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98화 (98/366)
  • 98화 간단한 의뢰 (1)

    베르덴은 조용히 페르네의 얘기를 들었다.

    작금의 정보상의 상황이나 무리하게 운영하다 빚더미에 앉은 것. 의뢰든 뭐든 다 빼앗겨 할 수 있는 일거리가 거의 없는 것까지.

    그리니까 종합하자면.

    “정보상이 망했다는 겁니까?”

    “말씀 놓으세요! 그리고 망한 건 아니고 망하기 거의 직전…… 이죠. 하하…….”

    페르네가 눈을 아래로 깔았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지 핼쑥한 얼굴. 코헨의 지하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던 페일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 그래도 금방 재건할 수 있어요! 기회만 있다면 제 정보망도 다시 구축할 수 있고, 돈 많은 의뢰주도 구할 수 있어요!”

    “그 기회는 어디서?”

    “당연히 애셔 님이죠…….”

    페르네가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에 베르덴이 턱을 쓸었다.

    ‘이걸 믿어야 되나?’

    베르덴은 페르네란 정보상에게 회의적이었다.

    망해 놓고 실력이 있다니. 뭐, 페일의 밑에서 일했던 사람이니 실력은 있겠다만…… 솔직히 말해 여기가 재건되길 기다리는 것보다 다른 정보상을 찾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베르덴이 말이 없자, 페르네가 서둘러 그를 붙잡았다.

    “저는 정보상으로서 실력이 있다고 자부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정보상은 실력만 있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죠, 더군다나 왕국에선. 귀족이든, 거상이든, 부유층이든 후원자를 두고 정보상을 하니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아예 정보상들을 영입해서 조합을 만들었다니까요?”

    “왜 조합에 안 들어간 거지?”

    “저는 꼭두각시가 될 생각이 없거든요.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저를 괴롭힐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다시 정보상을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한다면 다시는 그런 수모를 겪지 않을 거예요.”

    정보상으로서의 자부심이라는 건가.

    베르덴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굳이 페르네의 능력을 이용할 이유는 페일이 추천해 줬다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

    다른 메리트가 필요하다.

    “당신을 도와주면 내게 뭘 줄 거지?”

    “정보상으로서의 전부요.”

    페르네가 주먹을 쥐었다.

    “정보를 달라고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정보를 구해 줄 것이고, 의뢰가 필요하다면 최고의 의뢰를 주선해 주겠어요. 돈은 인건비만 받을 게요. 인프라만 재건해 준다면 제 능력을 전부 드리겠어요.”

    즉, 베르덴의 전속 정보상이 되겠다는 뜻.

    괜찮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이거라면 한번 키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잠깐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있겠어.’

    기회를 살린다면 정보상으로 쓰겠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가차 없이 버릴 생각이다. 동정 따위 필요 없다. 이건 전적으로 페르네의 실력에 달려 있다.

    베르덴이 말했다.

    “의뢰 좀 보지.”

    페르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 * *

    “여기 지금 제가 연결해 드릴 수 있는 의뢰 전부예요!”

    페르네가 의뢰 서류를 전부 가지고 나왔다.

    그래 봤자 몇 장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여러 정보상에 마구잡이로 뿌린 거나,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는 의뢰들뿐이었다.

    “그래도 아인종의 부산물은 수입이 꽤 괜찮아요. 아세른 근처에 있는 ‘슬론 숲’에는 아인종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거든요. 어떠세요?”

    시작으론 나쁘지 않다. 어디까지나 페르네에겐.

    하지만 베르덴에겐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보수였다.

    좀 더 큰 게 필요했다. 단번에 페르네의 기반을 마련하면서도 베르덴에게도 이득이 되는 의뢰가.

    “…….”

    의뢰들을 쭈욱 훑어봤다.

    여러 범죄에 관련된 의뢰가 상당수인데 베르덴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붉은색으로 표시된 의뢰서가 눈에 띄었다.

