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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84화 (84/366)
  • 84화 방해 (1)

    베르덴은 로든마이어 백작과 함께 수도를 떠났다.

    당연히 왔을 때처럼 비행정 같은 전략 병기를 이용하는 일은 없이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베르덴이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며 백작에게 말했다.

    “은광과 마석의 채굴권이라니, 생각했던 것 이상이더군요.”

    “채굴권이라고는 하지만 그리 거창한 건 아니다. 갱도를 만들려면 투자금이 많이 필요한 데다가 은이 얼마나 축적되어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으니. 최악으로라도 손해는 안 보겠다만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3년은 족히 걸릴 거다.”

    “마석 갱도는 뭡니까?”

    “어떤 상회에서 채굴하던 거다. 그런데 도중에 투자를 잘못하는 바람에 부도가 났고 마그누스 은행으로 넘어갔지. 그걸 공국 왕성이 인수했다. 매장량이 절반가량 줄긴 했지만, 폐쇄만 되어 있을 뿐이니 다시 활성화하는 건 어렵진 않다. 생각 이상으로 크게 벌지는 못하겠지만.”

    로든마이어 백작은 어느 정도 사전 조사를 한 모양. 이미 대략적인 수익을 가늠한 것 같다.

    보수를 깎으려고 은근슬쩍 수익을 낮춰서 말하는 것 같은데 아마 착각이겠지.

    “그래도 1년에 한 번 있는 대행사의 포상으로는 과한 것 아닙니까?”

    “과하긴 하지. 실제로 역대 대행사 중에서 가장 큰 포상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로든마이어 가문만 이득을 보는 건 아니다.”

    어차피 은광이든 마석 갱도든 귀족 중 누군가가 권리를 가지고 채굴을 해야 했다. 단순히 공왕은 그걸 대행사의 상품으로써 걸었을 뿐이다.

    애초에 이러한 사업들은 공왕이 직접 진행하지 않는다.

    왕성이 아닌 영지로 이익을 돌리는 것. 채굴권을 쥐여 주는 과정에서 이윤을 추구할 수 있었음에도 대행사의 포상으로 내건 걸 보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듯 공왕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보다는 국가를 발전시키는 걸 우선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왕이 손해를 보는 건 전혀 아니었다.

    광물하고 마석.

    이것들은 특히나 세율이 높다.

    즉, 로든마이어 백작이 버는 만큼이나 왕성의 국고가 풍족해진다는 얘기다.

    “영지에 대한 평가가 좋다고 그 막대한 돈을 쥐여 줄 리가 없지 않나. 공왕 전하는 성격이 쾌활하시긴 하나, 너도 알다시피 성격이 급하시지. 하지만 그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계산을 마치신다. 지금의 상황은 공국 전체에 이득이 될 거라고 판단한 후 결정하신 게 자명할 터.”

    로든마이어 백작은 오랫동안 공왕을 봐 왔다.

    그의 평가가 정확할 것이다. 베르덴이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물었다.

    “그래서 제 보수는 뭡니까?”

    베르덴은 시합에서 우승했다.

    그것이 로든마이어 백작에 대한 평가에 일조한 것은 분명했다.

    백작이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4억 7600만 엘크. 현찰은 2억, 나머지는 현물로 주지.”

    소울 트리 토벌 보수보다는 낮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 온 의뢰 중 가장 큰 액수였다.

    “그런데 현물이라면……?”

    “금괴로 주도록 하지. 원한다면 보석도 가능하다.”

    현금이 더 편리한데.

    고민하고 있자 백작이 말을 이었다.

    “보석이 가진 가치는 안정적이다. 대신 투자 가치는 낮은 편이지. 하나 금은 그 반대다. 변동성이 꽤나 높은 데다가, 최근 들어 금값이 오를 기미가 보이더군. 어느 정도 손에 쥐고 있는 편도 나쁘지 않을 거다.”

    그래,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공간가방이 있으니 휴대하는 데 불편하지도 않을 테고.

    하지만 굳이 금괴를 받아야 하나 싶었다.

    베르덴은 투자에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여차하면 의뢰를 통해 돈을 벌면 그만이었다. 대답이 없자 백작이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그냥 솔직히 말하지. 마석 갱도와 은광 때문에 가용할 현금이 부족하니 그냥 받아라. 너도 대행사에서 로브와 반지를 얻었잖나. 그리고 실종자 의뢰 건에 대한 것도 기한을 미루어 주었고. 웬만하면 그냥 받지?”

    그건 그랬다.

    베르덴도 대행사를 통해 얻은 것이 많았으니.

