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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62화 (62/366)
  • 62화 마핵 (1)

    “고생하셨습니다.”

    페일이 베르덴에게서 로커스의 서류를 건네받았다.

    “꽤 큰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설마 인간 사냥꾼까지 고용되었을 줄이야. 어느 정보상인지는 몰라도 타격이 크겠군요. 최소 억을 넘어서는 선수금이 그대로 날아갔으니. 뭐, 경쟁자 입장으로선 호재겠죠.”

    인간 사냥꾼.

    베르덴이 마주하기도 전에 시체로 변해 버린 터라 살아서 보는 일은 없었다.

    “그 인간 사냥꾼이라는 것, 들어 보니 유명하다는 것 같은데.”

    “확실히 이름대로 사람을 잡는 데는 전문가였죠. 옛날엔 에스티리아 왕국의 귀족 밑에서 일하며 여러 범죄를 저지르다가, 노예제가 폐지되고 나서 공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꽤 큰 소란이 있었죠. 본보기로 동업자들을 사냥하고 그 빈자리에 그대로 눌러앉았으니.”

    하나, 맞서는 자는 없었다.

    약자의 밥그릇만 뺏은 터라, 굳이 실력자들이 나설 이유가 없었으니까. 오히려 일거리가 많아졌다고 좋아했다.

    “그렇게 수년간 그레이에서 죽인 사람만 수백 명은 될 겁니다. 그런 자들을 상처 없이 처리하셨으니…… 이름값을 날릴 기회인데 정보를 숨기는 게 아쉬울 따름이군요.”

    흔적을 완벽히 지운 이상, 이번 의뢰의 결과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로커스가 모아 둔 기밀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 퍼지면 좋은 시선을 받긴 힘들 테니. 페일은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베르덴의 요청하에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글러트니에 대한 얘기는 가능한 숨기는 게 좋을 테니.’

    하는 짓을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기에 그와 적대 관계인 방주가 아니면 모르는 편이 나았다. 자칫 로커스가 궤멸당한 것처럼 페일의 정보상 또한 그렇게 될 수 있으니.

    그래선 안 된다. 이제 와 다른 정보상을 알아보는 건 시간 낭비였다.

    ‘어차피 인간 사냥꾼을 내가 직접 처리한 것도 아니고.’

    페일은 아쉽다는 말을 끝으로, 성공적으로 끝난 의뢰에 신경을 완전히 끊었다.

    베르덴에게 로커스를 몰아넣은 범인과 샐러맨더의 심장에 대한 행방을 묻지 않는 걸 보니 뭐,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이대로 넘어가는 편이 상책이었다.

    페일이 말했다.

    “애셔 님이 요청하신 물건들은 어제부로 다 입수했습니다. 연금술사에 대한 소재도 마찬가지고요. 바로 받으시겠습니까?”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페일의 측근인 붕대 사내가 들어오더니 조심조심 나무 상자를 바닥에 내려놨다. 페일이 직접 뚜껑을 열고 안에 있던 물건을 하나둘씩 책상 위에 올렸다.

    마핵의 재료들. 베르덴이 하나씩 꼼꼼히 확인하며 품질을 검사했다.

    “철저하게 보관하여 운반했으니 상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확실히.

    수수료 6%만큼의 값은 하는 모양이다.

    “연금술사는?”

    “공국에 있는 연금술사 중 세 명을 추렸습니다. 자료를 준비했으니 한번 보시죠.”

    페일이 건넨 자료를 주욱 읽어 내렸다.

    어떤 연금술사인지 자세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었다. 간략하게, 베르덴이 궁금해하는 것만 있었기에 상당히 보기 편했다.

    ‘하지만 좀 애매한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대강 읽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마지막 세 번재 연금술사의 이력을 본 베르덴이 물었다.

    “이 리토 바르슬란이라는 연금술사는 어떻지?”

    “두루두루 뛰어난 연금술사입니다. 다만…… 성격이 많이 괴팍합니다.”

    “괴팍하다?”

