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72화 (72/366)

72화 붉은 조각 (3)

베르덴은 리스너가 자신을 찾아올 거라고 알고 있었다. 아니, 유도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

그와 마주친 글러트니는 테온을 제외하고 전부 죽었고 테온은 로크에게 끌려갔다. 거기다 글러트니에게서 얻은 붉은 조각을 멋대로 가져오기까지 했으니.

방주에서 베르덴을 찾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리스너가 신문을 고이 접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뜨거운 커피를 음미했다. 그러곤 베르덴에게 물었다.

“애셔 님, 혹시나 해서 묻겠습니다만, 저희 방주에 합류할 생각이십니까?”

“아니.”

베르덴이 즉답했다.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더 이상 글러트니와 관계되는 건 멈추십시오.”

“이유는?”

“아시다시피 놈들은 시련과는 별개의 위험입니다. 애셔 님이 박사를 처리한 것, 이식자를 처리한 것, 샐러맨더의 심장을 훔친 것 등 지금까진 전부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죠. 다행히 그 예측 불가능한 변수 탓에 글러트니는 아직 애셔 님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멈춰야 한다.

여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다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 베르덴은 글러트니의 표적이 될 테니까.

“애셔 님이 특별한 마법사라는 건 인정합니다. 소울 트리 토벌에 이어 다수의 이식자까지 단신으로 처리하는 그 실력. 위계를 넘어선 힘이 있으니, 확실히 마법사로서 자신감을 가질 만하죠.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상대적입니다. 아직 재능을 제대로 꽃피우지 않은 상태에서 감당 못 할 적을 만드는 건 말 그대로 자살행위입니다.”

“그러니까 몸을 사리란 뜻인가?”

“의미론적으론 그렇습니다. 용기와 만용은 다르니까요.”

용기와 만용은 다르다.

베르덴이 이리스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르덴에게 그러한 조언 따위는 필요 없었다.

“거절하지.”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굳이 글러트니와 적대하는가.

베르덴에겐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첫째, 거슬린다.

박사, 샐러맨더의 심장, 실종자. 한 번이나 두 번이면 모를까 벌써 우연으로 세 번째다. 그렇다는 건 네 번이나 다섯 번 이상 마주칠 가능성도 높다는 뜻.

당장 공국을 떠날 생각이 없는 지금.

또다시 예상 못 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건 여러모로 거슬린다. 그리고 우연히 글러트니 쪽에서 베르덴의 존재를 눈치채고 습격하는 것도 말이다.

놈들을 피해 도망치듯 공국을 떠나는 것은 당연히 논외다.

그리고 둘째, 불쾌하다.

글러트니에게 희생당하여 물건 쌓듯 쌓여 있던 무수한 시체. 그건 그저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베르덴의 과거를 떠올리게 했고, 지금과는 다른 절망적인 미래를 보여 주기도 했다.

보헤미른 마탑주와 마법사들과 같은, 인간을 단순한 재료로써 취급하는 그 시선. 그 자체만으로도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릴 이유는 차고 넘쳤다.

마지막으로 셋째, 글러트니는 강하다.

확실히 이식자들은 전에 보지 못한 전투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룬의 반지가 없었더라면 꽤나 고전했을 정도.

그 사실만은 마음에 들었다.

4위계 상위에 올라 5위계를 앞에 두었다.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다수든 소수든 상대하는 건 당장엔 큰 경험치가 되지 못했다. 지금 베르덴에겐 자신을 몰아붙일 수 있는 치열함이 필요했다.

글러트니가 위험하다면 그것 그대로 이용할 뿐.

베르덴은 자신의 마력과 마법 그리고 지식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물른 이러한 이유를 하나하나 리스너에게 설명할 생각은 없다.

‘뭐, 그러니까 굳이 요약하자면.’

“마음에 안 들어서. 그거면 이유가 되나?”

“마음에 안 들어서라니…….”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리스너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커피를 홀짝이다 헛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감정적이시군요.”

“감정이 없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지.”

이성은 중요하다.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보다 합리적이고 필요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니.

하지만 베르덴의 원동력은 어디까지나 감정이었다.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속은 언제나 분노, 증오심 등으로 차갑게 들끓고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양면성.

그렇기에 베르덴은 더할 나위 없이 인간다웠다.

그런 베르덴의 선택을 리스너는 존중했다.

방주는 강요하지 않으며 언제나 주체자의 선택을 중요시하니까.

“알겠습니다. 애셔 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면 어쩔 수 없죠. 더 이상 만류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글러트니를 찾아낼 생각이십니까?”

“그 전에 방주에서 파악한 글러트니의 정보를 먼저 듣고 싶은데.”

리스너는 잠시 고민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리비안트 공국 건에 대해서만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그거면 충분해.”

다른 나라에 대한 건 필요 없다.

