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88화 (88/366)
  • 88화 글러트니의 송곳니 (1)

    “…….”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낡은 오두막.

    그 안에서 테온이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한 시선으로 베르덴을 몰래 흘겨봤다. 의자에 앉은 베르덴이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러지?”

    “아, 아니. 내가 왜 여기까지 와야 되나 해서…….”

    테온은 베르덴이 시킨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글러트니의 이식자를 능숙하게 속여 넘겼고, 자신조차 본 적 없는 송곳니를 밝혀낼 수 있는 기회까지 만들어 냈다.

    솔직히 말해 이 정도 했으면 살려 줄 만하지 않나?

    이렇게까지 했는데 설마 죽이지는 않겠지만…… 대체 왜 여기까지 따라왔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하필 이 미친 마법사와 함께 말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을 텐데.

    그러자 베르덴이 시선을 돌렸다.

    푸른 눈동자와 마주한 테온이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송곳니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 전까지는 당연히 따라와야지. 네가 글러트니와 짜고 함정을 팠을 가능성도 있고.”

    함정 따위 없다. 내가 미쳤다고 그러겠나.

    그런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걸 테온이 겨우 억눌렀다.

    “함정이 아니라면?”

    “바로 방주에게 보내 주지. 방해만 될 테니까.”

    “……만약 함정이라면?”

    “그러면 죽는 거지.”

    이미 상대가 알아차린 이상 송곳니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당연히 미끼였던 테온의 가치는 사라진다. 더군다나 자신을 배신한 적을, 베르덴은 살려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대로 데리고 있어 봤자 눈에 거슬리거나 또다시 배신당할 테니까.

    테온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함정은 아닌데 송곳니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박사가 만나러 왔는데 오지 않는다라. 그럼 저쪽에서 눈치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글러트니에서 박사란 존재는 유일하다.

    방주, 테온 그리고 글러트니와 대면하면서 그 사실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런데 그렇게 찾던 박사의 징표를 확인하고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건 계획이 실패했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 책임은 누가 지느냐. 당연히 테온이 지겠지. 그가 글러트니와 접촉해 만남을 주선했으니.

    “…….”

    테온이 입을 꾹 다물었다.

    더 이상 얘기해 봤자 안 좋은 생각밖에 들지 않을 듯했다. 그저 조용히 송곳니가 나타나길 바라는 수밖에.

    ‘그런데 과연 어떻게 될까.’

    테온이 문득 궁금해졌다.

    이 냉혈한 마법사가 죽을지, 송곳니가 죽을지.

    테온은 송곳니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지만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는 어렸을 때부터 피부로 이해하고 있었다.

    인간도, 아인종, 단순한 이형종도 아닌, 고대에 존재했던 글러트니의 장기를 이식받고 죽지 않은 특별한 존재.

    그 존재감은 테온의 머리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애셔. 이 마법사 또한 괴물이다.

    누가 그를 보고 5위계에 이르지 못한 마법사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이식자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몰살하는 광경은 잊을 수가 없었다.

    천재 마법사가 있다면 이게 그야말로 천재라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

    누가 이길지는 모른다. 둘 다 테온의 생각을 벗어난 자들이니.

    하지만 결과는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설령 애셔가 패배한다고 해도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며, 그가 죽기 전에 주변 일대를 포위한 방주가 개입을 할 테니.

    요점은 하나다.

    송곳니가 있는지 없는지.

    그에 따라 이야기는 결정된다.

    “왔군.”

    베르덴이 향한 바깥.

    짙은 안개 속에서 두 명의 인영이 다가왔다.

    * * *

    “파르간이라 합니다.”

    “발첸. 입니다…….”

    글러트니에서 찾아온 두 명이 베르덴에게 인사했다.

    겉으로는 인간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이제는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인간의 틀에서 벗어난 이식자이며, 이제까지 만난 이식자들 중에서도 강력한 존재라는 것을.

    ‘최측근 같은 건가.’

    어쩌면 함정일 수도 있고.

    로브를 뒤집어써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베르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두 명에게 차례대로 고개를 향했다.

    박사는 급진적인 인물로 괴팍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수틀리면 부하를 실험으로 쓰거나 글러트니를 박차고 잠적하는 등. 그렇기에 그 얼굴과 목소리를 알고 있는 자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이건 테온에게 확답까지 받은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사실인지, 대답을 하지 않아도 놈들은 전혀 베르덴을 의심하지 않았다.

