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83화 (83/366)

83화 포상

수도 리드론의 왕성, 리 엔테(Re Ante).

행정관을 따라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는 백색의 복도를 지났다. 일정 구간마다 공국 기사들이 철저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으며, 그 약간의 빈틈마저 놓치지 않는 마법 장치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한 국가의 정점이 거주하는 성에 걸맞은 엄중한 경비였다.

‘이보다 더 큰 나라는 어떤지 궁금하군.’

베르덴은 행정관의 속도를 따라, 왕성 내부를 구경했다. 신분상 평민이 이런 왕성에 올 기회는 흔치 않으니.

그러다 보니 어느새 알현실 앞에 도착했다. 출입 허가가 떨어지자 마법 장치가 연쇄적으로 작동하며 거대한 문이 열렸다.

입구에서 왕좌까지 깔린 푸른 융단.

왕좌에는 리비안트 공왕이 위엄 있게 앉아 있었으며, 엔드릭이 그의 곁을 홀로 지키고 있았다.

로든마이어 백작을 필두로 앞으로 걸어나가, 차례로 예를 취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얼굴을 보니 제대로 휴식을 취한 모양이야.”

“전하의 은총 덕분입니다.”

“은총은 무슨. 그런 시답잖은 예의는 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다른 귀족들도 없지 않나. 어차피 자네들의 머릿속도 포상에 대한 걸로 꽉 차 있을 테고.”

“저희는…….”

공왕은 반론은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손을 튕겼다.

알현실 밖에서 행정관들이 차례로 상자들을 들고 왔다. 동, 은, 금으로 장식된 상자들이었다.

공왕 앞에 놓인 기다란 책상.

그 위에 도합 여섯 개의 상자가 일렬로 놓였다.

“그럼 시합에 대한 포상부터 시작하지. 세론, 앞으로 나와라.”

호명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준결승에서 잭에게 패배하고 시합에서 3위를 차지한 사람이었다. 공왕이 동으로 된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3위를 한 세론에겐 이 ‘미스릴 단검’을 하사한다. 유용하게 쓰도록.”

“감사합니다! 전하!”

별다른 마법 효과는 없는 미스릴 단검.

색깔로 보아 결코 많지 않은 양의 미스릴이 첨가된 듯 보이나 디자인이 매우 뛰어났다. 경매에 올리면 돈깨나 받겠지.

“다음은 잭.”

이번엔 2위였다.

공왕이 은 상자에서 금속 허리띠를 꺼냈다.

“2위를 한 잭에게는 ‘강완의 허리띠’를…… 음, 자네처럼 근력이 강한 전사에게 큰 도움은 되지 않겠군.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지.”

“감사히 받겠습니다.”

잭이 허리띠를 받아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고작 순위 하나 차이지만, 미스릴 단검보다 훨씬 값어치 높은 상품에 세론이 부럽다는 듯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다.

이윽고 공왕이 금 상자 앞에 다가섰다.

“그럼 마지막이군. 애셔, 앞으로.”

대망의 1위.

금 상자를 열자, 짙은 푸른색의 보석이 박힌 반지 하나가 나왔다.

“1위를 한 애셔에게는 ‘혹한의 반지’를 하사한다. 알다시피 모조품에 불과하지만 원본 성능의 8%, 전력으로 시동하면 최대 13%까지 끌어낼 수 있지. 물론 내구도가 많이 소모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원소 마법사인 자네에게 큰 힘이 될 거다.”

“감사합니다.”

베르덴이 혹한의 반지를 착용했다.

그러자 체내의 마력이 일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말로만 듣던 속성의 변질 현상이었다.

‘고작 1할조차 되지 않지만…… 기대되긴 하네.’

혹한의 얼음이라.

하루빨리 실전에서 마법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베르덴이 물러가고, 귀족들의 차례가 다가왔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가장 가치가 낮은 상자부터 시작했다.

동 상자에서 나온 포상에는 한 해 영지세를 일부 감면한다는 문서가 들어 있었다.

이제 금 상자와 은 상자가 남았다. 즉, 1위와 2위 결정전이었다.

귀족은 3명이 남아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유력한 후보는 로든마이어 백작과 볼디아느 백작 두 명이었다.

세론을 데려왔던 백작은 아쉬움에 몰래 한숨을 쉬었다.

알현실에 흐르는 긴장감.

이내 공왕이 은 상자를 열며 호명했다.

“볼디아느 백작, 앞으로.”

순간 두 백작의 희비가 교차했다.

이걸로 로든마이어 백작이 1위로 확정된 셈. 볼디아느 백작은 공국 최외곽에 있는 개척지에 대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상당히 큰 포상이었으나 백작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이윽고 로든마이어 백작의 이름이 불렸다.

“시합 1위와 영지 평가 1위라. 이거 참, 공국이 탄생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군. 아무래도 이번 대행사의 주인공은 자네인 모양이야.”

“영광입니다, 전하.”

공왕이 금 상자에서 총 두 개의 문서를 꺼냈다.

