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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61화 (61/366)

61화 샐러맨더의 심장 (4)

거한이 박도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달려왔다.

커다란 몸집임에도 날렵하기 그지없는 속도. 어쭙잖게 접근을 허용했다간 위험한 위력이었다.

<어스본>

지면에서 가시가 솟아올랐다.

그러자 거한이 몸을 비틀더니 괴상한 움직임으로 가시들을 박살 냈다. 이어 현란하게 박도를 돌리곤, 어깨를 쭈욱 뻗어 베르덴의 목을 노렸다.

사아악!

베르덴이 고개를 젖히자, 피가 말라붙어 있는 칼날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인간이라고 하기엔 기괴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신체 구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시감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쨌든 이런 좁은 곳에서 전투를 이어 나가는 건 불리하다.

“흐아아아악!”

거한을 가까이서 마주한 크랄그가 계단을 뛰어 도망쳤다.

베르덴은 다른 입구를 택했다.

<지형조작>

천장이 움직임과 동시에 베르덴이 있던 장소가 하늘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지하에서 빠져나가 건물과 거리를 두었다. 잠시 기다리자, 섬뜩한 웃음소리와 함께 거한이 문을 부수고 달려들었다.

그의 발밑에는 목이 잘린 크랄그의 시체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어스 스피어>

암석의 창이 쇄도했다.

거한이 입가를 비틀더니 닿기 직전 칼날을 교차했다. 막강한 근력에 마법이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걸렸군.’

<그라운드 메이든>

허공에 흩어진 암석 조각.

그것들이 수십 개의 작은 가시로 변형되더니 일제히 거한의 전신을 꿰뚫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피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거한이 웃으며 말했다.

“카카카칵. 정보상 따위에게 고용된 놈치고는 꽤 하는군. 토막 내는 맛이 있겠어.”

거한이 누더기가 된 상의를 찢었다.

그 모습에 베르덴조차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굴……?”

양어깨, 복부, 등 전신 곳곳에 사람의 얼굴이 이식되어 있다.

만약 단순히 죽인 사람의 얼굴을 꿰맨 거라면 구역질 나는 취미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복부에 있던 얼굴이 움직이더니 입을 쩍 벌렸다.

거한이 그 안으로 자신의 살점을 일부 떼어 넣자, 근육이 융기하며 베르덴에게 입었던 상처가 재생했다.

‘잠깐만. 이 특징은…….’

“카카카칵! 당황한 모양이군. 하지만 아직 놀라긴 이르지!”

양어깨와 등 뒤에 있던 얼굴이 꿈틀거리며 눈을 떴다.

* * *

마르테스에서 베르덴이 처리한 글러트니의 박사.

놈이 만들어 낸 변종 아인종과 신인류라는 인간의 공통된 특징은 바로 ‘섭식’이었다.

‘리스너가 그랬지, 글러트니는 먹는 것을 통해 인간은 한층 더 진화할 수 있다는 구시대적인 이념을 내세우고 있다고.’

파이테 영지와 마르테스에서 본 것과, 방금 전 거한이 보여 준 능력은 거의 판박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놈은 주변에 널린 시체에 손을 대지 않고 자신의 살점을 먹었으며, 살점을 떼어 낸 부위만이 재생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확실히 박사가 만들어 낸 실험체에 비해 열화된 것으로 보인다.

‘즉, 미완성체?’

리스너의 말에 따르면 박사는 글러트니 내부에서도 급진적인 인물이었다고 했으니, 만약 저 거한에게 박사의 손길이 갔다면 마르테스에 오기 전에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나저나, 본의 아니게 내가 끼어든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방주의 일원은 나타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그레이의 의뢰 도중에 그 글러트니를 만날 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가 됐든 이 상황을 베르덴이 직접 정리하는 것 외엔 답이 없는 건 확실했다.

‘일단 처리하고 보자.’

베르덴이 거한에게 고개를 향했다.

양어깨와 등에 있던 얼굴들이 눈을 뜨자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입가가 귀에 닿을 듯 활짝 웃는 거한. 이내 그의 전신에 마법이 내려앉았다.

<근력 강화>

2위계의 부여 마법.

보란 듯이 마법 발동에 성공한 거한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카카카카칵! 봐라! 마법과 기를 동시에 다루는 나의────.”

굳이 듣고 있을 이유는 없다.

