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조합의 정보상 (3)
비어 있는 오크통에 연락책을 집어넣었다.
이어 바르톨의 부하들이 오크통을 술 운반용 수레에 싣고는 떨어지지 않게 덮개를 씌웠다.
수레가 페르네의 주점으로 향했다.
베르덴은 뒤에서 거리를 두고 주변을 확인했다. 혹여 연락책을 감시하는 조합의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으니.
물론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별 탈 없이 페르네의 지하 술 창고에 연락책을 옮기는 데 성공한 뒤, 베르덴이 지하 벽면에 마법진을 새겼다.
지하의 소음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페르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 마법진도 쓸 줄 알아요?”
“기본이지.”
……언제 마법진이 마법사의 기본이 됐지?
페르네가 멍하니 있는 사이, 베르덴이 오크통에서 연락책을 꺼냈다. 그러고는 빈 의자에 앉히고 지형을 조작해 몸을 단단히 구속했다.
“입도 막아 줄 수 있어요?”
“……?”
지금해야 할 건 심문이다. 그러니 입을 막으면 정보를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베르덴은 페르네에게 되묻지 않고 지형을 조작했다. 그는 이렇게 정보를 캐는 것에 문외한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지면이 뿌리처럼 돋아나더니 연락책의 머리를 감싸며, 그 입을 휘감았다.
이걸로 준비가 갖춰졌다.
“고마워요. 이제 깨울게요.”
페르네가 물이 담긴 양동이를 연락책에게 뿌렸다.
촤아아악!
“……!”
연락책이 번쩍 눈을 떴다.
얼음장 같은 차가움에 발작하듯 몸을 움직였지만 당연하게도 꼼짝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전신이 구속당한 걸 깨달은 연락책이 고개를 들었다.
페르네와 베르덴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상태로 어떻게 할 거지?”
“저도 그렇게까지 전문가는 아니지만 심문을 할 때는 하나만 명심하시면 돼요. 묻지 말고 공포심부터 심어라. 그래야 제대로 된 정보를 내뱉는 법이거든요.”
일리가 있는 말이다.
뭔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겁부터 주는 게 보다 확실할 것이다.
“방법은?”
“기사단에서 하는 심문 방법 중 하나를 할 건데,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한번 보시는 게 이해하기 더 쉬울 거예요. 뭐, 정 안 되면 바르톨에게 맡기면 되니까요. 좀 많이 망가지긴 할 테지만요.”
망가진다니.
연락책이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그는 조합의 상회 중 하나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간단히 왔다 갔다 하면서 연락만 전해 주면 돈을 주니, 선뜻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혹독한 고문을 견딜 인내심이나 충성심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말할 테니 제발 입 좀……!’
“읍읍!”
연락책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걸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입이 막힌 탓에 그 뜻을 전할 수가 없었다.
“반항이 심하네요. 역시 입부터 막아 놓길 잘한 것 같아요.”
‘말하겠다니까!’
눈을 번뜩이는 연락책을 무시하고 페르네가 움직였다.
“그럼 시작할게요.”
그리고 잠시 후.
“뭐든 말할 테니 제발 그만해!”
“봤죠?”
효과적이군.
* * *
연락책은 순순히 협조했다.
물론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십 가지의 질문을 연이어 물어본 뒤 역으로 다시 물어보며 답이 달라지지 않는지 확인했고, 페르네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보와도 비교했다.
그러한 페르네의 정보 처리 능력은 물 흐르듯 깔끔했다.
‘확실히 실력은 있어.’
페일이 자신 있게 추천해 줄 만한 정보상이다.
쓸모를 다한 연락책은 바르톨에 넘겨 가두었다.
그렇게 정보를 취합하고 나서 바르톨, 페르네 그리고 베르덴이 한자리에 모였다.
“예상했다시피 연락책 같은 말단에게 조합의 기밀 정보 같은 건 없었어요. 하지만 조합에 붙은 정보상 중 하나가 누군지는 알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죠.”
바르톨이 물었다.
“그게 누구지?”
“외딴 여관의 ‘올랜드’요.”
올랜드.
그는 페르네와는 달리 도시가 아닌 얕은 숲속에서 홀로 여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곳이 바로 올랜드의 정보상이었다.
그레이의 용병들은 그 여관에서 의뢰를 받거나 정보를 구입한다. 더해서 식당이나 숙박 시설을 겸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왕국 그레이만의 여관이나 다름없었다.
바르톨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조합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올랜드를 잡아야 한다는 건가? 다른 건 없어?”
“이것뿐이에요. 연락책은 올랜드와 조합 사이에서 연락을 담당하는 자들 중의 한 명이었거든요.”
“초장부터 일이 틀어졌구만.”
베르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문제지?”
“올랜드의 여관에는 그레이의 실력자들이 득실거린다. 올랜드가 순순히 따라올 리는 없을 테니 억지로 끌고 와야 하는데 그놈들을 다 뚫어야 돼. 말 그대로 전쟁이나 다름없다고.”
“게다가 아시다시피 조합에서 애셔 님을 노리고 있어요. 올랜드를 통해 사람을 고용할 예정이겠죠. 만약 이미 움직였다면…… 그 여관에서 십수 명이 넘는 사람을 상대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건 결코 쉽지 않았다.
전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바제스에 비견되거나 그 이상인 자들도 있을 테니까. 정면으로 나서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설령 바르톨이 휘하의 부하들을 몽땅 투입해도 반조차 죽이지 못하고 몰살당할 것이다.
“어이, 페르네. 그럴듯한 계획 같은 건 없나? 올랜드만을 유인할 미끼 같은 것 말이야.”
“글쎄요. 워낙 조심성이 많은 남자라. 그래도 저희 셋이서 머리를 맞대 보면…….”
