 차례다.
보다 의뢰에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게 올랜드의 일이었다. 그가 목을 가다듬고는 중재를 하려던 찰나.
쾅!
정적이 깨졌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여관의 입구로 향했다.
연녹색 로브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스태프를 든 사내가 서있었다. 그는 걸음을 옮기더니 올랜드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카운터의 앞에 앉아서 뒤집어쓴 로브를 젖혔다.
회색의 머리.
청명한 푸른 눈동자.
범상치 않은 외모.
올랜드는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봤다.
눈을 동그랗게 뜬 그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초대받지 않는 손님이 왔군.”
“네가 올랜드인가?”
“맞네, 내가 올랜드일세. 그리고 자네는 마법사 애셔로군.”
애셔.
그 이름에 용병들이 반응했다. 8억짜리의 먹잇감이 눈앞에 찾아온 것이다. 일부가 입맛을 다시며 스리슬쩍 자신의 무기에 손을 얹었다.
베르덴이 반응하지 않자, 올랜드가 턱을 쓸며 말했다.
“이 시점에 여기를 제 발로 찾아왔다는 건…… 그래, 바르톨이 페르네에게 붙은 모양이군. 그렇게 사로잡은 연락책을 통해 내가 조합의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테고. 즉, 페르네가 조합과 완전히 대립하겠다고 결정한 거라 생각되는데, 나를 데려가 조합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라도 할 셈인가?”
정보상 아니랄까 봐 상황 파악이 빨랐다.
“그렇다면?”
“하하하, 걸작이군, 걸작이야. 여기가 어딘지 페르네가 말해 주지 않았나? 이거 참, 사슴이 늑대 무리에게 달려든 꼴이로군.”
사슴과 늑대라.
비슷한 비유일지도 모른다. 그 대상이 반대인 것만 빼면.
베르덴이 몸을 돌렸다.
올랜드가 불러 모은 그레이의 용병들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수월하게 올랜드를 데려가려면 이들을 처리해야 한다.
추적조차 하지 못하게 철저히.
하지만 베르덴은 그리 융통성이 없지 않았다.
이들은 올랜드의 의뢰를 아직 수락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한 번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베르덴이 선언했다.
“나가는 사람은 죽이지 않겠다.”
* * *
난데없는 으름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후, 누군가 웃음을 떠뜨렸다. 그 수는 하나둘씩 늘어났고 이내 여관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크하하하하! 저 새끼가 방금 뭐라고 했지? 나가는 사람은 죽이지 않겠다고? 무슨 정신병자라도 되는 건가?”
“어이 친구! 머리가 아주 제대로 돌아 버린 것 같은데! 신관이라도 불러 줄까!”
“크크큭, 이렇게나 어이없는 말은 오랜만에 들어 보는군.”
여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베르덴을 비웃었다.
그야 당연했다. 수는 물론이고 그들 하나하나가 왕국 그레이에서 몇 년 이상 살아남은 자들이며 살인의 달인. 절대로 얕보일 자들이 아니었다.
이들을 전부 몰살하려고 한다면 귀족가의 정예 기사단은 불러서 기습이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더라도 기사단이 적잖은 피해를 입을 거라는 건 분명했다.
그런 집단을 혼자서 상대하려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고위 속성인 전격 계열을 다룬다고 해도 4위계 마법사 정도의 실력으로 가능할 리가 없었다.
베르덴은 가만히 앉아 비웃음 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한바탕 달아오른 열기가 서서히 식어 갔다. 웃음기가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센 투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쌍검의 골브’가 올랜드에게 물었다.
“올랜드, 의뢰는 누구한테 가는 거지?”
“그를 결정적으로 무력화한 자에게 보수를 주도록 하겠네. 물론 죽이면 3억뿐이네.”
“그렇다면 산 채로 잡으면 8억이라는 뜻이군. 우리가 좀 갖고 놀다가 줘도 상관없는 거겠지?”
“목숨하고 사지 중 세 개만 붙어 있다면.”
그레이의 용병들이 씨익 웃었다.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올랜드가 베르덴의 뒷모습을 슬쩍 바라보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여기 있다간 자칫 휘말릴 수도 있었으니.
그는 여관 뒤쪽에 있는 술 창고로 들어갔다.
스르릉.
