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70화 (70/366)
  • 70화 붉은 조각 (1)

    로크를 따라 베르덴은 글러트니의 근거지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테온이 쫓았다.

    도망가고 싶어도 옷에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데다가, 저 둘을 상대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기에 어쩔 수 없었다.

    휴식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속도를 냈다.

    그렇게 도착한 목적지에는 오래된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다. 건물 양식을 봤을 때 과거의 유적 비스무리한 것으로 보였는데, 그 입구에는 검은 로브로 몸 전체를 가린 자들이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역시 정답이었나 보네. 하나씩 처리할까?”

    베르덴이 왼쪽, 로크가 오른쪽.

    둘이 동시에 행동에 나섰다. 가차 없는 마법이 상대의 머리를 통째로 날려 버렸고, 로크는 정면에서 상대의 목을 돌려 부러뜨렸다.

    시체를 옆으로 내던진 로크가 손을 털었다.

    “들러리치고 꽤 하네? 하긴 레이라 누님의 시련을 조금이나마 도왔다니 이 정도는 당연한 건가? 뭐, 어쨌든. 그나저나 경비는 별것 없어 보이는데, 빠르게 치고 들어갈까?”

    “마음대로.”

    “좋아, 그럼 내가 앞장설게. 너보단 내가 훨씬 더 빠를 테니까.”

    로크가 당당히 앞으로 나섰다.

    실력에 확실히 자신이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베르덴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뭐, 상관없나.’

    어떻게 생각하든 굳이 관여할 일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베르덴이 로크의 뒤를 따랐다.

    본격적으로 유적 안으로 돌입했다.

    신속하게 움직인 로크가 미처 상대가 눈치채기 전에 손날로 뒷목을 후려쳤다. 이어진 팔꿈치와 무릎 그리고 발끝을 이용한 치명적인 일격.

    일순간에 급소가 파괴된 놈들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신기한 기술이군. 누구에게 배웠는지 궁금할 지경이야.’

    장갑조차 끼지 않은 맨손.

    순간적으로 손끝에서 폭발하는 위력을 두 번 이상 버티는 자가 없었다.

    한 명이 잽싸게 검을 휘둘렀지만, 로크는 손바닥으로 검 면을 쳐 내곤 가슴을 타격하며 기를 폭발시켰다. 가슴뼈가 완전히 으깨지며 내부에 있던 장기가 곤죽이 되었다.

    기사처럼 기를 응용한 검술을 다루는 건 본 적이 있어도, 저렇게 상대를 내부부터 파괴하는 기술을 보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콰직!

    날카로운 뒤차기로 상대의 몸통을 박살 낸 로크가 멈춰 섰다.

    더욱 깊은 지하로 가는 계단.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불쾌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베르덴조차 무심코 미간을 찌푸릴 정도였다.

    로크가 손을 풀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 아래가 진짜인 것 같은데. 준비됐어?”

    고개를 끄덕인 베르덴이 테온에게 시선을 향했다.

    허튼짓하면 죽는다는 무언의 압박에 테온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준비를 마친 세 명은 계단으로 다리를 뻗으며 근거지의 중심으로 향했다.

    “이건…….”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광경을 맞닥뜨렸다.

    * * *

    사체, 사체, 사체.

    마치 미라처럼 피부가 검게 말라붙어 있는 사체가 가득했다. 어떠한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죽음 그리고 고통만이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로크가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심한데…….”

    여태껏 글러트니가 해 왔던 만행들은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실험체로 삼아 사용하고, 섭식을 통해 인류를 진화시켜 구인류를 멸절하겠다는 허황된 이념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냈는지 말이다.

    그러나 이건 처음이다.

    수백 명이 넘는 사람 그리고 이형종, 짐승, 마수들이 말라비틀어져 쓰레기처럼 쌓여 있다.

    로크가 가볍게 손가락으로 사체를 찌르자, 탄력도 없이 푹 들어가며 안에 있던 뼈가 바스러지는 게 느껴졌다. 마치 수십 년간 건조한 것처럼.

    “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벌인 거지? 야, 글러트니. 진짜 몰라?”

