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결승 (2)
결승 시합은 지금까지와는 수준이 달랐다.
잭이 검을 휘두르면 거센 바람이 일며 검기가 날아갔고, 베르덴은 이제까지 보여 주지 않았던 다양한 원소 마법으로 대응했다.
화려하고 위력적인 광경.
짧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격전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법과 검술이 서로 부딪치는 그 모습에 너 나 할 것 없이 몰입했다.
각자 응원하는 참가자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시합 자체를 즐겼다. 내기가 걸려 있는 사람은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기도 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공왕이 페르드에게 말했다.
“어떤가. 자네가 보는 애셔의 실력은.”
“……상당하군요. 숨겨 둔 수가 있어 보이는데도 저 정도일 줄은. 소울 트리를 토벌했다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차후 어떤 마법사가 될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군요.”
마법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하게 정진하는 마법사.
아카데미다 마탑이다 하는, 출신을 중요시하는 요즘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뭘 이루고자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권력과 부를 위해서 쌓은 실력은 아닌 듯싶은데……. 마치 옛날의 마법사를 보는 것 같습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저렇게 고리타분한 마법사가 많았다.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하나하나 탑을 쌓아 가는 자들이 말이다. 그렇기에 페르드는 애셔란 마법사의 미래에, 마법사로서 기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에 한계 위계를 측정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위치가 정해지기에, 꿈을 좇는 자들이 턱없이 부족해진 세상이라서 더욱 그러했다.
“저도 한때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이룰 수 없었죠. 그게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니.”
“그래서 원망스러운가? 작금의 시대가?”
“옛날엔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여기서 전하를 모시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페르드의 한계 위계는 5위계.
한때는 그 틀을 벗어나고 싶어 피나도록 노력했다. 강제적으로 수면을 중단하고 2주 가까이 밤을 새우다 졸도한 적도 있었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무리한 실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게 한계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각자의 그릇. 5위계 마도사라는 위치는, 페르드가 하늘에게 부여받은 한계였다.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포기했다.
그러나 마법사로서의 삶까지 놓은 것은 아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페르드는 고개를 내리고 자신이 있을 만한 위치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막 독립을 마친 리비안트 공국이었다.
“그래, 자네 덕분에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광경을 기억하는 자들은 마법사만 보면 숨도 못 쉬고 있다던데.”
“그때는 제가 좀 과하긴 했죠.”
휴양도시 브리엔테, 거기서 페르드는 아주 대단했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뒷골목에 자리 잡아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쓰레기들을 단신으로 쓸어버렸으니.
그 탓에 더러운 피가 많이 묻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무구한 피를 살릴 수 있었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뿌듯했다.
뒷골목 대부분이 피바다가 되어 여러모로 안 좋은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공국이 만들어졌다.
보다 이상적이고 보다 평화롭게.
리비안트 공왕이 공국의 귀족들을 바라봤다.
예전과는 전혀 비교도 할 수 없이 활기가 가득한 모습. 에스티리아 왕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결코 볼 수 없을 얼굴들이었다.
공국을 위해.
막 독립을 했을 당시의 다짐은 22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어져 오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으로도 그러길 바란다.
* * *
시합은 잠시 소강 상태에 이르렀다.
가팔라진 잭의 호흡. 그 상대인 베르덴 또한 마찬가지였다.
잭이 베르덴을 주시했다.
비행을 쓰면서 그렇게나 과격하게 움직였음에도 아직 여력이 남아 있었다. 마법사임에도 이 정도로 육체적인 단련을 거듭했다니,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는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고 있다. 특수 개체에 버금가는 이형종을 토벌할 정도의 마법은 아직 보여 주지 않았으니.
더해서 이 마법진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접전을 치르지 못했을 것이다.
시합이란 규칙과 공간은 잭에게 유리하다.
그러나 전력을 펼쳤는데 이렇다 할 피해를 주지 못했다. 치명상을 입힐 정도의 살수(殺手)를 배제하긴 했으나 그건 상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지금까지 봐 온 4위계 마법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노력과 재능. 무엇 하나 그에게 필적하는 마법사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었다.
이대로 시합을 이끌어 나가는 건 소용없다.
시합 자체는 화려할지언정 잭은 서서히 밀리다가 서서히 패배할 것이다. 용병으로서 숱한 전장을 겪었으나 그런 볼품없는 마무리는 잭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더 시간을 끌 생각은 없다.
잭이 검을 날카롭게 세웠다.
이게 최후라는 듯 심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도신에 명확한 형체가 없는 무언가가 아른거렸다.
무색의 기.
일반적으로 붉은색을 띠는 기운과는 달랐다.
베르덴이 가늘게 눈을 떴다.
‘한 방으로 끝낼 생각인가.’
바라는 바다.
베르덴도 마찬가지로 방대한 마력을 스태프에 집중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푸른 기류. 그와 동시에 부서진 지면의 일부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하나로 뭉쳤다.
화염역병 이상으로, 베르덴이 정신을 한데 집중해야 쓸 수 있는 마법 중 하나.
화아아아악!
화염과 대지, 거대한 암석의 창이 붉게 달아오르며 그 열기가 대기를 타고 퍼져 나간다. 안팎을 차단하고 있던 마법진조차 감당하지 못한 열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순간 피부가 화끈거리는 걸 느낀 귀족들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
“…….”
베르덴과 잭.
둘이 서로를 마주봤다.
먼저 선수를 취한 건 베르덴이었다.
<용암격창>
마법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정면에서 닥쳐 오는 그 열기와 압력을 견뎌 내고 있던 잭이 눈을 번뜩였다.
무섬無閃
콰아아앙!
