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94화 (94/366)
  • 94화 갖가지 보상 (2)

    ★ 삼원색의 중심

    ⦁ 혼돈(混沌) 부여

    세 종류 이상의 원소의 합성과 정반대의 속성도 결합할 수 있는 효과를 지닌 혼돈. 감정을 마친 베르덴이 아티팩트를 착용했다.

    기묘한 감각이 마력회로를 휘감았다.

    ‘설마 아티팩트를 받을 줄이야.’

    지금도 믿기 어려웠다.

    그만큼 공왕에겐 이번 일이 중요했다는 뜻이겠지. 그 심정은 어렴풋이 이해가 가나 베르덴이 깊게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아티팩트에다가 룬 무기라.

    굳이 보상을 바라고 한 건 아니었으나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하는 걸 이렇게 둘이나 얻게 되다니.

    공국에 온 지 고작 1년도 되지 않은 사이에 너무 많은 걸 얻었다.

    베르덴은 잠시 후작가의 별장을 떠나 넓은 초원을 찾았다.

    새로운 장비를 얻었으니 당연히 시험해 볼 수밖에. 우선 오큘러스라 불리는 스태프부터였다.

    마력을 집중했다.

    하늘색 크리스털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막이 형성되었다. 그대로 휘두르자 충격파가 터지며 허공을 강타했다.

    고등 룬 문자라 그런지, 가볍게 다뤘음에도 2위계 마법인 충격파보다도 위력이 높다.

    그렇다면 최대 위력은 어떨까.

    베르덴이 오큘러스가 허용하는 한계치까지 마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크리스탈이 울리며 베르덴의 마력회로와 공명했다.

    양손으로 스태프를 잡고 앞으로 내질렀다.

    ─────콰과과과!

    순간 대기가 일그러지며 일직선으로 지면이 깊게 파였다.

    엉망이 된 초원을 바라보며 베르덴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생각 이상인데.”

    단순히 위력만 따지자면 5위계 중위 마법에 필적한다. 그러면서도 착용자인 베르덴에겐 어떠한 충격도 전해지지 않았다.

    마안의 적용 범위 밖이라 시간이 오래 걸려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만족한다.

    오큘러스 하나만으로 베르덴의 근접전은 전보다도 두 단계 이상 오른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다음은 삼원색의 중심인가.’

    이건 오큘러스와 달리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공왕이 경고했던 대로 세 속성 이상의 원소를 합성하는 것과 반대되는 속성을 결합하는 건 위험한 일이니.

    ‘아티팩트를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가장 낮은 위계인 1위계부터 천천히.

    그래야 혹여 실패한다 해도 충격을 줄일 수 있을 테니.

    매개체가 될 대지 화살을 시전했다.

    그리고 작은 화염을 덧씌웠다. 여기까지는 기본적인 합성 마법이다. 그리고 친화적인 속성인 바람 마법을 곁들였다.

    그 순간.

    콰앙!

    폭발이 베르덴을 덮쳤다.

    곧바로 염동력으로 막을 둘러 충격을 분산했다.

    명확한 실패다.

    하지만 베르덴은 그 과정 속에서 힌트를 찾아냈다. 그동안 쌓아 온 마법 이론과 마법 실험 등에서 얻은, 본능에 가까운 깨달음이었다.

    ‘원소는 서로 퍼즐처럼 맞물리지 않는다.’

    그것이 기본적인 바탕이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원소와 원소 마법은 다르다.

    예를 들어 낙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벼락은 물리력이 없으나, 마력으로 만들어진 벼락은 물리력을 동반한다.

    원소 마법은 마력이라는 요인이 있기에 보다 다채로워질 수 있다.

    합성 마법이 존재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현상을 마력을 조작해 가능케 하는 것이다. 불꽃을 품은 벼락이나, 얼음 속성을 띤 뇌격처럼.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지.’

    원소 마법 간의 상성.

    화염은 물 또는 얼음과 합성될 수 없으며, 번개는 대지에 깃들 수 없다. 그것이 세계의 법칙이었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마력 이외의 또 다른 외부 요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삼원색의 중심은 어떠한 작용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애초에 아티팩트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

    그걸 깨닫는 순간, 베르덴의 뇌리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래, 이것밖에 없었다.

