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07화 (107/366)
  • 107화 경매장의 초청장 (2)

    여관의 가장 높은 층을 빌린 베르덴은 언제나처럼 마력회로를 확장하고 있었다.

    꾸준한 노력이야말로 베르덴의 근간.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단 하루도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내 충만한 마력을 가라앉힌 베르덴은 간단히 씻은 뒤 잠에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마일드륀 중앙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거리가 있었지만 명확하게 베르덴의 귀에 들렸다. 심지어 그게 누구의 목소리인지까지.

    순식간에 복장을 갖춘 베르덴이 창문 아래로 뛰어내려 목소리의 진원지로 향했다.

    그리고 맞닥뜨렸다.

    메딘의 목숨을 위협하는 뼈의 괴물을.

    ‘언데드?’

    어째서 언데드가 마을 한복판에 있는 거지?

    의문이었지만 메딘을 구하는 게 먼저였다. <석벽>으로 메딘을 보호한 뒤, 곧장 비행을 써서 언데드에게 육박했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뼈를 가볍게 피한 뒤, 오큘러스의 충격파로 놈을 날려 버렸다. 이어 베르덴이 바닥을 두들겼다.

    <플레임 스트라이크>

    지면에서 솟아난 불기둥이 언데드를 덮쳤다.

    위력을 버티지 못한 언데드가 허공에 떠올랐고, 베르덴이 정확히 놈을 향해 오큘러스를 겨냥했다.

    트리플 캐스팅.

    <록 페이탈>

    파가가각!

    음속을 넘어선 석편들이 언데드의 중요 골격들을 박살 냈다. 지면으로 추락한 언데드는 잔해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완전히 불태워 버렸다.

    부활할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애 버린 것이다.

    손쉽게 언데드를 토벌한 베르덴.

    그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메딘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 * *

    메딘은 다급하게 베르덴을 데리고 버려진 옛 광산에 몸을 숨겼다.

    낡은 햇불에 불을 붙였다. 베르덴에게 중급 포션을 받아 상처의 출혈을 막은 메딘이 겨우 한숨을 내쉬며 광산 한편에 등을 기댔다.

    그러고는 베르덴이 마을에서 했던 질문에 답했다.

    조합과의 마석 거래, 상단주, 여성, 마법 그리고 언데드까지. 그제서야 푸른 구름 상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게 제가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애셔 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쯤 죽었을 겁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메딘이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설마 삼촌의 은인이 자신의 은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언데드를 삽시간에 없애 버린 그 실력. 확실히 대단한 마법사가 분명했다.

    베르덴은 그를 바라보며 턱을 쓸었다.

    파이테 남작에게 소개장을 받아 경매장의 초청권을 구하러 왔더니, 알 수 없는 일에 휘말려 버린 것 같다.

    뭐, 이미 벌어진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나저나 그림자에서 사슬을 뽑아내고, 언데드를 다룬다라.’

    베르덴이 지식으로 알고 있는 마법이다.

    그걸 쓰는 마법사들은 오직 한 종류밖에 없었다.

    “흑마법사군.”

    * * *

    흑마법사는 사령술이나 저주 계열 등의 흑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들을 뜻한다.

    단순히 마법만으로 보면 사악하고 악랄하기 그지없다. 과거에는 흑마법사들을 적으로 삼고 보이는 족족 섬멸하기도 했으니.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다르다.

    10개의 마탑 중에는 흑마법 계열을 주로 다루는 ‘다크워튼(DarkWarton)’이라는 마탑이 존재한다. 그들은 과거 배척받고 탄압받던 자들이 아닌 세상에 공인된 존재들이다.

    이처럼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흑마법사는 꽤 있다. 특히 사령을 다루는 흑마법사는 무덤지기를 하기에 그리 적합할 수가 없었다.

    다만 흑마법에 안 좋은 인식이 남아 있다는 건 사실이다.

    마력을 넘어서 영혼까지 다루며 죽은 생명체의 피와 시신까지 다루니. 그리고 그걸 악행에 이용하는 흑마법사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에 그러했다.

    루아스교가 그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도 했고.

    조합에 숨어 있는 정체불명의 흑마법사들.

    단언하건대 결코 떳떳한 놈들은 아닐 것이다.

    베르덴이 말했다.

    “아마 상단주는 죽었을 겁니다.”

    마리오네트.

    시체를 조종하는 흑마법의 하나다. 실력 여하에 따라 최소 며칠에서 몇 달까지 부패시키지 않고 조종하는 게 가능한데, 4위계에 있는 흑마법인 만큼 나름의 실력자일 것이다.

    메딘이 탄식했다.

    “대, 대체 왜 흑마법사들이 저희를…….”

    그건 알 수 없다.

    세상이 미친놈이 얼마나 많은데, 놈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든지 상식적으로 생각할 게 아니었다. 글러트니를 상대했던 베르덴이기에 그러했다.

    어쨌든 조합에 뭔가 있는 건 분명하다.

