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106화 (106/366)
  • 106화 경매장의 초청장 (1)

    푸른 구름의 표식이 새겨져 있는 화물용 마차들이 마일드륀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중 호위용으로 개조가 되어 있는 한 마차. 그 안에서 상단주와 경비대장 ‘메딘’이 서로 마주 앉아, 얼마 전 조합의 사람이 찾아왔을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조합…… 조합이라…….”

    상단주가 한참을 고민한 끝에 메딘에게 물었다.

    “메딘, 자네는 조합과의 거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말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조합이 푸른 구름 상단을 찾아온 이유는 한 가지, 바로 마석의 거래였다.

    현재 이 바닥에서 조합과 거래를 트는 건 충분히 환영받을 일이긴 하지만…… 조합에서 요구하는 마석의 양이 심상치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나 많은 마석을 구해 오라니. 저희 상단의 규모로는 감당하지 못할 일입니다. 아니, 어떻게 하면 구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마일드륀의 다른 상회들과 적대하게 되겠지. 그 양을 수급하려면 거의 마석을 독점하다시피 해야 하니까.”

    희소한 상품의 독점 판매는 상인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하나 기존에 있던 걸, 그것도 수요가 높은 마석을 독점하려 한다? 이익이고 나발이고 자칫하다 그 길로 상단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었다.

    메딘이 말했다.

    “저는…… 왠지 모르게 조합이 저희 상단을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쓰다가 버릴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거래를 강요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뭐, 서로 이용해 먹으며 사는 게 상인이니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근데 그 대상이 우리라는 게 문제지만. 제길, 며칠 동안 조합 생각만 하다 보니 아주 돌아 버릴 것 같군. 거절하자니 조합에게 밉보일 게 분명하고.”

    상단주가 창밖을 바라봤다.

    깊어진 겨울, 새하얀 눈이 가득했다.

    “후우, 일단 마일드륀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재협상을 해 봐야겠어. 어느 정도라면. 그래, 조금은 마석의 양을 낮출 수 있을 거야. 그들도 상인이라면 말이야.”

    “……뭔가 잘못되지 않을까요?”

    걱정 가득한 메딘의 말에 상단주가 웃었다.

    거래 규모가 빌어먹을 정도로 크긴 하지만 결국 마석의 거래다. 어떤 특별한 화물을 옮겨 달라는 것도 아닌, 아주 흔해 빠진 거래일 뿐이다.

    상단주는 한마디로 답했다.

    “에이,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나.”

    질주하는 마차들.

    그들은 서서히 마일드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광산 마을, 마일드륀(Mildrun).

    여러 개의 거대 광산을 기반으로 형성된 규모가 큰 마을로, 그 중심에는 광부들에게 시간을 알리기 위해 건설된 거대한 시계탑이 놓여 있었다.

    마을 특성상 각종 상회와 상단이 오가는 곳이다. 마석과 광석은 지금 세계에 있어서 필수품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산지에 형성돼서 그런지 다른 곳보다 추위가 강하군.’

    마일드륀에 도착한 베르덴.

    그의 시선에 눈 덮인 광산 도시가 비쳤다. 몸소 광부들이 돈을 벌기 위한 도시였지만 하얗게 내린 눈이 그 삭막함을 덮어 주었다.

    나름대로 운치가 있는 도시였다.

    운반 상회에서 빌린 말을 반납하고, 거리를 거닐었다.

    페르네가 준 정보에 의하면 푸른 구름 상단 건물은 시계탑에서 북쪽으로 가면 있다고 한다. 대로를 걷자 어느새 구름 모양의 상표가 새겨진 건물이 나타났다.

    푸른 구름 상단.

    베르덴은 주저 없이 건물 앞으로 향했다. 경비를 맡고 있던 사내가 입구를 막아섰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메딘을 만나러 왔습니다.”

    “저희 경비대장님을? 실례지만 용건이…….”

    베르덴이 소개장을 꺼냈다.

    그 수신인에는 메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는 분께 개인적인 일로 소개를 받았습니다. 메딘에게 보여 주면 알 거라더군요. 그러니 불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소개장을 든 경비가 곧바로 건물 안쪽으로 향했다.

    잠시 후, 갈색 머리의 사내가 뛰쳐나오듯이 달려왔다. 그의 손에는 베르덴의 소개장이 쥐여 있었다.

    사내가 베르덴을 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애셔 님이십니까?”

    베르덴이 수긍하자 사내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저는 파이테 남작님의 조카, 메딘이라고 합니다. 푸른 구름 상단에서 경비대장을 맡고 있죠. 저희 삼촌께서 신세를 지셨다는 얘기를 소개장을 통해 들었습니다. 일단 바깥이 추우니, 차라도 한잔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시죠.”