    베르덴이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잠시 후, 베르덴의 손끝에는 반투명한 화살이 만들어져 있었다. 지면을 향해 쏘아 보내자, 순식간에 화살이 깊게 박히며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염의 열기.

    대지의 단단함.

    바람의 자유로움.

    실체는 없으나 충격이 존재하며 불꽃을 품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할 수 없는 마법. 그야말로 혼돈(混沌) 그 자체. 베르덴은 이제야 아티팩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단순히 원소를 합성하는 게 아니다. 각 원소 마법의 특징을 추출해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 내는 거지.’

    애초에 전제가 틀렸으니 실패할 수밖에.

    대부분의 마법사라면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통상적인 마법사의 뇌리에 마법을 분해하여 조립한다는 창의력이 있을 리가 없을 테니. 분명 상상조차 하지 못했겠지.’

    대체 누가 이런 아티팩트를 만든 건지.

    분명 베르덴 이상으로 사고가 유연한 제작사일 것이다. 아니면 단순히 미치광이거나.

    “후우…….”

    베르덴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의 연산 능력으로도 각 마법의 특징을 추출하고 조립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력회로도 꽤나 피로해졌다.

    익숙할 정도로 훈련하지 않으면 실전에서 사용하는 건 꿈도 못 꾸겠지

    그래도 크나큰 성과임은 분명하다.

    잘만 한다면 성신 마법인 유성과 혜성을 제외한 비장의 수단이 더 늘게 될 테니까.

    ‘이제 5위계에 오르기만 하면 되겠군.’

    베르덴이 별장으로 돌아갔다.

    좀 더 삼원색의 중심과 오큘러스에 대한 실험을 하고서, 며칠 뒤에 코헨으로 떠날 계획이었다.

    ‘그 전에 로든마이어 백작에게 들러야겠어.’

    베르덴이 간단히 편지를 써서 백작가에 보냈다. 답장은 받지 않았다. 만약 본인이 저택에 없거나 또는 방문을 거절한다면 기사들이 출입을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 해도 어차피 가는 길이라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 * *

    그렇게 백작의 영지에 도달하자, 기사들이 곧바로 문을 열어 주었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자 문이 거칠게 열리며 백작이 나타났다.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

    백작이 달려오더니 다급하게 물었다.

    “애셔! 가드란 후작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장 말해라!”

    * * *

    무슨 일이 있었냐라.

    베르덴은 순순히 설명했다. 방주에서 각색한 내용을 그대로 읊자, 백작이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

    이?

    “이런 미친놈이!”

    백작이 소리쳤다.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연이어 욕을 내뱉었다.

    “내가 의뢰한 실종을 해결하려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쾅!

    “너는 미친 마법사가 분명해!”

    백작이 숨을 몰아쉬었다.

    사용인이 가져다준 차가운 음료를 단번에 들이켜고는 심호흡을 했다. 겨우 격정을 가라앉힌 백작이 가늘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럼 뭐 하나만 더 묻지. 도중에 라비슈른 후작가가 개입해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

    “라비슈른 후작가와는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런가? 그럼 라비슈른 후작가에서 가드란 후작과 루펠을 처리한 건가? 그렇겠지?”

    “가드란 후작은 라비슈른 후작이 직접 처리했습니다.”

    “……루펠은?”

    “제가 직접…….”

    “뭐?”

    백작이 눈을 깜빡였다.

    “제3중앙기사단의 단장인 루펠을 직접 죽였다고?”

    베르덴이 수긍했다.

    아, 순간 정신이 아득해진 백작이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페일을 통해 베르덴에게 의뢰한 건 로든마이어 백작 본인이다.

    그것이 눈덩이처럼 커져 후작가까지 닿을 줄이야. 아니, 닿은 수준이 아니라 후작가가 멸망했다.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곤 로든마이어 백작조차 꿈도 꾸지 못했다.

    “이런 맙소사…….”

    백작이 탄식했다.

    아무리 명분이 있다고 하지만 자신의 의뢰를 맡은 마법사가 후작가의 자제를 죽이다니. 다행히 라비슈른 후작가가 개입한 덕분에 왕성에서 납득한 모양이지만 정말로 위험했다.

    마석 갱도? 은광?

    그딴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자칫 오해를 받았으면 후작가를 암살한 흉수로 지목받아 처형될 수도 있었다. 로든마이어 백작가와 관련된 자들 전부!

