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샐러맨더의 심장 (3)
<전신 강화>
<감각 강화>
<반응속도 강화>
3위계와 2위계의 부여 마법.
같은 정보상에게 고용된 부여 마법사, 빈츠에게 조력을 받은 사내가 베르덴에게 철퇴를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고, 철퇴에 부딪힌 땅이 부서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퍼졌다.
“둘 다 맘에 안 들지만…… 일단 경쟁자부터 줄이는 게 우선이겠지.”
이어 다른 두 사람도 나섰다.
베르덴의 뒤를 노린 검사가 빈틈을 노렸고, 원소 마법사는 타이밍을 가늠하며 사각에서 마법을 쏘아 보냈다.
서로 팀을 이뤘던 자들이 아니었기에 제대로 합이 맞지는 않았지만, 전투에 있어서 수적 우위는 가히 절대적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물론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다.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니.
‘왜…… 왜 맞지 않지?’
철퇴 사내, 헤베겔이 의문을 느꼈다.
자신은 부여 마법으로 신체 능력이 한층 더 강화된 상태. 평소에는 부족한 속도가 한 단계 빨라졌고, 장점이었던 근력이 더욱 강해졌다.
그런데 근접전에서 마법사 하나 제압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카앙! 캉! 카가가각!
철퇴가 휘둘러지기 전에 스태프가 경로를 가로막는다. 제대로 타격을 하기도 전에 막히기만 할 뿐, 기껏 제대로 휘둘러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낸다.
‘무슨 미래를 보는 것도 아니고……!’
검사 또한 헤베겔과 같은 마음이었다.
둘은 고작 열 합이 채 되지 않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기세가 위축되는 그 순간, 베르덴의 스태프에서 저장된 마력이 방출됐다.
콰앙!
“크윽?!”
마력집중으로 강화된 스태프의 일격.
헤벨겔이 철퇴로 막아 냈지만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뒷걸음쳤다. 그리고 베르덴의 등 뒤, 지면에서 작은 송곳이 솟아나더니 검사의 발바닥을 꿰뚫었다.
갑작스러운 고통. 기동력이 잡힌 검사가 움직임이 멈췄다.
<스톤 볼트>
쩌엉!
돌조각이 검사의 오른쪽 복부를 강타했다. 마법서로 강화된 마법.
입고 있던 철제 갑옷이 움푹 들어가고 흡수하지 못한 충격이 몸속을 찌르듯 관통했다.
“꺼윽……! 꺽……!”
인간의 급소 중 하나인 간. 거기에 연결된 신경들이 폭주했다.
숨이 턱 막히고 뇌가 저릿거리는 감각. 당장 기절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정신력이었으나, 움직일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베르덴이 스태프로 몸통을 후려쳤다.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날아간 검사는 나무를 부수곤 풀숲 위에 널브러졌다.
‘그럼 다음은…….’
“죽어라!”
불꽃의 창이 베르덴에게 향했다.
그와 동시에 지면이 꿈틀거리더니 거대한 기둥이 비스듬하게 솟구쳤다. 그대로 화염 창을 부순 기둥이 양 갈래로 갈라지더니 후방에 있던 두 마법사에게 육박했다.
다급하게 마력방벽을 둘렀지만 소용없었다.
카앙! 마력의 벽을 박살 낸 기둥이 주변을 휩쓸며 마법사들을 강타했고, 안 그래도 맷집이 약한 둘은 나가떨어지며 의식을 잃었다.
베르덴이 3명을 제압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분 남짓.
전혀 상정하지 못한 상황에 헤베겔이 뒷걸음쳤다. 네 명이서도 상처 하나 내지 못했는데 자신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베르덴은 말없이 마력을 번뜩였다.
“자, 잠깐!”
퍼억!
* * *
“끄으으윽!”
베르덴의 마법에 의해 지면에 갇힌 루커스의 최측근, 크랄그.
몸을 비틀며 있는 힘을 다해 탈출하려고 해 봤지만 부상을 입은 몸으로는 무리였다. 단단히 고착화된 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기랄, 몸만 멀쩡했으면!’
그랬으면 애초에 잡힐 일도 없었는데.
루커스 밑에서 10년 넘게 일해 온 만큼 크랄그는 실력에 나름 자신이 있었다. 자신을 추적해 오던 4명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건 무리겠지만 빈틈을 노려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그나저나 밖이 조용해졌어.’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사라졌다.