    베르덴이 메딘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 * *

    끼익. 끼익.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낡은 판자가 비명을 질렀다. 복도뿐만이 아니라 건물이 전체적으로 낡아 있었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푸른 구름 상단의 핵심은 물류 운반. 대도시면 모를까, 사용 빈도가 낮은 광산 도시의 건물마저 인테리어에 돈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그럴 돈으로 마차 관리나 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다만 창피하긴 했다.

    하물며 가족의 은인에게 보이기는 말이다.

    메딘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죄송합니다. 이거, 빨리 보수를 해야 하는데…….”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베르덴의 관심은 경매장의 초청권에 향해 있었다.

    판자 소리가 어떻든 일절 관심이 없었다. 그걸 배려라고 생각한 메딘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메딘의 방에 들어간 두 사람이 서로 소파에 마주 앉았다.

    뒤이어 상단의 직원이 뜨거운 차를 가져왔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메딘이 베르덴을 바라봤다.

    “삼촌께서 그러시더군요. 애셔 님은 대단한 마법사라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분께서 이렇게 소개장을 써 주실 정도라면 분명히 대단한 분일 거라 생각이 되는데…… 실례지만 저에게 어떤 용건을 가지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대화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굳이 대화를 빙빙 돌릴 필요 없이, 베르덴은 담백하게 답했다.

    “경매장의 초청권이 필요합니다.”

    “아! 암흑가의 경매장 말이시군요.”

    메딘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이제 3개월 정도 남았으니 슬슬 수요자가 있을 때가 됐지요. 마침 저희 상단은 초청권 두 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본래 나머지 하나는 팔 생각이었는데…… 가족의 은인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하지만 소유권이 상단주에게 있어서 그냥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값은 지불하겠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메딘이 소파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떻게든 상단주께 잘 말씀드려보겠지만…… 대략 6천만에서 최대 1억 1천만 엘크까지는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일반적으로 시중에 풀리는 초청권은 개당 2억 언저리에 팔리니까요. 이 이하면 상단주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좋습니다. 가격이 책정되면 현금으로 드리죠.”

    베르덴이 즉답했다.

    메딘이 말한 금액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기도 하고.

    억 단위의 금액에도 일말의 주저함이 없는 결정에 메딘이 눈을 깜빡였다.

    “근데 언제쯤 거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예? 아, 예. 가능하면 빠르게 드리고 싶지만…… 잠시 후에 ‘손님’이 찾아올 예정이라 빨라도 내일이나 모레쯤 연락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낙 큰 거래라 상단주가 많이 예민하거든요. 근처 여관에 머물고 계시면 후에 꼭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하루에서 이틀이라.

    그 정도는 예상 범위 내였다.

    “알겠습니다.”

    베르덴이 메딘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섰다.

    해가 저무는 시간이라 노을빛이 도시에 가득했는데, 건물 앞에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노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점잖은 사내에게 메딘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상단주님.”

    “방금 왔네. 도중에 ‘조합’의 사람들과 만나서 말이야. 이제 식사를 하러 갈 예정인데, 옆에 있는 분은……?”

    “멀리서 저를 찾아오신 손님입니다. 나중에 말씀드릴 테니 우선 식당으로 가시죠. 모시겠습니다.”

    “으음, 그러지.”

    고개를 끄덕인 상단주가 노인과 함께 가도를 걸었다.

    바로 근처이기에 마차를 탈 필요도 없었다. 이어 한 쌍의 남녀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럼 애셔 님, 추후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사를 한 메딘도 상단주를 따라갔다.

    남겨진 베르덴은 비싼 여관을 찾아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면서 조합에서 왔다는 자들을 떠올렸다.

    얼굴에 검버섯이 피어난 노인. 그리고 젊은 남녀.

    베르덴이 주목한 건 그 남자와 여자였다. 그들에게서 마력이 느껴졌으니까. 예상하건대 대략 3위계. 베르덴에 비하면 낮은 경지이지만, 세간의 기준으로 따지면 기사에 필적하는 실력이란 건 분명하다.

    그런 마법사들을 개인 호위로 쓰다니.

    조합의 위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 모양이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베르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초청권.

    조합이든 뭐든 일절 관심이 없었다. 놈들이 방해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 * *

    날이 저물고 밤이 찾아왔다.

    식사를 끝낸 상단주와 노인은 푸른 구름 상단의 건물로 가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워낙 얘기가 잘 통한 터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방금까지는.

    쨍그랑.

    상단주가 놓친 컵이 바닥에 떨어졌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른 상회나 상단이 어떻게 반응하든 상관없이 마석을 끌어모으라고 말했습니다. 최하급부터 시작해 최상급 마석까지 말입니다.”

    “그, 그런 짓을 벌였다간 저희 상단은 끝장입니다! 그리고 이 건에 대해 이미 말씀을 드렸지 않습니까! 체드, 당신이 알겠다고도 했고!”