    그렇다고 로든마이어 백작이 보수를 안 주는 것도 아니고, 현금을 달라고 떼를 쓰는 건 솔직히 말해 염치가 없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양보할 만했다.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 보수는 페일을 통해 전달해 주마.”

    그렇게 마차는 앞으로 나아갔고, 시간이 지나 백작의 저택에 도착했다.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베르덴은 곧장 도시 코헨으로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백작이 몸을 돌려 저택으로 향했다.

    그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던 대행사가 끝났으니 자신과 가문에 신경 쓸 차례. 마석 갱도와 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앞으로 태산이다.

    영지 운영은 보좌관인 베일론 자작에게 맡기면 될 터. 백작은 며칠간 휴식을 취하고 난 뒤,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누가 죽었다고?”

    “다비르크 백작이 피살당했습니다.”

    사건이 터졌다.

    * * *

    귀족의 죽음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현 백작 위에 있는 귀족이라면 더욱, 피살당했다면 더더욱. 게다가 공국의 대행사가 끝나고 난 후 자택으로 돌아가던 중 사망한 터라, 왕성 내부가 더없이 시끄러워졌다.

    베르덴을 찾아온 리스너.

    그가 말했다.

    “공국 왕성에서는 정보를 통제하고 제3중앙기사단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원 병력은 주변 영지에 있는 영주들에게 협조를 받는다고 하더군요.”

    다비르크 백작의 죽음은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당연하게도 사건을 확실히 해결하기 전까지는 알리지 않는 게 좋다. 그런 와중에 베르덴은 생각했다.

    ‘방주의 정보망은 왕성 내부에까지 퍼져 있던 건가.’

    공국에서 기밀로 취급하는 정보를 이리 쉽게 얻다니.

    어쩌면 방주의 일원이 공국의 상층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귀족이 말이다.

    “그런데 중앙기사단이라고?”

    “왕성 직속 기사단 중 하나입니다. 전부 장교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수 정예로 상당한 실력자들입니다. 그리고 두 후작가의 자식이 각각 단장과 부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후작가의 입김이 아닌, 순수한 실력으로 말이죠.”

    단장.

    가드란 후작가의 독자, 루펠 레인스 디 가드란.

    부단장.

    라비슈른 후작가의 장남, 듀켈 베일 디 라비슈른.

    ‘듀켈이라.’

    전자는 모르나 후자는 알고 있다.

    연회에서 요리들을 쉴 새 없이 먹어 치우던 그 근육질의 귀족이었다.

    중앙기사단에 대한 정보는 이쯤이면 충분했다. 별 쓸모도 없고.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글러트니는 움직인 건가?”

    리스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다비르크 백작을 죽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꼬리는 잡았습니다. 하지만 글러트니에서 소모품에 불과한 자들로, 언제든지 잘라 버릴 수 있는 수많은 꼬리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상관없다. 애초에 자를 생각도 없었으니까.”

    던진 미끼에 반응할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대로 된다면 놈들이 감추고 있는 머리를 드러낼 것이다.

    베르덴이 박사의 징표, 글러트니의 앞니를 건넸다.

    “그럼 미리 얘기했던 대로 부탁하지.”

    “예…… 그런데 정말로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로크 님이라도 같이…….”

    “아니,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해.”

    로크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강함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베르덴에겐 걸림돌이다. 글러트니가 숨겨 둔 전력과 맞붙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타인의 목숨까지 신경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럴 만한 여유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리스너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심했는지 품속에서 작은 수정을 하나 꺼내 건넸다. 난생처음 보는 물건에 베르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지?”

    “일종의 송신기입니다. 이 수정을 깨뜨리면 특정 마력 파장이 터져 나오면서 그 위치가 방주에게 전달되지요. 그게 ‘어디든 간에’. 용도가 용도인 만큼 방주에서도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지급되고 있습니다.”

    위치가 송신되면 방주가 움직인다.

    그래서 위험하다. 만약 글러트니와 같은 놈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악용될 여지가 다분하니. 그렇기에 이걸 외부인에게 준 역사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건 제 독단입니다. 혹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주저 없이 깨뜨리십시오.”

    리스너의 호의였다.

    그만큼 그가 베르덴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

    그렇다고 방주에 들어갈 생각은 없지만 꽤나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처음 만났을 때의 불쾌한 감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베르덴이 수정을 받아 공간가방에 넣었다.

    공국에서 암약하고 있는 글러트니.

    그 송곳니를 뽑을 차례였다.

    * * *

    다비르크의 이웃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들.

    한 도시에 모인 그들이 무거운 분위기로 회의를 진행했다.

    “대행사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일이……!”