지금 베르덴이 있는 곳은 어디까지나 리비안트 공국이니까.

“저희가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아무래도 글러트니의 이빨 중 하나가 이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공국의 상층부에.”

상층부?

“귀족하고 관련이 있다는 건가?”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거의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글러트니가 점점 움직임을 드러내는 것을 봤을 때, 조만간 큰일을 터뜨릴지도 모릅니다. 주시하고는 있지만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귀족에 숨어든 이빨을 찾아내지 않는 한 말이죠.”

그러니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그 전조 증상이라는 건가.

질문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로크가 데려간 테온, 놈은 어떻게 됐지?”

“심문 중에 있습니다만, 글러트니의 조각에 감염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이러한 특이 케이스가 있었거든요. 그때와 거의 비슷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글러트니 내부에서 입지가 약했던 터라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크게 없어 보입니다. 박사의 밑에서 움직였던 건 큰 건이지만 박사는 이미 죽었으니…….”

정보가 없으면 됐다.

어차피 부가적인 것일 뿐이니.

이어 붉은 조각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하지만 방주에서도 아직 그 용도를 밝혀내지 못한 모양이다. 굳이 말하자면 글러트니의 특징은 섭식과도 관련이 있다고 추측한 것 외에는 말이다.

베르덴이 예상한 것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묻지. 글러트니는 방주에 대해 어디까지 알지?”

방주의 시련.

그건 규모에 따라 세간의 이목을 끈다.

만약 글러트니가 시련에 대해 알고 있다면, 때에 따라 방주의 후보를 특정하는 것도 가능할 터.

소울 트리를 토벌한 베르덴과 레이라를 의심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러한 물음에 리스너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시련이 탄생한 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데다가, 시련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알고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습니다. 더해서 방주의 활동 범위는 글러트니를 아득히 넘죠. 숨어 다니기 급급한 글러트니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미미합니다.”

“저번에 보니 이식자가 로크에 대해 알고 있던데.”

“아, 로크 님은 예외입니다. 시련보다는 글러트니나 범죄자와 같은 악을 토벌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분이시라, 정보가 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죠. 그 때문에 죽을 뻔하신 적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이 정한 정의를 꺾은 적은 없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아주 훌륭한 분이시죠.”

로크를 칭찬하는 리스너의 목소리엔 존경이 담겨 있었다.

뭐,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글러트니에서 베르덴을 특정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최소 조건은 맞췄군.’

베르덴이 공간가방에서 박사의 징표를 꺼내 리스너에게 건넸다.

붉은 이빨을 본 리스너에게서 순간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건…… 글러트니의 징표군요. 송곳니도 어금니도 아닌 앞니. 설마 박사에게서 빼앗으신 겁니까?”

“박사가 숨겨 둔 지하실에서 발견했지.”

“왜 진즉에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묻지도 않은 것에 대답하는 것.

그건 대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쓸 용도가 생겼다.

“듣기로는 그 이빨이 일종의 신분증이라고 들었는데.”

“일단은 그렇습니다. 무언가에 사용되기보다는 글러트니 그 자체의 상징성을 띠고 있지요. 저는 총 일곱 개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끼로 적당하겠군.”

글러트니는 박사의 소재를 모른다.

그러니까 테온을 잡아 박사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려 한 거겠지. 그렇기에 이 징표는 놈들이 물지 않을 수 없는 미끼가 될 수 있다.

리스너가 작게 감탄했다.

“미끼라……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군요. 아니, 분명 통할 겁니다. 글러트니에게 박사는 귀중한 존재였으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글러트니가 미끼를 물어도 글러트니의 이빨이 그림자에 숨어 있는다면 끝입니다. 낌새를 느끼는 순간 꼬리를 잘라 버릴 테니까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이미 생각해 둔 게 있다.

베르덴이 방주에게 원하는 건 자신의 계획을 실현 가능케 하는 ‘인력’뿐이다.

일시적으로 방주의 주도권을 달라는 말에 리스너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사실 이미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베르덴이 공국 내에서 글러트니를 몰아넣은 지분은 매우 매우 높았으니까. 그는 방주가 아니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관철할 자격은 충분했다.

‘그리고 저희에게도 무척이나 좋은 일이니.’

글러트니를 처리함과 더불어, 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 올릴 수 있는 기회.

당장 방주에 영입하는 건 무리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노력을 들여 그와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

왜냐하면 베르덴은 방주가 반드시 끌어안아야 할 인재였으니까.

리스너 본인은 그렇게 판단했고, 그렇기에 베르덴의 요구를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다른 분들을 설득해 보죠.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 *

페일에게 요청한 재료들을 받은 베르덴.

그는 책상 위에 재료들을 나열한 뒤, 붉은 조각을 그 중심에 두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사르륵.