    그 많은 마석을 요구했다는 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일 테고, 푸른 구름 상단은 계획을 위한 수단으로 쓴 것일 터.

    베르덴은 본래의 목적을 상기했다.

    ‘내게 필요한 건 경매장의 초청장.’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구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초청장 하나에 더 시간과 돈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빼앗는다.’

    페르네가 조합과 마찰을 일으키지 말라곤 했으나 이건 별개다.

    먼저 건든 건 저쪽이니까. 물론 직접적으로 이렇다 할 손해조차 입지 않았지만 그 의미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베르덴이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겁니까, 메딘.”

    “저는…….”

    메딘이 젊은 시절을 바친 일자리.

    그렇기에 푸른 구름 상단에 애착이 있었으며 상단주와도 친분이 깊었다. 그걸 송두리째 앗아 간 자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지만…… 메딘 혼자서는 어림도 없었다. 직전에도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지 않았던가.

    이대로 도망칠까. 그게 가장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는 복수를 하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메딘은 자신의 바람을 말했다. 그에 베르덴이 답했다.

    “저는 경매장의 초청장이 필요합니다.”

    “……예? 초청장이요? 하지만 그건 상단주의 금고에…….”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메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를 바라보는 베르덴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파랗게 빛났다.

    “그러니까 거래합시다.”

    * * *

    다음 날 오후.

    흑마법사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아직도 못 찾았나?”

    “으음, 감쪽같이 숨었던데?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 놈이야.”

    여성의 말에 사내가 와락 인상을 구겼다.

    “그러게 그 자리에서 당장 죽였어야지. 너 때문에 이게 웬 개고생이냐! 그딴 작은 상단의 경비대장 하나 못 죽이고 말이야!”

    “허, 이 새끼 봐라? 건물 복도를 부수고 도망쳤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그리고 너는 기껏 힘들게 만든 언데드도 잃어 놓고 왜 나한테 지랄이야! 그러게 누가 언데드 하나만 보내라고 했어! 했냐고! 내가 병신같이 허세 부리지 말고 제대로 하라고 했잖아!”

    “병신? 이런 잡년이……!”

    “잡년? 한마디만 더 해 봐. 그 모가지 찢어발겨서 혀를 뽑아 버리기 전에.”

    여성과 사내가 대립했다.

    서로가 살기를 드러내며 흉흉한 마력을 번뜩였다. 누가 하나 손을 쓰는 순간, 둘은 진심으로 서로를 죽일 작정이었다.

    그러기 전에 체드가 나타나 중재했다.

    “그만하시게. 여기까지 와서 이게 뭔가? 내가 보기에 둘 다 잘못했으니까 그만하고 맡은 일이나 하게.”

    “그러나…….”

    “하지만…….”

    체드의 웃음기 가득한 시선에 둘이 입을 다물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강했으니까. 그가 하고자 한다면 둘을 영원히 침묵시킬 수도 있었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좋아. 모두 진정한 모양이군. 그럼 광산으로 가지. 서둘러 마석들을 수급해야 하니까 말이야.”

    “그놈은 어떻게 합니까?”

    “지금은 내버려 두게. 그깟 놈 혼자 뭘 할 수 있다고. 큰일을 해결한 뒤 작은 일을 처리해도 늦지 않아. 어차피 곧 처참하게 죽게 될 것인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지금은 마일드륀에 있는 마석들을 ‘조합장’에게 가져다주는 게 우선이네. 그러니 방금 전과 같은 일로 마찰을 빚는 건 그만하게. 알겠나?”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여성과 사내가 수긍했다.

    마음에 드는 대답에 함박웃음을 지은 체드. 호선을 그린 그의 눈동자 안에는 섬뜩할 정도로 무감정한 눈동자가 있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체드가 상단주를 앞세웠다.

    몸뚱이는 시체였지만 흑마법으로 인해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흐르고 있었다. 푸른 구름 상단이 통째로 체드의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그때, 푸른 구름 상단의 직원 하나가 다급하게 방문을 열었다. 예의를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가 호흡을 겨우 진정시키고는 상단주에게 말했다.

    “마석 갱도가 무너졌습니다!”

    체드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조종하는 상단주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그뿐만이 아니라 저희 상단과 거래할 예정이었던 마석들이 죄다 박살 났습니다! 상급 이상의 마석이 담긴 보관 상자도 사라졌고요!”

    사내와 여성이 체드의 얼굴을 슬쩍 살폈다.

    그의 얼굴은 방금 전과 달리 한없이 괴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 * *

    저 멀리 푸른 구름 상단 소유의 갱도에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푸른 구름 상단의 직원들이 제각기 그쪽으로 향했다. 조종당하는 상단주와 흑마법사 사내, 여성 그리고 체드까지. 상단의 건물이 거의 비었다.

    그 틈을 타 메딘이 잠입했다.

    경비는 셋.

