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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69화 (69/366)

69화 불온한 움직임 (3)

“왜 글러트니와 적대하고 있던 거지?”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누가 글러트니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박사를 죽였으니, 박사를 지키지 못했다는 걸 들키면 나는 죽는 것보다 더한 꼴을 겪게 됐을 거다.”

생각보다 정상적인 이유였다.

글러트니와 같은 사람의 신체를 가지고 노는 미치광이 집단의 일원에게서 나온 말이라곤 믿기 어려웠다.

베르덴이 이어서 물었다.

“최근 도시 바깥의 실종자 수가 급증했다. 글러트니에선 왜 사람들을 데려간 거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륵.

테온의 목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더 명확하게.”

“그들이 가진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 라고 알고 있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아인종과 짐승까지도 포함되어 있지.”

“생명력? 그렇다면 샐러맨더의 심장도 관련이 있는 건가?”

샐러맨더의 심장은 그 자체로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도 몰라도 생명력이란 것이 목적이라면 글러트니의 거한이 왜 그것을 찾고 있었는지 이해가 된다.

베르덴의 말에 테온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어떻게…… 아니, 역시 방주와 관계가 있었나. 너희들이 샐러맨더의 심장에 대한 정보를 그레이에 흘린 거군. 대체 어떻게 그 정보를 얻은 거지? 글러트니 내부에서도 은밀하게 이송하고 있었는데.”

베르덴은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르니까. 진짜 하나도 모른다.

“질문은 내가 한다. 그럼 다음으로 묻지, 그 생명력을 가지고 뭘 하려는 거지?”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베르덴의 차가운 시선에 테온은 진심이라는 듯 소리쳤다.

“정말로 몰라! 네가 박사를 죽인 뒤로 내가 어떤 개고생을 했는데! 글러트니에게 잡혀서 박사가 죽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얼마나 불안하게 살았는지 알고는 있나!”

“내가 알 바는 아니지. 그리고 날 죽이려 했던 암살자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지극히 정론이었다.

베르덴의 말에 테온이 입을 꾹 다물었다가 한숨을 쉬었다.

“글러트니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진 모른다, 내 위치는 별로 높지 않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당황스럽다. 이제까지 방주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다가, 이렇게 공국에서도 눈치챌 정도로 대놓고 움직인다는 게 말이지.”

“그렇다는 건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생겼다는 건가? 대놓고 사람들을 납치할 필요가 있는.”

“아마 그렇겠지. 어쨌든 내가 박사를 따라간 후에 어떠한 일이 생겼다는 건 확실하다.”

사람들의 생명력이 필요한 목적이라.

베르덴은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마탑에서 여러 실험을 보고 겪었지만 생명력이란 걸 다루는 실험은 과거의 기록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생명력이란 건, 기나 마력, 신성력과 같은 힘의 개념이 아니다.

기괴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형종이라면 모를까, 인간이 실체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생명 그 자체를 이용한다는 것에 대해선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질문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놈들은 뭐지? 사람의 얼굴을 몸에 꿰맨 거한이나, 짐승의 손톱 같은 게 돋아난 인간 같지도 않은 것.”

“이식자. 글러트니에선 그렇게 부르지. 인간이나 아인종 또는 마수의 신체를 이식해 기존의 인류에서 벗어난 자를 뜻한다고 알고 있다. 심지어 이형종의 것을 이식한 자도 있지.”

지치지 않는 체력, 광기에 물든 공격성, 기괴한 움직임.

이식자의 강함은 간단히 볼 게 아니다. 개개인의 차이가 있다 할지언정, 하나같이 인간을 벗어난 능력을 지녔다는 건 분명하다.

‘그걸 쉽게 죽인 이 마법사는…… 대체 뭐지?’

글러트니 내부에도 방주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있다.

그러나 잿빛 머리의 마법사에 대해선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방주가 비밀리에 키운 것 같기는 한데…… 이마저도 추측이다.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데도 테온은 베르덴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식자라, 말 그대로의 괴물이군. 그럼 마지막으로 묻지. 사람들은 어디로 데려갔지?”

“나도 모른다. 내가 있던 부대가 맡은 건 사람들을 잡아 다른 부대에 넘기는 것이었으니…….”

