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89화 (89/366)

89화 글러트니의 송곳니 (2)

“커윽…… 크르륵……!”

루펠을 관통한 나이프가 벽을 뚫고 들어갔다.

곧바로 루펠이 목을 부여잡았으나 그 정도로 출혈이 멈출 리가 없었다. 피 끓는 가래 소리가 목 안에서 새어 나왔다.

루펠이 고개를 들자, 어느새 스태프를 꺼내 든 베르덴이 그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때, 곧바로 파르간과 발첸이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상황을 본능적으로 이해한 그들이 살기를 드러내며 베르덴을 향해 달려들었다.

‘상황 판단 하나는 빠르군.’

염력으로 식탁을 움직여 강하게 내던졌다.

잠시 동안 가려진 시야. 베르덴은 감각적으로 두 명의 위치를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수십 개의 돌조각이 식탁을 관통했다.

정확히 무릎과 골반을 피격당한 둘의 움직임이 잠시 주춤거렸고, 베르덴이 손을 쥐었다.

<그라운드 메이든>

“커헉!”

파르간의 몸이 수십 개의 가시에 꿰뚫렸다.

비정상적인 생명력 덕분에 죽지는 않았으나 위계에 걸맞지 않은 위력에 무릎을 꿇었다. 가까스로 마법을 피한 발첸이 바닥을 부수며 비늘 덮인 손을 베르덴에게 향했다.

‘이번엔 파충류인가. 하긴 이형종도 이식하는데 안 될 건 없겠지.’

콰앙!

베르덴과 발첸이 부딪쳤다. 힘에서는 베르덴이 확연히 밀렸지만 그는 엄연히 마법사. 마력이 그를 둘러싸며 불길이 휘감겼다.

거센 열기에 발첸이 거리를 벌리며 파충류와 같은 동공을 부라렸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마법에서 탈출한 파르간이 합류했다.

역시 이 둘은 다른 이식자들과 달랐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베르덴이 스태프를 루펠에게 향했다.

눈을 크게 뜬 발첸과 파르간이 서둘러 루펠에게 몸을 던졌다.

<아웃버스트>

응축된 바람이 폭발했다.

그대로 직격당한 두 명이 튕겨져 날아갔다. 한 명은 창문 밖으로, 남은 하나는 문밖 계단 아래로. 아무리 맷집이 좋아도 곧바로 올라오지는 못할 터.

“그런데 언제까지 자는 척하고 있을 셈이지?”

<락 페이탈>

날카로운 석편이 루펠의 머리를 노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맞지 않았다. 한쪽 팔을 든 그가 파편을 맨손으로 잡아챘다. 충격에 손가락 두 개가 날아갔지만 비명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고개를 든 루펠.

그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베르덴에게 물었다.

“박사는 어디에 있지?”

* * *

저택 3층에서 들려오는 소란.

섬에 있던 글러트니가 소란을 듣고 모이기 시작했다.

테온이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진짜 송곳니가 있었던 건가……!’

다행이다.

이걸로 마법사의 손에 죽지 않아도 될 테니.

‘아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테온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딴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여길 벗어나는 게 급선무.

여기 있다간 개죽음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던 그때 폭음이 들려오며 누군가 창문을 깨고 추락했다.

이식자 발첸.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부러진 뼈가 살을 뚫고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저택에 모인 시선들이 일제히 발첸에게 향했다.

‘지금이다!’

몸을 낮추고, 재빠르게 섬 끝으로 달려간 테온이 그대로 호수에 뛰어들었다. 물이 튀는 소리가 작게 들렸지만 저택의 일 때문에 다행히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호수 아래로 잠영한 테온.

그대로 뒤돌아보지 않고 호수 바깥을 향해 전력으로 다리를 저었다.

테온.

그렇게 그는 오늘도 살아남았다.

* * *

박사가 어떻게 되었냐라.

베르덴이 목에 걸고 있는 글러트니의 앞니를 가리켰다.

“보면 모르나?”

박사는 죽었다.

시체도 찾을 수 없다.

그가 평생을 이룩해 만든 연구 일지도 불타 사라졌다.

어떻게…… 라는 말은 무의미했다.

베르덴이 가지고 있는 앞니는 확실한 진품이며 테온 또한 박사를 따르던 글러트니의 일원 중 하나였으니.

이미 루펠이 확인한 사항이다. 이제 와 의문을 제기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루펠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대지의 창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럼에도 루펠의 눈은 여전히 베르덴을 주시하고 있다.

