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초대 (1)
“……고장 난 건가?”
베르덴이 블랙 아워의 나침반을 바라봤다.
분명 처음에는 정확히 한 방향을 가리키더니, 자침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동서남북 할 것 없이 멈췄다 움직이기를 반복하며 빙글빙글 돌기까지 한다.
‘구조적으로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베르덴의 마력을 넣은 마석으로 교환해 보니 정상 작동이 되었다.
“마석이 문제군.”
하긴 이 검은 마석은 기존의 마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니,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그리고 잘 생각해 보면 이질적인 기운은 가진 존재는 하나가 아니다. 공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글러트니의 대부분이 이와 같은 기운을 품고 있을 테니까.
즉, 이질적인 기운을 가진 놈이 많기에, 어느 하나로 특정할 수 없다는 뜻.
이건 실험이 필요했다.
시작부터 계획이 순조롭게 나아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문제는 없었다.
나침반은 결국 부가적인 도구니까. 어디까지나 메인은 박사의 징표를 미끼로 이용하는 것이다.
수백 명을 희생해서 만든 붉은 조각을 도중에 강탈당했으니 이후에 어떠한 반응을 보일 터.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큰 소란을 일으킬 것이다.
그때야말로 놈들을 끌어낼 절호의 기회였다.
이제 베르덴이 할 일은 글러트니가 다시 움직이는 걸 기다리는 것뿐.
그러던 중, 페일에게서 연락이 왔다.
의뢰는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일인지는 가 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었다.
‘글러트니인가? 아니, 설마 벌써 움직일 리는 없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페일의 화살촉에 방문했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페일의 말에 베르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대? 로든마이어 백작이?”
“그렇습니다. 백작의 가신이 저에게 직접 전달했으니 뭔가의 착오는 아닐 겁니다.”
갑자기 저택으로 초대했다니.
혹시 저번 실종 조사 의뢰에 대해서 불평하거나 보수를 깎으려고 하는 건가? 하지만 그런 용건은 페일에게 전달해도 충분했을 터.
굳이 베르덴을 저택으로 불러들일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초대라는 단어를 쓴 걸 보면 다른 이유가 있음이 분명했다.
“언제까지 가면 되지?”
“정확히 기한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적당히 빨리 오라고 하더군요. 이런 적은 없었던 터라 의뢰를 요청하는 건 아닐 텐데……. 한 가지 가능성이 높은 거면 그거군요, 공국의 대행사.”
“……?”
“소울 트리에 대한 소식은 이미 공국 수뇌부에게도 전해졌을 겁니다. 국가 단위의 위험을 배제한 셈이니, 애셔 님을 대행사에 초청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죠. 어쩌면 공왕이 직접 애셔 님을 치하할지도 모르고요.”
페일의 말을 들어 보면 납득은 간다.
그런 이유라면 베르덴을 부를 이유가 있으니까.
“왜 굳이 지금이지?”
“대행사를 보다 부흥할 생각인 것이겠죠. 애셔 님의 이름은 귀족계에서도 주목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리비안트 공왕은…… 여러모로 자유롭습니다. 호쾌하다고 할까요. 만나 보시면 무슨 뜻인지 바로 알게 되실 겁니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아직 정해진 건 없다. 단순한 추측일 뿐.
정확한 내용에 대한 건 로든마이어 백작을 직접 만나 보면 될 것이다.
* * *
베르덴이 로든마이어 백작의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을 지키는 기사들이 베르덴의 신원을 확인하고는 안으로 들였다. 안내인은 저번과 달리 정원이 아니라 직접 저택 안으로 안내했다.
저택의 응접실에서 베르덴과 로든마이어 백작이 마주 앉았다.
“오랜만이군, 애셔.”
“오랜만입니다, 백작 각하.”
로든마이어 백작이 베르덴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전에 만났을 때와는 기도가 달라졌군. 꽤나 바쁘게 살았나 보지?”
“나름대로는 그렇습니다.”
“그렇겠지, 로리엔에서 활약한 걸 보면 말이야. 내가 예상한 것보다 실력을 더 감추고 있었던 모양이더군.”
백작이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서로 인사도 했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애셔, 너의 이름이 공국에서 거론되었다.”
“대행사 때문입니까?”
“페일이 귀띔해 줬나? 정보상 아니랄까 봐 눈치는 빠르군. 그래, 맞다. 소울 트리를 토벌한 마법사로 소문이 널리 퍼져 나갔지. 관심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애셔란 이름은 꽤나 유명해졌다. 당연히 귀족들의 귀에도, 공왕 전하의 귀에도 들어갔겠지.”