무형의 검기와 마법이 충돌했다. 그 여파에 돌풍이 일며 한계에 다다른 마법진에 금이 갔다.
“……당장 마법진을 보수해라!”
페르드의 명령에 왕성의 마법사들이 달려들었다.
자칫하면 귀족이 다칠 수도 있는 상황. 다급하게 새로운 마법진을 만들어 부서진 마법진의 외벽을 보호했다.
귀족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시합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용암으로 이뤄진 창과 검기가 마찰을 일으키는 광경.
대체 어디 가서 이런 걸 볼 수 있을까. 모든 순간 하나하나를 놓칠 수가 없었다.
그때, 검기가 베르덴이 만든 용암의 창을 파고들었다.
당장이라도 박살 날 듯한 베르덴의 마법. 이걸로 승패가 갈렸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거기까지였다.
이내 검기를 집어삼킨 용암 창이 잭에게 육박했다.
“……!”
피할 수 없다.
잭이 가까스로 지면에 검을 박아 검 면으로 몸을 가렸다.
콰드드드드득!
용암 창이 부딪치며 그대로 잭이 휩쓸려 나갔다. 간신히 버티고 있는 다리가 지면에 상처를 남겼고, 이어 마법진까지 박살 내고 나서야 마법이 사라졌다.
지글거리는 대지.
순간 귀족들은 잭이 죽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흙먼지가 가라앉자 잭은 여전히 검 면으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강력한 신체 능력으로 그 마법을 정면에서 견뎌 낸 것이었다.
붉게 달아오른 검.
가만히 있던 잭이 고개를 들고 검을 들었다. 전보다도 위압적인 기세. 그러나 베르덴을 향해 한 발짝 내디딘 순간, 그의 신형이 무너졌다.
곧바로 레이크가 생사를 확인했다.
다행히 숨은 제대로 쉬고 있었고 생명에 지장이 없었다. 치명상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방금의 충격에 잠시 기절한 것일 뿐이었다.
이것으로 승패는 결정되었다.
“승자! 애셔!”
레이크가 결승이 끝났음을 알리자, 귀족들의 중심에 있던 로든마이어 백작이 기립해 박수를 쳤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진심으로 기쁜 듯한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이다.
이어서 베르덴에게 돈을 건 귀족들이 갈채했다. 그리고 내기에서 진 귀족들도.
정원에 애셔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우승을 거머쥔 베르덴은 작게 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계산이 빗나가지는 않았군.’
마법서로 강화된 땅 속성의 마법. 기존의 마법보다도 훨씬 위력이 컸기에 부득이하게 화염 쪽의 위력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만약 상대가 적이었다면, 베르덴이 전력을 내보였다면, 잭은 즉사하지는 않았을지언정 그 열기에 치명상을 입었겠지.
그걸 이렇게나 깔끔하게 끝낼 수 있었으니, 베르덴에게 있어서 더없이 좋은 결과였다.
레이크가 다가가 베르덴의 팔목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이번 대행사의 승자는 애셔라고 세상에 확인시키듯.
이렇게 올해의 대행사는 막을 내렸다.
* * *
“더할 나위 없는 결과였다.”
로든마이어 백작은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직접적으로 칭찬하지는 않았으나 목소리에는 전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활기가 가득했다.
백작은 대행사가 끝난 이후로, 베르덴에게 대행사의 연회에 버금가는 최고급 식사와 더불어 각종 대우를 해 주었다.
바깥으로 나갈 필요도 없이 말만 하면 사용인들이 뭐든지 베르덴의 방으로 갖다주었다.
‘대체 뭘 받길래 그러는 건지, 원.’
뭐, 곧 알 수 있게 되겠지.
그렇게 며칠이 지나 왕성에서 초청장이 날아왔다.
대행사의 포상을 공왕에게 직접 하사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베르덴은 로든마이어 백작과 함께 마차를 타고 왕성으로 향했다.
왕성의 정문에 도착하자 시합에서 2위를 한 잭과 그를 데려온 볼디아느 백작도 있었다. 이하 3위도 마찬가지.
그리고 시합과 관련이 없는 백작이 한 명 있었다.
로든마이어 백작이 말했다.
“공왕 전하께서 준비하신 포상은 총 여섯인데, 포상을 받는 귀족은 넷뿐인가. 그렇다는 건 여기 셋 중에 시합의 포상과 더불어 영지 평가에 대한 포상을 같이 받는 자가 두 명이 있다는 뜻이군. 잘하면 시합과 영지 평가의 1위가 같을지도 모르겠어.”
“흥. 설마 그럴 리가. 공국 개국 이래로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적당히 시합에서 1위를 한 것에 만족하게. 이번 영지 평가의 1위는 나일 테니까 말이야. 괜한 기대심은 접어 두는 게 몸에 이롭네.”
볼디아느 백작이 단언했다.
시합의 우승을 놓친 건 뼈아픈 일이지만, 영지에 대한 평가는 그걸 만회할 정도라고 확신했기에. 그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로든마이어 백작이 작게 비웃었다.
“그거 하나로는 부족하지.”
“……쯧.”
기분 나쁜 웃음에 볼디아느 백작이 혀를 찼다.
그 로든마이어가 이렇게나 대놓고 속내를 드러낼 정도면 자기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다는 뜻일 터.
더군다나 올해 걸린 포상이 역대급으로 크다는 정보를 왕성 내부에서 입수했기에, 볼디아느 백작은 심기가 굉장히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두 귀족의 신경전에 다른 귀족들은 모른 척 무시했다.
끼어들었다가 괜히 불똥만 튈 뿐이었다.
잠시 후, 왕성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왕성에서 근무하는 행정관이 직접 찾아왔다.
“모두 오래 기다리셨소. 그럼 따라오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