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불온한 움직임 (1)
이 시대에 사람들이 실종되는 건 비교적 흔한 일이다.
주로 아인종이나 이형종 또는 도적들에게 당해 시체도 못 건지는 경우인데, 도시 바깥에서 일어나는 만큼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병사들을 더욱 징집해 영토 전체를 지키는 건 말 그대로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설령 가능하더라도 자칫 폐쇄적인 국가로 보일 여지가 매우 높았다. 당연히 외교적으로 좋게 보일 리가 없을 터.
그래도 과거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기술과 체계가 발전했고 단순히 실종 처리하는 것이 아닌, 그 원인을 규명하려는 노력 또한 커졌다. 이 사람은 어떻게 죽었고, 저 사람은 왜 실종되었는지 알아내는 데 말이다.
그렇게 국가에선 해마다 통계를 내어 전체적인 치안 상태를 판단한다. 세계적으로 그 통계를 참고해 국가에 대한 평가를 내기도 하고.
안전한 삶이란 언제나 인류의 숙원이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공국 또한 통계에 신경을 쓴다.
실제로 리비안트 공왕이 직접 각 영지에 대한 평가에 참고하기도 하니. 공국의 대행사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영주들은 보다 영지의 치안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써야만 했다.
그런데 최근 굉장히 불미스러운 통계가 잡혔다.
“도시 외적으로 실종자의 수가 작년에 비해 무려 5배나 증가했습니다. 심지어 수십 명 단위의 촌락은 아예 사람들이 증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더군요.”
“아인종의 소행인가?”
“사람일 수도 있지요. 또는 이형종일 수도.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애셔 님이 직접 해결하신 로리엔의 소울 트리, 하마터면 수만 명의 희생자가 생길 뻔한 일도 있었으니까요. 뭐가 일어나든 이상하지 않은 게 지금의 시대가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럴지도.
그에 비하면 촌락 몇 개가 사라지는 것쯤은 그리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귀족분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일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이미 원인을 찾고는 있지만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쓸 수 있는 수는 다 쓰겠다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희 쪽에 의뢰가 들어온 겁니다. 그 유명한 핏빛검 레이라와 함께 소울 트리를 토벌한 애셔 님을 콕 집어서 말이죠.”
“의뢰주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로든마이어 백작입니다, 마침 백작의 영지에도 문제가 발생한 터라. 다른 귀족들에게서도 같은 의뢰가 들어오긴 했지만 거절했습니다. 인맥이란 게 이 바닥에선 여러모로 중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페일이 의뢰서를 베르덴에게 건넸다.
그 아래 적혀 있는 보수의 액수는 최소 억 단위. 의뢰의 성과에 따라 추가 보수가 지급되는 형식이었다.
“아무튼 이번 의뢰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그리고 애셔 님이 하실 일은 그 원인을 찾아내는 일이죠. 더해서 성공적으로 배제하고 실종자들의 소재까지 파악하면, 아래 명시된 금액의 최대 3배까지 지급될 예정입니다. 꽤나 큰 액수죠.”
“의뢰, 수락하시겠습니까?”
* * *
페일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던 수사 정보를 입수해 베르덴에게 건넸다. 사람 한 명, 한 명이 숫자로 기재된 통계를 주욱 읽어 내렸다.
‘이렇게 보니 실종자 수가 꽤 많군. 그리고 여러 영지에 걸쳐 있어서 범위가 넓기도 하고.’
확실히 귀족들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만하다.
영지에서 실종 사건이 급증하고 있는데 제대로 된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면 영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닐 테지.
그레이의 정보상을 비롯해 병사, 기사뿐만이 아니라 용병과 모험가까지 움직이고 있는 걸 보면 얼마나 이 사안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중요하게 여기는 건 공국의 대행사인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로든마이어 백작에게서 지명 의뢰가 들어왔으니 보수를 위해 움직일 뿐이다. 성과에 따라 보수가 다르긴 하나, 최대 성과를 내면 또다시 억 단위의 돈이 들어온다.
‘금전 감각이 이상해지는 기분인데.’
소울 트리 토벌 이후부터 벌어들이는 액수의 단위가 달라지다 보니 그렇게 느껴졌다.
물론 좋은 건 좋은 거다. 그 덕분에 베르덴의 성장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남은 마탑의 보물을 남김없이 사용하기 전까지는 돈이 우선이었다.
베르덴은 페일이 준 지도를 꺼냈다.
거기에는 각 촌락이나 마을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전부 실종자 수가 증가하거나 촌락 전체가 사라져 버린 장소임을 뜻했다.
그중 가장 멀리 있는 외딴 촌락으로 향했다. 가급적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끝에서부터 하나둘씩 거쳐 갈 셈이었다.
“저곳이군.”
목적지를 찾아내곤 지면으로 내려갔다. 촌락은 듣던 대로 텅 비어 있었다.