로든마이어 백작이 베르덴과 시선을 마주했다.
“공국의 대행사는 일 년에 단 한 번 있는 날이다. 백작 이상의 귀족들이 공왕 전하께 영지에 대한 보고를 올린 뒤, 나흘간 연회를 열지. 당연히 여러모로 볼 것도 먹을 것도 많다. 더해서 수도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바뀌면서 경제 또한 활발해지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날은 바로 연회의 사흘과 나흘째에 있는 시합이다.
“시합…… 말입니까?”
“귀족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실력자들을 데려와서 벌이는 일종의 대련이지. 노래니 연극이니 뭐니 해도 최대 볼거리는 바로 싸움 구경이 아니겠나?”
새로운 강자들이 저마다 쌓아 올린 실력을 서로 맞부딪치는 광경은 예나 지금이나 뜨거운 관심을 끈다.
하지만 매해마다 같은 사람이 나오면 재미가 없는 법.
그래서 대행사의 시합에는 참가한 적이 없는 사람들만 나가도록 되어 있다. 애셔는 그 자격 요건을 충분히 갖추었다.
“그러니까 그 시합에 저를 참가시키겠단 겁니까? 백작 각하의 이름으로?”
“방금 말했다시피 너는 지금 인기인이다. 공국 상층부의 관심이 쏠려 있지. 그 마법사는 누굴까, 어떤 인간일까 하는 궁금증 말이야. 그리고 수뇌부에서 너의 이름이 나왔다는 건 이미 대행사에 부를 생각이 다분하다는 거다. 그러니 누가 선수 치기 전에 내가 잡아야 하지 않겠나?”
베르덴이 뭐라 말하려고 하자, 백작이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거절하겠다는 말은 마라. 공국의 대행사는 단순한 동네잔치가 아니야.”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거절하고 싶군요.”
백작이 압박했지만 베르덴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제 와서 누군가에게 행동을 강제당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괜히 마탑을 부숴 버리고 나온 게 아니다.
그런 베르덴의 반항심 어린 눈빛에 백작이 인상을 쓰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나 순순히 말을 들을 생각은 없나 보군. 하긴 그 실력에 길드에 들어가지 않은 걸 보면, 뭐……. 하지만 아직 이야기 안 끝났다. 시합에 대한 보상에 대해서 말이야. 혹시 혹한의 반지라고 들어 봤나?”
“혹한의 반지라면…….”
액세서리의 형태를 한 아티팩트 중 하나다.
소문에 의하면 마법사가 보유하고 있는 원소 속성 그 자체를 변질시키는 아티팩트로,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까지 얼려 버린다고 알려져 있다.
‘설마 시합 보상으로 아티팩트를 준다고?’
그럴 리가.
베르덴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혹한의 반지는 유일하다.
그리고 그 소유자가 버젓이 살아 있다. 설령 죽었다고 해도 혹한의 반지가 공국까지 흘러들어 올 일은 전혀 없다.
이런 식으로 상품으로 내걸릴 일도 없고.
그렇다는 건.
“모조품을 말하는 겁니까?”
“단순히 형태만을 본뜬 것이 아닌, 일부 효과까지 모방한 모조품이지. 올해 시합에서 1위를 한 사람에게 하사하신다더군. 그리고 내가 볼 때 너는 꽤 유력한 우승 후보고. 거기다 수도에 가면 공왕 전하께서 소울 트리 토벌에 대한 치하를 해 주실 터. 이 정도라면 구미가 당길 텐데?”
혹한의 반지라.
모조품이라고 해도 흥미가 가긴 한다. 원본이 가진 힘의 일 할만 재현할 수 있다고 해도 어지간한 마법 물품보단 유용할 테니.
베르덴과 같은 원소 마법사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와 별개로 보수 하나가 빠졌다.
“제가 시합에서 이기면 백작 각하는 뭘 받습니까?”
“……이것저것.”
“그럼 로든마이어 백작 각하에게도 따로 보수를 받아야겠군요.”
로든마이어 백작이 혀를 찼다.
“이래서 눈치 빠른 족속들은…… 하나 정당하지. 좋다. 그에 대한 보수도 지불하지. 대신 조건이 있다. 무조건 시합에서 1위를 해야 하고, 보수는 후불로 지불한다. 이것까지 거절할 생각은 아니겠지?”
후불이라.
백작의 신용이 확실하니 못 받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상황적으로도 괜찮아.’
리스너의 말에 의하면 글러트니의 이빨은 귀족. 어쩌면 공국의 대행사에 참가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때를 틈타 다른 장소에서 소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가만히 기다리는 것보단, 보수도 챙기면서 대행사에 직접 찾아가는 것이 훨씬 나을 터.