‘이식자와는 다르다.’

놈들은 고통에 반응은 둔해도 치명상을 입으면 죽었다.

그런데 루펠은 아니었다. 마치 죽음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 확실히 송곳니라는 존재답게 다른 놈들처럼 간단하게 죽지는 않을 모양이다.

루펠이 말했다.

“애셔, 이름은 들었는데…… 방주일 줄이야.”

분노가 담긴 음성.

제3중앙기사단의 단장으로서 보였던 모습은 이미 벗어던졌다. 그가 이내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너였군, 내 계획을 사사건건 방해한 자가. 그리고 이번 다비르크 백작 건에서도. 이면의 그림자를 훔친 것도, 내게서 붉은 조각을 훔친 것도.”

“…….”

방주가 아니라고 해도 또 같은 말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랬다. 베르덴이 방주가 아니라고 한 걸 들은 글러트니는 죄다 죽었으니.

가볍게 한숨을 내쉰 베르덴이 전신의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상대는 인체 실험을 즐겨 하는 쓰레기. 베르덴이 특히나 혐오하는 족속.

지금부터 이 섬에 있는 글러트니는 남김없이 처리할 생각이다. 루펠과 더 얘기해 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그때, 루펠이 바깥을 슬쩍 쳐다봤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은 없는 것 같은데…… 혼자 온 건가?”

“더 필요한가?”

“하하, 훌륭한 자신감이시군. 뭐, 보아하니 시간을 끌고 방주의 지원을 기다리는 것 같은데……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어.”

저택 내부의 기류가 달라졌다.

피부를 찌르는 오싹함. 베르덴이 본능적으로 <뇌격>을 날렸다. 자신에게 육박하는 번개를 바라보던 루펠의 흰자가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너는 이미 죽고 없을 테니까.”

루펠에게서 뻗어 나온 암흑.

그 어둠이 세상을 잠식했다.

* * *

베르덴이 주위를 둘러봤다.

저택은 어디 갔는지 사라졌으며 주변에는 그저 어둠만이 존재했다. 마치 빛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들어온 듯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베르덴의 모습은 훤히 보였다.

암시를 쓰지 않았는데도, 빛이 없는데 사물이 보인다라…… 이건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마법적인 것도 전혀 아니다.’

마력이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미처 저항할 새도 없이 뒤바뀐 공간. 감각과 마력을 극한으로 끌어 올리며 경계하고 있자, 멀리서 기척이 느껴졌다.

상처뿐만 아니라 복장마저 회복한 루펠. 그가 양팔을 벌리며 이 어둠을 가리켰다.

“어떤가, 여기는. 참으로 아늑하지 않나?”

“이건 뭐지?”

루펠이 웃으며 답했다.

“나는 선천적으로 유약하게 태어났지. 잦은 병치레는 물론이고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고,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독립할 당시 어머니를 잃었다. 가문은 무너질 대로 무너지고, 나는 그저 죽음만을 기다렸지. 그러던 그때, 희망이 내게 찾아오더군.”

글러트니.

그들이 루펠에게 접근했고, 그의 몸을 고쳐 준다고 속삭였다. 너무도 달콤했다. 전혀 살아날 방법이 없던 상황이었기에 제안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령 실패할 확률이 더없이 높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보란 듯이 성공했다.

“글러트니의 장기를 이식받은 존재는 전과 다른 육체를 얻게 된다. 근력, 재생력 등 구인류 따위의 나약한 한계를 아득히 벗어난 신체를 말이지. 그렇게 나는 병약한 과거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삶을 얻었다.”

루펠은 금세 두각을 드러냈다.

남다른 신체 능력은 재능이었으며, 내재되어 있던 잠재력을 일깨웠다. 마침내 가드란 후작가의 독자로서 걸맞은 존재가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 무의미한 희생을 당하지 않게 만들었다. 루펠을 아는 기사들은 대부분 그를 존경했다.

루펠이 자랑스럽게 자신의 업적을 말했다.

베르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인체 실험이나 하는 놈이 잘도 말하는군.”

“인체 실험이라. 그럼 묻지. 그게 나쁜 건가?”

루펠이 코웃음 쳤다.

“너의 말대로 우리 글러트니는 구인류를 재료로 삼아 지금에 이르렀다. 뭐, 구인류 입장에서는 악한 일이겠지. 하지만 우리에겐 선이다. 본디 선악이란 건 주관적인 개념이 아닌가?”

그리고.

