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93화 (93/366)

93화 갖가지 보상 (1)

‘설마 2왕자였다니.’

라비슈른 후작가와 2왕자.

공국에 대한, 방주의 정보망이 어떻게 그리 뛰어났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베르덴이 2왕자의 손을 마주 잡았다.

가볍게 악수를 하고는 2왕자가 방긋 웃었다.

“루아스교의 진찰을 거부하셨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상처는 전부 회복하신 모양이시군요. 출혈이 꽤 있었던 것 같았는데.”

확실히 꽤 깊긴 했다.

당시 허벅지의 근육이 끊어지고, 마안도 과사용한 터라 정신이 어지러웠을 정도니. 그래도 곧바로 활력제와 포션을 복용한 덕에 후유증은 전혀 없었다. 거기다 리커버리 팔찌로 지속적으로 회복하기도 했고.

라비슈른 후작이 루아스교의 사제를 데려와 치료해 준다고 했으나 거절했다.

‘함부로 남에게 몸을 보일 순 없지.’

베르덴의 몸에는 여전히 역천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다.

모르는 사람에겐 그저 문신 같은 걸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마법진이라고 단박에 알아챌 것이다.

육체에 직접 새겨진 마법진.

그 뜻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다름 아닌 마법사 본인의 신체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것이니. 거기다 베르덴이 창조한 역천의 마법진은 마력회로를 인위적으로 건드는 금기에 해당된다.

만에 하나 바깥으로 이야기가 새어 나가는 건 좋지 않다.

‘어차피 내 몸은 멀쩡하다.’

룬의 반지, 엑시드로 강화된 감각.

베르덴은 누구보다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베르덴이 답했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공간가방에서 꺼낸 이면의 그림자. 전에 글러트니에게서 빼앗은 공국의 비보였다.

혹시나 글러트니의 송곳니가 나오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해서 가지고 있었다.

이면의 그림자라면 글러트니가 남긴 흔적을 따라 추적을 이어 갈 수 있을 테니. 뭐, 결국 쓸 기회는 오지 않았지만.

2왕자가 조심히 등불을 건네받았다.

“글러트니 토벌도 모자라 공국의 비보까지…… 당신이 없었다면 공국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후작?”

“그렇습니다, 저하.”

라비슈른 후작이 베르덴에게 고개를 향했다.

“애셔, 자네를 부른 건 글러트니의 송곳니를 토벌한 이후의 상황을 말해 주기 위해서네. 그리고 겸사겸사 자네에게 줄 선물도 있고.”

선물?

“……그쪽이 더 궁금한가 보군. 좋아, 먼저 이것부터 전달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지.”

후작이 녹색 장갑 한 짝을 꺼냈다.

“마수 카멜리오스의 가죽으로 만든 장갑이네. 착용하면 피부의 색과 동화되어 겉으로 보면 맨손이나 다름없어지지. 착용감 면에서도 그렇고. 워낙 질겨서 강철 검을 맨손으로 잡아도 멀쩡할 걸세. 물론 검기를 둘러싼 칼날을 잡는다면…… 음, 손가락이 멀쩡할 거라고 장담은 하지 못하겠군.”

베르덴이 장갑을 착용했다.

손을 쥐락펴락하자 이내 녹색이 살구색으로 물들었다. 피부에 쫙 달라붙어서 그런지 촉감은 멀쩡하게 느껴졌다.

‘느낌이 괜찮은데.’

이거라면 스태프를 다루는 데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감사는 내가 아닌 렌 발하그 장로께 하게. 로크를 구해 준 보답으로 주신 것이니.”

음, 보답이라.

딱히 구해 줬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공국의 현 상황에 대해 말해 주지. 뭐, 이건 자네도 짐작하고 있을 거야. 가능한 충격을 줄이려고 대비는 했다만 왕성이 발칵 뒤집혔지.”

하루아침에 공국의 기둥이 무너졌다.

이 사실은 후작가의 사용인을 비롯해, 후작가 휘하에 있던 영지의 귀족들마저 왕성의 기사단들이 들이닥치고 나서야 인지했다.

가드란 후작과 그 아들인 루펠.

글러트니에 대한 건 완전히 배제하고, 납치와 살해, 인신매매 그리고 다비르크 백작의 살해 등 바깥으로 드러난 죄에 대해서만 알렸다.

그리고 체포하려 했으나 완강히 저항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처형했다고.

베르덴이 물었다.

“왕성이 그걸로 납득하겠습니까?”

“아니, 당연히 아니지. 루펠의 친구였던 내 아들도 아직 믿지 못하고 있는데 공왕 전하는 오죽하시겠나? 결코 납득할 리가 없지. 오랜 친우인 가드란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믿으셨으니까. 나도 그랬듯이…… 그래서 공왕 전하께는 이렇게 말했지. 가드란이 저지른 악행은 모두 병약했던 루펠을 위해서 그런 거라고.”

사람들을 제물로 삼아 생명을 유지하는 것.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다. 실제로 고위 흑마법에도 있었고, 이형종 중 하나인 악마에게서도 볼 수 있었으니.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자 공왕 또한 결국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일부 사실이기도 했고.