그제서야 곳곳에서 무기를 꺼내 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레이의 용병들은 누가 먼저 나설지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들은 동업자였지 동료가 아니었다.
설령 마법사를 무력화하는 데 성공해도 실수인 척 등 뒤를 찔러 죽일 놈들이었다. 양심이든 뭐든 간에, 그것이 8억 엘크의 가치를 품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던 그때,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린 갈색 머리의 사내. 그가 녹색 사냥꾼 모자를 쓰고는 짐을 챙겼다.
“어이 올빼미, 지금 어딜 가는 거지?”
“큰 의뢰라고 하도 호들갑을 떨길래 뭔지 궁금해서 와 봤을 뿐이지, 이런 쟁탈전에 끼어들 계획은 없었다. 애초에 따로 모시는 사람이 생기기도 했고. 그리고…….”
올빼미가 슬쩍 베르덴을 쳐다봤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8억이든 뭐든 너희끼리 알아서 하고, 나는 바쁘니 이만 떠나도록 하지.”
올빼미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여관을 나섰다.
베르덴을 제외한 나머지 시선들이 그를 바라봤다. 올빼미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그레이의 추적꾼으로 명성을 잇는 강자가 이렇게 꽁무니를 뺄 줄이야.
회색뱀 쟈켄이 빈정대듯 침을 뱉었다.
“뭘 모신다고? 하, 그 올빼미도 이제는 한물 갔나 보군. 되도 않는 핑계를 대면서 헐레벌떡 도망을 칠 줄이야. 그리고 다른 놈들은 눈치 보느라 바쁜 모양이고. 에라이, 병신들.”
쟈켄이 일어섰다.
펄션을 손에 든 그가 당당히 베르덴에게 다가갔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리라.
쟈켄이 칼 끝을 베르덴에게 향했다.
“무슨 배짱으로 여길 쳐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특별히 그 몸에다 직접 교훈을 새겨 주지. 깝치다가 뒈지면 X나게 고통스럽다고 말이야.”
쟈켄이 낄낄거리며 펄션의 날을 혀로 핥았다.
가늘게 찢어진 눈만큼이나 뱀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내 다리가 기묘하게 비틀리며 그의 신형이 고무줄처럼 쏘아져 날아왔다.
이후 대화는 일을 끝낸 후에 해도 늦지 않겠다는 뜻이겠지.
마침 베르덴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물론 시체와 대화할 생각 따윈 없지만.’
쟈켄이 움직임과 동시에 베르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둘러진 오큘러스.
이윽고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 * *
────콰아아앙!
폭음이 들려왔다.
여관이 흔들리며 천장의 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올랜드는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 도수가 낮은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금방 처리하면 될 걸, 질질 끄는군. 시끄럽게.’
상대는 4위계 마법사 하나다.
멀리서 마법을 난사하면 위협적이겠지만 그는 여관 안에 있다. 위에 모인 실력자들이라면 마법을 시전하기도 전에 능히 무력화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쌍검의 골브.
회색뱀 쟈켄.
올빼미.
무식한 딜렌드.
하나같이 왕국 그레이의 이명 소유자.
물론 이명이 있다고 해서 강하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만큼 두각을 드러냈다는 뜻이다. 그게 실력이든 잔인함이든 뭐든 간에 말이다.
그런 자들이 사방에서 달려드는데 끽해야 30살이 이르지 않은 마법사가 어찌할 수가 없다.
설령 5위계 마법사가 있다고 해도 저 거리에서는 우위를 점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장 제압하지 않는 걸 보면 농락하고 있는 게 분명하겠지.’
그중엔 실력뿐만이 아니라 성격이 여러모로 악랄한 자들도 있었으니까. 곧 있으면 여관 내부가 마법사의 비명 소리로 가득 찰 것이다.
그래야 했다.
‘근데 왜 아직도 소란스럽지?’
시간이 좀 지났음에도 여관이 아직 흔들리고 있다.
간간이 비명 소리와 함께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치열한 전투가 연상되는 소음이었다.
‘본래 지금쯤 상황이 끝났어야 정상일 텐데…….’
올랜드가 미간을 찌푸리던 그 순간.
콰아아아앙!
벽이 박살 나며 사람 하나가 올랜드 앞에 떨어졌다.