    베르덴이 테온에게 손짓했다.

    테온이 앞으로 나서서 말을 대신했다.

    “송곳니는 어디에 있지?”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배를 타고 호수 위를…….”

    베르덴은 말도 다 듣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 둘을 지나쳤다.

    당장 안내하라는 무언의 압박. 파르간이 입을 다물고 길을 앞장섰다. 그런 베르덴의 거침없는 행동에 테온이 눈을 깜빡였다.

    ‘……진짜 박사 같네.’

    싸가지 없고 오만하며 독선적인 태도.

    박사가 살아 있었다면 저렇게 행동했겠지. 아니면 왜 미리 말을 안 했냐고 유리 플라스크를 내던지거나.

    그만큼 박사는 괴팍했기에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어 테온이 그 뒤를 따랐고, 남은 발첸의 최후미를 따랐다.

    * * *

    발첸이 양옆으로 노를 저었다.

    어두운 호수 위를 나아가는 작은 나룻배.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더욱 짙어진 안개.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음산한 분위가 흘렀다.

    오직 환한 램프만이 주변을 비췄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안개 속에서 갑자기 섬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위적인 건 아니었다.

    베르덴이 느낀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으로 보인다.

    거대한 호수 위에 감춰진 섬이라.

    ‘이 정도는 되어야 방주에게서 숨을 수 있는 건가.’

    어두운 호수답게 당연히 인적이 거의 없다.

    아무리 깨끗하다고 해도 이런 데서 누가 뭘 할 수 있을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지레 겁먹고 도망칠 것이다. 겨우 스무 걸음 밖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섬에 근접하자 여러 시선이 느껴졌다.

    혹시 모를 불청객을 감시하는 글러트니의 일원들. 누군가 접근했다간 당장이라도 살해할 정도로 흉흉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물론 그게 베르덴과 테온에게 향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박사에게 위해가 될 만한 것을 배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이윽고 나룻배가 섬에 닿았다.

    섬에 내리고 길을 따라 걷자 거대한 저택이 나타났다. 창문은 오직 3층에 있는 것 하나가 전부였으며 나머지는 전부 벽이었다.

    베르덴은 난생처음이었다.

    이렇게 살기 싫어 보이는 건축물을 보는 건.

    ‘취향 참 글러트니답군.’

    아주 역겨운 예술 감각이었다.

    “들어오시죠.”

    파르간이 저택의 문을 열었다.

    밝은 분위기와 여러 가구로 꾸며져 있었지만, 인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근거지치곤 생각보다 놈들의 숫자가 훨씬 적은 것 같은데.’

    뭐,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

    베르덴이 죽인 이식자만 해도 두 자리에 가깝고 전체로 치면 두 자릿수를 아득히 넘었으니. 어쩌면 손실이 큰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함정이거나.

    베르덴이 감각을 끌어 올리며 테온에게 고개를 향했다.

    한마디 말도 없었지만 테온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바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테온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저택에 들어온 것은 베르덴 그리고 이식자인 파르간과 발첸, 이 셋이 전부. 계단을 올라 3층 중심에 있는 방에 도착했다.

    ‘창문이 있던 방인가.’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란 식탁 위에, 양옆으로 깨끗한 접시와 식기들이 1인 분씩 차려져 있었다.

    베르덴이 한쪽에 앉았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곧 송곳니께서 오실 겁니다.”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꾸벅 허리를 숙인 둘이 바깥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베르덴.

    그가 공간가방에서 블랙 아워의 나침반을 꺼냈다.

    여기는 글러트니의 근거지.

    놈들과 거리가 가까운 만큼 자침의 반응이 강렬했다.

    그러던 순간.

    휙 하고 움직인 자침이 문 바깥을 가리켰다.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낯선 발소리를 따라 자침이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문이 열림과 동시에 자침이 멈췄다.

    어떤 진동도 없이 정확히 목표를 가리켰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사. 글러트니의 다섯 번째 송곳니,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정중한 태도, 겸손이 가득한 목소리.

    베르덴의 정반대에 마주 앉은 사내는 이미 알고 있는 자였다. 모를 수가 없었다. 불과 며칠 전에 본 얼굴이니까.