베르덴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됐군. 계약서는 이따가 쓰도록 하지. 그리고 공국 수도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는 여기서 지내라. 방을 하나 비워 줄 테니 거길 쓰도록.”
그렇게 베르덴은 한동안 로든마이어 백작의 저택에 머물게 되었다.
* * *
소울 트리의 습격 당시, 로리엔에서 빠져나온 기사는 곧장 인근의 도시로 향했다.
그리고 도시의 시장과 그 도시의 모험가 길드장에게 로리엔 시장의 인장이 찍혀 있는 보고서를 전달했다.
당연히 큰 소란이 일었고 곧장 지원을 해야 한다와 다른 도시들과 함께 협력해서 전력을 끌어모아야 한다는 두 가지 의견으로 갈렸다.
둘 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전자는 자칫 지원대마저 몰살당할 위험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후자 또한 지원이 늦으면 로리엔이 멸망할지도 몰랐다.
그런 와중에 소울 트리가 토벌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뭐? 잡았다고? 진짜로?”
“예, 그렇다고 합니다.”
아까까지 불타오르듯 했던 회의장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긴장이 풀리며 일부 사람들은 전서를 받고도 로리엔에 사람을 보내 사실을 확인했다.
그 결과 핏빛검 레이라와 정체불명의 마법사 둘이서 토벌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화제는 여러 사람의 입소문을 타고 삽시간에 퍼졌고, 이윽고 수도까지 닿았다. 후에 로리엔 시장이 소울 트리에 대한 보고서를 수도에 전달하며 진의 또한 명확해졌다.
공왕과 귀족들의 이목이 쏠리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알현실의 왕좌에 앉은 공왕.
그가 자신의 앞에, 양옆으로 도열한 귀족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솔직히 믿기 어렵습니다. 특수 개체에 버금갔다는 이형종이 나타났는데 이렇게나 적은 피해라니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프하르딘 백작이 답했다.
공왕이 자신 앞에 놓인 종이 뭉치를 톡톡 두들겼다.
“그렇다면 이 보고서가 거짓이라고?”
“어떻게 감히 공왕 전하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거짓은 아닐 거라 사료됩니다. 다만 어떠한 착오가 있음이 분명하겠지요.”
“근거는?”
“예, 그 소울 트리라는 것에 대해 알아보니 저마다 위험도가 다르다고 합니다. 옛 기록에만 의존해서, 정확한 위험도를 측정하는 건 여러모로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말이지요.”
백작의 말에 몇몇 귀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기에 나서서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분들 중에, 핏빛검에 대해 모르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작년 공국의 대행사에서 개최한 시합에서 압도적인 1위를 쟁취한 모험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 실력은 이미 미스릴 등급에 다다랐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 의견에 대해서 대부분이 동의하실 거라 생각됩니다.”
주변은 침묵으로 동조했다.
한 시합에 검을 세 번 이상 휘두른 적이 없는 고속의 검술가. 붉은 검기. 귀족들이 데려온 자들로는 일절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녀를 가신 또는 가문의 일원으로 삼기 위해 물밑에서 다수의 귀족이 움직이기도 했었다. 물론 전부 거절당했지만.
“그런데 보고서를 읽어 보면 핏빛검이 아닌, 출신이 불분명한 애셔라는 마법사가 토벌을 주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그 마법사가 그녀에 준하는 혹은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일 텐데, 솔직히 말해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공왕이 입술을 매만지다 다른 귀족들에게 물었다.
“자네들의 생각은 어떤가?”
“알아보니 애셔란 마법사는 나름 경력이 있었습니다. 파이테 영지에선 전직 금 등급 모험가인 도적들을 해치우고, 비르온 영지에서 백금 등급 모험가 도살자와 함께 통곡의 기사를 토벌했으며, 그 후에는 페일이라는 정보상 밑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로든마이어 백작의 보좌관인 베일론 자작을 구출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최근 그레이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해도, 그보다 몇 배는 더 경력을 쌓는다 해도 핏빛검에 비할 바가 전혀 못 되지요.”
“그건 그렇지만…….”
“거기다 4위계 이상에다가 네 속성이 넘는 원소 마법을 구사한다던데, 그런 재능을 가진 마법사가 갑자기 영웅처럼 나타나 로리엔을 구하다니요. 이게 무슨 허무맹랑한 소설도 아니고. 모두 그렇지 않습니까?”
프하르딘 백작이 그렇게 말하자 귀족들이 술렁였다.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가드란 후작’이 입을 열었다.
