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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찢는 천재마법사-58화 (58/366)
  • 58화 샐러맨더의 심장 (1)

    페일은 정보를 판매하거나 의뢰를 주선할 때, 주로 철창과 유리 뒤에서 상대를 맞이한다.

    상당한 거금을 들여 만들어 낸,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방어책. 간혹 감옥 같은 분위기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손님들이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이곳은 그레이. 언제나 예의를 갖춘 손님이 찾아오진 않는다.

    과거 페일의 정보상이 본궤도에 올라갔을 때쯤엔, 도중에 대화가 틀어져 페일이 가진 정보를 강탈하려 하는 경우도, 정보를 없애려 페일을 암살하려 했던 일도 있었다.

    이 시대에 정보상으로 살아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귀족조차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위상이 오르면 얘기는 달라진다.

    정보상을 죽이려고 했던 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진다. 때론 자신들의 치부가 세간에 드러날까 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자칫 적대하면 둘 다 죽게 될 수도 있기에 암묵적으로 손을 잡는다.

    어떻게 쓰냐에 따라 칼이 되고 방패가 되는 무형의 힘. 정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페일의 삶이 안전해졌다는 건 아니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는 순간 사방에서 그를 물어뜯으려 들 테니. 그런 페일이 어떤 철창이나 유리 없이 타인과 직접 만나는 경우는 총 세 종류에 한정된다.

    신뢰하는 자.

    유리와 철창 따위론 막을 수 없는 자.

    아니면 둘 모두에 해당하는 자.

    페일은 언제나 이 규칙을 고수해 왔다. 오늘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가 그 조건에 부합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페일의 영향권은 그레이 남부에 한정되어 있지만, 그가 가진 정보망은 공국 전체에 고루 퍼져 있다. 어지간한 소식은 놓치는 법이 없었고, 그 정보의 신뢰도 또한 매우 높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베르덴을 잘못 평가하고 말았다.

    도살자에게 소개받았을 때는 분명 3위계였는데, 불과 몇 개월 후, 자작을 수색하는 의뢰에서 4위계의 마법을 보란 듯이 드러냈다.

    대체 뭐지? 실력을 숨기고 있던 건가? 왜? 아니면 그 짧은 시간 동안 성장이라도 했다는 건가?

    뭐가 됐든 전력을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는 건 명백했다.

    언제나 사람을 쓸 땐 신중하게 정보를 수집해 상대를 파악해 왔고, 그 판단은 거의 틀린 적이 없었는데……. 하나, 정보의 주체가 로든마이어 백작이다.

    그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백작이 얻을 수 있는 메리트가 없었다.

    페일은 주관적인 생각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정보에만 집중했다.

    애셔는 3위계가 아닌 4위계 마법사이며, 적절히 거리만 조절한다면 분명 서로 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여기까진 이해가 가능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 판단은 또다시 뒤집어졌다.

    ‘이, 이럴 수가…….’

    소울 트리.

    특수 개체에 버금가는 이형종을 쓰러뜨린 두 주역 중 하나. 이 정보를 접했을 땐 페일조차 당황하며 몇 번이고 정보의 진의를 확인할 정도였다.

    물론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이미 로리엔에선 신문에 애셔의 이름이 올라 명성이 퍼지고 있으며, 그 소식을 들은 권력자들이 잿빛 마법사에게 시선을 모으고 있다.

    그가 만들어 낸 거대한 화염폭풍을 목격한 사람 또한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애셔는 차기 미스릴 등급 모험가로 예상되는 핏빛검 레이라와 동급. 최소라고 해도 그에 준하는, 통상적인 4위계 마법사와 비교도 되지 않는 마법적 재능을 가진 실력자임이 확인된 것이다.

    거기다 한계 위계는 최소 5위계 이상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니 그만한 대우를 하는 건 당연한 수순.’

    페일이 정한 신용 등급의 역할은 거름망.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외부인을 걸러 내기 위한 용도다. 부여받은 등급 이상의 의뢰를 주선하거나 정보를 판매하는 건 어떠한 상황에서도 허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임의로 등급을 올리는 건 가능하다.

    페일이 가진 정보력.

