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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65화 (65/366)
  • 65화 마핵 (4)

    젊었을 때의 리토 바르슬란은 온 세상을 여행했다.

    자신의 연금술을 갈고닦기 위해 직접 재료를 구하기도 하고, 포션과 마법 물품을 판 돈으로 경매장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본의 아니게 이목을 끌 때도 종종 있었다.

    왕족, 귀족, 상인, 모험가 등.

    그의 실력을 알아본 자들이 접근했고 연금술 관련 제작 의뢰를 맡기기도 했다. 다만 개중에는 폭력적인 자들도 있었다.

    물론 보란 듯이 탈출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몇 번이고 죽을 뻔한 건 사실이었다. 그리우면서도 위험천만한 나날이었다.

    그런 삶 속에서 자연스레 수많은 실력자를 접했다.

    리토는 그때의 기준으로 베르덴을 평가했다.

    “이건 뭐, 숫제 괴물이군.”

    아라네이드와 그 자식들은 압살.

    근거리에서 골렘이 휘두른 일격을 간단히 피하며 일방적으로 몰아붙이지 않나, 거기다 대지를 갈라 밑이 보이지 않는 절벽에 골렘을 떨어뜨리기까지.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만한 마력을 사용했음에도 기절은커녕 멀쩡히 서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4위계 마법사는 뭐였지?’

    다 병신들이었나?

    저걸 보니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애셔, 대체 어디서 마법을 배웠지?”

    “스승님에게 배웠습니다.”

    고명한 스승의 제자.

    그것이 ‘애셔’의 배경이었다.

    대답을 들은 리토가 생각에 잠겼다.

    ‘저런 괴물을 길러 낸 스승이라니…… 무슨 마탑주라도 되는 건가?’

    뭐가 됐든 저건 천재라는 단어로 전부 표현할 수 없다.

    만약 타고난 한계 위계가 마탑주와 같은 7위계 이상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세계적으로 큰 격변을 일으킬 것이다. 마탑주, 아니 그 이상의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고 리토는 직감했다.

    ‘생각하기도 무섭군.’

    하지만 즐겁기도 하다.

    평화로운 삶 속에서 오랜만에 느낀 자극. 젊을 적에 느꼈던 그 두근거림이다.

    이렇게나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마법사라니. 과연 여기서 마핵을 흡수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리토는 너무도 궁금했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세상이 점차 변화하는 걸 체감하는 건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나이 70에 이런 마법사를 만나게 될 줄이야.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리토가 로젠플라워를 화분에 심어 공간가방에 넣었다.

    “흠흠, 볼일은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 * *

    오두막에 도착하고 나서 리토는 당장 마핵과 샐러맨더의 심장의 연금술을 준비했다. 단열제로 코팅된 장갑과 두꺼운 마스크를 쓴 그가 베르덴에게 말했다.

    “한 이틀 정도 걸릴 거다. 그러니 컴벨리 타운에 가서 쉬고 있는 게 좋을 거야. 여긴 딱히 쉴 공간이 없으니까.”

    이틀이라.

    “제가 도와드리면 더 일찍 끝낼 수 있습니까?”

    “응? 뭐, 제대로 된 보조자가 있으면 반나절 정도…… 자네, 혹시 연금술도 할 줄 아나?”

    “보조 정도는 할 줄 압니다.”

    보헤미른 마탑에서 강제적으로 포션을 만든 적이 있었다. 전반적인 연금술 지식도 있고.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하면 그리 뛰어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시키는 건 어느 정도 따라 할 수 있다.

    “허, 대체 그 나이에 어떻게 살았길래……. 스승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잘 때 빼곤 마법하고 공부만 가르친 모양이군. 이러다 마법진도 쓴다고 하겠어.”

    “쓸 줄 압니다.”

    오히려 전공이지.

    베르덴이 간단한 마법진을 그렸다. 파랗게 명멸하는 술식을 본 리토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진짜 미친놈이군.”

    그 외엔 할 말이 없었다.

    고개를 저어 제정신을 차린 리토가 연금술을 시작했다.

    그와 같은 장비를 입은 베르덴은 마치 기계처럼 리토의 지시를 따랐다.

    요르단의 손톱의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를 빻아 가루로 만든 다음 루트밀의 손과 마력꽃의 뿌리를 같이 달인 물에 섞었다.

    이어 마력꽃의 꽃잎과 여러 재료를 반복해 가며 끓이고 거르는 과정을 반복했다.