    백작이 서늘해진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다시금 심호흡을 하며 잡념을 쏟아 냈다. 겨우 본래의 무감정한 표정을 되찾는 백작을 보며 베르덴이 생각했다.

    ‘그 정도까지 걱정할 건 아니라고 보는데.’

    가드란 후작가가 벌인 짓은 덮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특히나 왕성의 권력이 강력한 공국에서는.

    추산된 피해자만 천이 넘고 백작의 기사단과 백작까지 살해했으니 설령 가드란 후작이 살아 있다고 해도 처형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공왕의 친우라고 하지만, 공왕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단순히 친분 때문에 감형할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베르덴의 의뢰주인 로든마이어 백작이 공왕에게 치하를 받을 만한 사안이다.

    그래도 백작의 반응이 이해가 되긴 한다.

    후작가의 멸문에 백작 본인이 조금이라도 관련되었다는 게 부담이 큰 거겠지.

    ‘페일도 같은 반응이려나?’

    백작에게 의뢰를 받아 베르덴에게 주선한 사람은 페일이다.

    어쩌면 백작 이상으로 정신이 아찔했을 수도 있다. 페일은 귀족도 아닌 정보상이니까. 어떤 면에서는 백작보다 부담이 클지도.

    뭐, 어쨌든 그건 그거고.

    “보수는 어떻게 주실 겁니까?”

    “……너는 보수가 지금 눈에 들어오나?”

    “그게 제 일입니다.”

    “하아…….”

    백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보수에 대해 생각했다. 본래라면 계약서에 적힌 금액에 대해 지불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 건 너무 이례적이다.

    의뢰를 위해 후작가와 단신으로 맞붙었다. 고작 1, 2억 엘크로 퉁칠 게 아니었다. 합당하다 해도 백작 자신이 탐탁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군.’

    보수를 어떻게 줘야 할까.

    돈으로 주기엔 가용할 현금이 부족하다. 이미 다음 해의 예산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했다. 금이나 보석…… 아니, 돈의 가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다 문득 백작의 시야에 베르덴의 단검이 들어왔다.

    항상 허리춤에 차고 있는 싸구려 단검집이 비어 있었다.

    ‘그래, 그걸 주면 되겠군.’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자신의 방에서 단검 하나를 들고 왔다.

    검은색 가죽 검집.

    단검을 뽑자 흑색에 가까운 회색 도신이 드러났다.

    “이건 다마스 강철 기반으로 만든 단검이다. 거기에 미스릴 13%, 오리칼큠 0.6%가 첨가되었지. 별다른 마법적 효과는 없으나, 강철 갑옷이나 마력 보호막조차 관통할 정도로 예리하고, 웬만큼 험하게 다뤄도 부러지지 않는다. 적당히 염동력을 활용하면 꽤나 좋은 공격 수단이 되겠지.”

    베르덴이 단검을 건네받았다.

    손가락으로 도신을 톡톡 두들겼다. 맑은 금속의 울림이 느껴졌다.

    “계약서에 적힌 보수보다 가치가 훨씬 높은 것 같군요.”

    “당연하지. 몇 그램 안 되긴 하지만 무려 오리칼큠이 들어간 단검이니. 실종 사건의 범인을 찾으라고 했더니, 후작가를 들이받는 너에겐 적당한 보수일 터. 설마 마음에 안 드는 거냐?”

    “아뇨, 좋습니다.”

    돈이 필요하긴 하나 단검이 더 좋다.

    마침 다목적으로 사용하던 단검이 망가지기도 했으니. 베르덴은 흔쾌히 단검을 받았다.

    “받았으면 그만 가라. 머리 좀 식히게.”

    * * *

    베르덴은 코헨으로 돌아왔다.

    별로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는데, 이 삭막한 거리가 꽤나 오랜만인 듯 느껴졌다.

    아직 날은 밝았다.

    장기로 빌린, 꿀벌의 쉼터의 여관방에 들어가기 전에 페일에게 향했다.

    베르덴과 마주한 페일.

    예상대로 로든마이어 백작처럼, 아니 백작보다도 피폐한 얼굴이었다. 머리카락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죽어 가는 몰골.

    그가 피로에 찌들어 보이는 눈가를 문질렀다.

    “……이렇게 잠을 설친 건 근 10년 만에 처음이군요.”

    “로든마이어 백작도 그렇더군.”

    “…….”

    페일이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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