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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80화 (80/366)

80화 대행사 (3)

마법사는 근접전에 취약하다.

당연한 말이었다. 마력회로를 확장하고 이론과 마법을 배우는 것만 해도 벅찬데, 그 와중에 무기술이나 체술을 단련할 시간이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거기다 애초에 마법이 있는데 굳이 위험하게 붙어서 싸울 일이 거의 없다.

특히 파괴에 특화된 원소 계열 마법사가 그러했다. 그렇기에 귀족들은 베르덴을 보는 시선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원소 마법사라고 하지 않았었나?”

“부여 마법에다가 그런 움직임이라니. 허허, 이거 놀라지 않을 수가 없군.”

문득 서쪽 제국의 워 메이지가 떠올랐다.

워낙 먼 나라기에 공국과 인연이 없었지만, 마법과 체술을 합하여 특이한 전투법을 구사하는 강대한 마법사 부대를 육성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곧 생각을 거뒀다.

극소수지만 마법에 의존하지 않는 마법사는 있다. 근접전에 능숙한 마법사라고 해서 그를 타국의 병사로 여기는 건 누가 생각해도 과한 억측이었다.

애초에 서쪽 제국에서 공국에 신경 쓸 이유도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대놓고 드러내지도 않았겠지.

가만히 베르덴을 주시하던 귀족들.

작년에는 핏빛검의 독무대였으나 올해는 무려 우승 후보가 세 명이나 있다. 누가 이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귀족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시합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연회장의 정원이 여느 때보다 술렁거렸고, 아직 내기에 참가하지 않은 자들이 베르덴에게 돈을 걸었다.

1차전이 끝나고 휴식 시간이 되었다.

왕성의 하인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음식을 옮겼다.

베르덴이 샴페인을 하나 들고 주위를 둘러봤다.

어떤 규칙이 있는 모양인지 시합 얘기가 한창임에도 귀족들과 참가자들이 따로 무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딱히 갈 곳이 없었기에 참가자가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베르덴을 본 참가자들이 눈을 흘겼다. 방금 전의 시합을 보고 경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 잭이 다가왔다.

“당신, 강하더군.”

갑작스러운 말에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던 베르덴이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결승을 기대하지.”

그 말을 남기고 잭이 자리를 떠났다.

그러다 도중에 루크넌을 마주쳤는데, 베르덴을 대할 때와는 달리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그대로 지나쳐 갔다.

“……야만인 같은 것이.”

무시를 받았다고 생각한 루크넌의 표정이 일그러지다 이내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여유롭게 샴페인 잔을 돌리며 베르덴에게 다가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다비르크 백작님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루크넌이라 합니다.”

그가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마치 귀족 흉내를 내는 것 같은 몸가짐이었으나 굳이 지적할 생각은 없었다.

“애셔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까 전의 시합은 확실히 인상적이었거든요. 마법사가 근접 전투를 벌이다니, 아주 보기 드문 광경이었습니다.”

루크넌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명백히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였다.

“뭐, 사람이 저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특기를 가지고 있다는 건 이해합니다. 당신의 경우에는 그 마법사답지 않은 움직임이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법사를 상대로 마법전을 피하다니. 솔직히 말해 아쉬웠습니다.”

마법전을 회피하는 건 마법에 자신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까.

강함과 별개로 마법사로서 수치였다. 적어도 루크넌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 이상적인 마법사란 그야말로 예술가였다.

마법으로 보다 아름답고, 보다 부드럽게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베르덴의 전투 방식은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니 당신에게 제안하겠습니다. 2차전은 포기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최소한의 자존심은 챙겨 갈 수 있습니다.”

루크넌 교수.

전직 아카데미 교수로 4위계 상위의 정신 계열 마법을 구사하는 실력자.

거기다 기본적인 원소 마법도 사용할 줄 알기에, 상대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육체를 제압하는 것이 특기였다.

눈앞에 있는 어린 마법사의 정신을 붕괴시키는 건 지극히 간단한 일이었다.

묵묵히 얘기를 듣고 있던 베르덴이 루크넌에게 말했다.