    한편, 리토는 만드레이크 추출액의 성분을 분리했다.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손실이 큰 필수적인 과정. 그는 진중한 표정으로 필요한 성분을 추출한 뒤, 다른 재료를 한데 모아 힘껏 짓이기며 마지막 한 방울의 액체까지 쥐어짜 냈다.

    그러곤 만드레이크 추출액와 섞었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샐러맨더의 심장에 있던 생명력과 마력을 따로 분리했다.

    연금술에서 시간 엄수는 생명 그 자체.

    1초라도 늦었다간 전혀 다른 성분으로 뒤바뀐다.

    그러나 이 둘이 해낸 과정 속에선 어떠한 변질도 없었다.

    베르덴이 리토의 지시대로 만든 액체와 리토가 만든 추출액. 그 둘을 한 그릇에 부은 다음에 최상급 마석을 안에 집어넣었다.

    리토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완벽하군. 이제 7시간 정도 기다리면 돼. 샐러맨더의 심장 쪽도 그 정도 걸리고. 애셔, 자네 연금술 실력도 그리 나쁘진 않군. 내가 지시하지 않았으면 초장에 망쳤겠지만 말이야.”

    “전 보조만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끌끌끌. 그건 그렇지.”

    리토가 마핵에 시선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걸 묻는 걸 깜빡했군. 애셔, 자네는 마핵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효과에 대해 알고 있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마핵.

    그 안에 담긴 마력을 흡수하면 마법사의 전체적인 기량이 상승한다.

    첫 번째, 마력회로 강화.

    두 번째, 마력량 증가.

    세 번째, 마법 시전 속도 증가.

    네 번째, 마력의 정순화.

    이렇게 네 가지로, 마탑에서는 주로 마탑주의 제자나 투자할 가치가 있는 마법사를 발탁해 마핵을 지원한다.

    두 개 이상은 흡수할 수 없기에 이런 식으로 인재를 성장시키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대충은 알고 있군. 하지만 두 번째는 자네한테 필요 없는 것 같은데? 그 나이에 그만한 마력을 가지고 있으니.”

    리토의 말이 맞다.

    정확히 베르덴에게 필요한 효과는 두 가지뿐.

    베르덴의 마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다. 그리고 역천으로 재구성된 육체의 마력은 새파란 바다처럼 정순하다.

    그렇기에 두 번째와 네 번째 효과는 거의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효과만으로도 투자할 가치가 있었으니까.

    “일부 효율이 적긴 하겠지만 다른 효과들만으로도 제게 충분합니다.”

    “물론 그렇겠지. 마핵을 흡수한 자와 아닌 자는 확실히 다르니.”

    하지만.

    “역시 본질적인 건 전혀 모르는군. 하기야 마핵을 눈앞에 둔 마법사가 분석을 시도할 리가 없지, 냉큼 흡수해도 모자랄 판에. 아주 어리석기 짝이 없어. 자기가 뭘 먹는지도 모르고 배를 채운다는 게 말이야.”

    본질적인 것?

    베르덴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리토가 말을 이었다.

    “뭐, 보조도 해 줬고 즐겁기도 했으니 특별히 설명해 주마. 마핵의 효과는 자네가 말한 게 맞아. 정확히는 대부분의 마법사가 얻게 되는 효과지. 하지만 마핵의 의미는 단순히 마법적인 능력을 상승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다. 보다 본질적인…… 마법사의 육체 중 ‘마법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한층 더 성장시켜 주는 역할이지. 육체와 하나가 되어서 말이야.”

    그것이 마핵의 본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법사에게 부족한 것이 위 네 가지이기에 하나같이 같은 효과를 보여 주는 것뿐. 하나, 그 편차가 사람마다 다른 게 그 증거다.

    “뭐든지 알아야만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법이지.”

    리토가 머리를 톡톡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잘못된 지식에서 오는 착각, 그 무의식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주거든. 제멋대로 마핵의 효과를 한정했기에 그 외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거다. 가짜 약으로 환자의 병세가 완화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지.”

    “그렇다는 건 마핵에 다른 효과가 있다는 겁니까?”

    “글쎄? 나야 본 적은 없어서 모르지만, 마핵이 그 이상의 잠재력을 가진 건 확실하지. 하지만 극단적으로 예를 하나 들자면, 육체에 부족한 부분이 없는 마법사가 마핵을 흡수한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아무도 모르지. 세상에 마법적으로 완벽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 있을 턱이 없으니. 하지만 다른 마법사와 같은 효과가 나올 거라고 누구도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런 가능성이 있으니 자네 말대로 다른 효과를 보일 수도 있겠지.”

