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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68화 (68/366)
  • 68화 불온한 움직임 (2)

    글러트니의 테온.

    그는 박사의 부하 중 하나로서 도시 마르테스에서 베르덴을 죽이려고 했던 전적이 있었다. 그러나 보란 듯이 실패했다.

    단순히 기회를 놓친 게 아니라 깊은 상처까지 입고 겨우 도주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대체 언제 옷에 마법진을 새겨 넣었는지, 박사의 본거지를 어처구니없게도 들키고 말았다.

    박사는 테온에게 명령했다, 마법사와 기사를 막으라고. 불가능한 얘기다.

    방주에서 온 마법사 하나를 상대하다가 죽을 뻔했는데, 둘을 동시에 상대하고 더군다나 죽이는 건 말도 안 됐다.

    그래서 테온은 애셔라는 이름의 마법사를 보내고 기사를 상대했다.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테온은 암살에 특화되어 있긴 하나, 고작 작은 도시의 차석 기사 하나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기교적인 단검술에 기사는 점차 수세에 몰렸고 이윽고 목숨을 빼앗을 기회가 왔다.

    하지만 상황은 테온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기사의 목에 단검을 꽂으려던 도중, 포션으로 겨우 회복했던 상처가 무리한 움직임에 견디지 못하고 찢어졌다.

    그 미세한 틈, 기사는 기회를 잡았다.

    촤아악!

    테온의 단검이 기사의 어깨에 박혔고, 기사의 검이 테온의 상체를 베었다. 누가 더 치명상인지는 불 보듯 뻔했다.

    “크으윽…….”

    적지 않은 출혈에 테온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텨 내며 판단을 내렸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테온은 격통을 삼키고 쓰러진 기사에게서 등을 돌렸다.

    뒤에서 기사가 뭐라고 욕을 퍼부었지만 테온은 멈추지 않았다.

    박사의 연구실 복도를 가로질러 통로를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일절 뒤를 돌아보지 않고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한계까지 멀리 간 테온은 냇가에서 지친 몸을 쉬였다.

    깨끗한 물로 피를 닦고, 직접 상처를 꿰맨 뒤에 남은 포션을 전부 마셔 간신히 상처를 회복했다.

    지면에 드러누운 테온이 하늘을 바라봤다.

    “……좆됐군.”

    박사를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

    이대로 돌아가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아니, 잠깐만…… 이게 그나마 나은 건가?’

    만약 연구실에 남아 있었다면.

    박사가 살았든 혹은 그 애셔란 마법사에게 죽었든 간에 테온에게 미래는 없었다.

    박사가 살았으면 자신은 실험체로 사용되거나 실험체에게 희생당할 것이고, 박사가 죽는다면 마법사에게 죽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잠시나마 자유의 몸이 된 지금이 훨씬 나을지도 몰랐다.

    아주 운이 좋아 글러트니의 눈을 피해 살아남을지도 몰랐으니.

    테온은 고민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글러트니의 추적을 피할 수 있을지. 만약 잡혀서 박사를 지키지 못했다는 책임을 지게 된다면 죽음 이상의 공포를 겪게 될 것이다.

    테온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공국을 뜬다.”

    그게 최선이다.

    박사의 행적은 글러트니 내부에서도 모르지만 얼추 공국에 있을 거라곤 추측하고 있을 테니, 늦으면 도망은 물 건너간다.

    테온은 움직였다.

    공국을 벗어나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서.

    하지만 국경 근처에 가기도 전에 들켜 버렸다.

    테온의 길을 막아선 자들.

    그중 목에 흉터가 있는 사내, 이식자(移植者)가 물었다.

    “테온, 박사께선 어디 계시지?”

    “…….”

    테온이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상대는 글러트니에서 수술을 받은 이식자.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괴물이기에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테온은 기계적으로 답했다.

    “중요한 실험을 진행하시는 중이라 바쁘십니다.”

    “상황이 바뀌었다. ‘송곳니’께서 명령하셨으니 답하라.”

    “단순한 실험이 아닙니다. ‘신인류’의 완성이 코앞에 있습니다.”

    “신인류……?”

    그 단어에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에, 이식자가 말했다.

    “알겠다. 송곳니께 시간을 달라 요청하지. 대신 테온, 너는 우리와 함께 움직인다.”

    “……알겠습니다.”

    겨우 시간을 벌었지만, 테온의 도망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는 별수 없이 이식자와 함께 다니며 공국 내에서 글러트니의 일원으로서 움직였다. 사라진 샐러맨더의 심장을 추적하고, 사람을 납치하는 등.

    그렇게 시간이 지난 지금, 테온의 시간 벌이는 한계에 다다랐다.

    호푼 타운.

    여관의 꼭대기 층에서 이식자가 테온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테온, 대체 박사께선 언제 연락을 보낼 생각이신 거지? 송곳니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셨다. 당장 박사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말해라.”

    방 전체에 살기가 감돌았다.

    이대로 있다가 죽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한 차례 침을 삼킨 테온이 나지막이 말했다.

