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66화 (66/366)
  • 66화 마핵 (5)

    마법 물품의 종류는 다양하다.

    무기, 갑옷, 특수한 포션 등 마법적인 기술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마법 물품으로 분류된다. 그중 소비형으로 분류되어 있는 마핵.

    마탑에 종사한 마법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으로 베르덴 또한 그러했다.

    마핵의 마력을 흡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이론적으로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베르덴이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현재 그의 마력 위계는 한 단계 상승했다.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문턱을 넘어 4위계 상위에 다다랐다. 마핵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마력회로가 확장되었을 테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이건…….’

    오른쪽 눈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압력.

    기존의 허용량을 아득히 넘어선 마력이 눈에 집결되어 있다. 본래라면 이미 터져 버리고 남을 정도의 양이었음에도 안정을 이루고 있었다.

    대체 어떠한 작용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베르덴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리토가 한 말이 떠올랐다.

    마핵의 본질은 마법사와 하나가 되어, 그 육체 중 마법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한층 더 성장시켜 주는 역할이라고.

    ‘하지만 내 몸은 일반적인 마법사와 다르다.’

    베르덴의 육체는 무한한 가능성의 집합체. 그야말로 완전한 물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탑의 심장을 이용해 재구성했다.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최초의 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에 어떠한 결점이 있을까. 있을 리가 없다.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 무한한 가능성.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던 하늘, 그 자체를 뒤집는 역천.

    베르덴. 그는 남들과 달리 스스로의,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렇기에 마핵은 이상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라고 짐작했다.

    화륵.

    손가락 끝에서 불을 피워 어둠을 밝혔다. 그러곤 공간가방에서 작은 거울을 꺼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마력이 집중되어 있는 오른쪽 눈.

    그 중심엔 베르덴의 몸에 새겨져 있는 것과 같은 역천의 마법진이 담겨 있었다.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특이하군.’

    동공이 푸른빛으로 발광한다.

    전신의 마력회로를 활성화해, 허용 범위를 넘어선 마력이 바깥으로 흘러넘치는 현상과는 다르다. 마치 눈에 새로운 마력회로라도 형성된 듯 제대로 갈무리가 되어 있었다.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베르덴이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그에 따라 오른쪽 눈에 있던 마력이 더욱 강하게 명멸했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바뀌기 시작했다. 시야에 비친 공동이 푸른색으로 물들었고 방대한 마력이 술렁거렸다.

    그 방향에 따라 이끌리듯 베르덴이 마력을 움직였다.

    콰득!

    공동 끝에서 솟아난 바위 가시. 평소에 자주 쓰던 지형조작의 응용이었다. 그러나 그 광경에 베르덴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마력이 닿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마법이……?”

    마법이란 마법사 본인의 마력으로부터 기인한다.

    지형조작도 마찬가지였다. 마력으로 장악한 지형이 아니면 당연하게도 지형을 조작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방금의 상황은 그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설마 내 시야에 비친 장소라면 어디든 마법을 시전할 수 있다는 건가?’

    베르덴은 곧바로 실험에 들어갔다.

    보다 내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일련의 현상을 바라봤다. 화염과 땅 그리고 얼음과 물 또는 번개. 연이은 마법에 공동이 흔들리며 천장이 일부 무너져 내렸다.

    그러한 짧은 실험을 통해 베르덴은 몇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베르덴의 시야 내의 위치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거리가 멀수록 연산량이 증가해 시전 속도가 느려진다.

    둘째, 다른 마력회로와 병렬로 연결함으로써 마법의 시전 시간을 극한으로 단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해진 타깃만을 불태우는 화염역병이나 광범위한 파괴력을 가진 하르칸의 유성을 말이다.

    ‘하지만 단점은 있다.’

    셋째, 이러한 사용법은 눈에 부담이 많이 간다. 최대한의 부하를 준다면 연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횟수는 두 번 정도. 그 이상은 눈에 담긴 마력회로가 견디지 못한다.

    자칫하면 출혈이 일어나고 심하면 시력 자체가 손상될 가능성이 높다.

    베르덴이 자신의 오른쪽 눈가를 어루만졌다.

    ‘공간 자체에 마법을 일으키는 눈이라니, 마법사로서 듣도 보도 못한 현상이군.’

    어쩌면 베르덴이 단순히 모르고 있는 걸지도.

    세상이 워낙 넓기도 하고, 베르덴이 있던 보헤미른 마탑은 총 10개의 마탑 중 하나밖에 되지 않으니.

