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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74화 (74/366)
  • 74화 초대 (2)

    공국의 비행정이 로든마이어 저택과 일정 거리를 두고 착륙했다.

    백작은 외부인인 베르덴을 저택으로 보낸 다음, 단장인 발칸을 포함해 로드론 기사단에게 직접 마중을 나가라고 명령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베일론 자작이 백작에게 물었다.

    “과연 누가 왔을까요?”

    “모르지. 하지만 평범한 귀족은 아닐 거다.”

    양옆으로 도열한 백작가의 사람들이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그야, 상대가 공국의 왕실이니까. 그것도 공왕의 명령으로 무려 비행정을 끌고 온!

    그만큼 이번 사안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뜻이 된다.

    그럴진대 저 안에 누가 타 있는지는 몰라도, 감히 느슨하게 대할 인물은 절대 아닐 것이다.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나 거리가 있는데도 미약하게 진동이 느껴질 정도면 군마 중에서도 상위의 품종. 이윽고 병사들이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의 문을 열었다.

    앞서 통과한 기사단장 발칸.

    그 뒤로는 완전무장을 한 새로운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색 갑옷.

    왼쪽 가슴에 새겨진 방패의 표식.

    공왕 직속의 바스티오 기사단.

    근위 기사단이 내부에서 왕족을 지킨다면, 이 기사단은 외부에서 활동하는 왕족과 고위 귀족의 호위를 담당한다.

    즉, 공국에 존재하는 여러 기사단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무력 집단이라는 것이다.

    놀랍기는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선두에 서 있는 한 기사의 모습에 백작조차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등에 매고 있는 회색의 방패. 진귀한 금속인 오리칼큠과 흑요석을 섞어 만든 공국의 비보 중 하나.

    저걸 공왕에게 하사받은 인물은 그가 알기로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바스티오 기사단의 단장이자 공국 최강의 방패.

    레이크 바실리온.

    그가 칠흑의 말에서 내리고는 투구를 벗었다.

    짧게 자른 자주색의 머리칼과 짙은 녹안. 그리고 오른쪽 턱에 칼에 베인 흉터가 있는 중년의 사내. 레이크가 로든마이어 백작에게 성큼 다가갔다.

    “오랜만이군, 로든마이어 백작.”

    레이크 단장의 계급은 백작과 동급이다.

    물론 위치가 위치이고 무력이 무력이니만큼 어지간한 백작은 편히 말조차 놓기 어렵다. 그러나 로든마이어 백작은 그 예외에 속했다.

    “매년 열리는 대행사 때마다 보는데, 오랜만이라는 말은 과하군.”

    “하하, 성격은 여전하군. 그래도 백작가에 직접 온 건 거의 십 년 만인데, 거 기분 좋게 인사 한번 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

    “어쩌겠나, 그게 내 성격인 것을. 그보다 서 있지 말고 들어가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용건은 내가 아니라 저택 안에 있는 마법사에게 있을 테니.”

    “허, 멀리서 왔는데 먼저 식사라도 권하는 게 주인으로서 마땅한 도리가 아닌가 묻고 싶은데.”

    “흥. 식사는 무슨.”

    비행선 안에는 웬만한 고급 여관보다도 나은 설비가 갖춰져 있다.

    공국에서 엄선한 요리사가 최고급의 식재료를 다루며 매 끼니마다 만찬을 차리니 배를 곯기는커녕 이곳에 오는 동안 잠깐의 허기조차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가하게 식사나 할 정도로 시간이 많은 게 아닐 텐데?”

    “음, 그건 그렇지. 알다시피 공왕 전하께서 성격이 꽤 급하시잖나? 전하께서는 그 ‘애셔’라는 마법사를 데리고 수도로 복귀하라는 명을 내리셨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있는 로든마이어 백작, 자네까지.”

    리비안트 공왕은 뛰어난 지배자다.

    전쟁 중에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독립해, 엉망이었던 나라를 수십 년 만에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으니. 다만 참을성이 많이 부족한 게 흠이었다.

    마차로 데려와도 될 것을, 중요한 전략 병기 중 하나인 비행정까지 동원할 정도로 말이다.

    “……전하도 여전하시군.”