    “박사께선…….”

    퍼엉!

    그와 동시에 재빠르게 품속에서 연막탄을 꺼내 내던졌다. 연기구름 속에서 테온이 바닥을 부수고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뒤따라온 두 명을 기습해 죽인 뒤, 작은 폭탄을 꺼내 던졌다. 연쇄 폭발이 일어나며 여관 전체가 흔들렸다.

    그렇게 1층으로 낙하한 테온이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테온!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이식자에게 단검을 던지고 내달렸다.

    여기서 추적을 뿌리쳐야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글러트니. 골목을 이리저리 오가며 움직였지만, 금세 테온에게 따라붙은 자들이 쇠사슬을 던졌다.

    단검을 휘둘러 쳐 냈지만 교묘하게 움직인 사슬이 팔을 옭아맸다.

    “이런……!”

    양팔을 구속당한 테온.

    이식자가 달려와 그의 명치를 강하게 후려쳤다. 숨이 터져 나오며 테온이 무릎을 꿇었다.

    이식자가 말했다.

    “글러트니의 일원을 죽인 것도 모자라 도망까지 치다니……. 테온, 박사께선 대체 어디 계시지?”

    “…….”

    “그래, 그렇게 닥치고 있어라. 곧 그 머리에서 원하는 대답을 뽑아 줄 테니.”

    테온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상황. 그게 무엇이든 간에 끔찍한 결말이라는 건 분명했다. 지난 시간 동안 살기 위해 발버둥 친 것이 모두 무의미해진 것이다.

    그러나 테온의 운명은 아직 결정된 게 아니었다.

    이식자를 비롯한 글러트니의 일원들을 한 그림자가 막아섰다.

    잿빛의 마법사, 베르덴이 스태프를 든 채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이식자가 물었다.

    “네놈은 누구지?”

    “되도록 무시하고 있었는데, 거슬리게 계속해서 눈앞에 아른거리는군.”

    “……?”

    “목적이 뭔지, 이제는 알아야겠어.”

    맞물리지 않는 대화.

    베르덴은 이식자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스태프를 그들에게 향했다.

    * * *

    <락 페이탈>

    스태프 끝에서 터져 나온 암석 조각이 순식간에 가슴 정중앙을 관통했다. 이어 뒤에 있는 놈의 머리까지.

    베르덴의 마법 위계를 눈치챈 이식자가 명령했다.

    “흩어져서 죽여라.”

    곧바로 서로 간격을 둔 글러트니의 일원들이 사방에서 베르덴에게 달려들었다. 하나같이 기를 다루며 움직임 또한 재빨랐다.

    양옆에서 날아오는 쇠사슬과 후방과 전방에서 베르덴의 목과 심장을 노리는 날붙이. 그 위험 속에서 베르덴은 생각했다.

    참, 마법을 시험하기 좋은 상대라고.

    <아이스 필러>

    주위에 솟아오른 얼음 기둥들이 놈들의 육체를 강타했다. 뼈에 금이 가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퍼져 나가는 한기에 놈들이 숨을 참았다. 조금이라도 폐에 스며들어 갔다간 심폐가 크게 손상될 테니.

    베르덴이 스태프를 가볍게 휘둘렀다.

    콰드득!

    금이 간 얼음 기둥들이 부서지고 그 뾰족한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얼음 조각이 놈들의 몸에 파고들어 갔고 한기가 근육과 관절의 기능을 저하시켰다. 거기서 베르덴이 손가락을 튕겼다.

    <크랙>

    몸에 박힌 얼음 조각이 일제히 터졌다.

    내부와 외부를 아우르는 한기에 놈들의 몸이 꽁꽁 얼어붙었고 이내 산산조각이 났다. 그 죽음에 글러트니의 일원들이 경계심을 더욱 높이고 베르덴의 목숨을 노렸다.

    그러나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시시각각 죽어 나가는 부하들을 본 이식자가 로브를 벗어 던졌다.

    목에 흉측하게 난 흉터와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표정.

    이내 이빨을 드러내며 짐승과도 같은 손톱을 베르덴에게 휘둘렀다.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부하는 그대로 반토막이 났다.

    쩌엉!

    손톱과 스태프가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부여 마법으로 신체 능력을 강화한 베르덴이 현란하게 스태프를 휘둘렀다.

    네 번의 접전.

    마력이 집중된 스태프가 놈에게 스치지도 못한 채 베르덴이 세 발짝 물러섰다.

    ‘반응속도가 빠르군. 마치 인간 형태의 짐승을 상대하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여러 개의 얼굴을 달고 있었던 글러트니의 거한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아무튼 여기는 외진 골목이지만 이렇게 소란이 계속되면 사람들이 몰려올지 모른다. 빠르게 끝내는 편이 나을 터.

    베르덴의 오른쪽 눈에 마력이 집결하며 마안이 발동했다.

    <스웜프>

    “무슨……?!”