    용병단 ‘바제스의 철퇴’ 토벌.

    보수는 무려 1억 1천만 엘크. 다른 의뢰들과는 자릿수가 다른 액수였다.

    “이건 어떻지?”

    “이, 이거요? 보수는 엄청나긴 하지만…… 이건 아무도 안 해요. 아니,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바제스의 철퇴는 용병 길드에 소속된 용병단이자 악질적인 도적단이기도 했다.

    오직 돈으로 고용되어 잔혹하게 의뢰를 수행한다.

    줏대가 없어 이리 붙고 저리 붙고 하지만 워낙 잔혹해서 섣불리 건드는 사람이 없었다. 괜히 그랬다가 잘못 걸리면 죽을 테니까.

    “아세른에서도 애써 쉬쉬하는 망나니예요. 용병 길드와 각종 연줄에 돈을 발라서 잡히지도 않고요. 바제스의 철퇴는 용병단의 탈을 쓴, 법을 벗어난 살인자 집단 그 자체예요. 이 의뢰를 받는 건 벌집을 건드리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럼 의뢰주는 누구지?”

    “이건 바제스에게 당한 사람들이 돈을 모아 의뢰한 거예요. 당연히 다른 정보상이 받아 줄 리가 없으니 떠넘기고 떠넘기다 보니까 저에게 온 거죠.”

    다른 의뢰주도 있었고 또 그 의뢰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전부 죽었다. 그렇게 죽은 사람만 두 자릿수를 넘어간다. 그리고 바제스는 의뢰한 사람마저 기어코 찾아내 살해했고, 그 시체를 거리에 대놓고 전시했다.

    위험도만 따지면, 바제스는 아세른 주변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였다.

    “제가 알기로는 곧 왕국의 암흑가인 ‘로아프라’로 간다고 들었어요. 체급을 키웠으니 무대를 넓히겠다는 거겠죠. 그러니까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건드리는 건 좋지 않다고 봐요.”

    페르네가 베르덴을 바라봤다.

    그녀는 바제스를 본 적이 있었다. 무지막지한 근육으로 휘두르는 철퇴. 골목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날리던 전직 금 등급 모험가도 한 방에 몸이 터져 죽었다.

    ‘페일이 2등급이라고 하긴 했지만 리스크가 높아.’

    괜히 현상금…… 아니, 보수가 1억에 달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실패했을 경우 페르네도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베르덴은 달랐다.

    “용병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데 죽여도 문제는 없나?”

    “예? 아, 그건 상관없어요. 그쪽에서도 바제스는 눈엣가시거든요. 뇌물은 받았지만.”

    그 대답에 베르덴이 의뢰서에 서명을 했다.

    “위치가 어디지?”

    “어, 어? 잠깐, 진짜 이걸 하려고요?!”

    베르덴이 수긍했다.

    그 자신감에 페르네는 할 말을 잃었다. 막을 방법도 없었고.

    결국 페르네는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용병단과 함께 슬론 숲에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로 다시 생각…….”

    “저녁쯤에 다시 오지.”

    페르네의 만류를 무시하고 베르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점을 나서는 그의 푸른 눈동자에서 순수한 마력의 빛이 명멸했다.

    * * *

    바제스는 스스로를 왕이 될 재목으로 여겼다.

    당연히 에스티리아 왕가에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말은 아니다. 왕국의 암흑가를 지배할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뜻이었다.

    누군가는 바제스를 우물 안 개구리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의 그는 자신이 만든 요새 안에선 정점이었다.

    슬론 숲 길목 근처에 있는 동굴.

    바제스는 그 깊숙한 곳에서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누인 채 독한 술을 연거푸 목 안에 처넣었다.

    “크으. 그래, 이 맛이지.”

    이게 술이지. 이게 인생이지.

    바제스의 얼굴엔 흉악한 미소가 가득했다.