아까 전에 큰 진동이 느껴진 이후로 말이다. 바깥을 볼 수 없으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그를 감싸고 있던 지면이 움직였다.
아마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가 이긴 모양. 4명을 상대로 이긴 걸 보면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겠지만 멀쩡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만 하면 놈을 죽이고 도망갈 수 있을지도.’
이윽고 크랄그가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나 상황은 그가 생각하던 것과 달랐다. 방금 전과 달리 난장판이 된 주변. 곳곳에는 자신을 쫓아오던 추적자들이 힘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니 살아는 있는 모양이다.
그에 반해 로브의 마법사는 상처 하나 없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상치 않은 압박감에 크랄그가 침을 꼴깍 삼켰다.
베르덴이 물었다
“로커스는 어디 있지?”
“아, 넵. 비밀 가옥에 있습니다.”
크랄그가 즉답했다.
자존심 세울 때가 아니란 걸 단번에 깨달은 것이다. 비굴해 보이더라도 최대한 협조해서 살고 싶었다. 로커스가 이걸 알게 된다면 자신을 죽이려고 들 테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 루커스는 아마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너는 왜 비밀 가옥으로 가지 않은 거지?”
“그게, 아실진 모르겠지만 ‘인간 사냥꾼’이라고 그레이에서 유명한 놈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지금쯤이면 루커스도 부하들도 전부 죽었을 겁니다. 무려 4위계 마법사하고 전직 상급 용병이 있으니까요. 이 바닥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놈들입니다.”
‘이미 선수를 쳤나.’
하지만 말만 듣고 이대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우선 그 비밀 가옥이라는 곳부터 찾은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베르덴이 크랄그를 내려다봤다.
“그럼 안내 좀 부탁하지.”
살고 싶으면.
* * *
절벽에 숨겨진 지하 비밀 가옥.
입구인 작은 틈새를 지나면 절벽 반대편에 저택에 버금가는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난방은 물론이고 하루 네 끼를 먹어도 몇 달은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걸 짓는 데 동원한 일꾼들은 살처분했기에 로커스와 그 최측근만이 아는 안전지대였다, 바로 어제까지는.
“허억, 허억……!”
로커스가 다급하게 지하로 들어갔다.
두터운 강철로 만들어진 문. 총 여섯 개의 잠금 쇠를 이용해 단단히 걸어 잠갔다. 하지만 추적자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콰아앙!
강철 문이 통째로 찢겨 나갔다. 파편이 비산하며 로커스의 다리를 관통했다. 볼품없이 넘어진 그 모습에 지하로 들어온 여성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어머, 로커스. 그 다리론 더 이상 도망가는 것도 무리겠네?”
“으윽…… 베냐, 이 썩을 년이!”
전직 상급 용병, 베냐.
육중한 도끼를 어깨에 멘 그녀가 로커스를 한심한 듯 쳐다봤다.
“말이 심하네. 편하게 죽기 싫어? 그러니까 살고 싶으면 진작에 기밀 정보를 넘겼어야지.”
“지랄하지 마라……! 정보상에게 정보가 없으면 죽으라는 말밖에 더 되냐!”
“그러게 누가 병신같이 날뛰랬나? 그리고 그쪽이 더 살 가능성이 높았을걸? 안 그래, 로이드?”
“그건 그렇지.”
나무 스태프를 든 마법사, 로이드가 계단을 내려왔다.
그의 로브에는 아직 식지 않은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위는 전부 처리했다.”
“펠레드는?”
“우리 말고 다른 동업자가 쫓아올지 모르니 입구를 막으라고 말했다. 뭐, 보아하니 아무도 오지 않을 모양이지만…… 뭐든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없지.”
<염동력>
염력의 상위 마법.
무형의 마력이 로커스의 품속에서 오래된 서류 하나와 봉인된 주머니를 움직였다. 로커스가 급히 손을 뻗었지만 베냐가 성큼 다가가 로커스의 가슴을 짓밟았다.
“끄아아아악……!”
“자꾸 귀찮게 하긴. 로이드, 물건은 어때?”
“확실하다. 그리고 샐러맨더의 심장도 진품이군.”
“이번 의뢰 짭짤하네. 스트레스도 풀고 돈도 벌고. 근데 그 심장이라는 것, 귀족에게 장물로 팔아 버리면 몇 억은 받겠지? 로커스, 이거 고마워서 어떻게 해?”