“위치가 어디지?”
베르덴이 물었다.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지도. 바르톨이 작은 길목 근처에 있는 숲을 가리켰다.
“자리를 옮기지 않았을 테니 아마 여기에 있을 거다. 그런데 그건 왜?”
“애셔 님, 설마 또…….”
“내가 데려오지.”
베르덴이 단언했다.
바르톨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제 발로 죽으러 가겠다고? 뭐 이런…… 실패하고 말고를 떠나서, 만약 산 채로 잡히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
“마, 맞아요! 이번에는 바제스와는 차원이 다르다고요!”
둘이 다급하게 만류했다.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베르덴이 지도에 그려진, 올랜드의 여관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을 가리켰다.
“여기에 마차를 보내 놔. 올랜드를 아세른으로 옮겨야 할 테니.”
그 말을 남기고 베르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라고 할 틈도 없이 문고리를 잡고는 바깥으로 나섰다. 순식간에 멀어져 가는 발소리. 남겨진 페르네와 바르톨이 멍하니 문 쪽을 바라봤다.
“……이게 맞아?”
“나도 모르니까 묻지 마세요.”
둘이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 * *
조합이란 여러 상회들과 정보상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지만, 당연하게도 그들을 이끄는 자들이 존재한다.
곤 상회의 고곤.
땅거미 상회의 베켄.
엔글로 상회의 레골로.
위 세 명의 상회주야말로 조합의 운영자들이며 귀족들이 내세운 꼭두각시였다. 그런 그들이 한데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들어 보니 페르네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데 실패한 모양이더군. 애셔라고 했나? 한 마법사를 등에 업고는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고 하던데.”
고곤의 말에 베켄이 미간을 찡그렸다.
“고작 마법사 하나 따위에 이게 뭡니까? 바르톨, 그 친구 소문을 들어 보니 꽤 쓸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일 처리가 영 시원치가 않군요.”
“응? 우리가 바르톨과 약속한 건 페르네가 빚을 갚지 못했을 때, 그 채권을 넘기는 게 아니었나? 정확히 말하자면 일 처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오만.”
“그게 문제인 겁니다, 엔글로 상회주. 눈치껏 행동하는 것도 일입니다, 일. 우리가 페르네를 고립시키는 데 투자한 돈이 대체 얼마입니까? 페르네의 정보망을 허무는 데 들인 노력이 얼마냔 말입니까? 그걸 바르톨도 모를 리가 없는데!”
베켄이 혀를 찼다.
“쯧, 이래서 밑바닥 버러지 출신이란. 시키는 것만 할 줄 알지 주도성이 없습니다, 주도성이. 역시 제 말대로 페르네를 죽이는 게 가장 깔끔했을 겁니다.”
“페르네의 능력은 모두 잘 알 텐데? 귀찮다고 죽이는 건 아깝기 그지없지. 이미 모두 동의한 바가 아닌가? 그러니 그 이야기는 그만두고 해결책에 대해 대화를 하는 게 낫겠지만…… 사실 이건 너무나 간단한 게 아닌가?”
고곤이 손을 모았다.
“결국 마법사만 처리하면 되는 거다. 일단 잡아 놓고 죽이든 회유하든 해서 다시 페르네를 고립시키면 끝이지. 이미 올랜드를 통해 적임자를 모으고 있으니, 늦어도 2주 뒤면 끝날 일이야.”
“음, 올랜드라면 괜찮겠군요. 그와 함께 일하는 자들 중엔 유명한 자들도 많으니. 멋모르고 날뛰는 마법사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겠죠.”
그건 확신이었다.
설마설마하는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다 죽어 가는 페르네에 붙은 마법사는 너무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결정됐으니 페르네에 대한 얘기는 이걸로 끝내겠소. 그럼 다음 안건이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3왕자께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시오. 귀족들께서 가능한 서두르라고 하시더군.”
“3왕자께서 말입니까? 안 그래도 암흑가와의 거래를 통해 겨우 세력을 넓히고 있는데…… 여기서 또 규모를 넓히면 위험합니다.”
“그래도 거절할 수가 있소? 얼마 전, 푸른 구름 상단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에 3왕자께서 주문하신 마석조차 제대로 수급을 하지 못한 마당에?”
베켄이 침묵했다.
자의든 타의든 실수가 계속되었다간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했다. 어떻게든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일단 헐값에 인수한 푸른 구름 상단을 매각해야 하오. 투자할 여력이 되지 않으니 말이오.”
그것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의견을 내놓았다.
“그럼 장물의 규모를…….”
“그리고 불법 노예의 숫자를 더…….”
“아니면 다른 상회를 희생양 삼아…….”
세 명의 대화는 더욱 깊어졌다.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 마법사 애셔의 존재는 사라지고 없었다.
* * *
베르덴은 올랜드가 있는 장소로 곧장 향했다.
적당히 수면을 취하고는, 말을 갈아타며 이동한 탓에 금방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밖에 없었다.
‘상대가 될 만한 자들이 있으면 좋겠는데.’
페르네와 바르톨이 경고한 그레이의 실력자들.
공국에서도 그런 자들을 마주하긴 했지만 베르덴의 수준에 전혀 미치지 않는 자들이었다.
왕국 그레이는 규모가 다르다니 조금은 기대해 봐도 될 터.
숫자든 뭐든 경험으로 삼을 정도만 되어도 만족이었다. 물론 목적은 정보상 올랜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잔챙이만을 상대하는 건 지겨웠다. 영양가도 없었고.
그런 생각을 하며 베르덴이 말을 박찼다.
눈밭을 헤치고 숲으로 들어갔다. 발자국이 남아 있는 산길을 따라가자, 눈이 내리는 풍경 속 큼지막한 2층 여관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