    ‘요새 일이 너무 잘 풀리는군. 아주 좋아, 좋고말고.’

    명실공히 아세른의 거물 취급을 받는 바제스는 고작 2년 사이에 개인 수익으로 무려 수억 엘크를 벌어들였다.

    의뢰를 통해 얻기도 했고, 마음에 안 드는 놈들에게서 빼앗기도 했었다. 또는 자신을 죽이려고 한 버러지들에게서 강탈하기도 했었고.

    적당히 사치를 부리면 시골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금액.

    하지만 그 정도로는 바제스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돈이었다.

    수억 엘크는 투자금에 불과했다.

    “어이, 빈치스! 내 편지는 제대로 전달했겠지?”

    “물론이죠, 바제스 단장. 곧 ‘빈테르트(Vintert)’에게서 연락이 올 겁니다.”

    빈테르트.

    왕국의 암흑가 로아프라를 지배하는 최대의 조직. 일반적으로 외부인이 그곳에 들어가려면 막대한 돈을 바쳐야 한다.

    바제스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전 재산을 몽땅 갖다 바쳤다.

    ‘조금 아깝기는 하다만 뭐, 금방 되찾을 수 있겠지. 나라면 빈테르트에서 금방 간부 자리를 꿰찰 수 있을 테니까.’

    이건 도움닫기일 뿐이다.

    확신하건대 곧 바제스란 이름이 전 암흑가에 울려 퍼지며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질 것이다.

    그 상상만으로 살인을 하는 듯한 쾌락이 느껴졌다. 바제스가 히죽거렸다. 빈테르트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그때, 다급한 발소리가 동굴 내부에 울려 퍼졌다.

    “바, 바제스 님! 비상입니다, 비상!”

    “뭐야 또?”

    “누가 동굴에 쳐들어왔습니다! 어,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으나 너무 강해서……!”

    또 누가 의뢰를 했나 보군.

    바제스는 귀찮다는 듯 다시 눈을 감았다.

    “케벤에게 말해라. 걔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그…… 케벤 님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케벤이 죽었다고?”

    바제스가 몸을 일으켰다.

    케벤은 엄연히 용병단의 3인자다. 실력 또한 마찬가지. 단검으로 상대의 급소만을 노리는 기민한 움직임은 확실한 장점이었다.

    물론 바제스보다 훨씬 약하긴 하지만 어지간한 상대는 대처가 가능할 터.

    ‘이것 봐라?’

    아무래도 이번엔 꽤나 강한 놈이 찾아온 모양이다.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차에 나쁘지 않겠군. 자리에서 일어난 바제스는 구석에 있던 거대한 철퇴를 한 손으로 들었다.

    “그 새끼 어딨어?”

    * * *

    베르덴이 바제스의 은신처를 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숨을 생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연이어 마력감지를 펼치며 움직이자, 얼마 되지 않아 찾아내는 데 성공했으니.

    비행을 쓰던 베르덴이 투명화를 해제하며 두터운 목책 앞에 내려갔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용병 두 명이 허둥지둥하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뭐, 뭐야?! 갑자기!”

    “바제스는 안에 있나?”

    “단장님은 무슨 일로…….”

    안에 있군.

    콰아아앙!

    베르덴은 오큘러스를 꺼내 그대로 용병들과 함께 입구를 날려 버렸다. 난데없이 터진 폭음에 용병들이 몰려들었다.

    악명 높은 용병단답게 꽤나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베르덴의 시선이 작은 요새를 훑었다.

    구석에 온갖 고문을 당한 시체 몇 구가 널브러져 있었다.

    ‘바제스는 없나.’

    저 동굴 안에 있는 건가?

    직접 들어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페르네의 말마따나 상대는 용병단의 탈을 쓴 살인자 집단.

    생포해 봤자 소용없다. 만약 뇌물을 주고 풀리기라도 한다면 귀찮아지니까. 애써 후환을 남기는 건 멍청한 판단이었다.