    그것을 먼저 제시하여 역으로 상대방의 신용을 끌어내는 것. 눈앞의 잿빛 마법사에겐 그럴 만한 가치가 차고도 넘쳤다.

    “그런 이유로, 저는 애셔 님의 등급을 4등급에서 2등급으로 상향 조정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곧바로 최고 등급을 부여하지 않은 건 실력이 아닌, ‘신뢰’의 문제.

    1등급의 정보와 의뢰는 페일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베르덴이 얻을 메리트다. 페일은 바로 그런 점을 강조했다.

    베르덴은 생각했다.

    ‘나야 좋은 일이군.’

    알아서 대우해 주겠다는데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가라고 해 봤자 페일이 주선하는 의뢰를 처리하는 정도려나.

    ‘아니, 어차피 보수를 안 받는 것도 아니고, 의뢰도 내 맘대로 정할 수 있으니 대가라고 할 수도 없지.’

    이건 거래다.

    서로가 손해를 보지 않는 상부상조의 관계.

    “그럼 고맙게 받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말이 끝났다.

    대화는 본론으로 넘어갔다.

    * * *

    “그나저나 의뢰를 받으려 하셨으면 제가 알려 드린 연락망을 이용하셨을 텐데……. 이렇게 직접 찾아오신 걸 보니 다른 용건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정보가 필요해서.”

    베르덴이 종이 한 장을 꺼내 페일에게 건넸다.

    적혀 있는 것은 각종 고가의 연금술 재료. 개중에는 하나만으로도 억을 넘는 희귀한 식물 또한 실려 있었다.

    “하나같이 동네 상점에선 보기 어려운 것들이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구하지 못한다는 건 아닙니다. 시간만 주신다면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죠.”

    “구매를 대행해 주는 것도 가능하나?”

    “3등급 이상에 오른 분들에게만 가능한 혜택입니다. 애셔 님은 마침 2등급이 되셨으니 가능하시겠군요. 물론 공짜는 아니고 약 6%의 수수료가 부과됩니다.”

    그 정도 비용은 예상한 바다.

    돈 아끼겠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단 낫겠지.

    “부탁하지. 그리고 하나 더 살 게 있는데.”

    “무엇입니까?”

    “뛰어난 연금술사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가능하면 소개하는 방식으로.”

    어중이떠중이는 안 된다.

    마핵의 제작 난이도가 낮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오브를 재료로 한 스태프에 비해서다. 재료가 재료인 만큼 실패할 가능성을 한없이 낮춰야 한다. 돈이 좀 들더라도 말이다.

    페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군요. 다행히 저의 정보상과 연줄을 맺고 있는 연금술사가 몇 명 있습니다. 주로 자신들이 만든 포션이나 물건들을 판매하기 위함이죠. 후보를 한…… 3명 정도 정해서 연금술 재료들과 함께 건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총비용은…….”

    계산기를 두들겨 액수를 베르덴에게 보였다.

    연금술사에게 마핵의 제작비까지 지불해야 할 걸 감안해도 베르덴이 가진 예산 내에서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빈털터리가 되겠어.’

    재료와 정보가 준비되는 시간.

    그동안 개인적인 연구를 이어 가는 것보단 돈을 버는 편이 낫겠지. 지금의 생활을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베르덴이 미리 은행에서 인출한 현금을 꺼냈다.

    100만 엘크짜리와 10만 엘크짜리 지폐 수백 장. 기계를 사용할 필요도 없이 페일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액수를 확인했다.

    “얼추 맞군요. 잔금은 나가실 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달리 필요한 게 더 있으십니까?”

    “의뢰를 하나 할 생각인데.”

    그러자 페일이 잘됐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잠시 후, 페일이 서류 하나를 가져왔다.

    그 안에서 꺼낸 의뢰서의 상단에는 ‘로커스’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베르덴이 물었다.

    “로커스가 뭐지?’

    “북부 그레이에서 활동하는 정보상입니다. 제가 있는 남부와는 겹치는 일도 없고, 경쟁자라고 할 것도 없지만…… 저와 달리 합법보다는 불법적인 일에 전념하고 있지요. 이 바닥을 한층 더 더럽게 만드는 미꾸라지 같은 자라고 해도 될 겁니다.”

