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붉은 조각 (2)
사체 더미 아래에 있던 기다란 홈들이 석관으로 이어져 있다. 그 안에 흐르고 있었던 피가 석관 안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부는 너무나도 깨끗했다.
혈흔은커녕 띠끌 같은 먼지조차 묻어 있지 않았다. 그 대신 피처럼 붉은 조각들이 중심에 놓여 있었다.
‘붉은색이라…… 분명히 실종자의 시체들과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함부로 만질 생각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베르덴은 마력으로 조각을 감싸 염력을 발동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단순히 마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염력이나 염동력으로는 생명체를 조작할 수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일정 이상의 마력을 지닌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체내에 기와 마력을 품고 있다.
그걸 임의로 다룰 수 있냐 없냐에 따라 기를 깨우친 자나 마법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루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이 가진 힘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은 아니다.
몸속에 흐르는, 살아 숨 쉬는 마력.
이건 마법 물품과 달리 그 자체로 외부 마력에 대한 저항력을 갖는다. 그리고 마력 저항력이 조금이라도 높으면 염력으로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다.
마력 저항력이 극도로 낮은 식물이라면 가능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 조각은 살아 있다는 건가?’
자세히 살펴보니 이질적인 무언가가 느껴진다. 마력인 것 같기도 하면서 아닌 것 같은.
테온이 말한 생명력.
분명 그것이 관계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그때, 테온과 로크가 석관이 있는 중심으로 걸어왔다.
베르덴이 고개를 돌리자 그들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아까 전까지와는 다른, 긴장이 역력한 반응이었다.
베르덴이 붉은 조각을 가리켰다.
“이게 뭔지 아나?”
“네, 네?”
로크의 말투가 존댓말로 바뀌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말투 따위야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로크가 슬쩍 다가가 붉은 조각을 바라봤다.
“……음, 이런 건 처음 보는데. 야, 글러트니. 너도 몰라?”
“나도 모르는 물건이다. 하지만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둘 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베르덴이 테온에게 손짓했다.
“테온, 네가 직접 잡아 봐.”
“……내가? 아, 아니. 그렇게 하지.”
베르덴의 시선에 테온이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었다.
방금 전에 보였던 마법 수준은 그야말로 격이 달랐으니까. 로크가 슬쩍 시선을 돌려 사방에 널브러진 이식자들의 파편을 바라봤다.
‘저놈들은 그냥 이식자가 아니었는데…….’
마법사와 네 개의 팔을 가진 검사.
그 둘은 테온이 지난 몇 달간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이식자였다. 멀리서 본 것임에도 위압감을 주는 괴물들.
하나는 마법사의 심장을 여러 개 이식받아 통상의 위계를 벗어나는 마력량을 가졌으며, 다른 하나는 수준 높은 검사들의 팔과 신경을 이식받아 궤적을 읽을 수 없는 복잡한 검술을 구사했다.
어느 모로 보나 결코 쉽게 죽을 놈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죽었다.
마법사는 자신이 자랑하는 마법전에서 팔이 통째로 날아갔고, 검사는 베르덴의 옷을 한 번 베고는 전신이 얼어붙은 뒤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동시에 수십 명을 상대하면서도 정면, 후면, 위, 아래 등 전방위의 공격에 반응하고, 각기 다른 마법으로 대응하는 마법사라니.
테온이 베르덴의 시선을 떠올렸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혐오감과 불쾌감이 가득한 그 눈빛. 자신을 비롯한 글러트니를 보는 시선이 전부 그러했다.
‘눈에 거슬렸다간 진짜로 죽는다.’
그러니 하라면 하는 수밖에. 이것저것 잴 상대가 아니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테온이 천천히 붉은 조각을 들어 올렸다.
매끈한 단면. 무게는 크기만큼이나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접촉만으로는 별다른 이상 반응을 일으키지는 않는 것인지,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로크도 붉은 조각을 손에 들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며 그 안에 담긴 기운을 천천히 감지했다.
“확실히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지긴 하네. 글러트니의 조각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글러트니의 조각.
로크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 글러트니의 조각이란 게 정확히 뭐지?”
“음, 뭐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말하자면 기생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글러트니의 조각은 타인의 육체에 동화되어 자연스레 뒤섞이곤, 숙주가 글러트니 내부의 정보를 발설하지 않도록 행동을 제한한다.
아마 이게 아니었더라면 글러트니는 진즉에 방주에게 완전히 토벌당했겠지.
베르덴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얻었던 정보를 종합해 보면…… 글러트니라는 것이 단순히 조직의 이름만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베르덴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로크에게 던졌다.
“글러트니는…… 단순한 조직 이름이 아닌 건가?”
“어? 모르셨어요? 아, 시련 쪽이라면 모를 수도 있겠네요. 레이라 누님도 몰랐었으니까요.”
작게 헛기침을 한 로크가 설명을 시작했다.
“글러트니는 먼 옛날 방주에게 토벌당한 이형종이에요. 다른 말로는 ‘세상을 집어삼키는 괴물’이라고도 하죠. 너무 옛날에 일어났던 일이라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시에는 나라를 두 개나 몰살하고 대륙 위에 있던 생명체를 모조리 집어삼키려 했다고 알고 있어요.”
베르덴이 모르는 역사다.