    “모, 모른다. 사람을 실험체로 쓰는 건 봤어도 이런 적은…….”

    어릴 적부터 글러트니에 소속되어 있던 테온조차 당황했다.

    굳이 외부의 시선을 감수해 가며 이렇게나 많은 인간을 납치해 온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라붙은 사체까지도 말이다.

    조용히 주변을 관찰하고 있던 베르덴이 한 사체에게 다가갔다.

    ‘목걸이…….’

    새의 발자국 모양의 장식이 걸린 목걸이.

    죽은 사내의 손톱에는 어딘가에 긁힌 듯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형태로 보아 아마 고블린의 손톱 자국.

    촌락의 아이들이 찾고 있던 나일즈란 사내의 시체였다.

    베르덴이 나일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상태로 보아 분명 산 채로 죽은 것으로 보인다. 기괴하게 말라붙어 일그러진 표정에는 무력감, 고통, 증오, 분노 등이 가득했으니.

    베르덴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감정들이었다.

    무력한 죽음, 헛된 희망.

    분명 이 사내는 마지막까지 그런 감정을 품고 고통 속에서 죽었을 것이다. 만약 베르덴 또한 역천에 실패하거나 아예 포기했더라면 그와 비슷한 결말을 맞이했겠지.

    ‘불쾌하군.’

    뚜둑.

    나일즈의 목걸이를 회수해 공간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수색을 이어 가던 중, 사체 더미 아래에서 기다란 홈을 찾아냈다.

    안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고 그 홈은 어딘가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베르덴은 말없이 그 흔적을 따라 움직였다.

    “어? 같이 가!”

    로크와 테온이 뒤따라왔다.

    횃불이 어두운 유적의 내부를 밝혔다. 전보다도 짙은 혈향과 부패한 악취가 코끝을 스쳤고, 이내 복도의 끝에 커다란 공동이 나타났다.

    아래로 향하는 계단.

    그 중심에 놓여 있는 거대한 석관.

    베르덴이 따라온 홈이 그 석관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기 직전, 베르덴의 의식이 위쪽으로 향했고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석관 앞에 떨어졌다.

    코와 입을 붕대로 감싼, 샛노란 눈을 가진 마법사였다.

    “방주에서 불청객이 찾아왔군. 사냥개(Hound) 로크.”

    “누구보고 사냥개라는 거야? 괴물이.”

    로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마법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괴물이 아닌 신인류라고 해도, 너희 방주는 그 진의를 왜곡하는군. 그러나 상관없다. 대의는 시작되었고, 변화는 가속화되었으니. 도대체 어떻게 알고 여기를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너희들은 이미 늦었다. 그리고 그 결말 또한 결정되었지.”

    어둠 속에서 글러트니의 일원들이 나타났다.

    그중 이식자는 마법사를 포함해 총 네 명. 로크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태연히 서 있었지만 내심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이식자가 네 명이나 있을 줄이야. 나 혼자서는 위험한데.’

    로크는 베르덴에게 별다른 기대를 품고 있지 않았다.

    같은 방주의 후보라고 해도 특출나게 강한 사람은 몇 없었고, 이 잿빛 마법사는 레이라의 시련을 도왔을 뿐인 들러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로크가 주먹을 쥐었다.

    마법사는 고개를 옆으로 비틀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큭큭큭. 우리의 일원들을 그렇게나 사냥해 온 개새끼가 제 목숨 귀한 줄은 아는구나. 옆에 있는 두 놈은 누군지 몰라도 안타깝게 되었군, 죽음보다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 하나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 생명력, 우리의 ‘글러트니’를 위해 남김없이 써 주도록 할 테니.”

    글러트니의 일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로크가 앞으로 나서며 자세를 잡았다.

    “내가 앞에서 막을 테니 너는 후방…… 을……?”

    베르덴이 앞으로 걸어가 로크를 지나쳤다.

    태연하게 스태프를 돌리며 몸을 푼 베르덴이 로크에게 말했다.

    “여긴 내가 처리하지.”

    “뭐? 그게 무슨…….”