놀라긴 했으나 그것이 목표물인 마법사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잠시 후 완전히 깨져 버렸다.
“딜렌드?”
무식한 딜렌드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거리가 있음에도 그의 몸에서 짙은 한기가 느껴졌다. 얼굴 표정이 꿈쩍하지 않는 걸 보아 얼어 죽은 모양이었다.
“……설마?”
올랜드의 고개가 옆으로 향했다.
엉망진창이 되어 버려, 바깥의 추위가 들어오고 있는 여관 내부.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들 사이에서 전투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 * *
“끄아아아아아아악!”
쟈켄이 비명을 질렀다.
<전격>에 감전당해 전신에서 전류가 번쩍였다. 피가 끓는 고통에 결국 무릎을 꿇었고, 이어 날아온 둥그런 칼바람들이 그의 목과 가슴 그리고 허리를 가로질렀다.
회색뱀 쟈켄은 그렇게 절명했다.
마지막 생존자.
쌍검의 골브가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어, 어째서 이런 괴물이…….”
초 단위로 행해지는 마법 시전 속도.
등 뒤의 칼날마저 피해 버리는 마법사의 반응 속도와 감각.
도저히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마력량과 대처가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속성 마법까지.
골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숫자로도 마법사에게 치명상은커녕 얕은 찰과상조차 입히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은 쏟아지는 마법을 피하는 데 급급했다.
눈앞의 잿빛 마법사는, 그가 알고 있던 마법사들과는 격이 달랐다.
골브는 직감했다.
‘잘못 건드렸다.’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한다. 그래야 한다. 승산이 없다.
결심한 골브가 쌍검을 베르덴에게 내던지고 뒤로 돌았다. 여관의 틈새로 몸을 던지고는 눈밭을 달렸다.
그 속도는 말보다도 빨랐다.
하지만 마법을 피할 수 없었다.
<아이스 필러>
베르덴의 마안이 발동했다.
갑작스레 골브의 발 앞에서 얼음 기둥이 솟아났다. 복부에 적중당한 마법에 그가 숨을 토하며 바닥을 굴렀다. 혹한의 한기가 장기를 파고들었다.
숨을 토해 낸 골브의 눈앞에 한 줄기 화염이 쏘아졌다.
<플레어>
“시, 시바아아아아아알!”
콰아아아아아!
화염 광선이 골브를 집어삼켰다.
마법이 사라진 후에 남은 건 검게 그을린 무언가뿐. 입안을 넘어 장기까지 파고든 열기에 골브의 시체는 형체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베르덴을 잡기 위해 모였던 그레이의 용병들. 그들은 변변찮은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전멸했다.
베르덴이 눈살을 작게 찌푸렸다.
‘결국 이 정도인가.’
실망이다.
개개인으로는 나름 강자라고 할 법한 자들이었으나 서로 손발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차라리 한 명씩 상대하는 게 더 나을 정도로 다수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자기들끼리 경로가 뒤엉켜 피할 수 있는 마법에 정통으로 맞거나, 빗나간 검격이 옆에 있는 동업자의 살을 가른 경우도 있었다.
한심하다.
기대감이 있었던 만큼 더욱.
‘뭐, 어쨌든.’
베르덴이 발걸음을 옆으로 향했다.
올랜드와 시선이 마주쳤다. 화들짝 놀란 그가 뒷걸음질을 쳤으나 벽이 가로막았다. 한 발짝씩 다가오는 베르덴에게 올랜드가 다급하게 말했다.
“오해가…….”
퍼억!
오큘러스가 올랜드의 관자놀이를 타격했다.
올랜드는 전사가 아니었다.
머리가 부어오른 그는 곧장 정신을 잃었다.
‘이걸로 정보상 올랜드는 확보했고.’
하지만 아직 이곳에 볼일이 남아 있었다.
정보상이라면 페일이나 페르네처럼 정보들을 모은 서류들이 있을 테니까.
……이윽고 베르덴에게 탈탈 털린 여관.
그 건물은 안에 있는 시체들과 함께 활활 불에 타올랐다.
* * *
쿵!
기절한 올랜드가 주점 바닥에 널브러졌다.
페르네와 바르톨이 헛것을 보기라고 한 듯 눈을 비비고는 입을 열었다.
“진짜 데려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