“공왕 전하, 그렇다면 그 마법사를 대행사에 불러들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만에 하나 소울 트리를 토벌한 것이 사실이라면 치하해야 마땅할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핏빛검은 작년에 대행사에 참가한 터라 올해는 참가할 수 없으니, 모험가 길드를 통해 상을 내리시면 좋을 듯싶습니다.”
그야말로 형식적인 대화.
어느새 모두가 애셔란 이름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실 이 모든 건 공왕의 뜻이었다.
대행사를 보다 부흥하려면 그에 걸맞은 화제가 필요한 법이니. 말주변이 좋은 백작 하나를 바람잡이로 삼아 이렇게 분위기를 이끌면 간단하다.
저 귀족들의 눈을 봐라.
마법사에 대해 짙은 호기심을 갖고 있는 눈빛이다.
공왕이 물었다.
“모두 후작의 말에 동의하는가?”
“예, 전하!”
알현실에 있는 그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반응으로 보아 작년에 이어 즐거운 대행사가 될 조짐이 보인다.
“오랜만의 만장일치군. 가드란 후작.”
“부르셨나이까.”
“비행정을 기동하라.”
공국에 큰 도움을 준 자를 달랑 편지 하나로 부를 수는 없는 법. 기왕 이렇게 된 것, 크게 일을 벌일 생각이다.
그것이 공왕의 노림수였다.
그렇게 베르덴이 로든마이어 백작의 저택에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
공국의 국기가 그려진 거대한 배 한 척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공국의 수도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베르덴은 로든마이어 백작의 저택에 머물렀다.
지극히 고급스럽고 취향을 타는 식사. 베르덴은 귀족이 아님에도 백작과 겸상할 수 있을 정도의 교양을 갖추고 있었기에 식사 때마다 백작과 함께했다.
서로 입맛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기에 불만은커녕 꽤나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베르덴은 남은 시간 동안 뭘 할지 고민했다.
여기까지 와서 페일에게 의뢰를 받고 움직이는 건 다소 번거로웠다.
그래서 베르덴은 기사단장 발칸을 찾아갔다.
“우리와 훈련을 같이 하겠다고?”
“안 됩니까?”
“아니, 뭐, 안 될 건 없지만…….”
마법사가 기사의 훈련을 따라올 수 있을까.
어지간하면 무리다. 체력을 기를 시간에 마법을 연구하는 것이, 힘들게 달리는 것보단 비행을 쓰는 것이 마법사니까.
발칸은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에 한 명이 더해져 봤자 별문제는 없었으니. 뭣보다 도중에 열외할 게 뻔하기도 했고 말이다.
아무리 특출난 마법사라고 해도 결국 마법사니까.
그러나 발칸의 예상과는 달랐다.
베르덴은 기사보다 속도는 떨어져도 체력 훈련을 끝까지 따라왔다.
거기다 훈련용 무기 중에서 창을 하나 꺼내 들더니 연습 대련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어떠한 마법도 사용하지 않은 순수한 체술로 말이다.
마치 창술이 아닌 봉술을 다루는 듯해 기술적으로는 부족했으나, 기이할 정도로 감각이 뛰어났다.
경험이 많은 노련한 기사조차도 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수십 합을 나누고 나서야 겨우 제압할 수 있을 정도.
마법사라기엔 이해가 되지 않는 반응속도와 육체였다.
발칸이 옆에 있는 클라크에게 말했다.
“요즘 마법사는 저렇게 싸우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 마법사만 이상한 겁니다.”
마법진, 원소 마법, 체술, 부여 마법 등 갖가지 수준급 이상의 실력을 갖춘 마법사. 발칸은 한때 그 재능을 질투했으나 지금에 와선 아니었다.
저건 아예 별개의 천재라고 인정한 것이다. 그러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그렇게 몇 주간의 시간이 흘렀다.
보다 체술에 능숙해진 베르덴은 그걸 그대로 전투 방식에 접목했다. 스태프를 들고 실전에 가까운 근접전을 반복하며 기사들과 대련을 벌였고, 이윽고 로드론 기사단의 베테랑 기사와도 보기 좋게 접전을 벌일 수 있게 될 정도였다.
물론 그 와중에도 마법 훈련 또한 빠뜨리지 않았다.
자기 개발에 미친 놈.
같이 훈련을 받은 기사들은 하나같이 베르덴을 그렇게 정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 멀리 하얀 구름 사이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리고 이내 고도를 낮추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공국의 국기를 단 한 척의 배.
리비안트 공국 왕실이 보유하고 있는 다섯 개의 비행정 중 하나.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로든마이어 백작이 작게 미소 지었다.
“크게 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