“숨기는 것 없이, 신중하게 대답해. 그 답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까.”

“사람들을 모아 놓은 정확한 위치는 정말로 모른다. 하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소를 하나 알고 있다. 지도를 주면 바로 짚어 주지.”

베르덴이 의심하며 지도를 건넸다.

재빠르게 지도를 훑어본 테온이 산맥의 중간을 가리켰다.

“이곳에 동굴이 하나 있다. 글러트니에서 자주 사용하는 거처지.”

“증거는?”

“네 말대로 나는 아는 대로 전부 답했다. 글러트니의 정보를 타인에게 발설했다는 사실을 들키면 나는 산 채로 해부되겠지. 이미 나는 글러트니 입장에서 배신자다.”

베르덴은 테온을 믿지 않았다. 믿을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장소에 직접 찾아가 볼 가치는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베르덴이 테온의 속박을 풀었다.

“안내해라.”

“……내가?”

“당연하지. 내가 글러트니 같은 역겨운 집단에 있던 네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런 시발.’

테온이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안내했다가 글러트니가 있으면 이 마법사가 전부 죽일 것이고 자신의 생사 또한 불분명해진다. 놈은 자신을 살려 준다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만약 글러트니에서 애셔를 죽여도 문제다.

어째서 외부인을 데려왔는지 추궁을 받으면 빠져나갈 도리가 없다. 그 자리에서 단검으로 심장을 찔러 자결하는 게 가장 좋은 죽음일 것이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

입술을 깨문 테온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 *

“여긴가?”

“그래.”

어두운 숲속에 숨겨져 있는 자연 동굴.

지하에 뚫려 있어서 그런지 입구가 거의 돌출되어 있지 않고, 인적이 거의 없는 곳에 있는 터라 은밀한 거처로 삼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어 보였다.

테온을 앞장세워 천천히 지하로 들어갔다.

마력감지를 쓰지 않고 오로지 감각에만 의존해 경계심을 극도로 높였다. 딱히 글러트니 놈들을 살려 둘 생각은 없었기에 한둘만 남겨 놓고 깡그리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똑. 똑.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지면에 떨어졌다.

꽤나 큰 공동을 지나니 드디어 누군가 있었던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짙은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테온을 바라보자 그가 진심으로 당황해하고 있었다.

“피 냄새……? 글러트니에선 흔적을 전부 지우고 들어가는 터라 이럴 리가 없을 텐데.”

즉, 변수가 발생했다.

베르덴과 테온은 좀 더 속도를 높여 내부로 들어갔다. 곳곳에 글러트니로 보이는 시체가 널려 있었다.

‘검은 아니고…… 둔기에 맞은 흔적인가?’

머리가 터져 있거나 몸통 쪽이 흐물흐물해져 있다.

무언가에 맞아 뼈와 장기가 박살 난 것으로 보이는데, 누군지 모르겠지만 글러트니와 적대하고 있는 누군가가 침입한 모양이다.

‘방주일지도 모르겠군.’

베르덴이 알고 있는, 글러트니의 적대 세력은 그들밖에 없었으니.

시체가 가득한 현장을 넘어 더욱 깊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동굴 끝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베르덴과 테온이 고개를 내밀어 안쪽을 훔쳐보자, 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갈색 머리의 앳된 사내가 이식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살벌하게 허공을 가르는 이식자의 도끼.

사내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내다 가볍게 뒤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바닥에 닿는 동시에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이식자 앞에 육박했다.

터엉!

사내가 내지른 주먹에 이식자의 몸이 벽에 처박혔다. 지독한 회복력으로 이식자가 다시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근거리에서 벌어지는 격전.

그러나 사내의 공격은 이식자에게 충격을 주었고, 이식자의 공격은 하나도 사내에게 닿지 못했다.

“으랴!”

사내가 내지른 다리가 이식자의 목을 후려쳤다.

뿌드득. 목뼈에서 들리는 심상찮은 소리. 이어 손날로 목젖을 강타했고 몸을 회전시켜 공중에 떠올라 이식자의 머리 반대편을 걷어찼다.

연이은 충격에 견디지 못한 이식자의 목이 그대로 찢기며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힘을 잃고 쓰러지는 이식자의 몸뚱이.