    “그렇군. 그래서 이 의뢰는?”

    페일이 의뢰서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했다.

    “로커스의 운영 방식에는 하도 불법이 많다 보니, 각종 범죄자나 위험한 자가 많이 모입니다. 그만큼 돈은 벌긴 하겠지만 여러 적을 만들게 되는 셈이죠. 그러다 최근 어디 벌집을 건드린 모양인지 크게 마찰이 생긴 듯합니다. 정보상이 아주 궤멸 직전까지 몰렸더군요.”

    “궤멸?”

    “바로 이 물건 때문입니다. 자료를 보시죠.”

    페일이 보여 준 자료에는 마치 불꽃을 형상화한 듯한 심장이 그려져 있었다.

    “희귀 마수 샐러맨더의 심장입니다. 마법적인 처리를 통해 금속에 녹여 무기를 만들면, 뜨거운 열기를 품은 마법 물품이 만들어지게 되죠. 그리고 심장을 뽑아내고도 약 한 달간은 살아 움직일 정도로 생명력이 강력한 탓에 여러 포션이나 특수한 활력제로도 사용됩니다. 여러모로 손에 넣기 힘든 물건이죠.”

    “그런 걸 일개 정보상이 가지고 있었다고?”

    “제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국경 너머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가지고 들어왔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서 빼앗은 뒤,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창고에 고이 모셔 둔 거겠죠. 이제까지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대 쪽이 그리 호락호락한 자는 아닌 모양이다. 로커스의 정보상을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니.

    “그 심장이라도 가져오라는 건가?”

    “그럼 좋겠지만 자칫하단 괜히 불똥이 튈 수 있습니다. 물건을 되찾은 범인과 물건을 빼앗은 로커스가 서로 자멸하지 않는 이상은……. 아니, 그래도 오랜 시간 장물로 보관해야 하니, 굳이 위험부담을 안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없어져 버리는 게 좋은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필요한 건 완전히 다른 겁니다, 바로 정보죠.”

    현재 로커스는 잠적했다.

    본진이 털렸으니 당연히 샐러맨더의 심장뿐만 아니라, 그가 평생 동안 쌓아 둔 기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할 터. 이미 여러 정보상이 그걸 빼앗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경쟁이 치열하니 아주 난장판이 될 겁니다. 그레이에서 활동하는 실력자들이 추적을 할 테니까요.”

    “쉽지는 않겠군.”

    “그래서 2등급 의뢰죠. 대신 보수 또한 이제까지완 다를 겁니다.”

    페일이 계산기를 통해 금액을 보여 주었다.

    ‘확실히 다르군,’

    지금까지 페일에게서 받은 보수를 전부 합친 것 이상.

    이 의뢰 하나만 해낸다면 마핵을 제작하고도 돈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되지?”

    * * *

    리비안트 공국 북부.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 설산과 가까운 지형 탓에 다른 지역과 달리 벌써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술! 술 더 가져와! 당장!”

    두꺼운 망토를 뒤집어쓴, 며칠간 제대로 씻지 못했는지 수염이 덥수룩하고 꾀죄죄한 사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작은 마을의 여관 주인이 겁먹은 얼굴로 에일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저,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그만 드시는 게…….”

    “아가리 닥치고 죽기 싫으면 술이나 내놔!”

    “예, 예!”

    술을 뺏다시피 한 사내가 그대로 병나발을 불었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꾸겨진 지폐를 꺼내 여관 주인에게 던졌다. 화가 날 법한 행동이었으나 여관 주인은 잠자코 돈을 주울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평화로운 마을이다.

    허리춤에 시퍼런 칼을 찬 외지인이 무서울 수밖에. 애써 참으며 조용히 떠나길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그때, 누군가 여관에 들어왔다.

    로브를 머리까지 눌러쓴 남자. 또 처음 보는 외지인이었다.

    “잠시 나가 계시죠.”

    “네……?”

    로브의 사내, 베르덴이 20만 엘크를 건넸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여관 주인은 머뭇거리다 냉큼 돈을 받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스태프를 손에 든 베르덴이 술에 취한 사내를 바라봤다.

    ‘저놈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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