하나는 카제르단 능선에서 발견된 은광 채굴권.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작년 부도당한 상회에서 압류한 마석 갱도에 대한 채굴권이었다. 스케일이 다른 포상에 베르덴이 아연실색했다.

‘미쳤군.’

아무리 대행사라고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있는 영지 평가에 대한 포상으로는 과했다. 정상적으로 마석 갱도와 은광이 운영되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 테니.

물론 공왕 나름대로의 계산하에 내린 판단이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막대한 포상이었다.

자리로 돌아온 로든마이어 백작.

그가 베르덴과 눈을 마주치자 입꼬리를 비틀었다. 재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오히려 베르덴에게 나쁘지 않았다.

그 포상에 걸맞은 보수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백작은 성격상 그럴듯한 트집을 잡고 보수를 깎을지언정, 막무가내로 터무니없이 낮은 보수를 책정할, 몰염치한 귀족은 아니었다.

“이걸로 올해 대행사는 끝이 났군. 모두 수고했다. 이만 자택으로 돌아가도록.”

“예, 전하.”

시합과 영지에 대한 포상을 전부 하사했다. 그러나 베르덴은 아직 받을 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애셔, 자네는 남아라.”

* * *

베르덴이 공왕과 엔드릭을 따라 왕성의 중심으로 향했다.

공왕 본인임에도 근위 기사들은 철저하게 절차를 밟았다. 베르덴 또한 공간가방을 기사들에게 잠시 맡겨야 했다.

“여기가 왕성의 창고, 리 에론테(Re Eronte)다.”

알현실보다 더욱 견고하고 거대한 문이 눈앞에 있다.

공왕이 손을 대자 금속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사방에 가득한, 다양한 마법 물품이 보관되어 있는 유리 상자들.

전체적으로 보면 마탑의 보물고에 비해 확실히 규모는 작다.

손만 대도 침입자를 죽여 버리는 위험한 마법진도 없었다. 여기 있는 걸 전부 합쳐도 마탑주가 애지중지하는 컬렉션 하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공국은 건국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역사가 짧지. 그래서 창고 규모가 작긴 하지만, 내 나름대로 알차게 모은 것들이다. 어떤가?”

“대단하군요.”

빈말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베르덴의 눈길을 끌 만한, 가치 높은 것들도 있었으니. 22년밖에 되지 않은 나라치고는 상당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저건?’

창고를 구경하고 있던 베르덴이 홀린 듯 앞으로 걸어갔다.

유리 반대편으로 보이는, 검은 보석이 박힌 목걸이에 반사된 빛이 무지개 모양을 띠고 있었다.

공왕이 다가왔다.

“마법사 아니랄까 봐 좋은 건 알아보는군. 이 목걸이의 이름은 ‘삼원색의 중심’. 세 개의 원소를 합성할 수 있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설령 서로가 정반대에 있는 속성이라도 상관없이.”

두 개의 속성을 합치는 원소의 합성 마법은 고난이도의 기술이다.

어설프게 시도했다간 마법이 폭주해 마법사 본인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실제로도 이따금씩 일어나는 사례였다.

‘그런데 세 개의 속성을 합칠 뿐만 아니라 대척점에 있는 속성까지 합칠 수 있다고?’

전자는 불가능에 가깝고 후자는 마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치를 벗어난 효과.

“……아티팩트입니까?”

“그래. 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아티팩트지. 이걸 사용한 원소 마법사 중 멀쩡히 살아남은 자가 없으니. 죄다 마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그대로 폭사하거나 주변 일대와 함께 휩쓸려 나갔다. 아티팩트라고 해도 쓰질 못하니 애물단지처럼 여기에 모셔 놨지.”

그러자 베르덴이 눈을 빛냈다.

애물단지라는 뜻은 사용할 만한 자가 없다는 뜻. 한 명의 마법사로서 당연히 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험하면 어떤가.

베르덴은 그걸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설마 이걸 원하는 건 아니겠지?”

“원하면 주시는 겁니까?”

“당연히 안 되지. 소울 트리 토벌에 대한 치하와 나와 한 약속의 대가로 아티팩트는 너무 과해. 더군다나 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죽을 가능성이 높다. 착용자 중엔 원소 계열의 마도사도 있었으나 감당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그리고 보상은 이미 정해 놨다. 엔드릭.”

엔드릭이 로브가 장식되어 있는 유리에 다가갔다.

잠금장치를 풀고 로브를 꺼내 공왕에게 전했다. 짙은 녹색을 띠고 있는 로브였다.

“이 로브의 이름은 ‘유자(遊子)의 로브’. 한 나그네가 이걸 입고 대륙의 절반을 횡단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지.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감정해 봐도 되겠습니까?”

“음? 감정도 할 줄 아나? 그래, 한번 해 봐라.”

로브를 건네받은 베르덴이 감정을 사용했다.

◇ 유자(遊子)의 로브

⦁ 상태 보존

⦁ 체온 유지

⦁ 물리 저항(중)

⦁ 전 속성 저항(중)

⦁ 하루에 한 번 투명화 사용 가능

⦁ 하루에 한 번 선풍의 장막 사용 가능

‘평범한 마법 물품이 아니군.’