    “단적으로 말해 초연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나이도 많고 그 이상으로 재산도 많습니다. 굳이 누군가에게 의뢰를 받을 이유가 없죠. 제 정보상을 통해 여러 물건을 납품하거나 가끔 의뢰를 받는 건 단순히 취미 생활 중 하나일 뿐입니다. 대신 저희는 서비스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구매를 대행해서 무료로 배송해 드리고 있죠.”

    돈이 많다라.

    “그러니까 제작 의뢰를 하면 돈 말고 다른 걸 요구할 수도 있다는 건가?”

    “아마, 아니 확실히 그럴 겁니다.”

    흐음, 꽤나 귀찮은 성격이다.

    뭐, 본인 마음이니 베르덴에게 뭐라고 할 자격 같은 건 없지만, 마핵을 제작하기 위해 돈을 모았는데도 돈을 받지 않겠다는 건 여러모로 씁쓸했다.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실력은?”

    페일이 단언했다.

    “리비안트 공국 제일입니다. 제 연줄이 닿아 있는 연금술사 중 가장 뛰어나죠.”

    “그럼 이 사람으로 하지.”

    “괜찮으시겠습니까?”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치로 따지면 수십억 엘크에 버금가는 마핵을 그런 이유로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으니. 뭘 요구할지는 모르겠으나 공국 제일이라면 감내할 가치가 있다.

    “알겠습니다. 그럼 약속 날짜를 잡아 놓겠습니다.”

    “부탁하지.”

    * * *

    컴벨리 타운.

    중소 규모의 마을이지만 이 근방에 유일하다시피 한 마을로, 한적하지만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잘 정돈된 가도와 깨끗한 성벽만 봐도 나름 부흥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러다 공국 전체를 여행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베르덴은 이제까지의 자신의 행적을 돌아봤다.

    파이테 영지에선 도적 및 광대 오크를 토벌.

    도시 마르테스에선 이리스와 모험가들을 구하고, 글러트니의 박사와 그 실험체들을 처리.

    비르온 영지에선 도살자 갈리아크와 함께 통곡의 기사 토벌.

    바르드산맥에선 하르칸과 만나고 블랙 아워 처리.

    휴양도시 브리엔테에선 방주의 리스너와 조우.

    도시 로리엔에선 방주의 후보인 레이라와 소울 트리 토벌.

    그 외에도 공국 이곳저곳을 다녔다.

    고작 반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상당한 거리를 이동했다. 만약 비행이 없었더라면 절반도 채 가지 못했겠지.

    하지만 아직 본궤도에는 오르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방문한 나라는 고작 공국 하나뿐이니. 베르덴은 한곳에만 머물며 성장할 생각 따윈 없었다.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다른 나라를 오가며 좀 더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나설 생각이었다.

    현재 베르덴의 수준은 4위계 중위.

    하루도 빠짐없이 몸을 단련하고 마력회로를 확장했으며, 여러 실전을 겪어온 지금, 어느새 4위계 상위를 코앞에 두고 있다.

    목숨이 위험한 적은 있었지만 그 덕에 이렇게 이례적인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중요한 건 5위계에 오르는 것.’

    원소 마법.

    3위계는 기본적인 바탕이고, 4위계는 전과 마력 소모가 비교도 안 되게 증가하는 만큼 강력한 위력을 표방한다. 그리고 5위계는 주변 지형을 뒤바꾼다.

    단순히 마력을 쏟아부은 지형조작과는 비슷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다르다. 술자의 역량에 따라 기후를 바꿀 수 있고, 작은 마을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릴 수도 있다.

    3위계와 4위계는 격이 다르다.

    그러나 4위계와 5위계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5위계에 올라서야만 ‘마도’에 도달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5위계 이상의 마법사는 꽤 있다.

    물론 전부 다 위력적인 마법 계열에 특화된 건 아니다. 그보단 마법을 학문으로써 보고 공부한 자들이 많다. 태어나면서부터 수준 높은 재능과 풍족한 집안을 가진 자들.

    그러나 그중 마도에 이르는 존재는 고작 한 줌이다.

    한계 위계가 6위계든 7위계든, 본인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어떤 길을 걸어왔고, 걸어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하면 절대 이룰 수 없는 마도의 경지. 그 방법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뭐라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전해진다. 만약 공식이란 게 존재했다면 대부분의 마법사가 마도사가 되었겠지.