“대답하기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어느새 말투에서 존대는 사라졌다.

루크넌이 눈썹을 씰룩거렸다.

“무엇입니까?”

“상대의 시합에 개입하는 것도 아름다운 건가?”

순간 루크넌의 표정이 굳었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죠?”

“굳이 말로 해야 하나?”

공왕과 귀족들이 지켜보고 있음에도, 베르덴의 1차전 상대인 로빈은 살기를 드러냈다.

분노와 증오 같은 것이 일부 표정으로 드러나기도 했고. 무슨 원수라면 모를까, 일면식도 없는 베르덴에게 품을 만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에게서 아주 희미한 마력이 느껴졌다. 지금 앞에 있는 루크넌의 마력과 동일한 것이 말이다.

‘뭐, 시합이라곤 하지만 정정당당하게 붙어야 한다는 규칙은 없었으니.’

그래서 굳이 제재하지 않은 거겠지.

어쩌면 그의 고용인인 다비르크 백작이란 귀족이 주문했을지도 모른다. 시건방진 마법사를 참교육해 달라는 이유로.

아니면 베르덴의 발언에 심기가 거슬린 루크넌이 몰래 수작을 부린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베르덴의 마음엔 들지 않았다.

루크넌은 그야말로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음흉한, 마탑의 마법사들과 같은 부류의 인간이었으니.

잠시 침묵하던 루크넌이 피식 웃었다.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많이 지치셨군요. 증명도 하지 못할 말은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래도 2차전은 제가 특별히 배려해서 곧바로 끝내 드리는 게 당신이나 나에게 있어 좋겠군요.”

몸을 휙 돌린 루크넌이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베르덴이 흘겨봤다.

아카데미에 가 본 적도 없고 가서 뭘 배우는지 관심도 없었지만, 저런 교수 밑에서 배우면 제대로 된 마법사는 되지 못할 거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샴페인 한 잔 더.”

“여기 있습니다.”

베르덴은 맛 좋은 샴페인을 마시며 왕성의 풍경을 즐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2차전이 시작되었다.

* * *

“역시 저자가 결승에 오르겠군.”

귀족들의 시선이 잭에게 향했다.

그는 1차전에서는 남다른 신체 능력을. 그리고 2차전에서는 강력한 검술을 선보였다. 줄곧 검격을 흘려 내던 상대방의 무기가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날 정도.

고속의 검술을 구사하는 핏빛검과는 정반대로 힘을 적극 활용하는 검술이었다.

2차전에서 승리한 참가자들도 괜찮은 시합을 선보였으나, 잭에 비해서는 여러모로 주목도가 떨어졌다.

이윽고 오늘의 마지막 시합이 다가왔다.

베르덴과 루크넌. 둘이 무대 위에서 각자의 스태프와 지팡이를 손에 들었다.

루크넌이 베르덴을 마주하며 이죽거렸다.

자신을 비롯한 참가자들을 2분 내에 쓰러뜨리겠다니. 기왕이면 1차전에서 사고로 죽거나 처참하게 패배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된 이상, 저항할 틈도 없이 끝내 주도록 하죠.’

루크넌의 몸에서 마력이 피어올랐다.

4위계 상위 마법사에다가 무려 교수 출신. 관객들의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그렇게 레이크가 시작 신호를 보낸 순간.

<강대한 공포>

주변에 있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 * *

<강대한 공포>는 피시전자가 생각하는 가장 강한 존재를 불러 내고 시전자가 그 껍질을 뒤집어쓰는 마법이다. 정신계에 들어온 상대방은 루크넌에게서 그러한 존재에 대한 환영을 보는 것이다.

‘무력함은 곧 공포로 이어지는 법.’

사람들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강대한 힘 앞에 무릎 꿇는다. 그리고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그것이 본능이었으니까.

이 마법은 루크넌이 배운 정신계 마법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그가 주위를 둘러봤다.

‘정신계 안이군. 확실히 성공했다.’

마법사로서 격의 차이가 있으면 성공 확률은 급격히 떨어진다.