    화아아악!

    베르덴의 몸에서 방대한 마력이 피어올랐다. 너무나 짙은 마력의 농도. 유형화된 마력이 실체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베르덴이 딛고 있는 바닥과 주변 구조물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마력량에 마법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방주의 후보인가? 저런 외형을 가진 자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느껴지는 마력으로 보아 자신을 약간 웃도는 정도.

    마법사의 심장을 무려 일곱 개나 이식한 자신보다 더한 마력량에 불쾌한 감정이 감돌았지만 이내 누그러뜨렸다.

    마력은 마력일 뿐이니, 이 전력이려면 능히 압도할 수 있다.

    쿵. 마법사가 스태프로 바닥을 찍었다.

    그러곤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베르덴을 바라봤다.

    “머리와 심장만 남겨라.”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식자를 포함한 글러트니의 일원들이 베르덴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육중한 일격과 강력한 마법이 오가며 그 여파에 주변 일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로크가 도우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고요해진 중심. 사체와 피가 난자한 그 광경에 숨어 있던 테온이 돌처럼 굳었고, 로크가 멍하니 목소리를 흘렸다.

    “……어?”

    * * *

    이식자는 글러트니 내에서도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성공률이 낮은 이식 수술을 마치고 신인류로 한 발자국 다가선 선도자들. 숫자가 적은 만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그에 걸맞은 강함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자가 무려 네 명.

    더해서 그들은 다른 국가에서 방주의 후보를 살해한 전적까지 있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힘을 의심하지 않았다.

    방금까지는 말이다.

    털썩. 마법사가 무릎을 꿇었다.

    스태프를 쥐고 있던 팔은 이미 재가 되었고, 복부에 박힌 돌조각으로 인해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마법사가 주위를 둘러봤다.

    오우거의 근육을 이식받은, 굴강한 육체를 가진 거한. 로어 울푸의 성대를 이식받은 여자. 네 개의 팔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검술을 다루는 남자.

    자신을 제외한 세 이식자는 바닥에 쓰러져 있거나 잔해 아래에 깔려 있었다. 하나같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육체가 완전히 파괴된 채로.

    다른 글러트니의 일원들은 강렬한 전격에 노출되어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어, 어떻게…….”

    상대는 자신과 같은 4위계 상위의 마법사다.

    마력량이 조금 밀린다고 할지라도 수준이 같으니, 수적으로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결과는 전멸.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법사가 고개를 들었다.

    소름 끼치도록 맑은 청안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베르덴이 로브에 묻은 먼지를 털어 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마법에 일부가 손상되어, 안쪽에 입었던 마흐바트의 가죽에는 약간 흠집이 나 있었다.

    ‘샐러맨더의 심장을 가지러 온 그 얼굴 괴물보단 약했지만, 확실히 강하긴 하군.’

    그래도 비교적 좁은 실내에서 이 정도로 끝냈으니 좋은 결과였다.

    베르덴이 앞으로 걸어갔다.

    스태프의 보석이 마력의 빛으로 명멸했다. 무릎 꿇고 있는 마법사와 베르덴의 시선이 서로 교차했다.

    극도의 혐오감이 가득한 눈빛.

    난생처음으로 느껴 보는 오싹함에, 마법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글러트니를 위───.”

    퍼억!

    스태프가 직격당한 마법사의 머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내 생명 활동이 점차 사그라들며 조용히 들려오던 다수의 심장 소리가 완전히 멈췄다.

    베르덴이 스태프에 묻은 피를 털었다.

    어차피 글러트니의 조각으로 인해, 놈의 입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들었으니 아쉬울 건 없었다.

    다시 한번 주변을 확인했다.

    로크와 테온이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긴 했지만 별로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이 공간에 있던 글러트니가 한 명도 남김없이 죽은 걸 확인하고는 마력을 가라앉혔다.

    ‘그럼…….’

    중심에 있는 석관.

    베르덴이 쫓아왔던 홈이 여기에 이어져 있었다. 염력으로 석관의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석관 내부는 생각과 달리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피처럼 붉은 조각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