<어스 쉐러>

퍼버벅! 수십 개의 돌조각이 무방비한 거한의 얼굴을 강타했다.

치아가 몇 개 부서지고 얼굴 곳곳에 찢긴 상처가 생겼다. 딱딱딱! 거한의 치아가 위아래로 연신 부딪쳤다. 표정이 일그러진 게 극도로 분노한 듯해 보였다.

그와 함께 거한에게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토막 내서 씹어 먹어 주마.”

츠가가가가각!

전과 다른 속도로 거한이 돌진하며, 그의 박도가 베르덴이 서 있던 대지를 갈랐다. 놈은 곧바로 추격을 이어 나가며 숲이고 뭐고 마구잡이로 난도질을 해 댔다.

그리고 양어깨에 있던 얼굴이 뭐라 중얼거리더니 마력이 움직였다.

베르덴의 양옆을 노린 화염구와 암석. 마법으로 상쇄하려 했지만 코앞에서 거한이 뻗은 칼날이 날아왔다.

가까스로 고개를 숙여 피한 뒤, 지면을 강하게 융기해 사방을 날려 버렸다.

‘저 얼굴이 거슬리는군.’

기와 마력을 동시에 다루다니. 그 수준 또한 수준급이다.

마치 다수의 상대를 마주한 듯한 기분. 강화된 감각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저 투박한 칼에 어디 한 군데 베였겠지.

아무리 근접전 경험이 있다고 해도 베르덴은 결국 마법사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먹혀도 레이라나 바르델과 같은 강자와 가까이서 맞붙는다면 잠깐의 시간 벌이밖에 되지 않는다.

베르덴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한 또한 마법으로 비행이 가능했기에 그의 뒤를 쫓았다. 후방에서 날아오는 마법을 피한 베르덴이 곡예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허공을 박찼다.

비행 숙련도는 확실히 베르덴이 위였다. 순식간에 거한의 뒤를 잡은 그가 스태프를 겨눴다.

<뇌격>

“크가가가가?!”

강렬한 전격에 거한이 추락했다.

곧바로 일어섰지만 충격은 있었는지 놈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세 개의 거대한 암석 창을 쏘아 보냈다.

콰과과광! 삽시간에 초토화된 지면. 돌더미가 꿈틀거리더니 거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엄청난 내구성이군.’

오우거를 단번에 죽일 위력에도 고작 옆구리와 어깨의 일부가 뜯겨 나간 정도라니. 최소한 팔다리 하나쯤은 날려 버릴 생각이었는데.

“카카카카칵, 그 나이에 그만한 마법과 움직임이라니.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와 함께할 생각 없나? 그 분이라면 얼마든지 받아 주실 거다.”

“그렇게 되면 나도 그 얼굴들을 이식해야 하나?”

“……하찮은 구인류를 벗어나 신인류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하지.”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베르덴이 말했다.

“꺼져.”

<플레어>

* * *

전투는 베르덴이 우세했지만 쉽게 끝낼 수가 없었다.

자신의 살점을 갉아먹어 가며 상처를 회복하는 거한. 강력한 신체 능력을 무기로, 끊임없이 달려드는 박도와 날아오는 마법 탓에 강력한 마법을 시전하기 어려웠다.

‘성가시군.’

대체 신체를 어떻게 개조한 건지.

얼굴마다 형태가 다른 걸 보면 타인의 걸 이식한 모양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마력회로의 이식이란 게 가능할 줄이야.

또다시 상처를 재생시킨 거한이 칼날을 휘둘렀다. 스태프로 막아 냈지만 충격은 있다. 검격을 막아 내며 지상으로 내려갔다.

까가가가가강!

베르덴 또한 부여 마법으로 신체 능력을 한층 더 강화했음에도 따라가기 어려운 속도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거한이 낄낄거리며 베르덴을 힘껏 몰아넣었다.

“카카칵! 이제 지친 모양이군! 신인류가 되길 거절하다니, 특별히 너의 얼굴을 잘라 신인류가 될 기회를 주마!”

그렇게 말했지만 거한의 숨소리가 아까보다 거칠어져 있다.

하기사 갉아먹은 신체에서 계속해서 피가 흐르고 있으니, 체력이 떨어지지 않을 리 없다.

‘슬슬 한계군.’