지금 착용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효과를 지닌 로브였다.

전 속성 저항과 더불어 별개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니. 거기다 투명화와 선풍의 장막은 5위계의 마법. 횟수가 제한되어 있으나 이런 능력을 지닌 로브는 결코 흔치 않았다.

“자네의 장비 중 로브가 제일 빈약해 보이기에 준비했지. 이거라면 보수로는 충분하다고 보는데?”

“감사히 받겠습니다.”

충분하고말고.

전혀 기대하지 않은 수확이다.

왕성 창고에서의 용건은 이걸로 끝.

셋은 창고를 뒤로하고 문으로 향했다. 베르덴이 슬쩍 삼원색의 중심을 바라봤지만, 공왕은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깝군.’

베르덴은 아쉬움과 만족감을 가슴에 담고 왕성에서 나왔다.

정문을 나서고 천천히 수도를 거닐며 백작의 자택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갑작스레 누군가 앞을 가로막았다.

‘잭?’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잭.

베르덴에게 다가온 그가 난데없이 물었다.

“애셔, 혹시 벨디른 공화국에 갈 생각 없나?”

“없습니다.”

어째서 잭이 그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베르덴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망설임 없는 즉답에 잭이 눈을 깜빡였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이내 조금 실망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실례했다.”

그 말을 남기고 잭은 발걸음을 돌렸다.

……저 말 한마디 하려고 이제까지 기다린 건가? 뭐, 이미 가 버렸으니 깊이 생각할 건 아니었다.

잭에게서 관심을 끊은 베르덴이 사고를 전환했다.

‘그보다 글러트니가 나타나지 않는군.’

귀족들이 수도에 모인 대행사 중에 뭔가 움직임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대로 잠적할 생각이라도 하는 모양인지 너무도 조용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일을 벌여 놓고 이제 와서 숨을 리가 없다. 분명 곧 무슨 일이 일어날 터. 그게 뭐든 간에 평범한 사건은 아닐 것이다.

베르덴은 확신했다.

* * *

날이 저물어 어두운 가도에서 세 대의 마차가 움직이고 있었다.

마차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다비르크 백작 각하, 밤이 깊었는데 일단 야영을 하시는 것이…….”

“멈추지 말고 자택으로 가라.”

“하지만 위험…….”

“위험은 무슨! 매직 아이템으로 밤길도 훤히 볼 수 있는데! 그런 말 할 시간에 제대로 말이나 몰아!”

대답 대신 고삐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경질을 낸 다비르크 백작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빌어먹을 로든마이어!’

다비르크 백작은 평소에 로든마이어 백작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외모나 가문이나 무력이나 지력이나 뭐 하나 그를 이기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데려온 마법사가 무참하게 박살 났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직접 찾아가 제안을 했음에도 애셔라는 발칙한 마법사는 찾아오지 않았다.

당연히 화가 나겠지.

“…….”

반대편에 앉아 있던 루크넌이 슬쩍 백작을 흘겼다.

아카데미 교수라고 치켜세울 땐 언제고, 전과 달리 찬밥 신세였다. 아마 2차전에서 무참히 패배했기 때문이겠지.

‘제기랄!’

루크넌은 애셔에게 분노했다.

이 정도의 치욕을 느껴 본 것은 난생처음. 언제고 이 수모는 갚아 주겠다고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화를 삭였다.

덜컹!

그 순간, 마차가 급정지했다.

마차가 흔들리자 백작이 벽을 주먹으로 치며 소리쳤다.

“무슨 마차를 이따위로 몰아! 죽고 싶나!”

……대답이 없다.

자세히 들어 보니 바깥이 소란스러운 것 같다. 그제서야 이상함을 느낀 백작과 루크넌이 바깥으로 나갔다.

“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다비르크 백작가의 기사들이 마차 주변을 지키며 기형적인 생김새를 가진 괴물들과 싸우고 있었다.

“이형종? 이형종이 갑자기 여기 왜…….”

아무리 늦은 밤이라고 해도, 여기는 저런 이형종이 나오는 곳이 아니다. 애초에 공국에 저런 이형종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기사들이 분투했지만 사망자가 발생했다. 머리가 뜯긴 기사의 시체를 본 백작이 다급하게 마차에 몸을 숨겼다.

“루, 루크넌! 어떻게든 해라! 내 기사들이 더 죽기 전에 빨리!”

기사들의 목숨을 아까워하는 게 아니다.

가문의 기사가 가진 가치, 그 자체를 아까워하는 것이다.

‘마침 잘됐어.’

루크넌이 품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뭐가 됐든 일단 이 소란을 정리하고 잃어버린 자신의 입지를 되찾을 생각이었다.

그때, 검붉은 이형종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섬뜩함에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나, 루크넌은 보란 듯이 웃어넘겼다.

‘고작 이형종 따위가.’

지팡이 끝에 모인 마력.

루크넌이 마법을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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