상급 마석의 가루를 바닥에 뿌려 마법진의 기초를 구성했다. 그리고 그 위에 복잡한 구성의 마법진을 차례로 그리기 시작했다.

세 개의 마법진.

문자와 기하 등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엮였고, 그 교차점을 독자적으로 수정하여 하나로 연동시켰다.

이어 마력을 불어 넣자 마법진들이 서로 공명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소비한 시간은 3시간.

집중력을 상당히 소모한 터라 일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베르덴이 깊게 숨을 뱉으며 피로를 털어 내고는, 마법진을 면밀하게 검사했다.

“다행히 오차가 일어난 부분은 없군.”

그럼 다음 차례.

‘안드라의 피’라는 붉은 식물을 으깨어 뽑아낸 즙을 마력수에 넣은 뒤 가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력수가 전부 증발하고 붉은 즙이 아닌 푸른 액체만이 남았다.

안드라의 피.

이것은 접촉한 물질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고체가 액체에 가깝게 되고, 금속에 묻으면 부식되며, 피부에 묻으면 마치 맹독처럼 녹아 버린다.

이렇듯 위험하긴 하나, 연금술에서 종종 쓰는 재료 중 하나다. 안정된 물질은 재료로 쓰긴 어렵지만 불안정한 재료는 배합하기 쉬운 법이니.

베르덴은 이 불안정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푸른 액체에 붉은 조각을 담았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 집게로 붉은 조각을 꺼내자 전과 달리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그걸 세 개의 마법진 중 첫 번째에 올려놨다.

분리의 마법진(The Divide).

결합의 마법진(The Combination).

안정의 마법진(The Stability).

연금술 전용으로 만들어진 고난이도의 마법진.

붉은 조각에 있던, 마력과 동화되어 있던 이질적인 기운이 서서히 분리되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다른 마석을 중심에 올리자 그 기운이 새로운 마석에 결합했다.

반발이 심했으나 마법진을 이용해 강제로 억눌렀다.

크게 진동하던 마석이 점차 안정을 찾았다.

그 결과 듣도 보도 못한, 검은색 색채를 띠고 있는 마석이 만들어졌다.

“……성공했군.”

혹시 몰라 기다려 봤으나 이미 그 자체로 안정되어 있었다.

붉은 조각에서 뽑아낸 이질적인 기운이 마석에 있는 마력에 잘 동화된 모양.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베르덴이 공간가방에서 ‘블랙 아워의 나침반’을 꺼냈다.

마석에 담긴 마력을 증폭해 그 주인을 찾는 인공 아티팩트. 거리가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공국 내에서라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

조심스레 마석을 나침반 안에 집어넣었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자침.

이내 그 끝이 북쪽을 가리켰다.

* * *

성벽에 둘러싸인 넓은 부지, 그 중심에 있는 호화로운 저택.

전문가가 설계하고 관리하는 정원은 화려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그것만으로 주인의 고귀한 품위를 엿볼 수 있었다.

그에 더해서 각종 마법 물품과 마법진 그리고 사병으로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었다.

그런 저택 안에서 한 부자가 기다란 식탁에 마주 앉아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세련된 손놀림으로 귀족답게 천천히 식사를 했다.

아버지가 브랜디를 한 모금 마시고는 아들에게 말했다.

“대행사의 날짜가 잡혔다.”

“올해는 많이 늦었군요.”

“공왕 전하께서 원래는 좀 더 일찍 개최할 생각이셨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셨지. 너도 들어 본 적이 있을 거다, 로리엔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해서.”

모를 수가 없다.

지금 귀족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제였으니까.

“분명…… 소울 트리라고 했었나요?”

“듣기로는 특수 개체에 버금갈 정도였다는데, 그런 괴물을 차기 미스릴 등급 모험가인 핏빛검과 어떤 마법사가 토벌했다고 하더구나. 분명 어느 정도 과장이 된 것이겠지.”

특수 개체는 나라를 뒤흔드는 강대한 존재.

그보다 못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고작 둘이서 해결했다는 건 특수 개체보다 훨씬 못한 적을 상대했다는 것이 맞을 터.

아들이 가지런한 건치를 하얗게 빛내며 미소 지었다.

“어쨌든 사람들에게 피해가 없다니 다행이군요. 무의미한 희생을 당하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래, 다행이지.”

둘은 식사를 이어 나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시선을 향했다. 아들은 능숙하게 스테이크를 자르며 조각조각 그 맛을 음미했다.

그의 옆에는 벌써 몇 개나 되는 접시가 가득히 쌓여 있었다.

아무리 대식가라도 비정상적인 식사량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개의치 않았다.

많이 먹는 게 대수인가. 사람답지 않은 것이 대수인가.

뭐든 상관없다.

아들로서 건강하기만 한다면.

아들로서 남아 주기만 한다면.

아버지는 뭐든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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