사내는 깊게 한숨을 뱉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휴우, 진짜 더럽게 안 죽네. 역시 정의의 길은 멀고 험해. 음, 스승님 말씀대로야.”

혼잣말을 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은 사내가 이내 동굴 한편에 고개를 향했다.

“그런데 거기서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을 거야? 글러트니는 아닌 것 같은데.”

베르덴과 테온에게 말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방주가 맞나 보군.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이미 들킨 마당에 숨어 있을 이유는 없었다.

머뭇거리는 테온을 내세우며 베르덴이 사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곤 물었다.

“방주에서 왔습니까?”

* * *

“어? 그럼 그쪽도 방주? 음, 처음 보는 얼굴인데…… 글러트니답지 않게 생겼긴 하네. 아, 혹시 시련 쪽인가?”

시련과 글러트니를 상대하는 쪽이 나뉘어 있는 건가? 아니면 떠보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베르덴은 거짓을 일절 섞지 않고 사실만으로 답했다.

“그쪽에 더 관련이 있습니다. 레이라와 리스너에게 물으면 알 겁니다.”

“레이라 누님하고 리스너? 그 둘 이름을 말하는 걸 보면 진짜인가 보네. 미안, 내가 공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몰랐어. 내 이름은 로크야. 그쪽은?”

“애셔라고 합니다.”

“애셔……? 아, 잠깐! 들어 본 적 있어! 레이라 누님 시련에 끼어든 들러리 마법사지?”

‘들러리?’

베르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기도 전에 로크가 말을 이었다.

“다시 보니 확실히 들어 본 모습이네. 잿빛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마법사……. 아, 그리고 나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존대는 하지 마, 나도 안 쓸 테니까. 나는 나보다 강한 사람이 아니면 말을 높이지 않거든.”

뭔지는 몰라도 애셔라는 이름이 방주 내부에 알려진 모양.

그런데도 베르덴이 방주에 소속되지 않았다는 걸 모르고 있다는 건, 전에 예상했던 대로 베르덴이 방주와 연관되는 걸 리스너가 암묵적으로 허락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애써 설득할 필요 없으니 편리했다.

“뭐, 그러지.”

“좋아. 그런데 저 사람은 뭐야? 내가 모르는 방주 후본가?”

로크가 테온을 가리켰다.

베르덴이 고개를 저었다.

“글러트니 중 하나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잡아 놨지.”

“응? 정보를 얻는데 왜 글러트니를 잡아?”

로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베르덴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무슨 소리지?”

“시련 쪽이라서 몰랐나 보네. 글러트니에 소속된 놈들은 죄다 ‘글러트니의 조각’이라는 이상한 걸 이식받거든. 그게 기나 마력에 완전히 동화되면 절대 글러트니에 대한 어떤 정보도 발설할 수 없어. 나도 본 적은 없지만 어기면 그냥 퍼엉! 하고 세포 단위로 터져 버린다고 하던데.”

베르덴이 테온을 바라봤다.

배신한다고 했는데 애초에 배신하지 못한다니. 그러나 놈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안내한 거처가 진짜인 걸 보면 말이다.

“그럼 이놈은?”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애초에 글러트니가 아니거나가 아닐까?”

“잠깐, 난 거짓말한 적 없어!”

“흐음, 잠깐만 있어 봐.”

로크가 테온의 목에 손가락을 대었다.

눈을 감고 그의 맥박을 통해 신체 상태를 들여다보곤 조용히 눈을 떴다.

“글러트니다운 기분 나쁜 기운은 안 느껴지는데…….”

고민하던 로크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

“일단 방주에 데려가 봐야겠어. 가능성은 없는 거나 다름없지만 혹시 모르는 거니까. 만약 사실이라면 글러트니의 내부 사정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때 처리하면 되는 거고.”

테온이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살긴 살았는데 시한부 인생이 된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

베르덴이 물었다.

“그런데 글러트니가 데려간 사람들이 어디 있는진 아나?”

“오, 정보가 빠르네. 나도 그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바로 온 거거든. 다행히 여기서 그 정보를 입수했어. 곧장 그쪽으로 가 볼 생각인데 같이 갈래?”

뜻밖에 만난 레이라와 다른 방주의 후보.

정보를 저쪽에서 쥐고 있으니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러지.”

베르덴은 로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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