“이런 개같은…… 아아아아아아악!”
베냐가 히죽거리며 다리에 힘을 실었다.
가슴뼈가 반쯤 으깨진 로커스가 이내 기절했다. 그제서야 만족한 듯 도끼를 치켜들었다.
“잘 가, 로커스. 돈은 잘 쓸게.”
콰직! 로커스는 그대로 양단되었다.
시체에 도끼를 문질러 피를 닦은 베냐가 로이드를 돌아봤다.
“이제 돌아가 볼…….”
아아아아아악!
지상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 분명 펠레드의 음성이었다. 무슨 일이 생겼다고 직감한 베냐와 로이드가 계단 쪽을 경계했다.
잠시 후, 뭔가가 굴러떨어졌다. 공포에 질린 펠레드의 머리였다.
“카카칵. 카카카칵. 여기서 심장 냄새가 나는군.”
기이한 웃음소리. 흉터가 얼굴에 가득한 거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한이 들고 있는 두 개의 박도에선 피가 뚝뚝 흘러내렸고, 섬뜩하리만치 가지런한 치열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베냐가 고개를 가웃거렸다.
“뭐야, 저 대머리는?”
“그레이 쪽은 아니다. 하지만 생김새를 보니 어디서 왔는지는 알겠군.”
로커스가 훔친 샐러맨더의 심장.
그것을 찾기 위해 로커스의 정보상을 궤멸한 놈이 분명할 터. 베냐가 코웃음 치며 도끼를 빙빙 돌렸다.
“잘됐네. 로커스 부하 놈들로는 좀 부족했는데, 큼지막한 게 부수는 맛이 있겠어.”
“방심하지 마라. 펠레드를 간단히 죽인 놈이니.”
“문제없어.”
펠레드 따위야 자신도 한 수에 죽여 버릴 수 있으니.
인간 사냥꾼. 이들에겐 동료의 개념이 희박했다. 이해관계가 맞아 같이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죽여 볼까?”
후우웅────!
매서운 기세를 담은 도끼가 거한의 정수리로 떨어졌다.
* * *
베르덴은 크랄그의 안내를 따라 비밀 가옥으로 향했다.
절벽에 난 틈새를 지나자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자연 속에 세워진 건물은 꽤나 장관이었다. 주변에 널리고 널린 시체만 아니라면 말이다.
크랄그가 침을 삼켰다.
겁을 먹었으나 베르덴이 턱짓하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피의 웅덩이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에는 마법에 당한 시체가 대부분이었다.
“여, 여기에 지하가 있는데, 거기에 로커스의 방이 있습니다.”
“그렇군.”
입구를 막은, 머리가 없는 시체를 치우고 크랄그를 앞장세웠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고 있던 중, 베르덴의 감각에 무언가 스쳤다. 미세하게 들리는 파육음 그리고 끊어질 듯한 신음 소리였다.
‘다행히 늦진 않았나.’
곧바로 지하에 들어섰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스태프가 부러진 마법사는 형체조차 찾아볼 수 없었고, 팔 한쪽이 잘린 근육질의 여자는 투박한 검에 꿰여 허공에 들려 있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 이내 목이 베여 머리가 날아갔다.
“카카카카칵.”
기이한 외모의 거한.
그 모습에 크랄그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괴, 괴물……!”
괴물이라면 로커스의 정보상을 궤멸한 장본인인가?
방금 죽인 자들이 아마 크랄그가 말한 인간 사냥꾼이라는 자들인 것 같은데……. 4위계 마법사와 전직 상급 용병이 죽은 걸 보면 상당한 실력자인 모양이다.
거한이 성큼 로이드의 시체에 다가가더니, 그의 옆에 있는 주머니를 집어들었다.
“드디어 찾았다. 그분이 좋아하시겠어. 하지만 그 전에…….”
활짝 웃은 거한이 기괴하게 몸을 비틀었다.
그러곤 베르덴이 있는 입구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카가가각. 두 개의 박도를 서로 부딪치며 날카롭게 칼날을 세웠다.
정확히 베르덴과 크랄그에게 고정된 시선. 아무래도 그냥 지나갈 생각은 없는 것 같다.
화아아악!
베르덴의 몸에서 방대한 마력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