“물론 이 사실이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는 않을 거다. 공국이 혼란스러워지는 건 차치하고, 자칫 루아스교에서 문제 삼는다면 사태는 공국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질 테니.”

“일이 이 정도에서 끝난 건 전부 애셔 님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직접 당신을 만나러 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유라면…….”

“글러트니의 송곳니를 토벌함으로써 공국의 글러트니를 거의 완전히 제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무리 당신이 자의적으로 행한 일이긴 하나 그렇다고 결과가 퇴색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공국의 비보를 회수하기까지. 단적으로 말해, 저는 방주의 일원으로서도 공국의 2왕자로서도 단지 감사만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2왕자가 차로 목을 축이곤, 말을 이었다.

“시련에 대해 기억하십니까?”

물론이다.

그 덕에 마핵을 얻게 되었으니.

“맞습니다. 시련, 그에 따른 보상. 방주는 그러한 메커니즘으로 인류를 이끌, 선장이 될 후보를 육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후보가 아님에도 시련을 이겨 내셨고, 더 나아가 글러트니…… 방주의 배신자를 처단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그러니 보상 또한 주어지는 것이 도리. 본래라면 리스너의 역할이지만 이번만큼은 제가 그 역할을 대행하겠습니다.”

2왕자가 의자 아래에서 금속으로 된 기다란 가방을 꺼냈다.

잠금장치를 열자 그 안에서 스태프 하나가 나타났다. 둥그런 하늘색 크리스털을 회색 금속이 나무뿌리처럼 감싸고 있었다.

“‘오큘러스(Oculrus)’. 고등 룬 중 하나인 ‘충격(Impact)’이 새겨져 있는 스태프입니다. 집중한 마력에 비례하여 강력한 충격파를 만들어 내죠. 뼈대도 흑요석이 첨가되어 있는 터라 내구성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근접전도 중시하는 당신에겐 전의 스태프보다 훨씬 뛰어난 무기일 겁니다.”

상자를 베르덴 쪽으로 밀었다.

“저번에 무기가 부러지신 걸 보고 준비해 봤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베르덴이 조심스레 스태프를 들었다.

금속의 차가운 질감. 마력을 작게 불어 넣자 크리스탈에 푸른빛이 맺혔다. 무기가 없는 그에겐 더할 나위 없는 보상이었다.

‘적당한 무기가 생겼군.’

베르덴은 미소를 숨기기가 어려웠다.

“마음에 듭니다.”

“하하, 무엇을 드릴지 논의했는데 리스너가 이걸 강력히 추천하더군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떤 겁니까?”

“앞으로 저희 방주와의 관계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왕자가 말을 덧붙였다.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애셔, 당신이 어떤 집단에 속하기를 싫어한다는 것. 하지만 시련과 보상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 앞으로 또는 위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저희 방주는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저희도 당신에게 도움을 받겠죠, 이번처럼.”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족쇄를 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저 당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다지고 싶을 뿐입니다.”

방주인 자신들을 이용해라.

베르덴은 의아했다. 아무리 적합한 후보라고 해도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지.

다만 2왕자의 말은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베르덴이 당장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결정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방주가 도움이 된다고 해도, 어떤 집단에 들어가는 것에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든지. 추후에 리스너를 보내겠습니다.”

2왕자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용건도 마쳤으니 이만……. 아, 그 전에 이 말을 깜빡했군요. 곧 왕성에서 당신에게 연락이 갈 겁니다.”

“왕성에서 말입니까?”

“아마 이번 사건에 대해 포상을 내리시려는 걸 테죠. 당신이 토벌한 소울 트리보다도 더한 사건이니. 제 아버지는 공국을 위해 힘써 준 사람에게는 포상을 아끼지 않는 분이시니까요. 그럼 다음에는 부디 방주에서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2왕자는 떠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2왕자의 말대로 왕성에서 연락이 왔다.

* * *

수도 리드론에서 멀리 떨어진 눈 덮인 작은 언덕

그 아래를 단장인 발칸을 포함한 바스티오 기사단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한 사내가 홀로 언덕 위에 서서 저 먼 하늘을 바라봤다.

새하얀 눈이 내리며 저 멀리 보이는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푸른 하늘. 어릴 적 보았던 풍경과 변함이 없었다.

사박. 사박.

뒤에서 눈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군, 애셔.”

“공왕 전하를 뵙습니다.”

“쓸데없는 격식 차리지 말고 옆으로 오게. 나는 지금 여기에 비공식적으로 자네를 만나러 온 거니까.”

공왕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베르덴은 그의 옆에 다가섰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에야 공왕이 입을 열었다.

“……공국이 자네에게 빚을 졌군.”

공왕은 글러트니에 대해 모른다.

그저 가드란 후작가가 벌인 죄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고, 그를 추적해 파헤친 것이 베르덴이라고 알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공왕은 방주가 아니었으니까.

“아닙니다.”

“아니긴 무슨…… 라비슈른 후작에게 전부 다 들었는데. 하지만 이거 하나는 차마 묻지 못하겠더군.”

공왕이 물었다.