    “빠르면 오늘 밤, 늦어도 내일 점심 전에는 출발할 예정이야. 촉박하긴 하다만 로든마이어 백작가에서 식사 대접을 받을 시간은 충분하지.”

    생각했던 것보다 애셔에 대한 공왕의 호기심이 큰 모양.

    오히려 로든마이어 백작은 좋았다.

    그런 마법사를 자신의 이름으로 대행사의 시합에 내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사실 백작은 대행사의 시합에서 애셔가 승리를 쟁취할 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로든마이어 백작이 금색 눈동자를 빛냈다.

    “좋다. 신경 써서 대접해 주지.”

    * * *

    로든마이어 백작은 자신의 정원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넓고 깨끗한 정원은 보는 이에 따라 황량하다고 볼 수 있긴 했지만 대신 초원에 있는 듯한 상쾌함을 느끼게 한다.

    거기다 지형 특성상 언제나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겨울이 늦게 오는 지역이기에 지금 이 시점에서도 그리 춥지 않았다. 심기에 거슬리는 벌레 또한 없다.

    호화로운 식사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뜻이다.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베르덴이 식사 초대를 받고 바깥으로 나갔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초저녁. 백작가의 사용인을 따라가니, 정원 중심에는 둥그런 식탁이 하나 놓여 있었고, 로든마이어 백작과 처음 보는 사내가 앉아 있었다.

    ‘……?’

    그러던 중 옆쪽에서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그쪽으로 향하니 은빛 갑옷을 입고 고급스런 스태프를 등에 찬 한 여성이 베르덴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따갑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처음 보는 마법산데.’

    무시하고 지나쳐 갔다.

    식탁 근처에 다가서자 로든마이어 백작이 손짓했다. 앉으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세 명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앉자 백작이 입을 열었다.

    “먼저 소개부터 하지. 이쪽은 바스티오 기사단의 단장, 레이크 바실리온. 공왕 전하의 명으로 너를 데리러 온 사람이다. 무려 비행정을 타고 말이야. 일단 자네를 수도로 데려가기 전에 대화를 나눠 보고 싶다고 하는군. 겸해서 식사도 하고.”

    ‘공왕 직속의 기사단장이라, 거물이군.’

    여태껏 만난 기사와는 다른 위압감이 느껴진다.

    베르덴이 고개를 숙였다.

    “애셔라고 합니다.”

    “레이크 바실리온일세. 듣긴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젊군.”

    베르덴과 레이크가 서로 눈을 마주했다.

    서로를 강자라고 인식한 것인지, 상대의 수준을 가늠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로든마이어 백작이 가볍게 손뼉을 쳐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럼 자기 소개는 끝났으니 식사부터 하도록 하지.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로든마이어 백작이 작은 종을 울리자 준비된 식사가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다.

    애피타이저로는 자른 토마토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올리고 싱싱한 야채와 드레싱을 뿌린 샐러드, 이어 브로콜리 수프와 갓 만든 빵이 나왔다.

    그리고 셔벗으로 입안에 남은 맛을 깔끔하게 지우자, 숙성시킨 샤또브리앙 안심 부위가 메인 요리로 차려졌다.

    음료로는 무려 60년을 숙성시킨 레드와인 도르네티가 준비되었다.

    이 한 끼의 가치는 무려 수천만 엘크.

    그러나 이중에서 그 가치에 지레 겁먹은 사람은 없었다.

    두 명은 귀족이고, 한 명은 한때 마탑에 종사하던 일원이었으니.

    훌륭한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로 블랙 커피를 음미하던 레이크가 베르덴을 슬쩍 관찰했다.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는군.’

    육체는 갈수록 정점을 지나 약해지기 마련이지만, 마법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저 애셔라는 사내, 이건 젊은 게 아니라 그냥 어린 게 아닌가.

    저 나이에 소울 트리를 토벌했다는 위업을 세운 건 동화나 역사서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다.

    하물며 아카데미에서 천재 중 천재 소리를 들으며 뛰어난 교육을 받았다면 모를까.

    소리 소문도 없이 갑자기 공국에 나타나 여러 사건을 해결한 마법사라니. 아무리 레이크의 머리가 유연하다고 해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교육을 받았던 건 확실한 것 같은데.’