이내 체중을 실은 두 개의 박도가 베르덴의 스태프를 날려 버렸다.

무기를 잃었으니 이걸로 끝. 거한이 휘두른 칼날이 베르덴의 턱 아래를 노렸다. 얼굴 가죽을 깔끔하게 베어 내기 위해서.

다만, 간과한 것이 있었다.

마법사에게 스태프는 보조 수단일 뿐, 무기가 없어도 얼마든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베르덴은 그러했다.

<염동력>

외부 충격을 흘리는 반투명한 막이 베르덴을 감쌌다.

마력 조작과 연산 능력이 상위에 다다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기예. 베르덴에게 닿기 직전, 거한의 일격이 뒤틀리더니 그대로 반대로 솟구쳤다.

콰직!

“크아아악?!”

역으로 박도가 거한의 얼굴에 박혔다.

그렇게 한쪽 눈이 날아갔음에도 거한은 다른 손을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그러나 베르덴의 목에 닿기 직전, 박도에 금이 가더니 산산조각이 났다.

“뭣……?!”

“내 마법을 몇 번이고 막았는데 무기가 멀쩡할 리가 없지.”

콰직. 베르덴이 거한의 복부에 있는 얼굴을 움켜잡았다. 가지런한 치열이 딱딱거렸지만, 보호의 목걸이가 만들어 낸 마력방벽을 뚫지는 못했다.

이윽고 손에서 열기를 내뿜었고, 거한의 내부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왔다.

“아, 안 돼……!”

<호염>

거한의 내부에서 거센 불길이 치솟았다.

* * *

글러트니의 거한이 새까맣게 불타올랐다.

내부에서 타오르는 강렬한 열기에 신체가 버티지 못하고 상체와 하체가 서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상체에 이식된 얼굴들 또한 형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뭉개졌다.

거한이 하나만 남은 눈으로 베르덴을 노려봤다.

“카, 칵…… 신인류가 될…… 내가…… 구인류 따위에게……!”

“아직도 살아 있나?”

“박사…… 박사께서 실망을…… 그분께서 실망을……!”

박사라니. 죽은 지가 언젠데.

글러트니는 아직도 박사가 죽은 줄 모르는 모양이다. 물론 그러는 편이 좋다. 이렇게 사람 신체 가지고 장난질하는 조직에게 습격받는 일은 사양이다.

그 반대라면 몰라도.

어쨌든 이걸로 끝났다.

신경과 근육이 모조리 녹아내렸으니 곧 사망할 터. 염력으로 스태프를 회수하고 마무리를 하기 위해 거한의 머리를 겨눈 순간.

거한의 등 뒤가 꿈틀거렸다. 지체하지 않고 거한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그런데 놈이 발작을 일으키더니 몸을 뒤집자, 등에 있던 얼굴이 샐러맨더의 심장을 삼키고 있었다. 이내 머리를 잃은 거한이 재생하며 근육이 붉게 부풀어 올랐다.

“질긴 놈이군.”

아예 가루로 만들어야 죽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마력을 끌어모으던 중, 갑자기 재생된 몸뚱이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퍼엉!

살 조각과 피가 사방에 흩날렸다. 베르덴이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폭발 이후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멸한 건가?”

그래도 안심할 순 없다.

베르덴이 화염을 퍼뜨려 거한의 잔해를 모조리 불태웠다. 그러고 나서야 앞으로 걸어갔다. 바닥에 떨어진 샐러맨더의 심장이 얕게 맥동하고 있었다.

‘어째서 이걸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어떻게 할 문제는 아니다.

방주와 따로 연락할 수 없기도 하고.

베르덴은 일단 이 심장을 챙겨 두기로 결정했다.

글러트니도 죽었고 로커스 또한 죽었으니, 마력감지를 펼쳐 봐도 이 일대에 살아 있는 사람은 베르덴이 유일했다. 페일이 자긴 필요 없다고 했으니 몰래 챙겼다가 써 버리면 아무도 모를 터.

공간가방에 샐러맨더의 심장을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 지하로 내려가 서류를 챙겼다.

칼자국이 나고, 피가 좀 묻어 있었지만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이걸로 의뢰는 끝이군.”

로커스의 비밀 가옥을 떠나는 베르덴.

그의 뒤로는 거센 불길이 타오르며 건물과 함께 모든 흔적과 잔해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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