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미스릴 모험가 파티 (1)
첫째, 오브(Orb)로 만든 스태프.
둘째, 마도왕의 무덤.
셋째, 경매장 초청장.
이렇게 현재 베르덴의 관심사는 총 3가지였다. 에스테리아 왕국에 온 이유이기도 하고. 목적을 상기한 베르덴이 페르네의 물음에 답했다.
“왕국에 ‘외수’라는 마법 물품 장인이 있다고 들었는데.”
“원하는 건 그에 대한 정보인가요, 아니면 소재인가요?”
“둘 다.”
페르네는 곧장 서랍을 뒤적거렸다.
그녀가 여태까지 모은 정보 중, 인물에 대한 정보가 담긴 서류를 집어 들었다. 케케묵은 먼지를 털고는 그 내용을 읽어 내렸다.
“외수 ‘라이너스 볼티모그’. 일단 성격으로는 젊었을 때부터 엄청 제멋대로였다고 해요. 돈이나 권력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면 제작을 맡지 않았어요. 게다가 전투 망치를 엄청나게 잘 다뤄서 백금 등급 모험가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특이한 건 무려 드워프 장인의 수제자 중 하나였다고 해요.”
“드워프?”
금속과 창작의 종족, 드워프.
키가 작은 편이고 마력을 다룰 수 없으나, 강인한 근력과 섬세한 손재주를 타고났다. 워낙 자존심이 높은 종족이라 타 종족과의 사이는 좋지 않다. 특히 그런 드워프를 노예로 써먹었던 인간과는.
현재는 대륙의 서남쪽에서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일이죠. 그런데 그런 30대 초반 무렵에 드워프 장인에게 파문을 당했다나 봐요. 아마 오른팔을 잃은 것도 그때였을 거예요. 단지 추측일 뿐이지만요. 명확한 이유도 모르고요. 하지만 이후에 엄청나게 훈련을 했는지 입이나 발을 이용해 부족한 팔을 대신했고, 그 이후로 세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외수라고 불리기 시작했죠.”
페르네가 다양한 재료가 적힌 목록을 건넸다.
“이건 외수가 다뤘던 재료들이에요. 그가 만든 장비들을 보고 기록한 거죠.”
기본적인 금속은 물론이고 미스릴과 다마스 강철 및 흑요석이나 오리칼큠, 데인스 강과 같은 최상위 금속까지. 거기다 사용한 아인종이나 이형종의 소재도 수백 가지가 넘었다.
이 정도라면 오브를 능히 다룰 수 있으리라.
“그런데 마지막으로 외수가 목격된 건 6년 전이에요. 이곳 왕국에서요.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잡혀 감금이라도 당했는지는 당장 알 순 없어요.”
“시간은 얼마나 걸리지?”
“확실히 말할 수는 없어요. 워낙 어려운 의뢰라…… 무엇보다 제 정보망을 되살리는 게 먼저인데 빌어먹을 조합이 문제예요. 놈들이 그토록 저를 밟아 놨는데, 제가 다시 정보상으로서 완전히 되살아난다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어쩌면 애셔 님이 없는 사이, 암살자가 제 목을 쓱싹해 버릴 수도 있죠.”
페르네가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왕국 전역을 뒤져 봐야 하는, 이런 큰 정보를 얻으려면 시간이 좀 걸려요. 가능한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고, 혹시 모르니 정보 교란도 해야 하니까요. 제 목숨을 지키려면 말이죠. 하지만 맡겨만 주시면, 아무것도 못 찾았다는 말은 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
페르네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급한 것도 아닌데, 섣불리 움직였다가 페르네가 죽으면 베르덴으로서도 곤란하니까.
“좋아, 맡기지. 그럼 다음으로 ‘유물’을 해석할 사람이 필요해.”
“유물이라면…… 어떤 건지 봐도 될까요?”
베르덴이 흔쾌히 유물을 넘겼다.
유물엔 조예가 없어 혼자 해석하는 건 불가능하니 조력자가 필요하다. 꽁꽁 숨기고 있는 건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페르네가 유물을 이리저리 구경했다.
“저도 유물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이건 되게 특이하네요. 이렇다 할 문양 같은 것도 없고. 마치 타원형 구조의 사파이어를 보는 것 같아요.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이거 정말 유물 맞아요? 장식품은 아니고요?”
“출처는 믿을 만해.”
“그런가요…… 일단 알겠어요. 유물 관련 전문가를 한번 찾아볼게요. 이거 일부분만 그림을 그려도 될까요?”
베르덴이 수긍했다.
페르네는 빈 종이를 꺼내 곧바로 유물을 그려 냈다. 상당한 그림 실력이었다.
“한창 페일 밑에서 심부름꾼 하고 있을 때 의뢰서 만드는 작업도 했었거든요. 정보상 중에 저만큼 글씨체나 그림체가 좋은 사람은 없을걸요? 자, 여기 유물이요. 그럼 정보는 이걸로…….”