    귀족에 버금가는 식사 예절만 봐도 알 수 있다. 태생은 몰라도 결코 평민 수준의 집안은 아닐 것이다. 레이크는 그렇게 단정했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할 수 없이 베르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에게 용건이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레이크 단장님.”

    “음? 아, 미안하군. 핏빛검과 함께 소울 트리를 토벌했다고 하길래 대화라도 나눠 볼까 했는데…… 솔직히 믿기가 어렵군.”

    “제 나이 때문에 그런 겁니까?”

    “상식선에서 생각해 보면 그렇지. 그러니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걸로는 안 되겠어.”

    레이크가 진지한 눈으로 베르덴을 주시했다.

    “보고된 바로는 화염, 바람, 땅, 거기다 고위 속성인 전격 계열 등 여러 속성을 다룬다고 하던데.”

    그가 언급한 건 정확히 베르덴이 소울 트리 토벌에서 사용한 계열들이다.

    원소 계열이라면 전 속성을 다룰 수 있지만, 굳이 베르덴이 나서서 밝힐 이유는 없었다.

    “그렇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단순히 다양한 속성을 다루기만 하는 건 의미가 없네. 내가 그리고 공왕 전하께서 원하시는 건 자네가 그러한 괴물을 죽일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냐, 없냐에 대한 증명이지.”

    공국 최강의 방패로서 정체가 불분명한 마법사의 힘을 시험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라.

    이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레이크가 이곳에 직접 찾아온 이유였다.

    물론 서로 목숨을 걸고 치고받으라는 건 아니었다.

    그저 확실한 증명을 통해 이 마법사의 전력을 파악하는 게 주목적이었다.

    공국의 대행사를 흥행시킬 정도가 되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공국이 품에 안을 가치가 있는지, 하다못해 굳이 적대하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는지 말이다.

    “증명을 하지 못하면 자네의 실력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게 공국의 대답일세.”

    으름장을 내놓은 레이크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는 이제껏 수많은 마법을 봐 왔고 방패 하나로 막아 냈다. 마법사가 행하는 마법의 시전 속도나 규모만 봐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탁.

    찻잔을 내려놓은 베르덴이 물었다.

    “마법으로 증명해야 합니까?”

    “뭐든지 상관없지만 여기서 마법을 쓰면 정원이 크게 손상되겠지. 로든마이어 백작이 화를 내는 건 별로 보고 싶지 않군. 그러니까 저택 밖으로 나가는 게 어떻겠나? 그리고 원한다면 내가 직접 마법의 표적이 되어 주지.”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증명하죠.”

    “……음?”

    대답에 의문을 느낀 레이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베르덴의 몸에서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굳이 마법을 보여 줄 필요는 없지.’

    전신의 마력회로가 활성화된다.

    넘쳐흐른 마력이 바깥으로 나가며 푸른색을 띠기 시작했다. 마치 화염처럼 베르덴을 감싼 마력이 활활 타올랐고, 물리력을 가진 마력이 주변을 억눌렀다.

    쩌적.

    찻잔에 금이 간 걸 본 레이크가 눈을 부릅떴다.

    ‘마력이 물리적인 영향을 끼칠 정도라고?’

    3위계 이상만 되어도 마력을 유형화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마력 자체만으로 물리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마법사는 소수다. 방대한 마력뿐만 아니라, 그 마력을 집약할 수 있는 섬세한 마력 조작 능력까지 갖춰야 하니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런데 베르덴은 달랐다.

    저렇게나 많은 마력을 방출하면서도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당연한 듯이.

    ‘이 정도라면.’

    마력량만 따졌을 때, 공국의 왕실 마법사들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소울 트리의 토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어느 정도 납득할 정도다.

    “호오.”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로든마이어 백작이 감탄했다.

    레이크 또한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마력만으로 그가 세운 기준점을 넘어 버린 셈이니. 마법이 어느 정도 인지 궁금하긴 하나 증명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베르덴의 생각은 달랐다.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인이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가 청명하게 빛나는 눈으로 레이크를 바라봤다.

    “……?”

    그제서야 레이크는 짐작했다.

    베르덴의 증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마력 위압.

    바다와 같은 마력이 레이크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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