‘건물은 멀쩡한데 인기척이 전혀 없어.’
마력감지를 펼쳐 봐도 딱히 잡히는 건 없었다.
촌락 주변에 수많은 발자국이 새겨져 있긴 했지만 뒤섞여 있어서 식별하는 건 무리였다. 정보에 따르면 촌락 사람들 말고도, 수색을 나선 병사나 모험가가 이미 한차례 왔었다고 했으니.
혹시 모를 단서를 찾기 위해 오긴 했지만 여기서 얻을 만한 건 없는 것 같았다.
“애초에 간단히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그렇게 쉬웠다면 진즉에 귀족 쪽에서 처리했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베르덴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촌락과 마을. 여러 곳을 오가며 마법으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훔쳐 들었으나 이렇다 할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거의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거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래도 베르덴은 워낙 먼 거리를 비교적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기에 거리에 비해 시간은 그리 소모되지 않았다.
이렇듯 혼자서 활동하는 건 여러모로 형편이 좋다. 배려하거나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롭게 움직여도 전혀 상관이 없었으니까.
이윽고 다른 영지를 넘어 얕은 숲에 있는 촌락에 도착했다.
이곳 또한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이 남김없이 사라져 버린 장소는 이곳이 두 번째. 감각을 곤두세우고 마력감지를 넓게 펼쳤다.
하지만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단서는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그때, 마을 밖에서 흔적을 하나 감지했다.
무성한 풀숲 사이, 흙에 새겨진 발자국 하나. 너무도 작아 베르덴조차 하마터면 놓칠 뻔할 정도였다. 베르덴이 그 발자국을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생긴 지 며칠 안 된 것 같은데.’
실종 사태가 벌어진 시간과 겹친다.
거기다 발자국 크기로 보아 어린아이임이 분명하다. 수색대로 인해 생긴 흔적은 아니라는 뜻.
발자국이 가리킨 방향으로, 마력감지를 유지하며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밑동 아래에 틈새가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그 지하에서 꺼질 듯 말 듯 한 자그마한 생명 반응이 느껴졌다.
지형을 조심스레 움직여 틈새를 확장했다.
매캐한 흙먼지가 사방으로 퍼지자, 안쪽에서 작은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암시를 쓰고 아래로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핼쑥한 얼굴의 어린아이 두 명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
겁먹은 아이들이 베르덴과 눈을 마주쳤다.
* * *
텅 빈 촌락.
마을 밖 나무 아래에 숨어 있는 아이들.
어째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이 두 아이만이 남았는지는 모른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베르덴이 지하로 손을 내밀었다.
아이들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망울을 글썽거렸지만 꾹 참고 천천히 구석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 마주 손을 뻗었다.
겁을 먹긴 했지만 베르덴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 거라 느낀 모양.
아이들은 순수하다. 그렇기에 잘 속기도 하지만, 이렇듯 때론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손을 잡은 베르덴은 그대로 아이를 한 명씩 들어 올리곤 바깥으로 빼냈다.
그러곤 공간가방에서 육포와 물을 꺼내 건넸다. 그리고 기다렸다, 아이들이 차분히 감정을 가라앉힐 때까지.
성급하게 대화를 시도했다간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 마탑에 들어가기 전 고아원에서 배운 요령이었다.
허겁지겁 배를 채운 아이들이 조심스레 베르덴을 올려다봤다.
대화를 할 때가 된 것이다. 베르덴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부모님은?”
여자아이가 머뭇거리며 답했다.
“다, 다른 마을에 있어요. 저기 리프 마을이란 곳이요.”
“다른 마을? 그럼 왜 너희들은 여기에 있는 거지?”
“그게…….”
“나일즈 형을 따라왔어요! 다른 마을에 우유를 파는 형이에요!”
남자아이가 그렇게 말하곤 여자아이 뒤에 숨었다.
아마 남매인 모양이다. 여자아이가 누나, 남자아이가 동생.
여자아이가 말을 이었다.
“나일즈 오빠는 저희 마을에 사는 이웃 사람이에요. 항상 저희를 데리고 다른 마을을 구경시켜 주는데 갑자기 전부…… 사라졌어요.”
두 아이는 언제나 몰래 촌락을 벗어나 바깥에서 뛰놀았다.
고블린이나 짐승들이 거의 없는 얕은 숲이라 안전할 수 있었다. 혹여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나일즈가 나타나 자신들을 구해 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있어 나일즈는 친형 또는 친오빠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틀 전, 점심에 촌락으로 돌아가니 모두가 사라져 있었다.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도, 먹을 걸 주는 아주머니도, 항상 자신들을 지켜 주던 나일즈도. 덜컥 겁에 질린 아이들은 나무 아래에 숨겨져 있는 틈새에 몸을 숨겼다.
옛날에 나일즈가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이 찾아올 때까지 여기에 숨으라고 말했었기에.