선천적으로 정신계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매우 드물지만 있긴 했고. 하나 애셔라는 시건방진 마법사는 해당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야 일부러 걸리진 않았을 테니까.

루크넌이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베르덴이 나타났고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응?”

그런데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베르덴의 표정엔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미묘한 짜증만이 드러났다. 눈앞에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을 보며 베르덴이 미간을 찌푸렸다.

‘또 마탑주야?’

정신계 마법의 사용자는 드물다.

마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신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경험하기 위해 애써 저항하지 않았다. 당연히 빠져나갈 자신은 있었다. 레이라를 포함해 수만 명을 악몽에 빠뜨린 소울 트리조차 베르덴의 정신을 조금도 흔들지 못했으니.

‘그런데 이건…….’

너무 기대 이하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소울 트리가 펼친 악몽이 최소 세 단계쯤은 위였다. 여기서 배울 만한 건 딱히 없었다.

흥미가 식은 베르덴이 스태프로 바닥을 가볍게 두들겼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루크넌이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플레임 스트라이크>

지면에서 솟아 나온 불기둥이 루크넌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 * *

“흐아아아아아아악!”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루크넌이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마치 몸에 불이 붙기라도 한 듯 땅을 구르고 손을 휘저어 자신의 몸을 때렸다.

이것이 타인의 정신계에 들어간 부작용이다.

멋모르고 시전자보다 정신이 훨씬 강력한 사람에게 사용했다간 이처럼 몇 배나 되는 반작용을 돌려받을 수도 있었다.

“흐아아아아악!”

“뭐 하나, 빨리 데려가지 않고!”

“예, 예!”

병사들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와, 패닉에 빠진 루크넌을 데려갔다.

비명 소리가 차츰 멀어질 때쯤, 베르덴이 바깥으로 나왔다. 시합이 시작된 지 고작 10초가 채 흐르지 않았다.

그를 보는 귀족들의 시선이 또다시 다양하게 바뀌어 있었다.

“이러다 정말로 한 시합당 2분 내에 끝내 버리는 게 아닌가 모르겠어.”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베르덴이 승리한 1차전과 2차전의 시간을 합쳐도 1분이 채 흐르지 않았으니.

그때, 공왕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재미있는 시합이었다. 매해마다 새로운 실력자들을 참가시키는 데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아. 기대 이상이었다. 모두들 안 그런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하.”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다른 귀족들도 공왕을 따라 손뼉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박수갈채를 받은 참가자들은 말없이 예를 취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럼 오늘 연회는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시합의 참가자들은 내일 있을 마지막 연회에 참가할 자격이 생기니 생각이 있으면 와도 좋다. 되도록 준결승에 진출한 자들은 빠짐없이 왔으면 좋겠군.”

공왕이 베르덴에게 시선을 멈췄다.

내일 있을 시합도 기대하겠다는 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왕성으로 돌아갔다.

로든마이어 백작이 베르덴에게 다가섰다.

“확실히 공왕 전하 앞에서 자신감을 내비칠 실력은 되는군. 너무 빨리 끝나서 크게 볼거리는 없었지만 말이야. 특히 2차전은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로든마이어 백작은 아쉬워하긴커녕 오히려 흡족해했다.

어디까지나 그의 우선순위는 치열한 볼거리가 아닌 시합의 1위였으니. 어떻게 하든 정당하게 이기기만 하면 상관없었다.

“우리도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가자마자 가능한 일찍 잠드는 게 좋을 거다. 내일 있을 연회에 시달리면 무지하게 피곤할 테니까.”

“귀족들의 관심 때문입니까?”

“관심에서 끝나면 다행이지. 자칫하면 슬하에 여식을 둔 귀족들이 너와 혼인으로 연을 맺으려고 할 수도 있다. 출신이 불확실해도 마법사로서 특출난 재능을 가졌으니까. 그리고 외적으로도 그렇고.”

베르덴이 미간을 찌푸리며 질색했다.

지금까지 연인이란 걸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럴 만한 여유도 없었기에 특히 그러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막아 주시길 바랍니다.”

“하는 걸 봐서 생각해 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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