    리토가 기지개를 켜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한숨 자야겠어. 늙으니까 여러모로 체력이 달리는군. 자네도 피곤하면 알아서 자리 잡아서 눈 좀 붙여. 시간은 맞춰 놨으니 걱정하지 말고.”

    리토가 하품을 하며 2층으로 올라갔다.

    홀로 남은 베르덴은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완벽한 육체라…….’

    * * *

    다음 날 이른 새벽, 베르덴과 리토는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동이 트기 시작할 때쯤 마침내 완성했다. 마핵과 샐러맨더의 심장으로 만든 활력제를 말이다.

    “둘 중 하나를 복용한 뒤, 나머지 하나는 한 달 뒤에 복용해라. 둘이 상극이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거든. 잘못하면 몸이 뻥 터져 버릴지도?”

    “진짭니까?”

    “아니. 그래도 간격을 두는 건 맞다.”

    리토에게서 마핵과 활력제를 건네받았다.

    조심히 감싸 공간가방 안에 넣어 두었다. 베르덴이 리토에게 인사를 전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부탁드리죠.”

    “끌끌끌, 아주 노인을 혹사할 생각인 모양이군. 대신 시답잖은 것 말고, 이번처럼 마핵과 같은 재밌는 걸 가져오도록.”

    쾅. 리토가 문을 닫았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멀지 않을 거라는 기분이 든다. 그의 연금술은 베르덴이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으니.

    베르덴은 몸을 돌려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몽환꽃의 영향권 바깥까지 올라간 다음에 숲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람이 발길이 닿지 않는, 인적이 드문 장소를 물색했다.

    ‘저곳이 좋겠어.’

    고요한 숲.

    그 중심에 내려간 베르덴은 지형을 조작해 땅굴을 파냈다. 안으로 들어가 흔적을 지우고는 미세하게 숨구멍을 몇 개 뚫어 놓았다.

    후에 다시 지형을 움직여 지하 깊은 곳에 커다란 공동을 만들어 냈다.

    ‘이걸로 도중에 방해가 들어오는 일은 없겠지.

    그 중심에 앉은 베르덴이 공간가방에서 마핵을 집어 들었다.

    이걸 손에 넣은 지금, 지체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마핵을 손에 쥐고 심장 부근에 갖다 대었다.

    화아악! 전신의 마력회로 가득히 마력을 채워 넣자 마핵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베르덴의 심장을 서서히 파고드는 마핵의 마력. 서로 다른 형질의 마력이 만나며 뒤엉키기 시작했다.

    “큭……!”

    하나의 마력회로에 두 종류의 마력이 공존하고 있다.

    이제 서로 반발하던 마력이 자연스레 합쳐질 차례였다. 그런데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마력회로에 퍼져 있던 마핵의 마력.

    그것들이 다시 심장에 집결하더니 갑작스레 엄청난 양의 마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바깥으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보다 아득히 많았다.

    대체 어디서 이 마력이 터져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기에 베르덴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 기분은…… 분명 느껴 본 적이 있었다.

    바로 마탑의 동력원에서 말이다.

    화아아악!

    베르덴의 몸에 새겨진 역천의 마법진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더니 방대한 마력이 일제히 몸에 스며들었고, 그 마력이 오른쪽 눈에 모였다.

    “크윽……!”

    눈알이 터지는 듯한 그리고 뇌가 짓이겨지는 듯한 격통.

    하지만 베르덴은 이것이 위험한 게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역천으로 새로운 육체를 구성하는 것과 같은 감각.

    고통은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

    뿌드득.

    이를 깨물며 목 안에 차오른 비명을 억눌렀고, 손톱을 지면에 박아 넣었다. 강하게 깨문 입술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신경이 찢어발겨지는 듯한 느낌에 경련이 찾아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치 꿈이라도 꾼 듯, 고통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몸은 더할 나위 없이 고요했다. 땀에 흠뻑 젖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모든 것이 가볍게 느껴졌다.

    스르륵.

    베르덴이 눈을 떴다.

    마력이 가득한 청안.

    그의 오른쪽 눈에는 그가 몸에 새겼던 역천의 마법진과 같은 문양이 마력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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