“하나 더 있는데.”
“……네? 또요?”
엄청 어려운 의뢰 두 개에다가 하나 더?
“‘푸른 구름’이라는 상단의 일원인, 메딘이라는 사람의 소재가 필요해.”
“메딘…… 혹시 직책이 뭔지 아시나요?”
“호위로 활동하면서, 간부 역할을 맡고 있다더군.”
그러자 페르네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앞의 의뢰들보다 찾는 것은 훨씬 쉽네요. 아마 경비대장쯤 되는 사람일 테니, 이동 상단하고 같이 움직이고 있을 거예요. 몇몇 도시에 상단 건물이 있으니 그쪽을 통해 알아볼게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애셔 님이 의뢰를 해 주시면 더욱 빨리 찾을 수 있겠죠?”
페르네가 슬쩍 의뢰서를 몇 개 꺼냈다.
바제스처럼 억대의 보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천만 단위였다. 의뢰를 해결할수록 페르네의 정보망이 빠르게 재건될 것이다.
‘어차피 나도 돈을 벌 필요가 있으니.’
베르덴이 의뢰서 중 하나를 집었다.
물론 보수가 가장 높은 걸로.
* * *
베르덴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의뢰를 해치웠다.
슬론 숲에서 아인종의 소재를 얻거나, 현상 수배범을 잡거나. 공국과 비슷한 의뢰였으나 확실히 숫자로 따지면 왕국이 훨씬 많았다.
비행 금지령이 있기에 값비싼 군마를 하나 빌렸다.
강화된 감각 덕분에 승마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움직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모되지 않았다. 오히려 의뢰를 주선하는 페르네가 버거울 정도.
그렇게 나날이 돈이 쌓여 갔고, 페르네는 자신의 주점인 페르페르 주점의 영업까지 다시 재개했다. 물론 일할 종업원도 구했고.
하지만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멀었다.
더 큰 의뢰가 필요하다.
그리고 페르네는 바제스 이후로 보수가 높은 의뢰를 구해 왔다.
“이번엔 미스릴 등급 모험가 파티의 의뢰예요. 내용은 아인종 토벌이고요. 자세한 내용은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는데 어떠세요? 자리를 마련해 드릴까요?”
“신원은?”
“확실해요. 타국에서 왕국으로 들어온 모험가들인데, 모험가 활동에만 열중하는 파티예요. 정치적 관련이나 범죄 행위는 하나도 없는 데다가, 극히 드물게 평판도 매우 좋고요. 가끔씩 그레이에서 마법사를 구해 같이 토벌 의뢰를 맡은 적도 있어요. 적어도 뒤통수 맞을 일은 없을 거예요.”
공국과 달리 왕국의 그레이는 범위가 넓다.
용병과 모험가, 그 사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이런 의뢰도 비교적 흔한 편이었다.
그런 페르네의 정보를 믿고, 베르덴이 의뢰인을 직접 만났다. 페르네의 주점에서 베르덴은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와 마주했다.
“안녕하시오. 미스릴 등급 모험가 파티 ‘만하’의 리더, ‘스칼드’라고 하오.”
개인이 아닌 파티 단위의 등급.
그렇다 해도 미스릴 등급을 보는 건 베르덴도 처음이었다.
“애셔입니다.”
“최근 그레이에서 미친 듯이 의뢰를 처리하고 있는 마법사라고 들었소. 모험가 못지않게 아인종 토벌도 능숙하게 해낸다고. 거기다…… 바제스까지 처리하셨다고?”
베르덴은 부정하지 않고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스칼드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진짜인가 보군. 뭐, 그런 이유로 의뢰를 하러 왔소. ‘슬론의 깊은 숲’에서 포레스트 와이번 무리와 오우거의 상위종이 발생해서 말이오. 내일 당장 우리가 토벌을 맡기로 했는데, 마침 우리 쪽 마법사가 자리를 비우게 되어서…… 하아, 마탑 출신이라 그런지 여러모로 다루기 어렵다오.”
“마탑이라면…….”
“젠티르 마탑이오.”
젠티르 마탑.
다양한 원소 마법을 연구하는 보헤미른 마탑과 달리 물과 냉기에 특화된 마탑이다. 범위가 한정된 만큼, 마탑의 종사자만 배울 수 있는 전용 마법이 존재한다.
“갑자기 마법 연구를 한다면서 집에 틀어박혔소. 뭐, 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토벌 직전에 지랄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요.”
“그런데 굳이 제가 필요합니까?”
미스릴 등급인데.
스칼드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으면 걱정할 게 없다. 이게 내 모험가로서의 철칙이오. 방심했다간 죽는 일이 십상이니 말이오. 그리고 최근 슬론의 깊은 숲에서 아인종 출몰이 너무 많다오. 안일하게 나설 이유는 없는 것이지.”