“내가 수많은 사람의 삶을 구해 줬다는 사실은 그저 사실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무의미한 죽음을 당하는 대신, 글러트니의 미래를 위해 유의미하게 쓰기 위함이었지만…… 구인류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자신들을 위해 가축을 키우고 도살하는 것처럼.”

인간은 열등하다.

뭉치지 않으면 그대로 사멸하는 게 인간이다. 그리고 뭉쳐서 살아남은들 위험이 사라지면 금세 흩어져서 저들끼리 목숨을 빼앗는다.

자신들보다 열등한 종족들을 희생양 겸 발판으로 삼는다.

비난하는 건 아니다.

그게 본디 인간이 가진 습성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글러트니는 옳았다.

열등한 구인류를 지워 없애고 신인류로 다시금 인간을 재정의하는 것. 인간이 지금까지 해 왔던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저 희생양이 될 열등한 종족이 가축에서 구인류가 된 것뿐이다.

루펠이 베르덴을 바라봤다.

“애셔, 너는 왜 글러트니와 적대하는 거지? 단순히 방주에 속해 있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구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시답잖은 정의감 같은 거라도 갖고 있는 건가?”

정의라니.

그런 거창한 단어가 붙을 이유도 없다.

“마음에 안 들어서.”

“마음에 안 든다고? 그거 참 날것 그대로의 이유로군. 뭐, 좋겠지. 구인류의 사상이라는 게 대개 그런 법이니까. 언제나 그럴듯한 논리와 윤리를 내세우면서, 막상 자신이 대상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변명을 하며 회피하지. 아, 그리고 나에게 물었었나? 이 공간이 대체 무엇이냐고.”

루펠이 자신의 명치를 쓰다듬었다.

“이곳은 ‘글러트니의 위장’. 내가 이식받은 장기의 힘으로 만든, 세계를 뒤덮고도 남을 무한한 공간 그 자체다. 얼마 전까지의 나였다면 곧장 생명력이 고갈되어 죽었겠지만 이제는 아니지.”

루펠이 붉은 조각을 꺼내 명치에 갖다 대었다.

그러자 복부가 열리더니 무수한 이빨이 나와 조각을 집어삼켰다. 이걸로 루펠이 섭취한 붉은 조각의 수는 총 10개.

콰드드득!

거대한 대지의 창이 날아가 루펠을 덮쳤다.

그러나 육체가 절반 가까이 찢겨 나갔음에도 죽기는커녕 몇 초 후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글러트니의 장기가 가진 힘은 이 공간만이 전부가 아니다.”

루펠이 베르덴에게 걸어갔다.

“나는 이 공간에선 불사이며 불멸. 그리고 신.”

루펠이 손짓했다.

바닥을 이루고 있는 어둠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하얀 눈과 찢어진 입을 가진, 사람만 한 검은색의 괴물. 형태로 보아 이형종임이 분명했다.

“이들은 글러트니의 위장에서 서식하는 존재. 고대에서 칭하길 ‘스위퍼(Sweeper)’라고 하더군. 청소부라고 보면 될 거다.”

개체 하나만으로 보면 약하다.

하지만 스위퍼의 특징은 숫자다. 이 끝없는 공간을 청소하는 존재.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었다. 스위퍼들이 하나둘씩 어둠에서 솟아났다.

베르덴을 크게 둘러싼 그 숫자는 세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이 공간의 지배자인 나와 무한에 가까운 스위퍼들. 고작 4위계 마법사 따위가 어찌할 수가 없는 전력 차이지. 애셔, 너는 어떻게 할 건가?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자진해서 글러트니를 위한 재료가 된다면 편안한 죽음을 약속하지. 그리고 도움을 바랄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이곳에는 어떤 구인류도 들어올 수 없으니까.”

네 자리를 아득하게 넘는 숫자.

지금까지 이렇게나 많은 적을 상대해 본 적은 없었다. 전력은 베르덴이 확실히 불리했다.

그때, 베르덴이 물었다.

“이 공간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었다고?”

“그래.”

외부와 차단되었다라.

그러나 베르덴은 절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작게 웃었다.

“그거 잘됐군.”

“뭐? 그게 무슨…….”

화아아악!

베르덴의 주위로 방대한 마력이 휘몰아쳤다. 그와 함께 베르덴의 오른쪽 눈동자에 역천의 마법진이 떠오르며 마안이 발동됐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막대한 양의 마력에 루펠이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흐르는 별, 유성.

베르덴의 첫 번째 별이 루펠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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