    “알겠다고만 했지, 받아들이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체드가 이죽거렸다.

    터무니없는 대답에 상단주의 손이 부들거렸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그러니까 조합은 저희 상단을 이용하고 버리겠다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대체 무슨 생각을…….”

    “맞습니다, 그 생각. 조합은 푸른 구름 상단을 이용해 마석을 모은 뒤 버릴 생각입니다. 효용 가치가 사라진 상단의 말로야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상단주는 체드의 태도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그렇게나 마석을 구하려는 건지, 왜 굳이 조합의 계획을 밝히는지 말이다. 상단주가 화를 삭이며 물었다.

    “……그걸 듣고도 제가 조합과 거래를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 말은 거절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쾅! 상단주가 책상을 내려쳤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체드. 그가 손가락을 들어 상단주를 가리켰다.

    “그럼 어쩔 수 없군.”

    <뼈바늘>

    푹.

    마법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뼛조각이 정확히 상단주의 심장에 박혔다. 서서히 옷에 피가 배어나며 심장에 발작이 일어났다.

    가슴팍을 움켜잡은 상단주가 책상 위로 요란스럽게 쓰러졌다.

    “꺼억…… 꺽…….”

    “나는 충분히 설득을 했네. 거절한 건 자네니 원망하지 말도록. 뭐, 사실 시체를 조종하는 편이 훨씬 편하지만 말이야.”

    체드의 말투는 상인의 것이 아니었다. 오만과 권위가 가득한 마법사의 위세였다.

    이윽고 상단주의 숨이 끊겼고, 체드가 그의 시체에 마력을 침투시켰다.

    “자네 상단은 내가 잘 써 주겠네.”

    <마리오네트>

    죽은 상단주가 몸을 일으켰다.

    * * *

    ────쿠당탕!

    “이게 무슨 소리지……?”

    자신의 방에 있던 메딘이 소리를 듣고 복도로 나갔다.

    밤이 늦은 터라 상단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이 건물에는 상단주와 메딘 그리고 조합에서 온 세 사람이 전부였다.

    끼익. 끼익.

    메딘이 상단주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체드와 상단주의 목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혹시 몰라 방문을 살짝 열어 몰래 안을 들여다봤다.

    둘은 식사를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행히 거래에 대한 문제가 잘 풀린 모양.

    ‘근데…… 이 기분은 뭐지?’

    분명 목소리도, 말투도 심지어 행동도 평소와 같았다.

    그런데도 상단주의 옆모습은 뭔가 달랐다. 심지어는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뭐라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어쨌든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메딘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고개를 돌리자 조합에서 나온 여성이 복도 중앙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가에 눈물 문신이 있는 기묘한 여자.

    그제서야 메딘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메딘에게 여성이 말했다.

    “들켰네?”

    “이런 제길……!”

    메딘이 재빨리 검을 뽑았지만, 그보다도 빨리 여자의 그림자에서 날카로운 쇠사슬이 튀어나와 그의 어깨를 베었다.

    난생처음 보는 마법.

    다행히 갑옷 덕분에 어깨가 뜯겨 나가지는 않았지만 이대로면 죽을 거라고 확신했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사고가 빠르게 가속되던 중.

    끼익.

    그 소리를 들은 메딘이 기를 끌어모아 바닥을 내리쳤다.

    콰아아앙!

    낡은 층이 무너져 내리며 메딘이 1층으로 떨어졌다.

    잔해에 얼굴이 긁혀 피가 흐르고, 도중에 검을 놓쳤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곧바로 창문을 부수고 아무도 없는, 마일드륀의 밤거리로 나가 전력으로 도망쳤다.

    ‘살았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섬뜩한 기분에 뒤를 돌아보니, 뼈로 이뤄진 무언가가 메딘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너무 빨라 소리를 지를 시간도 없었다.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거리. 이윽고 날카로운 뼈가 메딘의 다리를 베었다. 바닥을 구른 그가 필사적으로 기었으나 도망칠 수가 없었다.

    맞서려고도 했지만 곧이어 팔이 깊게 베였다. 메딘은 이길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더군다나 무기 없이는.

    점차 다가오는 괴물.

    두려움에 떨던 메딘이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살려 주세요!”

    생존 본능.

    창피함 따위 느낄 새도 없었다. 그는 살고 싶었기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밤거리는 여전히 고요했다.

    각박하지만 위험한 세상이기에 그러했다. 특히 이런 산골에 있는 마을에서는 말이다. 괜히 도우려다가 개죽음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타인을 구할 정도로 정의로운 기사는 여기 없었다. 어떤 위험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강자 또한 없었다.

    불과 어제까지는.

    <석벽>

    메딘에 앞에 솟아난 벽이 괴물의 일격을 막아 냈다.

    베르덴.

    그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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