정석적인 모험가다운 자세다. 이래서 미스릴 등급에 오른 건가.
베르덴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법사의 빈자리를 제가 채우면 되는 겁니까?”
“그렇소. 당신도 원소 마법이 주류라고 했으니 역할도 딱 맞고. 그렇다고 너무 손발을 맞출 필요는 없소. 애초에 그 마법사 친구도 제멋대로 움직였으니까. 그런데도 팀의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고 도움이 되긴 했지만…… 당신은 적당히 발만 맞춰 주면 되오. 아, 잔이 비었군. 여기 스카치위스키 하나 더!”
“네, 바로 갖다드릴게요!”
스칼드가 종업원에게서 위스키를 받아 들곤 단번에 들이켰다.
주량이 강한 건지 입가를 쓱 닫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보수는 괜찮게 주겠소. 여정은 약 2일에서 5일. 식사 제공. 포레스트 와이번, 우두머리 포함 8마리와 오우거 4마리 그리고 트윈 헤드 오우거 한 마리까지 기본급으로 4천만 엘크. 그 이상 넘어가면 와이번은 두당 200만 엘크, 오우거는 두당 300만 엘크로 주겠소.”
“보수가 꽤 세군요.”
“우리 쪽에 해체 전문가가 있소. 소재 하나하나 놓치지 않지. 시가로 쳐서 인원수에 맞게 배분하면 딱 그 정도 되오. 기타 자잘한 비용이 들긴 하나 그건 넘어가고, 더해서 그 외 아인종이나 이형종은 위험도가 오우거나 와이번에 근접한 정도면 보수로 쳐주겠소. 고블린 하나하나까지 보수로 책정할 순 없으니 말이오.”
합리적인 조건이다.
애써 협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미스릴 등급의 전투라. 오히려 돈을 주고서라도 보고 싶을 정도였다.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수락하겠습니다.”
“하하, 결정 한번 시원하시군! 그럼 같이 잘해 봅시다.”
스칼드가 잔을 내밀었고, 베르덴이 잔을 부딪쳤다.
* * *
이른 아침, 아세른의 성문.
약속 시간보다 일찍 모인 모험가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버민이 스칼드의 등을 팔꿈치로 툭 치며 감탄했다.
“이야, 용케 하루 만에 마법사를 구했네? 어떻게 한 거야?”
“흐흐. 이게 술의 마법이지.”
“그런데 누구야? 설마 어중이떠중이 데려온 건 아니지?”
궁수 루비나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스칼드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아니오. 아마 여기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걸? 애셔라고…….”
“애셔라면 그레이에서 활동하는 그 마법사 말이야? 바제스를 토벌했다는?”
“오, 그 이름은 저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성직자 케디언이 말했다.
“최근 아세른에서 떠오르는 인물이라더군요. 맡은 의뢰는 하루도 안 되어서 해결하고, 4위계 원소 마법사이면서 전격 계열 마법을 다룬다고 알고 있습니다.”
“고위 속성을?”
“전격 계열도 4위계라더군요.”
“진짜? 와, 그 정도면 바제스 죽일 만했네. 대체 어디서 온 거래?”
케디언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왕국은 아닐 테고…… 해외에서 온 거라면 공국에서 온 게 아닐까요? 그나마 가까우니.”
“그런가? 공국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모르겠네. 그나저나 스칼드, 그 애셔란 마법사는 어때? 설마 겔톤 같은 사람은 아니겠지?”
겔톤은 파티의 마법사다.
연구할 게 생겼다고 토벌 약속을 파투 내는. 그래도 막상 해야 할 때는 잘하기에 묵인하고 있었는데, 만약 그런 머저리 같은, 더해 독단적이고 초면인 마법사와 같이 움직이는 건 사절이었다.
“나도 어제 얼굴 본 게 전부라 뭐라 말은 못 하겠지만 꽤나 점잖더군. 꼬박꼬박 존댓말도 해 주고. 그리고…….”
“그리고?”
“외모가 훤칠했소. 마치…… 그래, 어릴 적 상상하던 마법사 같더군. 푸른 눈에서는 총기가 넘치고 말이오. 내가 판단하기엔 보기 드물게 좋은 마법사 같소. 실력은 봐야겠지만.”
예상치 못한 스칼드의 고평가.
팀원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기며 기대감을 품었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잠시 후, 약속 시간이 가까워지며 베르덴이 나타났다.
“오…….”
스칼드가 말했던 것 이상의 분위기에 스칼드를 제외한 팀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조금 늦었습니다.”
“늦긴 무슨! 아직 약속 시간도 안 되었는데. 자 자, 우리 팀원들과 인사부터 하시오.”
베르덴이 모험가들과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기본적인 팀의 역할과 진형에 대해 간략하게 전달받았다.
“벌써 외우셨소? 마법사답게 머리가 좋으시군. 그럼 준비됐으면 출발하겠소.”
베르덴과 스칼드 일행이 성문을 걸어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