    적어도 흔한 건 아니겠지만 누군가는 이것과 비슷한 눈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좋은 일이다.

    상대의 빈틈을 찌르는, 그야말로 비장의 수단이 하나 생긴 셈이니. 그리고 이렇다 할 부작용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마핵의 작용에 베르덴이 옅게 미소 지었다.

    “그나저나 마력의 눈이라…… 그렇다면 마안(魔眼)이라고 부를까.”

    마안.

    나쁘지 않은 명칭이다. 마력의 눈이라고 부르는 것보단 직관적이었다.

    서서히 마력을 거두자, 베르덴의 눈에 있던 역천의 문양이 사라졌다.

    ‘눈에 일정량 이상의 마력을 불어넣지 않으면 사라지는 건가.’

    마안의 기능에 대해 하나 더 배웠다.

    이어서 지하 공동을 무너뜨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베르덴을 맞이하는 화창한 햇살과 청량한 풀 내음.

    그 상쾌함 속에서 그는 또다시 한 발짝 나아갔다.

    * * *

    코헨으로 돌아온 베르덴은 한동안 여관에 틀어박혔다.

    5위계를 앞에 둔 4위계 상위에 이르렀으니 다시 한번 자신의 마법을 갈무리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침대 옆에 물과 건조식품을 쌓아 놓고 방 전체에 마법진을 둘렀다.

    중급 마석 5개와 액체형 연금술 재료인 ‘숲의 이슬’을 소모해 만든 고도의 마법진. 물 샐 틈이 없는 공간에서 베르덴은 편히 방대한 마력을 풀어헤쳤다.

    그 아득한 집중력에 시간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이론, 연구 그리고 마법적인 단련을 반복하고 또 반복할 뿐.

    어느 순간, 베르덴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웃었다.

    ‘드디어 실마리를 잡았다.’

    하르칸이 남긴, 일명 성신 속성의 마법.

    그가 만들어 낸 다섯 개의 별 중 마침내 두 번째 별의 단초를 얻을 수 있었다. 하르칸에게서 받은 기억으로 봤을 때 아주 확실한 근거였다.

    베르덴의 손에 회색의 마력이 맺혔다.

    그 잔상을 따라 연쇄적으로 마력이 공명하며 허공에 별자리가 생겨났다. 초반부와 중반부는 자연스레 이어졌고 후반부에서 연결이 끓기더니 이내 사라졌다.

    결과 자체를 얻어 낼 수는 없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과거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 후반부만 해결되면 그가 남긴 두 번째 별을 체득할 수 있다.

    한 걸음, 아니 반걸음이 채 남지 않은 것이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해.’

    성신 속성의 첫 번째 별인 흐르는 별, 유성.

    베르덴이 알고 있는 마법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나 마력 소모가 크고 범위를 조절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여 활용도가 극히 낮았다.

    장점만큼이나 단점 또한 명확했다.

    그래서 여러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개량을 진행했다.

    휴양도시 브리엔테에서부터 줄곧 연구했던 것이었는데,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 자체로 안정적인 마법이기에 그러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안 된다고 포기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지금보다 더한 시행착오를 겪고, 반복적인 노력을 하면 될 테니까. 그래도 안 된다면 더욱더. 이건 그렇게 해야만 해결될 과제였다.

    마지막으로 마법서에도 새로운 마법을 등록했다. 기존의 마법을 갈고닦는 건 이 정도로 충분할 터.

    이제 다시 움직일 때가 되었다.

    * * *

    베르덴이 머물고 있는 여관의 특실.

    그 방문 아래로 편지 봉투 하나가 밀어 넣어졌다. 언뜻 보면 상회의 광고문으로 보이나 일부 문자를 조합해 보면 숨겨진 내용이 보인다.

    [2등급. 지명 의뢰.]

    페일에게서 온 편지였다.

    ‘지명 의뢰라. 로든마이어 백작 이후로 처음인가.’

    마침 잘됐다.

    안 그래도 의뢰를 받을 생각이었는데.

    오랜만에 코헨의 거리로 나섰다.

    여느 때처럼 공업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삭막함이 거리에 가득했다. 겨울이 오며 그 정도는 심해진 것처럼 보였다.

    두꺼운 옷을 껴입은 사람들이 평소와 같은 얼굴로 길거리를 거닐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거리에 병사가 많이 돌아다니는군. 기사도 종종 보이고.’