    ‘귀족이라곤 들었지만 설마 후작가일 줄이야.’

    그것도 가신 같은 것도 아닌, 하나뿐인 가문의 독자.

    루펠 레인스 디 가드란.

    제3중앙기사단을 이끌던 귀족이었다.

    * * *

    “뭘 좋아하실지 몰라 전부 준비해 봤습니다. 뭐든 말만 하시면 곧바로 준비해 드리죠.”

    식탁 위에 가득 차려진 식사들.

    순서가 전혀 없이, 스테이크, 파스타, 해산물, 빵 등 다양한 요리가 두서없이 놓였다. 어느새 한 접시를 비운 루펠이 와인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베르덴이 물었다.

    “왜 날 찾았지?”

    변조되지 않은 베르덴 본래의 목소리. 박사의 나이와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대로 루펠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박사가 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얼굴은 물론이고 목소리를 비롯한 신체까지 바꿀 수 있었으니.

    글러트니에서도 가장 선구적인 존재로, 수많은 인체 실험을 해 왔기에 가능한 신기였다.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루펠이 미소 지었다.

    “세상이든, 글러트니든 박사께서 떠나신 수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저희는 마침내 글러트니의 숭고한 염원을 이룰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염원?’

    루펠이 붉은 조각을 하나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이건 생명력 그 자체를 응축한 결정. 이것 하나에 일정 생명력 이상을 가진, 수천이 넘는 생명을 희생시켰습니다.”

    짐승, 마수, 아인종, 이형종.

    모두가 재료였기에 닥치는 대로 사냥했다. 후에는 숫자가 부족해 방주에게 걸릴 위험을 감수하고 인간들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방주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저희도 꽤 큰 타격을 받았죠. 결국 본래 상정했던 조각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루펠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제 부하들을 사용했습니다.”

    부족한 수만큼 부하들을 갈아 버렸다.

    이 섬에 글러트니가 몇 없는 것이 바로 이 이유였다. 아깝지는 않았다. 그들은 계획의 일부가 됨으로써 그 목숨을 좋은 일에 사용한 것이니.

    의미가 있는 희생이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좀 더 차분히 움직였겠지만, 아쉽게도 이 붉은 조각은 완성된 게 아닙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붕괴되는 데다가 실질적인 결과도 부족하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직접 움직인 겁니다, 단기간 내에 유의미한 성과를 보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박사를 찾기 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확히는 박사께서 연구하고 계시는 신인류를 말이죠.”

    모체는 신인류.

    장기는 글러트니.

    생명력은 붉은 조각.

    글러트니의 이빨들은 위 세 가지가 어우러진다면 오랜 시간 동안 염원하던 글러트니를 부활시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구인류의 잠재력을 아득히 넘어선 박사의 ‘신인류’. 그리고 세상을 집어삼키는 ‘글러트니의 장기’. 마지막으로 유한을 넘어선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완성된 붉은 조각’. 물론 서로 간의 조율이 필요하긴 하나, 단언컨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머지않았다.

    부활한 글러트니가 구인류를 멸종시키고, 그 세상에 신인류가 군림하는 순간이. 나약한 과거를 벗어던지고 종족의 정점이 될 그때가.

    “그런데…….”

    루펠이 베르덴 앞에 놓여 있는 나침반에 시선을 향했다.

    아까부터 신경이 쓰이던 건데…… 그 자침이 묘하게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나침반은 대체 무엇입니까?”

    “아, 이거 말인가?”

    베르덴이 나침반을 잡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검은 마석을 꺼내 식탁 위에 툭 하고 던졌다. 루펠이 만들었던, 글러트니의 조각과 같은 기운이 남긴 마석.

    루펠이 미간을 좁혔다.

    “마석? 박사, 이건 뭡니까?”

    “뭐긴.”

    베르덴이 로브를 뒤로 젖혔다.

    회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 그 외형. 본래라면 별다른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루펠은 이러한 특징을 가진 인간에 대한 소문을 최근에 들은 적이 있었다.

    소울 트리 토벌자이자 대행사의 시합에서 1위를 한 젊은 마법사.

    “애셔……?”

    당황을 숨기지 못한 루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베르덴이 나이프를 움직여, 루펠의 목 정중앙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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