그렇게 이틀이 넘게 어둠 속에서 있었다.
주머니에 챙겨 두었던 간식이 아니었다면, 혼자였다면 결코 버티지 못했을 시간이었다.
“근데 기다려도 나일즈 형은 안 왔어요. 위에서 발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동생 말이 맞아요. 목소리도 들렸는데 무서워서 저흰 그냥 숨어 있었어요.”
“목소리?”
“엄청 무서운 목소리였어요. 막 엄청 화도 내고…….”
목소리라.
“정확히 뭐라고 했었지?”
“음, 음, 그게…… 아! 빨리 안내하지 않으면 처리? 하겠다고, 그리고 또…… 삼 일? 이라고 들은 것 같아요.”
베르덴은 생각에 잠겼다.
‘화가 났다라, 그렇다면 마음이 급하다는 뜻일 테고. 그리고 삼 일이라는 시간은 어떠한 제한인가.’
촉박한 시간.
그렇다면 귀족이 보낸 사병일 수도 있다. 공국의 대행사가 머지않았다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아이들이 들은 대로라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처리하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과격하게 말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안내라는 단어까지.’
베르덴은 곧바로 관점을 바꿨다.
아이들이 들은 목소리의 주인을 대규모 실종 사건을 일으킨 범인들로 말이다.
다시 페일이 건네준 정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이 주변에서 마지막으로 실종 사태가 확인된 건 바로 이 촌락. 여기에 삼 일이라는 시간을 넣었다. 명확한 근거는 없다고 해도 어떠한 정보도 없는 지금, 가진 것을 쥐어짜 내어 결론을 도출해 내는 건 최선의 선택이었다.
설령 틀렸다고 해도 말이다.
베르덴이 이 주변 영지의 지도를 꺼내 바라봤다.
그중 이 촌락에서 삼 일 거리에 있는 마을이나 촌락은 다양하다. 걷거나 뛰거나 말을 타거나 마법사라면 비행을 쓰거나 등 이동 수단의 가짓수가 많았다.
‘하지만 서로 대화를 나눴다고 했으니 다수.’
다수가 이동할 수 있는 최대 거리와 최소 거리를 빠르게 계산하여 추정했다.
거기다 또다시 실종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조건을 추가해서. 그렇게 조건에 맞는 중소 규모의 마을이 하나 도출되었다.
‘호푼 타운.’
그들이 말한 삼 일까지 남은 시간은 약 하루.
베르덴의 비행 속도라면 충분히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다.
그때, 아이들이 말했다.
“저, 혹시 사라진 사람들을 찾는 건가요?”
“그래.”
“그, 그럼 나일즈 오빠도 찾아 주세요! 키는 이만하고 저희가 만든 목걸이를 하고 있어요. 새 발자국 모양이요! 그리고…… 그리고 또, 손톱에 고블린이 할퀸 상처도 있어요!”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다. 실종의 원인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실종자들의 거취에 대해 알게 될 테니.
하지만 그 전에 아이들을 마을로 데려다주는 게 먼저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지금, 이런 장소에 두 아이를 내버려 두고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베르덴이 아이들에게 손을 뻗었다.
“잡아라, 마을로 데려다주마.”
* * *
베르덴이 아이들을 부모에게 데려다주었다.
논밭을 일구던 부모가 아이들을 감싸 안으며 연신 감사하다고 소리쳤다. 베르덴은 그들을 뒤로하고 곧바로 호푼 타운으로 향했다.
컴벨리 타운에 이어 타운이라는 명칭이 붙은 곳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며 길거리를 거닐던 중, 근처에 있던 여관에서 큰 소란이 들려왔다.
꼭대기 층에서부터 시작된 소리는 이어 작은 폭발 소리와 함께 쇠붙이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로까지 번졌다.
콰아앙!
천장이 무너지며 검은 로브의 누군가가 1층으로 떨어졌다. 이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구름 사이로 투명하고 가느다란 실이 묶인 단검들이 날아왔다.
작게 불꽃이 튀기며 먼지 안에서 인간들이 나타났다. 앞선 이와 마찬가지로 검은 로브를 쓴 자들이었다.
그중 전열에 서 있던 자가 소리쳤다.
“테온!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그러나 단검을 던진 사내는 대답하지 않고 도주했고, 그 뒤를 추적자들이 따라붙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소란에 사람들이 멍하니 엉망진창이 된 여관을 바라봤다. 여관 주인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무너진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베르덴은 검은 로브의 등을 바라봤다.
‘테온. 그리고 투명한 실이 매달린 단검.’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 본 적이 있는 무기.
이윽고 베르덴이 기억에서 놈의 정체를 끄집어냈다.
테온.
마르테스에서 베르덴을 죽이려 했던 ‘글러트니’의 암살자.
아무래도 단서를 찾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