    바닥이 흐물거리더니 순식간에 이식자의 발이 지면에 파고들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 강력한 힘에 빨려 들어갔다. 당장 벗어나려면 다리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판단보다도 베르덴의 마법이 빨랐다.

    지형에서 솟아난 가시가 이식자의 몸통을 네 방향에서 꿰뚫었다.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이식자. 그 상체를 향해 어스 자벨린을 쏘아 보냈고, 이식자의 상체가 그대로 뜯겨져 나갔다. 남은 하체는 늪 아래로 사라졌다.

    베르덴이 눈가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역시 쓸 만해. 어떤 상황에서라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겠어. 눈치를 채기도 어려우니 들킬 위험도 없고.’

    어쨌든 이걸로 글러트니는 몰살했다.

    베르덴이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테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머리에 뒤집어쓴 로브를 뒤로 젖혔다.

    “테온이라고 했나? 꽤나 오랜만이군.”

    “너, 너는 설마 마르테스에서……!”

    “네가 암살하려고 했던 마법사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살아 있다는 건 박사도 죽었다는 뜻. 어렴풋이 예상했지만 그게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테온이 놀란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고작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베르덴이 너무도 현격하게 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나름대로 날뛰었다고 생각했는데 못 들어 봤나 보군. 그동안 바빴나? 같은 글러트니와 적대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

    “대화는 나중에 이어서 하지.”

    베르덴이 테온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에 테온은 판단했다. 글러트니의 눈이 사라진 지금이 바로 도망칠 기회라고.

    ‘강하긴 해도 마법사는 마법사……. 한 방만 노리면 된다.’

    그렇게 테온은 베르덴이 가까이 오길 기다렸다.

    이윽고 팔목에 숨겨 놓은 단검을 꺼내 베르덴의 심장을 향해 찔렀다. 베르덴이 가볍게 몸을 돌려 공격을 피해 냈다.

    이 정도는 예상한 바다.

    상대는 마법사지만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으니까. 테온은 곧바로 몸을 회전시켰다.

    신발 뒤축에서 솟아난 작은 칼날이 베르덴의 목을 향했다.

    맞으면 즉사, 스쳐도 치명상.

    이 한 방에 테온이 가진 모든 걸 걸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다.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숙인 베르덴이 스태프로 테온의 가슴을 가격했다.

    “크억?!”

    테온이 바닥을 굴렀다.

    이어 지형이 움직이며 거대한 바위의 손이 솟아올라 테온의 몸뚱이를 잡았고, 그 상태로 베르덴을 향해 움직였다.

    스태프를 양손으로 잡은 베르덴이 이내 온몸이 속박된 테온을 향해 휘둘렀다.

    “자, 잠───!”

    콰아아앙!

    충격과 함께 바닥을 부수며 튕겨 나간 테온은 그대로 정신이 날아갔다. 여기저기 부러진 것 같지만 목숨에 큰 지장은 없을 테니 상관은 없겠지.

    “이걸로 단서를 얻을 수 있겠군.”

    마법으로 생긴 전투의 흔적을 전부 지하에 감췄다.

    테온을 어깨에 둘러멘 베르덴이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촤아아악.

    갑작스레 얼굴에 끼얹은 차가운 물에 테온이 정신을 차렸다.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의식을 잃은 척, 실눈을 뜨고 주위를 바라봤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어둠뿐이었다.

    “정신을 차렸나 보군.”

    “…….”

    “아닌가? 그럼 팔다리 하나쯤 날려야…….”

    테온이 눈을 번쩍 떴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처럼.

    어둠 속에서 암시를 쓴 채, 몸을 숨기고 있던 베르덴이 테온을 바라봤다.

    ‘몸을 아끼는군. 인간으로서 당연한 거지만…… 역시 다른 글러트니와는 달라.’

    마르테스 이후 마주한 글러트니는 죄다 미친놈이었다.

    사람의 얼굴을 몸에 붙이지 않나, 짐승의 손톱 같은 걸 이식하지 않나. 눈도 죄다 광기에 차 있는 게 어쭙잖은 심문으로는 어떠한 정보조차 얻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 테온이라는 암살자는 다르다.

    놈은 목숨을 아낄 줄 안다. 여차하면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면 될 테니, 비교적 정보를 캐내기 쉽다고 판단했다.

    제대로 된 심문이나 고문 같은 걸 배운 적 없는 베르덴이라고 해도 말이다.

    베르덴이 테온에게 말했다.

    “내가 질문하면 너는 대답하면 된다. 물론 정보를 숨길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말하면 살려 주나?”

    “적어도 그럴 확률은 높아지겠지.”

    테온은 자신의 목숨을 저울질했다.

    다 불어 버리고 목숨을 구걸하는 것과 입 다물고 글러트니의 일원답게 행동하는 것. 테온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조금 얘기가 길어질 텐데.”

    “그럼 빨리 말하면 되겠군.”

    테온의 목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닿았다.

    “말할 준비는 됐나?”

    테온이 작게 숨을 삼켰다.

    “……언제든 물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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