    뭐, 새로운 장비들을 시험하기 좋은 무대다.

    베르덴은 부여 마법만을 시전하고 오큘러스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죽이지 말고 잡아! 팔다리만 끊어라!”

    누군가의 목소리에 용병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그러나 누구도 베르덴의 감각을 피하지는 못했다. 현란하게 회전하는 오큘러스. 그 끝에서 터져 나온 충격파가 이곳 작은 요새를 휩쓸었다.

    그때, 단검을 든 용병 하나가 잽싸게 베르덴의 뒷목을 노렸다.

    상당한 속도였으나 이미 간파했다. 베르덴이 허리를 비틀어 오큘러스로 용병의 옆구리를 강타하자, 그 충격파에 용병이 날아가더니 목책을 박살 냈다.

    운 나쁘게 나무 파편이 목에 박힌 놈은 곧 축 늘어졌다.

    얼마 안 가 용병단이 전멸했다.

    ‘이제 좀 몸이 풀리는군.’

    가볍게 어깨와 목을 푼 베르덴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동굴 중앙에서 근육질의 거한과 남은 용병들을 마주쳤다.

    바제스가 베르덴을 보며 코웃음 쳤다.

    “이 근방에서 못 보던 놈인데. 여긴 무슨 볼일이지? 내 목이라도 따러 왔나? 벌서 여섯 번인가 일곱 번째인 것 같은데 질리지도 않는 건지, 원……. 이번엔 얼마 준다고 하디?”

    “1억.”

    정확히는 1억 1천만.

    “1억? 거참, 어떤 새끼인지는 몰라도 거하게 걸었군. 뭐, 나야 좋지만.”

    바제스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사냥꾼을 역으로 사냥하는 것. 그건 더할 나위 없는 오락이었다. 그리고 의뢰주가 1억을 걸었으니, 놈인지 놈들인지 몰라도 찾아낸다면 1억을 그대로 빼앗을 수 있다는 뜻.

    “의뢰를 주선한 정보상이 누구냐?”

    “그게 왜 궁금하지?”

    “그야 네놈을 죽이고 찾아가 본보기를 보여야 하니까. 감히 이 몸을 건든 대가는 치러야지.”

    후웅!

    바제스가 철퇴를 가볍게 휘둘렀다. 무게가 상당한 모양인지 바람이 일었다.

    “빈치스, 가서 저놈 팔다리만 잘라 와라. 내 부하들을 쉽게 처리했으니 방심은 하지 말고.”

    “예예, 바제스 단장.”

    바제스의 최측근이자 용병단의 2인자, 빈치스.

    그가 구불거리는 도신을 가진, 기이한 검을 빙빙 돌리며 베르덴에게 달려들었다. 기세 좋은 움직임.

    하나 정면을 선택한 빈치스의 악수였다.

    콰앙!

    “억?!”

    충격파에 의해 빈치스가 뒤로 날아갔다.

    깜짝 놀란 바제스가 반사적으로 철퇴로 후려치자, 지면에 부딪힌 빈치스는 그대로 목이 부러져 사망했다.

    최측근의 허무한 죽음에 바제스가 입맛을 다셨다.

    “……그 스태프, 마법 물품인가? 꽤나 비싸 보이는데.”

    “확실히 너의 목보단 비싸지.”

    베르덴의 말에 바제스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리고 이내 입가를 비틀었다.

    “적당히 팔다리만 부술 생각이었는데 그 주둥아리만 남겨야겠군.”

    바제스가 기운을 끌어 올렸다.

    양손으로 철퇴를 붙잡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와 동시에 베르덴도 오큘러스에 마력을 집중했다.

    “뒈져라아아아아!”

    이윽고 바제스의 철퇴가 낙하했다.

    베르덴은 전혀 피할 생각이 없다는 듯 스태프를 휘둘렀고 이내 서로가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앙!

    막대한 충격이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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