    경험자가 말하길 오로지 자신만이 볼 수 있고,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베르덴도 그렇게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나만의 마도라…….’

    베르덴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사이 약속한 시간이 되었고 페일이 보낸 사람이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페일 님이 보낸 ‘샘’이라고 합니다.”

    “애셔입니다.”

    “하하, 말씀 편히 해 주세요. 그럼 다른 볼일이 없으시면 바로 연금술사 리토 님에게 안내를 해 드리겠습니다.”

    샘을 따라 컴벨리 타운 바깥으로 나갔다.

    한동안 길을 따라 걷다가 인근 숲으로 들어갔다. 화창한 햇빛이 내리쬐는 평화로운 숲이었다.

    ‘그러고 보니 숲도 자주 오게 되는군.’

    하기사 당연했다.

    지금까지 베르덴이 받은 의뢰는 도시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벌어지는 것이 전부였으니. 아인종이나 마수 같은 것만 어떻게 한다면, 현상범에겐 도시보다 숲이 훨씬 더 안전했다. 절벽 뒤에 비밀 가옥을 만들었던 로커스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리비안트 공국은 대체적으로 도시 규모가 작고 치안이 탄탄해, 큰 범죄가 일어나기 어려운 환경이다.

    단일 도시 국가이자, 세계 최대의 거대 도시인 ‘바빌론’.

    그리고 공국의 전신(前身)인 ‘에스티리아 왕국’과 비교해서는 말이다.

    베르덴이 앞서가는 샘에게 물었다.

    “얼마나 걸리지?”

    “그리 멀지는 않아요. 하지만 리토 님은 워낙 불청객을 싫어하셔서 좀…… 주변에 이런저런 게 깔려 있거든요. 정해진 길로 가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저도 여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몇 번 당해 봤죠, 하하하.”

    샘이 볼을 긁적이며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체 뭘 깔아 놨길래 그런 걸까. 베르덴은 두리번거리다 저 앞 나무 위에 갈색 꽃이 피어 있는 걸 발견했다.

    ‘몽환꽃?’

    나무에 기생하는 식물로, 근처 지상과 하늘에 보이지 않은 가루를 뿌려 들이마신 생명체에게 강력한 환각을 일으킨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회복하지만, 자칫 도중에 아인종이나 마수에게 습격이라도 받으면 치명적이다.

    그런 꽃이 일정 거리마다 나무에 붙어 있었다.

    ‘이렇게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닌데, 인위적으로 배양한 건가?’

    그렇다면 식물 쪽에 일가견이 있다는 뜻이다.

    연금술의 주재료는 식물이니. 이것만으로 공국 제일의 연금술사라고 보긴 어렵지만 기대를 걸어 볼 만한 것 같다.

    그렇게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숲을 지나쳤다.

    그리고 잠시 후,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있는 2층 오두막이 나타났다.

    샘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며 말했다.

    “바로 여기가 리토 님이 계신 집이에요. 미리 말씀을 드렸으니 문을 두들기시면 열어 주실 겁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바깥으로 나가실 땐, 리토 님이 해결해 주실 테니 안내는 필요 없을 거예요.”

    꾸벅, 인사를 한 샘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오두막을 둘러싼 정원을 둘러보니, 흔한 것부터 시작해 각종 희귀한 식물까지 종류별로 자라고 있다.

    ‘자연환경에서 저런 것들을 기르다니. 어지간히 식물 관리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베르덴은 정원을 구경하며 계단에 올라섰다.

    오두막의 문 앞에 서서 조심히 문을 두들겼다. 응답은 없었는데 안쪽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다리고 있던 순간, 문 아래로 희뿌연 연기가 올라왔다.

    무슨 실험이라도 하는 건가?

    딱히 노출될 이유는 없기에 가볍게 마법으로 날려 버렸다. 그러자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장난도 안 받아 주는 걸 보니 재미없는 놈이 왔군.”

    벌컥. 문이 열렸다.

    중년을 넘어 노년에 가까운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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