    그들은 메딘의 부하였는데, 상단주처럼 흑마법사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기절시킨다.’

    메딘이 검날을 반대로 하고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며 경비들이 기절했다. 대충 그들을 근처 방 안에 던지고는 꼭대기 층에 있는 상단주의 방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메딘이 벽을 더듬거렸다.

    “분명 이쯤 어디에…….”

    철컥.

    숨겨진 버튼을 누르자, 벽 한가운데에 걸려 있던 그림이 약간 벽에서 떨어졌다.

    메딘이 그림을 잡아 오른쪽으로 3번 그리고 왼쪽으로 2번 돌렸다. 이내 그림이 떨어져 나가며 그 뒤에 숨겨져 있던 금고가 나타났다.

    비밀번호는 이미 알고 있다.

    그는 경비대장. 만약 상단주가 부재 시, 그의 재산을 보호하는 임무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곧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안에는 상단주의 비상금이자 재산이 담겨 있었다.

    두툼한 무기명 채권들과 금괴 10덩이.

    다마스 강철 주괴 4덩이.

    미스릴 주괴 2덩이.

    마지막으로 경매장 초청권 2장이 놓여 있었다.

    메딘이 감탄했다.

    눈앞에 놓인 재산이 아닌 베르덴에게.

    ‘설마 갱도를 무너뜨리자고 할 줄이야. 거기다 놈들이 구하려고 했던 마석까지 망가뜨리고.’

    덕분에 아주 단단히 이목이 끌렸다.

    메딘이 큼지막한 가방 안에 금고 안에 있는 걸 꽉 눌러 담았다. 기분 좋은 묵직함이 느껴진다.

    이걸로 계획의 절반은 성공했다.

    건물에서 나와 망토를 뒤집어쓴 메딘. 그가 숲 쪽을 바라봤다.

    ‘자신 있어 보이긴 했는데 과연 괜찮을까?’

    메딘도 나름 칼 밥 좀 먹었다.

    그런데 감히 그 흑마법사 여자에게는 대적할 생각도 못 했다. 그런 그들을 단신으로 처리하겠다니.

    ‘아니, 괜찮겠지. 다름 아닌 삼촌이 소개한 인물인데.’

    그래, 소개장에 적혀 있었다.

    대단한 마법사가 갈 테니 무조건 그를 도와주라고. 그리고 그 실력의 편린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메딘은 자신을 구해 준 베르덴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그 시각, 베르덴은 숲 한가운데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푸른 구름 상단이 가지고 있던, 그리고 거래 예정이었던 마석들을 모조리 4위계 화염 마법으로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리고 갱도마저 무너뜨렸다,

    메딘에게서 들은 상단의 정보 덕분이었다.

    ‘조금 아깝긴 하지만 어차피 내 것도 아니니.’

    베르덴의 시선이 공간가방으로 향했다.

    그래도 챙길 수 있는 건 챙겼다. 상급 이상의 마석들을 그냥 없애 버리기에는 양이 적어 챙기기 수월했으니.

    그 후에 베르덴은 광산에 흔적을 남겼다.

    놈들이 그걸 보고 이곳으로 향할 수 있도록. 아마 곧 찾아올 것이다. 그런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한다면 애초에 신경 쓸 필요도 없는 흑마법사들이란 걸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내 해가 기울며 석양이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상인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는 사내, 여성 그리고 체드가 나타났다.

    사내가 말했다.

    “뭐야, 메딘이 아니었잖아? 넌 뭐지?”

    “마법사.”

    마법사?

    고개를 갸웃거리자 베르덴이 최상급 마석을 하나 꺼내 보였다.

    “이건 내가 잘 갖도록 하지.”

    “이런 미친──”

    “어제저녁에 메딘과 있었던 자로군. 죽이기 전에 묻지. 대체 왜 우리의 마석들에 손을 댄 거지? 내 기억으로는 자네와 같은 자와 척을 진 적은 없는데?”

    베르덴이 스태프를 들었다.

    “원래는 메딘에게 볼일이 있었지. 그런데 누가 푸른 구름 상단을 건드렸더군. 덕분에 내 일에 차질이 생겼다.”

    “……고작 그런 이유로 우리를 건드렸다고? 흑마법사인 걸 알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체드가 멍해졌고, 사내와 여성이 코웃음 쳤다.

    “하하하, 이제 보니 미친놈이었잖아? 어린 마법사가 뭔 배짱이지?”

    “체드, 저놈은 죽여도 되는 거죠? 저희의 계획을 방해한 장본인이니. 마석도 빼앗아야 되고.”

    체드는 이번엔 부정하지 않았다.

    그가 흉악한 시선을 베르덴에게 향했다.

    “시체는 남겨 두어라. 내 손수 저자의 몸을 갈라 집에 장식할 테니.”

    흑마법사들이 마력을 일으키며 살기를 드러냈다.

    그에 맞춰 여유롭게 스태프를 돌린 베르덴이 전신의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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