    순찰이야 치안을 위해 항상 있었지만 오늘따라 상당히 자주 마주쳤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의뢰를 받기 위해 빈민가와 지하를 지나 페일을 찾아갔다.

    “어서 오십시오, 애셔 님. 금방 오셨군요.”

    “지명 의뢰가 들어왔다던데, 어떤 의뢰지?”

    페일이 언제나 그랬듯 서류를 가져왔다.

    그러곤 베르덴에게 물었다.

    “혹시 코헨에서 평소와 다른 점은 못 느끼셨습니까? 예를 들면 순찰하러 돌아다니는 병사의 숫자라든가 말이죠.”

    “전보다 3배 정도 많기는 하던데…… 그것과 이번 의뢰가 관계가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곧 있으면 공국에서 진행하는 ‘대행사’의 날짜가 발표될 예정이기 때문이죠.”

    “대행사?”

    “아, 모르셨군요. 그럼 이해를 위해 간략히 설명드리겠습니다.”

    공국의 대행사.

    그건 불시에 일 년에 한 번씩, 백작 이상의 계급을 지닌 영주들을 수도로 불러내어 직접 리비안트 공왕에게 영지에 대한 보고를 하게 하는 날을 일컫는다.

    ‘그러고 보니 공국은 기형적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들었었는데, 그게 이걸 말하는 거였나?’

    마탑에서 수집했던 리비안트 공국에 대한 정보.

    하지만 워낙 멀어서 정보를 얻기가 여러모로 어려웠고, 나라의 행사 일정 따위는 베르덴에게 전혀 필요가 없었기에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다. 그럴 만한 여유도 없었고.

    베르덴이 물었다.

    “귀족이 모여서 공왕에게 직접 보고 한다라, 그게 가능한 건가?”

    순수한 의문이었다.

    대놓고 귀족들을 견제하겠다는 것이었으니, 분명 반발이 심할 터였다.

    “다른 나라라면 무리였을 겁니다. 하지만 공국이어서 가능했죠.”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독립하고, 전쟁이 끝난 이후까지 공국의 상황은 별로 좋지 못했다. 모든 귀족이 리바안트 공작을 진심으로 따르는 건 아니었으니까.

    공국과 인접한 국경에 있어 마지못해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고, 공국의 탄생으로 인해 왕국과 영지가 단절되어 항복한 자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체계가 어지러워지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부패한 귀족도 많았습니다. 혼란 속에서 제 배를 채우느라 남의 것을 빼앗는 놈들이 말이죠. 그래서 공왕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왕권으로 지배하기로.

    자칫 내란이 터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행보였으나 그를 지지하는, 고위 귀족 가드란 후작과 라비슈른 후작이 있었기에 공왕의 계획은 성공했다.

    기사단을 파견하고, 그 외 여러 강자를 고용하여 도시와 영지에 있는, 도적들과 같은 문제를 순식간에 처리했다.

    처형에 합당한 죄를 저지른 귀족들은 그 자리에서 목을 잘랐다. 더러운 피가 강이 되어 공국 전역에 흘렀다.

    궁지에 몰린 귀족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공왕은 자신을 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적절한 때에 회유책을 펼쳤다. 본보기로 몇 명을 채찍으로 때려 죽이고 당근을 쥐여 준 것이다.

    “신상필벌. 영지의 운영 상태를 보고 몇 명을 뽑아 상을 주었고, 부진한 영주에겐 경고와 충고를 내렸습니다. 거기다 이전에 있었던 죄 또한 묻지 않겠다고 하니, 귀족들의 머리가 아주 복잡해졌죠.”

    결국 귀족들은 순응했다.

    겨우 죽다가 살아났는데 또다시 처형이라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내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왕이 주는 상도 탐이 나기도 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과 같은 공국만의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타협한 것도 있었습니다, 영주의 공무가 바쁘면 보좌관인 자작급을 대신 보내 보고를 올려도 되는 것처럼. 그런 공왕의 유연한 수완 덕에 공국이 여기까지 나름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었죠.”

    이것이 공국의 대행사라 불리는 날의 배경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소식이 없었으니 당연히 이번 겨울 내에 정해질 터. 각 영주들은 혹여 일어날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보다 치안에 힘썼다.

    “그런데 최근 그런 귀족들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만한 통계가 나왔습니다.”

    페일이 서류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그 상단에 적힌 의뢰의 주제.

    [급증하는 실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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