“가드란의 마지막은 어땠나?”

베르덴이 떠올렸다.

목이 잘리기 직전, 유언을 남기며 죽음을 받아들인 그 얼굴을.

“후련해 보였습니다.”

“후련했다라…… 그래, 그랬던가.”

공왕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저 멀리 공국의 수도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네는 왜 내가 리비안트 공국을 건국했는지 알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지, 그 진상을 제대로 아는 건 몇 되지 않으니. 내가 전쟁 중에 독립을 선언한 이유는 하나였네. 그게 옳았으니까.”

26년 전, 왕국의 횡포로 벨디른 공화국과의 전쟁이 발발하며 국가가 휘청거렸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왕국은 대응조차 힘겨워 했으며, 공화국은 후방에 지원국이 있었다.

당시 공작이었던 공왕과 그의 봉신 가문들인 가드란 후작가와 라비슈른 후작가가 이를 악물고 막지 않았다면 진즉에 국토의 절반이 날아갔을 것이다.

물론 시간문제였다. 왕국은 연이은 패배로 열세에 몰렸다.

“그러던 중 왕가에서 신임 재상을 등용하더니, 정체 모를 마법사들을 전쟁에 투입하더군. 그걸로 전황이 뒤바뀌었다.”

듣도 보도 못한 마법에 의해 공화국은 대응하지 못했다.

단번에 열세를 뒤집고 왕국군이 공화국을 역으로 침공할 정도.

“하지만 그건 대가 없이 주어진 게 아니었다. 진실을 알았을 땐 이미 늦어 버렸지.”

마법사들은 왕국의 국민들을 몰래 납치해 마법의 재료로 사용했다. 수십 개의 마을이 사라지고, 도시의 피난민들이 사라졌다. 사로잡은 공화국의 인질들도 마찬가지.

그걸 알게 된 리비안트 공작은 분개하며 단번에 마법사의 목을 잘라 왕가로 보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하나였다. 허락한 사안이니 내버려 두라고.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인데.

에스티리아 왕국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국민을 희생시켰다.

“말 그대로 왕국은 사람을 갈아 넣고 전쟁을 지속했다. 멈출 수 있음에도 멈추지 않았지. 승리를 맛보니 욕심이 생겼던 거야.”

공화국을 점령한다.

당시에 왕국은 그야말로 광기에 물들어 있었다. 병사들조차 적국의 병사도 아닌 사람들을 거림낌 없이 죽여 나갔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법사들을 고용했던 왕국의 재상이 사망했다. 심지어 마법사들까지 사라졌더군. 나는 그 혼란을 틈타 검을 들었지.”

왕국으로부터의 독립 선언.

그와 함께 그의 봉신 가문 및 주변에 있던 영지의 영주들마저 포섭했다.

최전방에 있던 그가 반기를 들자 왕국은 전쟁을 지속하지 못했다.

결국 전쟁이 발발하고 3년하고도 2개월 만에 평화 협정을 맺었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것이 리비안트 공국의 기원이었다.

“가드란은 라비슈른과 함께 언제나 내 곁을 지탱해 주었지. 전장에서 목숨을 구원받은 적도 있었다. 그 둘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공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애초에 독립조차도 실패했겠지. 가드란은 내게 있어 친우이자 은인이다.”

언제나 우직하고 올곧으며 정이 많은 가드란.

뭐가 그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아마 아내의 죽음이 그를 흔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죽어 가는 아들을 보며 절망했겠지.

돕고 싶었지만 도울 수 없었다.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찾으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루펠이 건강을 회복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의문이 들었으나 공왕은 애써 무시했다. 굳어 있던 친우의 얼굴에 참으로 오랜만에 웃음이 피었으니.

그것이 수많은 사람을 희생해서 얻은 것이란 걸 진즉에 알았다면…… 아니, 이건 변명이다. 공국을 위한다면서, 친우의 마음은 알아보지 못한 그의 잘못이었다.

“……그래도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공왕이 품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검은 보석이 박힌 목걸이에 반사된 빛이 무지개를 띠고 있었다.

아티팩트 ‘삼원색의 중심’.

공왕이 아티팩트를 베르덴에게 건넸다.

“자네에게 위험하다고 못 준다고 했었지. 그 말도 맞긴 하다만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니었네. 사실 이건 젊은 시절, 왕국의 경매장에서 라비슈른과 가드란과 함께 구한, 소중한 기억이 담긴 물건이지.”

다시는 오지 않을 과거.

“하지만 이제 그만 추억을 떠나보내야 할 차례인 것 같군.”

“…….”

“어서 받게, 팔 아프니.”

베르덴이 아티팩트를 받았다.

“자네와 같은 원소 마법사라면 분명 이 아티팩트를 다룰 수 있을 걸세.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가 됐든. 암. 한 국가의 후작가를 상대해 승리한, 역사상 유례없는 4위계 마법사에겐 간단한 일이겠지.”

하하하.

공왕이 농담을 하며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었다. 하아, 하얀 입김을 털어 내며 답답한 가슴을 풀었다.

“고마웠네.”

그것이 베르덴에게 한 말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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