전혀 짚이는 게 없는 걸 보아, 최소 수백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거나 어떠한 이유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뭐, 그래서 어떻게 토벌은 성공했는데 몇몇 방주의 일원이 글러트니의 사체를 일부 빼돌렸다고 들었어요. 그게 글러트니의 기원이죠.”
“그럼 글러트니의 조각이란 건 그 사체에서 나온 건가?”
“정확히는 글러트니의 장기에서요. 대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글러트니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거든요. 그 선택받은 존재를 글러트니에선 ‘다섯 개의 이빨’이라고 부르고요. 놈들이 장기에서 만들어 낸 조각을 이용해 글러트니를 이제까지 존속시켜 왔죠.”
‘다섯 개의 이빨이라, 테온도 그렇게 말했었지.’
베르덴은 글러트니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글러트니의 지도자로 생각되는 다섯 개의 이빨.
그들은 생명체의 실험에 대해선 어느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인종 또는 이형종의 신체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을 테니.
분야가 다르긴 해도 연구자로서 순수하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놈들과 공존할 수 없다.
인간을 물건으로써 여기는 건 베르덴이 무엇보다 혐오하는 것이었으니까.
베르덴이 남은 붉은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건 내가 가져가지.”
“네? 글러트니에 대한 물건은 일단 방주에서…… 아, 아니. 그러세요.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베르덴의 단호한 표정에 로크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어차피 세 개나 되니 하나가 없어도 분석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로크는 그렇게 자신을 설득했다.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다.
화르르르륵.
베르덴이 동굴 전체를 불태웠다. 이런 장소에 사체를 방치했다간 언데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글러트니를 비롯한 실종자들의 시신을 확실히 처리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렇게 실종자들에 대한 수색은 일단락이 났다.
로크는 테온을 방주로 데려가 놈의 처우를 결정할 것이고, 베르덴은 곧장 코헨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서로 헤어지기 직전, 베르덴이 공간가방에서 목걸이를 꺼내 로크에게 건넸다. 나일즈의 유품이었다.
“이게 뭐죠?”
“주인의 이름은 나일즈. 체리벨 마을에 있는 어린 남매에게 전해 주면 돼. 미안하지만 가는 길에 부탁하지.”
로크가 조심스레 목걸이를 받았다.
분명 실종자의 유품이다. 이걸 받을 사람은 가족이거나 각별히 친한 사이일 터.
“네, 전해 드릴게요.”
로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옳은 일이었으니까. 그것이 로크가 스승에게 배운 정의였다.
* * *
실종자들의 소재는 찾았지만 생존자는 없었다.
원인은 알고 있긴 하나 그렇다고 글러트니에 대한 것을 외부인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글러트니가 누구이며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니까.
로커스처럼 이식자가 습격해 와 페일의 정보상이 초토화되면 극심한 손해였다.
결국 베르덴이 선택한 건 침묵이었다.
다만 이대로 의뢰를 실패할 생각은 없었다.
베르덴과 마주 앉은 페일이 턱을 쓸며 물었다.
“……시간이 더 필요하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베르덴이 지난 며칠간 알아낸 걸 말했다.
물론 각색이 들어갔다. 글러트니에 대한 정보는 일체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진실에 거짓을 첨가해 적당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마르테스의 시장에게도 했던 방법이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거짓으로 보수를 취하려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기반은 진실. 그리고 그 끝 또한 진실이다. 그것을 페일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이 거짓일 뿐이다.
페일이 고민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최소 수백 명이 실종되고 일부가 몰살당했다니, 상당히 조직적이군요. 아마 범인은 인간 또는 지능이 높은 이형종으로 보이는데…… 확실히 며칠 정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애셔 님의 말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의뢰주는 어디까지나 로든마이어 백작입니다. 그가 의뢰를 철회한다면 이번 일은 그대로 끝나는 겁니다. 설령 범인을 잡는다고 해도 원래 약속했던 보수는 받지 못하게 되겠죠.”
“설득은 맡기지.”
베르덴의 한마디.
잠시 눈을 크게 뜬 페일이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의뢰를 주선하는 것이 제 일이니,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고맙군. 그럼 다음으로 이것도 부탁하지.”
베르덴이 돈이 든 봉투와 쪽지 하나를 건넸다.
쪽지에는 플라스크나 약초나 미스릴 가루 등 갖가지 재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저번처럼 희귀한 재료는 거의 없군요. 구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이러한 실험에 조예가 있으신 줄은 몰랐군요.”
“뭐, 살다 보니.”
실험의 목적은 묻지 않았다. 그것이 고객에 대한 예의니까.
페일이 쪽지를 고이 접어 품에 넣었다.
“내일까지 준비해 놓겠습니다.”
* * *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베르덴은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자주 방문하는 카페에 들렀다. 3층 테라스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거리를 바라봤다.
삭막한 도시라고는 해도 회색의 풍경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가끔씩은 새벽 공기처럼 어두우면서도 상쾌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마력이 베르덴의 주변을 감쌌다.
위험한 건 아니다.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마법 물품 노이즈(Noise)의 효과였다.
베르덴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그의 뒤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정장 차림의 사내에게 물었다.
“내가 미행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었나?”
“하하, 미행이라뇨. 애셔 님께서 일부러 제가 찾아오게끔 하셔 놓고.”
얼굴도, 몸짓도, 목소리도, 마력도 전혀 다른 사람이지만 베르덴은 이미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애셔 님.”
정장의 사내, 리스너가 슬쩍 뒤를 보며 베르덴을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