    한 백작이 분개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 다비르크 백작과 깊은 친분을 나눈 자는 없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공국 귀족의 일원으로서는 인정하고 있었다.

    설령 악연이라도 해도, 백작의 죽음에 분노를 느끼는 건 당연한 감정이었다.

    “이런 일은 공국이 탄생한 이래로 처음이 아닌가? 이따금 만용을 부린 귀족들이 부상을 입거나 죽은 적은 있어도, 백작이 이토록 무참하게 살해당하다니.”

    “단순히 살해당한 것만이 아니다.”

    로든마이어 백작이 미간을 꾹꾹 눌렀다.

    “다비르크 백작가의 기사들이 다비르크 백작을 호위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키지 못했지. 지키기는커녕 하나도 남김없이 몰살당했다. 뭔지는 몰라도 이 주변에 그만한 위험이 숨어 있다는 거겠지.”

    “그의 말이 옳다. 당장 원인을 규명하는 게 우선이다. 현장의 흔적으로 봤을 때 이형종이나 아인종일 가능성이 높지만…… 인간의 소행일 수도 있지. 흔적을 조작했을지도 모르니.”

    “그렇다는 건 누군가 공국의 귀족을 노린다는 소리요?”

    “나야 모르지. 어쩌면 다비르크 백작에게 복수심을 품은 자일 수도. 당신들도 알다시피 다비르크 백작은 그리 좋은 성정을 지니지 못했으니까.”

    모두가 그 의견에 동의했다.

    사업이든 뭐든 다비르크 백작이 손을 대서 성공한 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속출하기도 하여 몇 번 소란이 일기도 했고.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귀족을 살해한다는 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다.

    “어쨌든 왕성에서 오늘 중으로 제3중앙기사단이 올 거요. 그렇게 되면 금방 진상을 파악할 수 있겠지.”

    일반적인 사건이었다면 영주가 기사를 보내 처리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레이에 의뢰해 믿을 만한 자를 고용하여 처리하든가.

    하지만 이건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정보를 제한해야 할 상황에서 섣불리 외부인을 끌어들였다간 흉수로 의심될 가능성이 다분했다.

    한 국가의 백작이 살해당하는 건 그만한 의미를 지닌다.

    대부분의 귀족이 탐탁지 않게 보는 귀족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때, 회의장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문이 열리며 낯선 인물들이 들어왔다. 남색을 기조로 한 제복과 갑옷. 리비안트 공국 왕성에서 찾아온 제3중앙기사단이었다.

    영주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중 한 백작이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잘 오셨소, 루펠 단장. 그리고 듀켈 부단장.”

    공국을 떠받치고 있는 두 후작가의 자식들.

    루펠이 목례했다.

    “제3중앙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루펠 레인스 디 가드란입니다. 한 분 한 분 정중하게 인사드리고 싶지만, 시급한 상황이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야 물론이지. 필요한 병력들은 차출했으니 어서 현장으로 가 보시게. 혹시 인력이 부족하다면 우리 가문에서도 힘을 보태지.”

    상대는 기사이기 이전에 후작가의 자식이다.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게 당연했다. 몇몇 영주도 얼마든지 도와주겠다고 하자 루펠이 미소 지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필요하다면 도움을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루펠.

    소문대로 성정이 바른 사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무에 열성적이라는 것까지. 곧바로 도시를 떠난 중앙기사단과 도시에서 차출된 수십 명의 병사와 기사가 말을 타고 현장으로 떠났다.

    그 모습을 베르덴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야 출발했나.”

    베르덴이 들고 있는 블랙 아워의 나침반. 그 자침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글러트니에게 일정 거리 안으로 접근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목표가 다수이기 때문에 오류가 생기는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당장 글러트니를 식별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베르덴은 짐작하고 있었다.

    글러트니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취할지 말이다.

    베르덴이 구름 위로 향했다.

    서서히 공기가 희박해지고, 마력 소모량이 증가했다. 까마득한 높이는 심리적으로 압박감까지 들 정도. 일반적인 마법사였다면 겁이 나서 엄두조차 내지 못할 고도였다.

    극히 드문 일이긴 하나, 실제로 자신의 역량을 착각한 마법사가 호흡곤란이나 마력 결핍으로 인해 추락사한 사례도 있었다.

    물론 베르덴은 달랐다.

    주위 공기의 밀도를 높여 호흡을 유지하고, 로브로 체온을 보호하며 보다 정교한 비행을 구사한다. 무리는 없다. 그 기반이 되는 신체, 마력량, 마력 조작 능력 등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었으니.

    어느새 구름보다 높게 올라간 베르덴.

    아래로 보이는 중앙기사단을 따라 현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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